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왜 연작소설이지? 갸우뚱. 이야기의 장소가 뉴욕이라는 공통점밖에 없는데.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아무것도 없는데. 이건 그냥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단편집이다. 


-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창작과비평)

-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릿터)

- 아가씨 유정도 하지 (악스트)


재미있는 건 작품의 질이랄까 재미랄까 그런 게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과연 은희경이다!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걸 왜 썼지? 뉴욕에서 나 살아봤다 티내고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그래서 도대체 편집자는 뭘 한 거지. 이런 작품을 그냥 받아서 싣는다고? 하긴, 은희경이 은희경이라서 어쩔 수 없었겠다. 은희경이 은희경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걸. 나의 순위는 이랬다.


1위. 아가씨 유정도 하지 (악스트)

2위.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릿터)

3위.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창작과비평)

4위. 장미의 이름은 장미 (문학동네)


희한한 게 메이저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들은 별로고, 신생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들은 빛난다. 특히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정말 은희경의 귀환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잘 썼다. 괜찮다. 이렇게 계속 써주세요. 은희경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은희경에게 기대하는 게 바로 이런 은희경스러움인데, 은희경 아직도 한참 더 쓸 수 있겠구나. 은희경의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좋아하는구나. 더 써줬으면 좋겠다. 더 읽고 싶다. 뭐 그런 감정이 들었던 작품. 이 단편 하나가 책 값의 70%를 해냈다. 


반면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버려도 될 단편.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은희경이 이름 없는 작가이고 좋은 편집자가 붙었다면 되게 재미있었을 이야기. 은희경 키보드에 delete 키가 없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이야기를 한참 쳐내고 그다음을 써달라고요,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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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씌워 두었던 먼지 수북한 비닐을 걷어내고 골조도 조금 손을 봐서 새 비닐을 씌웠다. 비닐을 씌워 두어야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사료와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비바람에 사료도 덜 눅눅해지고. 고양이들이 사료를 바닥에 흘리기도 하고 바람에 흙먼지며 낙엽이며 담배꽁초 등속이 날아와 바닥이 지저분해지므로 못해도 일 년에 두 번은 대청소를 해야 한다. 벽돌이며 구조며 다 들어내고 큰 빗자루로 바닥 전체를 다 쓸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들이 조금 거슬려도 못 본 척 눈 감아줄 마음이 생길 것 같다. 그래서 고양이 식당은 마땅한 자리를 찾기도 어렵지만 항상 주변이 청결하도록 꾸준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식당이 지저분하면 식당 때문에 고양이 때문에 주변이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하기 쉽다.




고양이 식당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서도 안 된다. 좋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래서 가장 좋은 엄폐물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벽돌이나 방치된 화분 들이다. 하얀 새 그릇도 안 되고, 보들보들한 털이불도 안 된다. 특히  패브릭은 위생적으로도 불결해 보여서 고양이 식당에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자재다. 누군가 우연히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살림으로 근근히 목숨만 부지할 정도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래도 모진 마음, 미운 마음, 못된 마음, 배아픈 마음이 덜 들 테니까. 이번에는 바람 먼지가 덜 들어가게 입구를 벽 쪽으로 조금 틀어서 냈다. 




사료, 물, 그리고 가끔 주어지고 대부분은 비어 있는 특식 그릇. 내일 저 그릇에는 삶은 닭고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날은 따뜻하고 맛있는 닭고기를 먹어서 고양이들은 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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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5-06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형 구조의 매력을 발견합니다. 한눈에 왜 아늑하고 세련되어 (이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보이나 했더니 아치형 틀, 아케이드 구조였어요. 고양이도 고양이지만 고양이 식당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고려하고 계산해야하는군요.

Joule 2022-05-09 13:15   좋아요 0 | URL
요즘 건축물의 구조에 심취해 계신 모양이에요^^ 저에게는 안 보이는 걸 보시는 것 같아요. 하긴, 그 맛에 책 읽고 공부하죠.
고양이 식당은 밥을 먹고 있는데 낯선 사람이 나타났을 때 고양이들의 탈주 퇴로도 생각해야 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고양이가 밥을 먹으면서 조금 눈을 들면 주변을 살필 수 있어야 하고, 고양이 뒤쪽은 열린 공간이되 그 끝에 담장이 있으면 좋아요. 담장은 고양이들의 고속도로 같은 곳이니까.

hnine 2022-05-15 15:20   좋아요 0 | URL
저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joule님 포스팅 내용과 별 관련없는 엉뚱한 댓글을 제가 달았었네요. 이렇게 즉흥적일때도 있다니 ^^
고양이는 개와 참 다른 것 같아요. 저희 아파트 뒤 축대 담장을 타고 고양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제 방 제 책상에서 아주 잘 보인답니다. 고속도로 같은 곳이라는 말씀이 얼른 이해가 되요.

Joule 2022-05-15 15:18   좋아요 0 | URL
좋은데요. 즉흥적인 댓글이었다니.

책상을 아주 명당 자리에 두셨네요. 담장을 따라 걷는 고양이가 보이는 책상이라니. 와!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를 읽으려고 책을 펼쳤는데 페이지 사이에 리플릿 하나가 끼워져 있다. 짤막한 책 소개가 곁들여져 있는 책 광고 리플릿. 나는 그런 광고지, 전단지, 소위 찌라시에 약하다. 있으면 일단 읽는다. 꼼꼼하게 시간을 들여 정독한다. 별 소득 없이 훑어내려가다가 <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소개 문구를 읽고 나는 빵 터져버렸다. "이 결과가 심사위원들에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ㅋㅋㅋㅋㅋ "블라인드 심사가 발견해낸 문진영이라는 낯설고도 준비된 이름" 아마도 암묵적 수상자로 점찍어두었던 작가가 있었는데 블라인드 심사를 하고 나서 결과를 보니 듣보잡 엉뚱한 작가가 수상자가 된 상황이었던 걸까. 인정하고 싶진 않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딱히 마음은 내키지 않아서 나온 심사평처럼 읽혔다. 신선한 충격이었다라 ㅋㅋㅋ 갑자기 문진영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장바구니에 작가의 책들을 담는다.   

   






    



미리보기로 문진영 작가의 글들을 읽다가 나의 최애 최은영 작가가 떠오른 건 퍽 자연스럽다. <밝은 밤>은 읽기 전이고, <애쓰지 않아도>는 아직 주문조차 안 한 상태. 책 소개에 나와 있는 작가의 말을 읽었다.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충분히 가졌으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다. 불편하게 하지 말고 민폐 끼치지 말고 예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라는 이들을 본다. 누군가의 불편함이 조롱거리가 되는 모습을 본다. 더 노골적으로, 더 공적인 방식으로 약한 이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인간성의 기준점이 점점 더 내려가는 기분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힘을 더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멋있어서 내가 으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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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은데 책은 읽지 않는다. 책을 집어들었다가도 한두 페이지 읽다 말고 금세 해찰한다. 차라리 가라앉으면 좋을 것을 둥둥 부유하는 마음. 어쩌면 '날이 좋은데'가 아니고 '날이 좋아서'인지도. 간질간질 공기가 따뜻해서. 내일은 다른 책을 챙겨가봐야겠다. 필독서여도 재미없으면 완독하지 않기, 잘 만큼 잤으면 일어나기,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버리기.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해방클럽 부장님의 해방일지.


화사하게 피었던 철쭉들이 햇빛에 바래고 찬 비에 너덜너덜해져 벌써 행색이 초라하다. 아무래도 이른 감이 있다. 일주일쯤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몰락해가는 철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쭙잖은 위무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 같아 조심하는 편이다. 염창희(이민기)가 그랬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는 말 중에 해서 후회 안 하는 말이 없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망설이는 거라고. 근데 굳이 말을 해가지고 안 좋은 끝을 보고 만다고. 


퇴근길 식자재마트에 들러 당근과 사과와 치토스 한 봉을 샀다. 당근은 100g에 200원도 안 했고 사과는 9,800원에 8개. 당근 주스를 해먹으려고 산 건데 사과가 맛있어서 오랜만에 사과 한 알을 다 먹었다. 치토스도 먹고. 아몬드도 먹고. 뭐 먹은 게 많네...



구 씨의 멀리뛰기를 보고 난 후, 아버지가 따서 길에 둔 호박 두 개를 집어들고 집으로 가면서 염창희의 혼자 신난 발걸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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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띠 비띠 스파이더 노래 불러주세요." 에이미가 꼬물거리는 손가락으로 라이머콩을 꼭 쥐고 사랑스럽게 부탁했다. 이저벨은--지긋지긋해서--안 부르겠다고 한다. 너무 피곤해서 안 부르겠다고. 하지만 에이미는 더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이며, 엄마가 식탁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이, 팔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것이 마냥 기쁘다. 아이는 행복해서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고, 분홍색 잇몸에 하얀 조약돌처럼 박힌 앙증맞은 치아를 드러내며 조그맣고 촉촉한 입으로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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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2-04-2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띠 비띠 스파이더 ...˝ 저 이 노래 아는데...ㅋㅋ

Joule 2022-04-27 17:24   좋아요 0 | URL
와~ 정말요! 아기 키우는 집에서는 유명한 노래인가 보네요. ㅋㅋ

moonnight 2022-05-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아이들이 아기였을 때가 떠올랐어요. 아기 에이미 너무 귀엽네요. ^^

Joule 2022-05-02 16:02   좋아요 0 | URL
저는 조카도 타인처럼 냉정하게 봐져서 달밤 님의 조카 사랑이 가늠도 상상도 잘 안 될 때가 많아요. 어떤 기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