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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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꽃님, 문학동네)
-제8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스포일러 주의

은유의 편지와 은유의 편지가 계속 이어지는 소설이다. 한 명의 은유는 엄마, 한 명의 은유는 딸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편지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은 여러모로 모순을 안고 있다. 내게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그랬다. 현재의 인물이 과거에 손을 대면 현재도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개연성을 잃는다. 이 책은 현재의 인물이 과거에 손을 대지만, 현재의 사건 안에서만 손을 대기 때문에(그렇다고 해도 머리가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나름의 질서가 있다.

현재의 은유는 아빠랑 산다. 엄마가 어떻게 가족을 떠나게 되었는지 아빠가 말해주지 않았다. 중2병을 앓고 있는 은유는 엄마가 궁금하다.
현재의 은유가 보낸 편지가 과거의 은유에게 도착했다.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보다 어리다. 하지만 이 나이는 빨리 뒤집힌다. 과거의 은유가 겪는 세월과 현재의 은유가 겪는 세월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의 영향을 받아 (듣는 사람에게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미래 얘기를 자주 했다. 과거의 은유를 통해 자신의 엄마가 누군지 알아보려던 현재의 은유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엄마와 아빠를 만나게 한다. 그리고 과거의 은유가 보내는 편지는 점차 흐릿해진다.

언니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째서 편지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걸까.
언니 아직 거기 있는 거지?(207쪽)

가족, 특히 엄마와 딸 사이의 편지라는 점에서, 나는 이미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 장벽을, 나와 딸 사이에 만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엄마와 나 사이의 장벽을 내가 허물어야 함에도, 그게 참 쉽지 않다.

나를 생각하게 했던, 읽으면서 울어야 했던 문장(문단?)을 소개한다.

🏷˝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물론 지금 내가 적은 것보다 훨씬 많은 쌍욕과 살해 협박이 있긴 했었지. 그렇게 눈에 살기를 띤 모습은 처음 봤으니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란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137쪽)

🏷그땐 아빠가 아빠를 처음 하는 것처럼 나도 딸은 처음이라고 원망했는데, 그 여자 말을 듣고 보니까 조금 미안해졌어. 아빠는 노력하고 있었구나. 바보같이 나만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있잖아, 언니.
아빠랑 내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 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은 만큼 더 많이 달려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도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206쪽)

🏷내 딸이자, 친구이자, 미래의 꿈이었던 은유야.
나는 내 마지막 순간에도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이렇게 너를 알게 해 준 신의 배려에 감사하다고 기도할 거야.
이렇게 배 속에라도 널 품고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당신의 배려 덕분에 내 딸을 만날 수 있었다고. 내 딸이 예쁜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비록 엄마와 딸로 만나진 못했지만 대신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관계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걸로 충분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조금 시간이 남으면, 나한테 약간의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땐 네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할게.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겠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네 곁으로 갈게.
네가 뭔가를 잘 해내면 바람이 돼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네가 속상한 날에는 눈물이 돼서 얼굴을 어루만져 줄게.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도, 시험을 잘 친 날에도, 친구랑 다툰 날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늘 네 곁에 있어 줄게.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편지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2002년 11월 16일
아주 따뜻한 곳에서 엄마가(220~221쪽)

마지막 편지는 너무 너무 슬펐다. 가족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내가 읽은 이꽃님 작가님 책
✔️죽이고 싶은 아이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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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여우의 여름 이야기 책 먹는 여우
프란치스카 비어만 지음, 송순섭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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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여우의 여름 이야기](프란치스카 비어만/송순섭 옮김, 주니어김영사)
-스포일러 주의

책 먹는 여우의 여행 이야기가 시리즈로 나왔다. 아직 봄, 여름, 겨울밖에 안 나왔던데, 가을은 나올 예정인지 궁금하다.-아직 겨울 이야기는 안 읽었다.

책 먹는 여우가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이니, 휴가철인 지금 딱 읽기 알맞은 책이겠다. 나는 한 달 전에 읽긴 했지만. 그래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책 먹는 여우의 목적지는 외딴섬이다. 가는 길부터가 희한하다. 섬 주인이 자기 섬의 위치를 잘 모른다. 겨우 도착한 섬에는 숙소만 덩그러니 지어져 있다. 책 먹는 여우는 나름 자신의 숙소에 만족하고 있다. 작가나 예술가라면 이런 상황에 만족할 것 같다. 나는 통제되지 않으면 불안한 성향이라, 여행도 계획이 짜여 있어야 덜 불안해진다. 이 말은, 불안하지 않으면 계획을 짜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주월드에 가도(몇십 년만에 가는 거일 거다. 도투락월드에서 경주월드로 바뀐 이후로 처음 간 것 같다.), 아이의 키에 맞춰 탈 수 있는 게 뭔지 알아본다. 계획을 완벽하게 세부적으로 세우는 스타일이었다면 동선까지 짰을 테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도장찍기(아이가 탈 수 있는 놀이기구 모두 타기)를 완료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이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섬에서 찾은 보물을 섬 주인 호세가 주인에게 모두 되돌려주기 위해 경찰서에 연락하는 장면이었다.-6월에 읽어서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호세가 모른척했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었다. 물론 프라이데이 박사나 책 먹는 여우가 함께 보긴 했지만. 초등 동화라 그런지 착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땅에 떨어진 돈은 줍는 사람이 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맡았던 4학년 이하 아이들은 10원짜리라도 나에게 갖다주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돈 모아서 사랑의빵 저금통에 모아 보냈던 때가 기억난다.

📌내가 읽은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슈퍼 토끼의 결심
✔️책 먹는 여우
✔️책 먹는 여우와 이야기 도둑
✔️책 먹는 여우의 여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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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맹순과 오수아 작은책마을 58
은영 지음, 최민지 그림 / 웅진주니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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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맹순과 오수아](은영,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8월 도서2

맨 뒤 작가의 글을 읽고, 작가님이 열 살 때를 떠올리며 쓰셨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올해 내가 맡고 있는 열 살 아이들을 떠올렸다. 진짜, 딱 맹순이와 수아 같은 단짝 친구가 우리 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반 두 아이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맹순이와 수아는 같은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 한 명의 남자아이 한별이를 동시에 좋아한다. 서로가 그 아이를 좋아하니 양보하라고 야단이다. 아이들의 이 마음이 소제목의 시소로 표현된다. 맹순이가 이긴(?) 것 같으면 맹순이 쪽이, 수아가 이긴 것 같으면 수아 쪽이 올라가 있다.
서로가 한별이를 좋아하겠다고 투닥거리지만(심지어 맹순이는 벌에 쏘이기까지 한다.), 정작 한별이의 의중은 전혀 모른다. 읽으면서도 왜 한별이에게 먼저 고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요 녀석들, 한 번도 고백한 적이 없는 거였다. 당연히(?)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다른 아이에게 선수를 뺏기고 나서야,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덕에 시소는 수평을 되찾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맹순이의 생일에 수아가 한 행동이었다.
한별이의 고백을 받을 생각에 들뜬 맹순이가 생일파티에 아이들을 초대한다. 그러나 그 중요한 생일날 엄마는 동생을 업고 병원에 뛰어갔으며, 생일파티는 파토가 났고, 한별이는 맹순이에게 고백하지 않았다.

❝˝네가 울려고 했잖아! 그것도 생일에 말이야. 생일날 우는 건 너무하잖아? 그러니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아무튼 너 때문에 애들이 다 알아 버렸어. 내가 할머니랑 단둘이 사는 거 말이야!˝
수아는 발로 바닥을 탁 찼어.
맹순이가 쿵 하고 떨어졌어.
수아는 다른 아이들이 아는 걸 원하지 않았어.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는 걸. 엄마도 아빠도 수아를 남겨 두고 멀리 갔다는걸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 맹순이는 그걸 알고 있었지.
맹순이는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어. 수아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어.
˝그래도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뭐. 어차피 다 알아 버렸으니. 근데 애들이 우리 할머니가 만든 떡볶이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
수아가 다시 바닥을 차며 떠올랐어.❞(62~63쪽)

이렇게 어른스러운 수아의 모습이라니! 맹순아, 네가 진 것 같다.

우리 반 아이 둘은 서로 단짝이라고 하면서도 종종 싸운다. 학기초에는 너무 싸워서, 얘네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 번 불러서 얘기한 적이 있지만, 그 뒤로는 학기초만큼 싸우지는 않았다. 학기말에도 한 번 ‘뻥‘하고 터진 적이 있지만.
아무튼, 내가 열 살짜리 아이들에게 너무 큰 걸 바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행동하고 싶은 아이들이다. 수아가 겪은 아픔이 수아를 어른스럽게 만들었지만, 너무 일찍 아픔을 겪으면서 이타심을 기르는 건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싸우는 것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요즘 같은 시대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한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은 아이들이다.

작가닝이 닮고 싶은 단짝은 수아였을까?

🔎2024년 하반기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멤버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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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몰려온다 웅진 우리그림책 123
김효정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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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몰려온다](김효정,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8월 도서1

타이밍이 절묘하게도, 휴가를 떠나기 직전 이 책이 도착했다. 휴가지에 가져가서 읽으면 딱 적당한 책 제목이라, 여행 가방에 넣었다.

기상청의 뒤늦은 장마 종료일 선언 이전부터, 내가 사는 곳은 뜨거운 햇볕으로 더위 먹을 것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름도, 겨울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사계절 내내 봄, 가을만 있으면 어떨까, 를 생각하는 나태한 인간인데, 이 책을 보니 여름도 힘든 것만은 아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여름에 흠뻑 빠졌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수영복 입고 튜브 가지고 바다로 가는 아이들이 있다.-동물들도 있다. 작가님은 섬세하게도, 글자색과 수영복 색을 깔맞춤해두셨다(?). 뒷장에 나오는 여름 음식들도,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의 글자색과 음식 색이 같게 해서 여름의 색을 드러내는 것 같다. 각각 자신만의 색을 뽐내는 여름이 바다로 몰려든다. 물장구는 서로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조금만 덜 따가웠으면, 하고 바라는 태양이 식기를 바라며 여름에 동참한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워터파크 갔을 때 이 장면을 떠올리며 태양에게도 물을 튀겼으면 아이도 이 여름을 오래 기억했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있다. 올 여름 또 물놀이를 가게 된다면 꼭 해봐야지.

여름을 실컷 즐긴 아이들은 웃음이 터진다. 바다가 이 아이들을(그리고 동물들을) 하나로 만들어주었다. 글자색이 바다처럼 모두 파랗다.

❝어느새 여름도 다 갔어요.

재밌었어.
시원했어.
짜릿했어.

다시 뜨거워지면 또 만나요.❞

여름이 가는 날, 이렇게 인사해야지. 그러면 여름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다. 여름이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책이었다.

🔎2024년 하반기 웅진주니어 티테이블 멤버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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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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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정, 웨일북)

이 책은 정말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었다. 밑줄 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다.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글쓴이가 고통에 대해, 고통을 전달하는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정리한 글이 이 책이 되었다는 게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제일 처음 경험했던 건, TV에서 봤던 걸프전이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저학년이었을 텐데, 누구랑 누가 싸우는지도 잘 몰랐다. 다만, TV 이편의 생활과 저편의 생활이 너무 달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최근에 사고들이 많았다. 제일 충격적인 사고를 꼽자면 벌써 10년이나 지나버린 세월호 참사다.-사고라 해야 할지 사건이라 해야 할지.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이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태원 사고 때 돌아다니는 짤(?)들을 보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저걸 찍는 동안 심폐소생술이나 구호 조치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들에 가로막혀 구조대원이나 경찰들이 빨리 도착하지 못했다는 글을 뒤어 읽은 것 같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NPC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영상을 찍은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니었고, 타인의 고통에 매정했다. 그 사람들이 그 영상을 찍은 건 어떤 목적에서였을까. 좋아요 수를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이 먼저 뉴스를 알게 되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어찌되었건 그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이 있기에 찍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매체가 고통의 스펙터클에 일정 분량의 시간을 할애하기를 원한 게 먼저였는지, 대중이 뉴스 안에서 일정한 양 이상의 고통을 보기를 원한 게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16쪽)

글쓴이는 여기서, 언론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다. 🏷‘기자의 카메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경꾼‘의 시선이라는 비난에서 간단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28쪽)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있는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봄‘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34쪽) 글쓴이는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가 함께 목격한 장면이 구경거리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 대화는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35쪽)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36쪽)

글쓴이는 이어 범죄자 신상공개나 약자들에게 취약한 날씨(재난),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분들의 열악한 환경, 나아가 우리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이른다. 고통의 취재가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을 전해주지 못하기도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136쪽)

그렇다고 고통을 아예 보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고통은 고통으로 남겨져도 괜찮은가?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 것인가?(167쪽)

고통을 보는 것은 개인의 공감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다. 글쓴이는 공동체가 행동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 지점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사적인 애도를 겪어내는 이들을 위해
사회가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212쪽)

🏷그리하여 언론의 독해를 다시 독해하여 어떻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공동체의 몫이다.(224쪽)

🏷제대로 슬퍼하려면 기억을 나누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래 슬퍼하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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