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가 처리하지 않은 일을 오늘의 내가 꼭 처리할 필요는 없다. 설혹 처리해야 한다 해도 우선순위가 바뀐다. 어제 저녁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욕실 줄눈 보수를 하지 않았는데, 오늘의 나는 욕실 줄눈 보수를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오늘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어제 세탁한 빨래들이 말라서 건조기로 먼지를 털고 있다. 수건 한 번, 속옷 및 잠옷류 한 번, 겉옷류 한 번. 고양이가 있어서 세탁하는 모든 빨래는 반드시 먼지와 고양이털을 털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청소기를 돌릴 때도 따로 침구 청소기를 사용해 패브릭에 붙은 먼지와 고양털을 제거해야 한다. 지 털이어도 깨끗한 이불과 방석을 고양이는 더 좋아한다. 어쩌다 방석에 자기가 묻힌 얼룩이 있으면 계속 신경 쓰며 그 자리를 피해 앉고 내 눈치를 살핀다. 그런 걸로 뭐라고 한 적 없는데 자리에 실례라도 한 것처럼 미안한 얼굴을 한다. "괜찮아. 이렇게 닦아내면 되지." 하고 내가 물티슈로 슥삭슥삭 닦아내면 내 생각만일 수도 있겠지만 퍽 고마워하는 눈치다.
소파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데 침대에서 줄곧 칭얼대던 고양이가 소파로 온다. 그리고 얌전히 빨래 바구니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니가 빨래를 다 개고 나면 그래서 바구니가 비면 바구니에 들어갈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빨래를 집어들기도 전에 마음이 급한 고양이는 일어나서 벌써 앞발을 바구니에 집어넣는다. 어렸을 때 내가 버릇을 잘못 들였다. 심하게 칭얼대는 아기 고양이를 달랜다고 바구니에 담아 곧잘 놀아주곤 해서 이제 4살이 다 되어가는데도 삼월이는 바구니만 보면 들어가고 싶어한다.
바구니에 고양이가 담기면 바구니를 들고 나는 집 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고양이를 판다. "고양이 사세요. 귀여운 삼색 고양이 있어요. 싸게 팔아요." 그렇게 평소에는 키가 안 닿아서 보지 못했던 싱크대며 찬장이며 수납장 위, 책장 위 등을 천천히 구경시켜준다. 내 딴에는 제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려주고 싶은데 고양이는 바구니에서 내릴 생각이 도통 없다. 넓은 집이 아니어서 몇 바퀴를 돌고 돌아 대개는 밥그릇 앞에서 멈춘다. "명절이라 사람들이 고양이를 벌써 다 샀나 봐. 오늘은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가자. 괜찮지?" 여행은 그렇게 끝난다.
# 바구니 또 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