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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계 경험과 하나님 경험
마이클 세인트 클레어 / 한국심리치료연구소 / 1998년 10월
평점 :
[인간의 관계 경험과 하나님 경험](마이클 세인트 클레어/이재훈,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정말 오랜만에 읽은 전공서적이었다. 물론 몇 일 전에 [내가 말하는 진심 내가 모르는 본심]이라는 전공서적인 듯 전공서적 아닌 듯 전공서적 같은 전공서적을 읽기는 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매우 읽기 까다로운 전공서적이었다. 책 두께는 굉장히 얇은데 번역 문제인지 전공 단어들 문제인지 책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많이 굴려야 했다.
부제는 ‘대상관계 이론과 종교‘로, 대상관계 이론과 종교의 연관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내용을 서술하고 있다. 아마도 대학원 마지막 학기 수업을 듣고 교수님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아 샀던 것 같다.
대상관계 이론과 관련해서 대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것은 첫 학기와 마지막 학기가 유일하다. 첫 학기에는 심리검사 수업 때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리면서 언뜻 접했고(그때는 대상관계 이론인지도 몰랐다.), 마지막 학기에는 대상관계 이론에 관한 책을 보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렸던 것이 생각나서(이미 10년 전) 지금 그린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했다.
이 책은 종교라는 말이 들어가서 신앙서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결코 신앙서적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전공서적인데, 대상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학적이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아서 조금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는 게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 책의 저자가 3장의 결론에서 제임스 파울러를 언급했는데, 제임스 파울러는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신앙의 발달단계] 책으로 접했던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파울러가 신앙의 내용과 신학적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정신분석학적 관계의 개념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는데, 그렇다면 파울러의 신앙의 발달단계와 정신분석학적 관계의 개념을 연결하여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고(이 책은 너무 심리학적 접근을 해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쓴 논문이 있을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없다면 다음에 (혹시라도) 공부를 더 하게 되면 그 내용을 가지고 논문을 쓰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는 포괄적 의미에서의 종교가 아니라 종교 경험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종교 경험에 대한 서술도 어디까지나 심리학적 접근이기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또, 대상관계 이론은 뿌리는 정신분석학이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프로이트는 영적인 부분을 퇴행적인 것이라고 인식했다(그래서 융과 갈라선 것으로 알고 있는데..). 1장에서 대상관계 이론이 어떻게 발달되어 왔는지 서술하며 여러 학자들을 언급하는데, 나는 그 중 스페로의 입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페로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와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는 서로 평행적 차원들이 있다고 본다(31쪽). 이 사람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스페로에 대해서 더 공부해봐야 할 것 같다.
2장에서는 리주토의 이론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어릴 때 (대부분 부모님의 영향으로) 상상으로(?) 만들던 하나님의 이미지는 인간이 발달단계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개념과 하나님 표상이 통합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기독교식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3장에서는 (대상관계 이론에 따른) 심리의 발달 단계와 성인의 종교 경험을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고, 4장은 어거스틴과 테레제 두 성인을 비교, 대조하면서 앞에서 서술했던 부분들을 정리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 의거하여 어릴(혹은 젊을) 때의 심리 발달과 종교 경험을 분석하고 있으며, 테레제는 자서전인 영혼의 이야기에 의거하여 어릴 때의 심리 발달과 종교 경험을 분석하고 있다. 어거스틴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테레제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어거스틴과 테레제의 차이는, 어거스틴은 어머니와 너무 밀접한 관계였고(물론 중간에 어거스틴이 의도적으로 어머니와 떨어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테레제는 상실에 상실을 거듭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친밀감을 느꼈던 언니들이 수녀원에 들어가면서 (결국 본인도 수녀원에 들어가지만) 어릴 때 정상적으로(?) 관계 개념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것이 테레제의 종교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대학원 첫 학기에 하나님 표상 그림을 그릴 때 교수님의 해석을 듣고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 상처에 제대로 접근했던 건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부모님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성인이 되어 하나님을 만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하나님 표상 그림이 또 달라지기도 하지만,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지대하다. 아이를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또다시 깊어진다.
이 책은, 앞서도 말했듯, 신앙적 접근이 아니어서 아쉬웠던 부분은 있지만, 대상관계 이론으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 맺는 것에 영향을 주는지 잘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