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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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정, 웨일북)

이 책은 정말 진도가 안 나가는 책이었다. 밑줄 그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다.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글쓴이가 고통에 대해, 고통을 전달하는 언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정리한 글이 이 책이 되었다는 게 눈에 확연하게 보였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제일 처음 경험했던 건, TV에서 봤던 걸프전이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저학년이었을 텐데, 누구랑 누가 싸우는지도 잘 몰랐다. 다만, TV 이편의 생활과 저편의 생활이 너무 달라 이질적으로 느껴졌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최근에 사고들이 많았다. 제일 충격적인 사고를 꼽자면 벌써 10년이나 지나버린 세월호 참사다.-사고라 해야 할지 사건이라 해야 할지. 그리고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이 책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태원 사고 때 돌아다니는 짤(?)들을 보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그리고 그 장면을 찍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저걸 찍는 동안 심폐소생술이나 구호 조치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들에 가로막혀 구조대원이나 경찰들이 빨리 도착하지 못했다는 글을 뒤어 읽은 것 같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NPC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 장면은 실시간으로 퍼져나갔다. 영상을 찍은 사람들은 언론인이 아니었고, 타인의 고통에 매정했다. 그 사람들이 그 영상을 찍은 건 어떤 목적에서였을까. 좋아요 수를 많이 받기 위해? 자신이 먼저 뉴스를 알게 되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어찌되었건 그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이 있기에 찍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매체가 고통의 스펙터클에 일정 분량의 시간을 할애하기를 원한 게 먼저였는지, 대중이 뉴스 안에서 일정한 양 이상의 고통을 보기를 원한 게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분야에서건 수요와 공급은 서로를 북돋고 창출해 낸다. 무엇이 먼저였든, 언론은 오늘도 안방의 브라운관 앞까지, 손안의 스마트폰 화면 앞까지 고통을 질질 끌어다 놓는다.(16쪽)

글쓴이는 여기서, 언론인과 일반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는다. 🏷‘기자의 카메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경꾼‘의 시선이라는 비난에서 간단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28쪽)

우리는 왜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있는가?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봄‘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34쪽) 글쓴이는 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가 함께 목격한 장면이 구경거리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 대화는 피해 당사자와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또 듣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한다.‘(35쪽) 🏷‘그러므로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36쪽)

글쓴이는 이어 범죄자 신상공개나 약자들에게 취약한 날씨(재난),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분들의 열악한 환경, 나아가 우리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이른다. 고통의 취재가 더 큰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보여줄 수 없는 고통‘과 ‘보이지 않는 고통‘을 전해주지 못하기도 한다.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악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136쪽)

그렇다고 고통을 아예 보지 않고 살아야 하는가? 다른 사람의 고통은 고통으로 남겨져도 괜찮은가?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 것인가?(167쪽)

고통을 보는 것은 개인의 공감을 넘어서야 하는 일이다. 글쓴이는 공동체가 행동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 지점에 언론의 역할이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사적인 애도를 겪어내는 이들을 위해
사회가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이다.(212쪽)

🏷그리하여 언론의 독해를 다시 독해하여 어떻게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공동체의 몫이다.(224쪽)

🏷제대로 슬퍼하려면 기억을 나누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오래 슬퍼하려면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2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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