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지 않는 아침. 50분쯤 일기를 쓰고 40분쯤 책을 읽고 잠깐 고양이를 희롱하다 다시 1시간쯤 나머지 잠을 자고 일어난다. 그렇게 10시를 당연하게 넘긴다. 이제 네 살이 되어가는 귀여운 삼색 고양이는 자기가 잔소리를 해야 내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지만 신기하게도 '오늘은 휴일이니까 30분만 더 자고 일어날게'라는 말은 용케 알아듣는 듯하다. 그 말을 할 때의 내 표정과 억양 같은 것이 있나 보다.
# 저 인간이 책을 읽다 곧 또 잠들 거라는 걸 아는 고양이는.
김치볶음밥을 해 먹으려다 이미 냉장고에 너무 오래 있었던 양파와 감자와 당근이 보였다. 다 볶고 나니 피망과 새송이버섯도 있었던 게 생각이 났다. 버섯과 피망의 향, 질감이 더해졌더라면 더 맛있었을 텐데 아쉽다. 양파와 당근은 볶았을 때 부드러운 단맛이 나고, 감자와 당근은 식감이 비슷하다. 감자와 밥은 또 같은 탄수화물이라 변별력이 적고. 후춧가루와 희미한 간장이 간신히 무료함을 달래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피망과 버섯을 까먹은 이유가 짐작이 간다. 내일 양파, 당근, 피망, 새송이버섯을 넣고 잡채를 하면 어떨까 잠깐 생각했던 것이다.
세탁기를 두 번, 건조기를 한 번 돌리고 아침에 청소도 잠깐 했다. 이따 마음 내킬 때 잠깐 쓰레기봉투를 버리러 내려 갔다 오면 오늘의 집안일은 충분히 한 셈. 아, 아무래도 깨끗해지지 않는 욕실 줄눈 몇 개를 백시멘트 이겨 새로 바르는 일이 남았구나. 욕실 인테리어의 핵심은 깨끗하고 하얀 타일 줄눈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음에 안정과 기쁨을 가장 즉각적으로 가져다준다. 타일 줄눈 보수는 지난 번에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으면서 요령을 터득했다. 이제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