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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은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이 문장으로 서두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물음까지 던지고 있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바로 뒤에 나온다. 작가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라면서,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진다'고 대답한다. '달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회색빛이에요. 지구에서 봐온 포근한 노란색은 어디에도 없죠. 간혹 제가 달에 있는 건지 시골의 채석장에 있는 건지 잘 구분되지 않아요.'라는 말로 우리의 환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작가는 [꿈의 환상성]을 몰아내면서,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려는 건가?
게다가 '달의 바다는 달 표면의 어둡고 평탄한 지역을 바다로 오해했기 때문에 비롯된 명칭이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세계는 오해 속에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현실의 모순성]을 드러내면서, 우리를 다시금 절망에 빠트리려는 건가?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오해로 점철된 공간 안에서 즐거움을 위해서 '거짓말'이라는 하나의 놀이를 주창한다. 그러면서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라고 되묻는다. 그러곤 '거짓말을 잘하는 순서대로 재미있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작가의 정체를 모르겠다. 어쩌면 작가는 '거짓말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최악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구조는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녀의 조카인 은미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고모를 만나러 미국으로 가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은미는 거듭하는 취업 실패로 절망에 놓인 '현재의 젊은이'를 비춰주는 상이다. 작가는 할머니를 통해 '쟤는 취직에 잠깐 실패한 것뿐이지, 인생 전부에 실패한 건 아니라구요.'라고, 고모를 통해 '넌 포기한 거 아니야. 잠깐 쉬는 거지.'라고, 그리고 조엘을 통해 '아가씨는 젊으니까 아직 많은 기회가 남아 있을 거예요.'라고 위로해주며 조언한다.
그리고 고모는 계속되는 실패에 맞서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한다. 그녀는 이젠 실패도 겪을대로 겪어본 '과거의 젊은이'를 비춰주는 상이다. 그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확히 분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며,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희생과 실수와 오류를 더이상 후회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이나 슬픔이 알사탕의 티끌로 보이는 곳에 가서 '제 손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싶다'며, 동물이 다시 가길 원치 않는 그곳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는 이유는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는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고,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그걸 알기 때문에 자신은 세상에 빚진 것이 없이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파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구슬' 아니면 '한입에 쏙 들어오는 알사탕'같다며, '그 행성은 우주에서 보기 드물게 달콤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천상병 시인이「귀천(歸天)」에서 [이 세상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하리라]고 읊은 것과 같지 않을까.
소설 속에서 '미래의 젊은이'를 표상하는 인물은 고모의 아들인 찬이다. '이제 막 소년 티를 벗은 그애에게서 연하고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라는 말에서, 그가 꿈을 향해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꿈]이란 코드는 [달]이라는 공간으로 치환되어 나타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디일까? 그곳은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꿈]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꿈]을 방해하는 요소로 개입하기도 한다. [현실]은 [달]보다 '중력'이 6배나 강하고, '언제나 주변으로부터 잡아당겨지는 힘'으로 살아가는, 바로 여기 [지구]이다. 곧,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구]에서 [달]처럼 살아가기, [지구]를 [달]로 오해하며 살아가는 긍정의 힘이다. 그래서 작가는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결국 [현실]도 [꿈]의 일부임을 인식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붙임말 :D 우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찜찜함이 아쉽네요. 리뷰의 주제가 [고모 - 은미- 찬이]로 이어지는 [과거 - 현재 - 미래]의 젊은이 상이었기에, 민이의 고민과 조엘의 멋진 삶을 첨가하지 못한 아쉬움이 큽니다. 그렇지만 [캐비닛]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소설이라서 반가움이 크네요. 앞으로는 더 자주 만나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