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거를 먹을까, 집에 가서 달걀 프라이 2개를 해서 김치랑 밥을 먹을까 고민 중이다. 드라이브-쓰루 매장이면 고민 없이 햄버거를 먹을 텐데. 집에 가면 삼월이가 또 북어를 달라고 조르겠지. 이렇게 갈팡질팡 고민하다 엉뚱한 것을 먹기도 한다. 얘랑 사귈까, 쟤랑 사귈까 고민하다 결국 다른 놈이랑 사귀는 것처럼. 고민을 한다는 건 둘 다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움이 남고 불만족스러울 거라는 뜻. 제길할, 도대체 뭘 먹어야 하는 거야!


엄마 집에 방 하나를 치워야 하는데, 그러자면 쓰레기가 꽤 나올 것 같아서 관할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OO 주유소 인근에 쓰레기종량제 봉투를 배출하는 곳이 어디예요?"

"마을회관 앞에 버리시면 수거해 갑니다."

(잠시 후) 

"조금 전에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로드뷰로 보니까 마을회관 앞에 쓰레기 배출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표지판 같은 것도 없고요. 그냥 깨끗한 길이던데..."

"아... 아무것도 없어요? ... 그냥 거기다 버리면 수거해 갑니다."

"거기다 쓰레기봉투 갖다 놓으면 욕 먹을 것 같은데... 그냥 깨끗한 길이거든요."

"아... 종량제 봉투에 잘 분리하셔서 버리시면 돼요."

"재활용이면 분리를 하는데, 종량제봉투예요. 그냥 다 버리는."

"네, 그러니까 분리를 하셔야죠. 플라스틱 같은 거 넣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분리를 하셔야 해요"

"네? 종량제봉투를 분리하라고요? 음... 종량제봉투는 매립하는 거잖아요. 누가 종량제봉투를 분리하죠? 그리고 오염이 되어 있거나 스티커가 붙어 있는 플라스틱은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게 맞는데요. 깨끗한 플라스틱만 재활용하는 거잖아요. 종량제봉투에는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 일체를 버리는 거고요."

"그래도 종량제봉투를 분리하셔야..."

"...... 네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가 나는 고단하고 버겁다. 이런 걸 과연 대화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조차 의심스럽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은 "네, 감사합니다". "대화를 종료하겠습니다"라는 의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onnight 2022-04-12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제가 답답하네요ㅜㅜ 쳇바퀴도는 대화ㅠㅠ; 종량제봉투를 분리하라니. 무슨 얘긴가-_-

점심은 뭐로 결정하셨을까요? 궁금^^;

Joule 2022-04-12 15:46   좋아요 0 | URL
결국 제3의 메뉴 설렁탕을 골랐는데요. 집에 가야 할 사정이 두어 가지 생겨서 실제로 먹은 것은 달걀프라이 2개와 김치와 콩밥요 ㅋ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대답에 따라 유동적으로 본인의 멘트가 달라져야 하는데, 요즘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대답과 상관없이 본인의 멘트를 기계적으로 되풀이하더라고요. 그냥 지극히 일상적이고 단순한 대화에서도요.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 게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어요 ㅠㅠ)

엊그젠가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전화번호를 불러주는데 말이 너무 빠르다고 해서 다섯 번을 다시 불러줬어요. 복잡한 휴대폰 번호도 아니고, 300-7758 그런 번호였는데 300 불러주면 3 쓰고 뭐라고요? 하고 물어보고 그냥 딱 까무라치겠더라고요.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요. 갸우뚱.
 

아침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기분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점 나빠져서 내일 점심에는 롯데리아에 가서 새우버거라도 먹어야 할 것 같댜. 요즘 봄을 타는 삼월이는 지금까지 나를 들들 볶다가 저도 지쳤는지 벌써 잠이 들었다. 하도 투정을 잔소리를 퍼부어대길래 나도 지지 않고 소리를 빽 질렀다. 


"거실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굴지 말고 방으로 들어와서 말해! 방에 들어와서 눈을 보고 말하라고!"


집에 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를 보러 집에 간 지 3년? 5년?도 더 된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지 말걸. 내일 취소하면 너무 속 보이니까 금요일쯤 문자로 비상근무가 잡혀서 못 가겠다고 말해야겠다. 사람에게 잘해주지 말아야 한다. 관계는 얼른 보기에만 별거 아니고 쉬워 보이(고 심지어 좋아 보이기까지 하)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부터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려워지기만 한다. 너무 어려워서 엄마도 안 보고 싶을 정도로.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맞아! 올해는 재미있는 것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기로 했지 참. 책도 재미있는 책만. 말도 하고 싶은 말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는 말자고, 싫은 건 그냥 하지 말아보자고, 노력 같은 것도 하지 말아보자고, 올해는 그렇게 한번 살아보자고 마음먹었었지 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박해영 작가의 신작. <청담동 살아요>,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그리고 이제 <나의 해방일지>

경기도 외곽에 사는 세 남매의 이야기. 1횐가 2횐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달걀 프라이를 보며 서울은 노른자고 경기도는 흰자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민기가 자신은 경기도민이라 흰자 먹을 테니 사장님은 노른자 드시라고. 비유가 너무 찰떡 같아서 서울 떠올릴 때마다 생각날 듯.


동네 카페 앞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염창희(이민기)는 그런 말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런 인구밀집도 떨어지는 시골에 살았으니까 친구 한 거지 쌔고쌘 게 또래들인 도시에 살았으면 나 너랑 친구 안 했어. 반경 10km 이내에 또래를 쓸어모아도 열댓명이 안 되는 이런 시골에 살았으니까 내가 어쩔 수 없이 같이 논 거지. 시골은 이게 문제야. 하여튼 나이만 같으면 다 친구야. 나 어려서 여자애 하나 껴서 넷이 놀았다고 그러잖아. 그러면 되게 죽이 맞았나 보다 그래. 그냥 네 명이 전분 거야 동네에. (염미정(김지원)을 가리키며) 쟤! 쟨 또래 하나도 없어갖고 동네 바보랑 놀았잖아. 개똥이랑. 

이런 시골에선 친구도 식구랑 같은 거야. 식구를 가려 만나? 그냥 태어나니까 식구래. 그냥 태어나니까 친구래. 옆집에 애 하나 있대. 학교에서도 옆에 앉는 짝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딴 애랑 놀면 돼. 근데 동네친구? 이건 답이 없어."


*


대체로 나는 이민기가 연기하는 역할에 대해 되게 동류의식을 느끼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가장 나 같은 인물을 찾으라고 하면 이민기. 이민기의 지난 번 작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도 이민기에게 감정이입되었었는데. 전생에는 고양이였지만, 다음생에 인간 남자로 태어나면 이민기(가 맡는 역할들) 같은 남자가 되지 않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2-04-12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드라마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인데 최근 영화 <야차> 보고나서 이엘이라는 여배우에 관심이 가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 더 커졌어요.
너무 어둡다, 칙칙하다는 여론도 있던데 무시하고 한번 시작해봐야겠어요. 더구나 <청담동 살아요>, <나의 아저씨> 작가라니 뭐...

Joule 2022-04-12 09:54   좋아요 0 | URL
이엘, 드라마 <도개비>에서 삼신할매로 나왔던 분이잖아요. 연기를 잘하는구나, 느꼈어요 이번에.
캐스팅이 정말 역대급. 모든 연기자들이 다 생활인 같아요. 연기자 안 같아요. 그래서 와 캐스팅 진짜 대박이다 해요, 다들 연기인데 왜 다들 연기 안 같고 진짜 저런 사람인 것 같은 건지.
TVN ‘우리들의 블루스‘ 끝나고 바로 JTBC 돌리면 ‘나의 해방일지‘ 하잖아요.
이거야말로 빅매치. 노희경과 박해영이라니.

저는 설경구를 별로 안 좋아라 해서 <야차>는 못 보고 있어요 ㅠㅠ
 


유튜브를 좋아하는 삼월이. 보통은 낭만고양이를 틀어주는데, 오늘은 으으냥. 호감 가는 고양이가 있으면 좀더 집중해서 보고, 영상을 보다 불현듯 무슨 생각이 들면 고개를 돌려 나를 가만 쳐다본다. 기본적으로 유튜브 볼 때 삼월이 마음은 좀 말랑말랑해지는 듯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교차하는 표정. 내 주먹보다 작은 뇌를 가진 삼월이가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못견디게 귀엽고 대견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onnight 2022-04-10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와 고양이를 두려워하는데(전생에 쥐였나-_-a) 저 고고하고 우아한 모습은 제가 느끼는 Joule님과도 겹쳐보입니다^^

Joule 2022-04-10 10:58   좋아요 0 | URL
아마 여러 전생 동안 달밤 님은 인간이었나 봐요. 그래서 짐승의 느낌을 잊어버렸을지도. 저는 전생에 고양이였어요. 그래서 성격이나 하는 짓도 고양이와 거의 완전 똑같아요. 전생의 흔적이 남아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oonnight 2022-04-10 0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참 예쁘네요@_@;;; 그림 같아요. 파란 하늘에 구름 한 덩이^^ 그러고보니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살았나봐요@_@;;;

Joule 2022-04-10 10: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고마워요. 저 사진 찍어놓고 구름이 너무 뭐랄까 단독직입적이라고나 할까 나 구름! 그래서 웃기기도 하고 뿌듯했거든요. 구름 한 덩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