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가라앉기란 어디 쉽지 않아

누구든 물고기를 탐낸다


너의 사랑은 기껏해야 순두부

지중해에서 내가 일러두었던 말을

너는 금세 잊어라


무릇한 목적어들로 뭉클한 너의 진심

벌써 몇 번째의 실종 신고

너에게 아이스크림은 괜히 사주었다


밤하늘의 별만큼 가난한 내가 

그러나 결백하지 않은 내가

마음 그늘진 곳에 숨겨둔 송어는 없다


무작위로 당첨되는 숱한 아침도 이만

아가미 사이로 실금처럼 새나오는 피

자,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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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어느 꿈에 서성이는 시장 골목들

바람에 나뭇잎처럼 흩날리는 사람들

내가 있는 그곳에 나는 없는데 

바람이어서


어머니는 온갖 근친상간으로 우릴 낳으시고

벽에 무겁게 걸려 있는 권위의 명작들이 뭐

루비 에메랄드 다이아 하도 반짝이는 맹금류

그래서 좋아요?

 

아무렇게나 태어나는 처녀의 아이들이

함부로 죽어버리는 온순한 목숨들이 

부도 수표처럼 흩날리는 이 멋진 신세계

부디 굿 럭


수만 겹의 저주를 뚫고 올라가도 너는 없어

통찰 말고 지혜 말고 상투적 첨탑 거기에

노련한 시간 양반 같으니 당신은 내가 뻔하죠?

나라고 왜 안 죽겠어요


우그러진 달이어도 달빛이 성성해

이자영 신경정신과 오늘도 신상품 대량 입하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치매 이따금 오바이트

야! 주차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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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되기를 기다리며

가엾은 노인네가 빨래를 넌다


찬밥도 없는데 

페라이어와 브람스는 너무하다


밥상에는 아까부터 

당연한 김치, 오랜만의 김

그리고 참신한 올리브 세 알


창밖에는 비구름이 몰려와

노인네의 서툰 밥은 오늘도 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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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터 불었다

한동안 먹구름이 웅성거리고

회초리처럼 비가 쏟아졌다


몸이 얻어터지는 동안 

마음은 동정이 넘쳤다

내 마음이 다 아프다고 했다


그것은 다 사랑의 매

때리는 마음이 더 아픈 법이지

멍들지 않는 마음들은 

반창고 대신 폼나는 명찰을 붙여줬다 


내 어깨에 가려 

발 밑에 그늘이 졌다

운동화코로 

콕 콕 콕


마음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말들은 

실은, 

그렇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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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었다

가난이 두려워 

그는 죽었다


사랑의 고백이 두 쪽

재산의 행방이 여덟 쪽


의연하게 잘

폼나게 가족을 위해 

그는 죽었다


제 나이 훌쩍 넘는 근사한 빚도 

제 몸뚱이 하나로 퉁칠 수 있다는 

뻔뻔한 계산법이 이번에도 통했다


살 만큼 살고 먹을 만큼 먹었으니 

이모저모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그의 알뜰한 죽음은 

가족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훌륭한 가장이었다


아무튼 감동한 가족들은

그 남자의 유서를 얼른 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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