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은데 책은 읽지 않는다. 책을 집어들었다가도 한두 페이지 읽다 말고 금세 해찰한다. 차라리 가라앉으면 좋을 것을 둥둥 부유하는 마음. 어쩌면 '날이 좋은데'가 아니고 '날이 좋아서'인지도. 간질간질 공기가 따뜻해서. 내일은 다른 책을 챙겨가봐야겠다. 필독서여도 재미없으면 완독하지 않기, 잘 만큼 잤으면 일어나기,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버리기. 나와 비슷한 면이 많은, 해방클럽 부장님의 해방일지.


화사하게 피었던 철쭉들이 햇빛에 바래고 찬 비에 너덜너덜해져 벌써 행색이 초라하다. 아무래도 이른 감이 있다. 일주일쯤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몰락해가는 철쭉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어쭙잖은 위무의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 같아 조심하는 편이다. 염창희(이민기)가 그랬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하는 말 중에 해서 후회 안 하는 말이 없다고. 하면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망설이는 거라고. 근데 굳이 말을 해가지고 안 좋은 끝을 보고 만다고. 


퇴근길 식자재마트에 들러 당근과 사과와 치토스 한 봉을 샀다. 당근은 100g에 200원도 안 했고 사과는 9,800원에 8개. 당근 주스를 해먹으려고 산 건데 사과가 맛있어서 오랜만에 사과 한 알을 다 먹었다. 치토스도 먹고. 아몬드도 먹고. 뭐 먹은 게 많네...



구 씨의 멀리뛰기를 보고 난 후, 아버지가 따서 길에 둔 호박 두 개를 집어들고 집으로 가면서 염창희의 혼자 신난 발걸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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