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필립 얀시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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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하나님의 은혜](필립 얀시/윤종석, IVP)

한때 필립 얀시를 좋아했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중반 시절로, 신앙적인 고민을 많이 하던 내게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준 사람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고 위로가 되었었다. 필립 얀시 책은 총 다섯 권을 읽었고([하나님이 나를 외면할 때]-[(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그때는, 제목만으로도 막혔던 마음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중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이 책,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게 어언 12, 13년 전의 일이 되었다.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이번 달 독서모임에서 나누고자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20대 초중반에는 도움을 많이 받은 책임에 분명하지만, 3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는 지금은 조금 답답한 구석이 많았다. 내가 너무 비은혜의 사람이라서 이 책을 답답하게 여기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은혜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2부에서는 용서, 3부에서는 율법주의와 은혜, 4부에서는 사회에의 적용이라고 해야 할까. 워낙 사례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 때문인지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애매한 것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제대로 읽은 건지도 모르겠다.
먼저, 저자가 설명하는 은혜는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예전에는 이단으로 취급했으나 현대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취급하지 않는 알미니안주의에 대해 강력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저자는 알미니안주의적이라고 오해할 만한 소지의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단과 교파의 차이가 무엇이 중요할까, 싶긴 하지만, 현대 교회 내에서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으니 알미니안주의적인 사고를 허용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또, 아무리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다고 하더라도 이단격인 천주교에 대해서도 허용하는 듯한 글,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종교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지나치게 수용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괴로웠고, 저자는 어떤 의도에서 썼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포용하려고 하다 보니 ‘진리가 달라도 사랑만 베풀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드러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저게 실제 저자의 생각인 것일까,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일까? 저자의 생각이라면, 저 생각은 범신론적으로 흐를 여지가 있고, 포스트모던 사고를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요즘 읽고 있는 책 [불확실의 시대, ‘오직‘을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선한 일이 은혜를 낳지 않고, 도리어 은혜가 선한 일을 낳습니다.‘(48쪽) 이 책은 기독교인이 왜 정죄만 하고 은혜를 베풀지 못하느냐, 라고 물으면서 행하라(은혜를 베풀어라)고 말하는 듯한데,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불확실의 시대, ‘오직‘을 말하다], 51쪽)는 개혁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알미니안주의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은혜를 받았으면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에게 열매를 맺으라고 하는 것은 독이 든 열매(잘못된 지식)라도 열매만 맺으면 된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또, 열매를 통해 자기의를 주장할 가능성과, 열매가 자기의에서 기인한 것인지, 하나님의 은혜에서 기인한 것인지 혼동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예수님 믿는 다른 사람은 이런 식으로 은혜를 베푸는데 너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는 느낌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은혜라는 말을 오용, 남용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은혜받았다고 말하지만 변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에 대해서도 좋은 말이면 무조건 은헤받았다,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경향도 있다. 상담, 심리학을 교회 내에 들여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이것이 바로 알미니안적 태도이다.)고 가르치며, 이 영향은 구원론에도 영향을 끼친다.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하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상담과 심리학을 이용해 사람을 끌어모으고 복음을 싸구려로 만드는 것 같은 행태도 싫어한다. 이토록 상담과 심리학을 경계하는 이유는, 교묘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열을 내는지는 독서모임을 하기까지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1부를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 것은, ‘도대체 은혜가 뭐지? 사랑을 베푸는 것인가? 은혜의 반대는 정죄인가?‘ 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은혜를 행하는 사람들을 나열함으로써 ‘이 많은 게 다 은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2부에서 내 마음이 심각하게 요동친다. 내가 매우 힘들어하는 ‘용서‘ 파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하나님 외에 사람에게서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잘못을 했을 때 사과는 했지만 용서받아야 할 만큼 그게 큰 잘못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용서했던 경험은.. 이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시간이 지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된 문제는 있는데 이것을 용서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용서의 문제는 늘 어렵다.
다음은 용서 파트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들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사하셨기 때문이다.˝(71쪽)
먼저 용서받은 경험이 있어야 남을 용서할 수 있는 법이다.(101쪽)
˝... 그래도 불의를 용서한다는 건 어딘가 불공평해 보이죠. 용서와 정의 사이에서 진퇴양난이에요.˝(103쪽)
정의와 자비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할 저울을 하나님 손에 놓아드리는 것이다.(105쪽)
폴 틸리히는 용서를, 과거를 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149쪽)
내가 최선의 모습이 아니라 최악의 모습일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찾아오신 것과 그 놀라운 은혜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을 나는 안다.(171쪽)
루이스는 내 표현으로 ‘은혜 남용‘이 묵인과 용서를 혼동한 데서 오는 것이라 설명한다. ˝... 용서란 베푸는 편 못지않게 받아들이는 자가 있어야 온전한 것이 된다. 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213쪽)

하나님은 내가 죄인되었을 때 찾아오셨고, 용서해 주셨다. 내가 죄를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용서해 주셨다. 이 대목이 마음을 울렸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반성해야 용서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 전에 이미 용서를 해주시다니! 물론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내가 죄인임을 깨달은 이후이겠지만 말이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다. 이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는 깊이 와닿지 않는다.

그리고 논란이 될 수 있는 알미니안주의적 발언이 있었다.

선한 삶을 사는 최고의 이유는 스스로 선한 삶을 원하는 것이다.(227쪽)

사람의 본성상 어떻게 스스로 선한 삶을 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스스로 선한 삶을 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간절히 원할 수 있게 된다면 열매를 맺는 은혜도 또한 주시겠지. 이 구절은 헷갈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

어쨌거나, 2부에서 말랑말랑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불편함이 많았던 책이었다. 바른 지식(완전한 지식이 아님)이 바른 열매를 맺게 한다고 믿고 있는데, 물론 100% 바른 지식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까지 허용적이어도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너무 비은혜의 사람이기에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말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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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계 경험과 하나님 경험
마이클 세인트 클레어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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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계 경험과 하나님 경험](마이클 세인트 클레어/이재훈,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정말 오랜만에 읽은 전공서적이었다. 물론 몇 일 전에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이라는 전공서적인 듯 전공서적 아닌 듯 전공서적 같은 전공서적을 읽기는 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매우 읽기 까다로운 전공서적이었다. 책 두께는 굉장히 얇은데 번역 문제인지 전공 단어들 문제인지 책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다.
부제는 ‘대상관계 이론과 종교‘로, 대상관계 이론과 종교의 연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대학원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고 교수님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아 샀던 것 같다.
대상관계 이론과 관련해서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것은 첫 학기와 마지막 학기가 유일하다. 첫 학기에는 심리검사 수업 때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리면서 언뜻 접했고(그때는 대상관계 이론인지도 몰랐다.), 마지막 학기에는 대상관계 이론에 관한 책을 보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렸던 것이 생각나서(이미 10년 전) 지금 그린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했다.
이 책은 종교라는 말이 들어가서 신앙서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결코 신앙서적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공서적인데, 대상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학적이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아서 조금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는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가 3장의 결론에서 제임스 파울러를 언급했는데, 제임스 파울러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신앙의 발달단계] 책으로 접했던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파울러가 신앙의 내용과 신학적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정신분석학적 관계의 개념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는데, 그렇다면 파울러의 신앙의 발달단계와 정신분석학적 관계의 개념을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이 책은 너무 심리학적 접근을 해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쓴 논문이 있을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없다면 다음에 (혹시라도) 공부를 더 하게 되면 그 내용을 가지고 논문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 경험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종교 경험에 대한 서술도 어디까지나 심리학적 접근이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또, 대상관계 이론은 뿌리는 정신분석학이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프로이트는 영적인 부분을 퇴행적인 것이라고 인식했다(그래서 융과 갈라선 것으로 알고 있는데..). 1장에서 대상관계 이론이 어떻게 발달되어 왔는지 서술하며 여러 학자들을 언급하는데, 나는 그 중 스페로의 입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로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는 서로 평행적 차원들이 있다고 본다(31쪽). 이 사람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스페로에 대해서 더 공부해봐야 할 것 같다.
2장에서는 리주토의 이론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어릴 때 (대부분 부모님의 영향으로) 상상으로(?) 만들던 하나님의 이미지는 인간이 발달단계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개념과 하나님 표상이 통합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기독교식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3장에서는 (대상관계 이론에 따른) 심리의 발달 단계와 성인의 종교 경험을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고, 4장은 어거스틴과 테레제 두 성인을 비교, 대조하면서 앞에서 서술했던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 의거하여 어릴(혹은 젊을) 때의 심리 발달과 종교 경험을 분석하고 있으며, 테레제는 자서전인 영혼의 이야기에 의거하여 어릴 때의 심리 발달과 종교 경험을 분석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테레제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어거스틴과 테레제의 차이는, 어거스틴은 어머니와 너무 밀접한 관계였고(물론 중간에 어거스틴이 의도적으로 어머니와 떨어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테레제는 상실에 상실을 거듭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친밀감을 느꼈던 언니들이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결국 본인도 수녀원에 들어가지만) 어릴 때 정상적으로(?) 관계 개념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것이 테레제의 종교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대학원 첫 학기에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릴 때 교수님의 해석을 듣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 상처에 제대로 접근했던 건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부모님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하나님 표상 그림이 또 달라지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지대하다.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깊어진다.
이 책은, 앞서도 말했듯, 신앙적 접근이 아니어서 아쉬웠던 부분은 있지만, 대상관계 이론으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에 영향을 주는지 잘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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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 - 무엇이 내 행복을 훼방놓는가?
매릴린 케이건 & 닐 아인번드 지음, 서영조 옮김 / 전나무숲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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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매릴린 케이건, 닐 아인번드/서영조 옮김, 전나무숲)

오랜만에 전공서적(?)을 읽어보았다. 요즘 다시 전공서적을 읽고 있다. 물론 이 책은 전공서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가벼운 책이다. 방어기제에 대한 책인데, 5년 전에 샀다가 (나에게 해당하는) 몇 파트만 읽고 책꽂이에 다시 얌전히 꽂혀있던 책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읽었던 부분도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긴 했지만.
이 책은 방어기제 열 가지에 대해 사례 중심으로 실려 있다. 부정, 투사, 합리화, 지성화, 유머, 전치, 승화, 지연행동, 이타주의, 소극적 공격성이다. 방어기제라는 말의 늬앙스 때문인지 방어기제를 나쁘게만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방어기제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으며 잘 활용할 수도 있다라는 것, 그리고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승화나 이타주의에도 단점은 존재한다는 것.
부정은 워낙 (나에게)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투사나 합리화도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매우 이해가 잘 되었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나 지금이나 투사는 왜 이렇게 어렵다고 여겨지는지 모르겠다. 나도 투사를 꽤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투사에 대해 따로 더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투사 파트에서 감정 차트가 나오는데, 책에서는 최근 6개월간 주로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체크하라고 했지만 나는 한 가지를 고르는 게 어려웠다. 주로 느꼈던 감정이 없는데 뭘 골라야 하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랑은 주로 무엇을 느꼈을까, 하고 체크해 보았다. 그리고나서 신랑에게 내 주감정이 무엇이었던 것 같냐고 묻자, 다 한 번씩 느껴본 것 같다면서 주감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느끼지 않았음직한 감정은 ‘희망에 차다‘인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랑의 주감정은 무엇이었는지 묻자, 신랑은 ‘자신감 있다‘라고 말했다. 평소에 신랑이 불만 사항을 말할 때가 종종 있어서 나는 신랑의 주감정이 ‘불만스럽다‘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였다. 그렇게 말하자 신랑은 이야기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극대화시킨 것이라며 정말 불만스럽고 화가 나는 상황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랑은 나의 감정을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신랑의 감정을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정말 감정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사 파트에서 생각하게 하는 구절, 찔리는 구절이 하나씩 있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려면 자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마주해야 한다.(68쪽)

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은 무엇일까? 확실히 대학원에서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던 부분과 맞닥뜨리니 삶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드러내는 동안에는 너무 너무 힘들었지만 말이다.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식하는 것이다.(73쪽)

나는 다른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일까? 투사를 하찮게 만들려면 공감능력을 길러야 한다(78쪽)고 한다. 역시 내가 상담할 때 초기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괜한 느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친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책에 나오는 투사의 내용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더 공부하고 싶다.
이전에는 내가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지성화와 승화, 지연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책을 읽어보니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어서일 수도 있지만) 지성화와 승화는 내가 감정을 억압하면서 쓰게 된 방어기제인 것 같고, 조금 자유로워진 지금은 투사, 지연행동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성화에 대한 공감이 매우 적어진 걸 보면 아무래도 내가 주로 쓰는 방어기제는 아닌 모양이다. 또, 이전에는 엄마가 내 감정을 억압했다고 생각했는데, 감정을 억압한 주체는 나이지 엄마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내 감정에 대해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감정 억압의 주체는 결국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성화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감정과 거리를 두며 살다 보니 마음 밑바닥에 우울감이 깔려 있다. 그런 사람들의 감정을 흔들어 깨우는 데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효과적이다.(131쪽)

아, 그렇구나, 했던 부분이다. 하긴 지성화를 사용하는 동안 좀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감정을 억압당한다고 느꼈고,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음이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었다. 감정을 드러내고 사는 지금은 좀 살 것 같달까. 가끔 우울감이 들기도 하지만, 예전보다는 우울감에 빠져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내가 많이 쓰는 지연행동의 원인은 완벽주의였다(216쪽). 완벽주의 성향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연행동의 원인이 된다고까지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일 때문에 지연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완벽주의 때문이었나 보다. 지금은 지연행동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 육아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 이런 것일까?
그리고 이 지연행동으로 이끄는 완벽주의는 두려움에 기초한 것이다(225쪽). 개인적으로, 나는 굉장히 두려움이 많은 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로 두려움에 직면하는 연습을 해야할 것 같다(생각만 할까봐 두렵기도 하다.).
소극적 공격성도 조금 쓰는 편이긴 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조금이 아니라 많이 쓴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방어기제 열 가지 중에서 안 쓰는 방어기제는 없는 것 같다. 주로 쓰는 것이 무엇인지 차이가 있는 것 같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어기제를 쓰는지 알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 같다. 이제 다시 상담 공부할 마음이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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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꾸리는 법 - 골고루 읽고 다르게 생각하기 위하여 땅콩문고
원하나 지음 / 유유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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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꾸리는 법](원하나, 유유)

11월부터 독서모임을 하기로 했다. 독서모임을 추진하신 선생님께서 독서모임 시작 전에 이 책을 선물로 주셨다. 작가의 사인, 선생님의 손쪽지(?)와 함께(정작 본인 책에는 작가의 사인을 못 받으신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척 감동이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책이 매우 얇아서 빨리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손에 잡고 있는 책이 있었는데, 놓고 이 책을 먼저 읽었다(이런 식으로 다 못 읽혀지고 책꽂이로 향하게 된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두어 시간 걸리긴 했지만 한달음에 다 읽었다. 아마, 11월부터 시작되는 독서모임이 무척 기대가 되었던 모양이다. 독서모임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니 대충의 윤곽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사례 중심으로 적혀서인지 매우 쉽게 술술 읽혔다(아무래도 나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독서모임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하여 운영하는 일련의 과정이 잘 드러나있다. 세부적인 내용까지 엄청 꼼꼼하게 적혀 있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매우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그때가 출산 전이었나, 출산 후였나? 출산 전이라면 학교 업무와 수업 준비만으로도 빠듯하고 거리도 만만치 않아서 한 켠에 제껴두었던 것 같고, 출산 후였다면 양육의 핑계를 댔던 것 같다. 독서모임을 정말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더 열심을 내지 않았을까? 내가 대학원까지 편도 7시간을 달려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왜 독서모임을 하고 싶을까? 소통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같은 책을 읽고 소통하는 것처럼 매력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던 거제요회 시절이 있긴 했다. 그때는 미리 읽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깊이 있는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시간도 짧고 아이들도 많았다.) 늘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독서모임을 적극적으로 찾았던가, 하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내가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수고와 노력에 얹혀 가려고 했던 것 같다(물론 지금은 여건이..). 거기에다 기독교서적 위주의 모임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없을 거라고 단정지어 생각했다. 주변에 글쓰기 모임은 있는 것 같은데, 회비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고 시간적으로 맞지 않아서 포기하기도 했었다.
제일 궁금했던 것은 모임이 어떤 순서로 이루어질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보니 책에 대한 발제를 준비한다. 발제를 준비하는 방법도 나와 있어서 실제 독서모임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감상 - 발제- 기억에 남는 구절 공유로 진행한다고 한다. 독서모임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이 온다. 재미있겠다!
독서모임을 위한 최소한의 규칙도 적혀 있었는데, 학교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있었다. 바로 ‘책을 읽지 않는 회원(학생)‘. 언제나 늘 고민이었다. 내가 책을 읽어줘야 할까, 고학년의 경우에는 책 길이가 너무 길어 읽기만 해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읽어오라고 하는 게 나을까, 개인적으로 같이 읽는 시간이 나을까, 지금도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자율적인 독서모임이다보니 책을 읽어오라고 강조(권유)하는 수밖에 없다고 해서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학교의 상황이 아닌걸 어떡하나.
모임 운영을 위해 운영자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도 알았다. 더 활기찬 모임을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와,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센스가 없는 나는 못할 것 같다.
독서모임 테마 정하기 부분이 재미있었는데 ‘내 인생 최고의 책‘ 부분에서는 내 인생에 최고라고 불릴 만한 책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인생책은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다. 성경도 인생책이라고 느낄 만큼 깊이 파지 못한 것 같고, 여러 책을 생각해 봤지만 추천하기 괜찮은 책은 있어도 흠뻑 빠져들 만큼의 책은 없었다(물론 소설을 읽으면 과몰입해서 읽는 경향이 있지만 인생책이라고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독서모임하면서 인생책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롯이 책만 읽는 시간이라든지, 특정작가 책을 읽는다든지(지금까지는 C.S.루이스, 필립 얀시, 이용규 선교사님, 권일한 선생님 책들을 읽어왔는데 한 작가의 책들을 읽는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이다.), 시대별/지역별 작품을 읽는다든지(이 부분은 와, 정말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해보고 싶다.) 하는 테마별 독서모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부록(?)으로 실려있는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책들 중에서도 사고 싶은 책이 있고, 땅콩문고(검색해보니 땅콩문고는 문을 닫았고 다른 이름으로 열었다.)의 책들(?)도 보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이를 테면 저자가 본문에서 소개한 [책 먹는 법]이라든지, [박물관 보는 법]이라든지, [작은 책방 꾸미는 법]이라든지.. 아, 읽고 싶다. 세상에 읽을 책이 왜 이렇게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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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을 바꾼다 - 탁월한 질문을 가진 사람의 힘
앤드루 소벨 & 제럴드 파나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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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답을 바꾼다](앤드루 소벨, 제럴드 파나스/안진환 옮김, 어크로스)

수업 중 질문, 발문에 관심이 있었다. 발문 관련 연수도 들었지만 나아지지는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몇 년 전에 이 책을 샀던 것 같다(신랑이 이 책 요즘 페북에 많이 보인다며 최근에 산 건지 물어보았다.). 물론 이 책 말고 교육 관련 발문 책도 두어 권 더 있는데 책꽂이에 꽂혀 있다. 읽고 싶을 때 읽게 되겠지.

이 책은 사례 중심으로 서술된 책으로 컨설턴트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본다는 전제 하에서다.
처음 부분 읽을 때에는 학부모를 떠올렸다. 내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학부모 상담할 때 어떻게 질문을 던져야 할지, 대화를 이끌어가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은데 학부모의 교육관이 어떠한지, 자녀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 등등 질문을 어떻게 던질지 조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중간에 ‘이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 질문은 이제 듣기가 싫었다. 나는 좀 지나치게 최선을 다하는 경향이 있는데(물론 주변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인지, 쉬어서는 안 되는 건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최선이냐는 말이 너무 듣기 싫다. 물론 이 책에서도 자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무엇을 배웠는지 묻는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제임스라는 사람은 정말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면 되는 거구나, 라고 감탄할 만큼이었는데, 제임스가 책을 쓴 건 아니라서 좀 아쉽다(?). 실패했을 때 실패했구나, 로 넘어갈 때가 많아서 내년에 복직하면 실패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고 했는데, 어떻게 남겨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무엇을 배웠나, 라는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수업할 때 학습정리 단계에서 ˝무엇을 배웠나요?˝라고 물을 때가 가끔 있는데, 내가 그렇게 질문을 던졌던 건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는지 정말 궁금해서 던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수업 중 일부이기 때문에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질문을 던진 것이었을까. 무엇을 바라고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었을까.
26챕터에서 나오는 다섯 가지 질문 중 첫 번째.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록에는 본문의 질문들을 포함해서 293가지의 질문이 더 실려있다. 사업에 대한 질문이 많지만, 개인에 대한 질문들도 있다.
상담할 때 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읽기도 했는데, 상담에 어울리는 질문들은 아니었다.
나는 대개 질문은 던지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빨리 넘어가고 싶어한다. 모든 경우에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상담을 공부할 때는 한 가지 문제를 골몰히 파기도 했다. 내가 빨리 넘어가고 싶어하는(대답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질문들과 파는 질문들의 차이는 무엇인지 아직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내가 요즘 질문을 잘 하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던져놓고 넘어가고 던져놓고 넘어가고, 그러다보니 했던 질문을 또 하고 까먹고 다시 하는 일도 생겼다. 이 책에 나오는 개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답을 적어가는 과정만 거쳐도 복직 준비에 알찬 하루가 될 것 같다(복직뿐 아니라 인생 전체에도). 복직이 당장 내년 3월이라, 아직 4개월이나 남았지만 왠지 시간이 없다고 느껴지고 마음도 조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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