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집 1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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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말아톤'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룩말을 좋아하는 자폐아가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이를 이끌어주는 어머니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집념이 수백만명의 관객을 울리고 있다.

이런 영화 말아톤에 비견될만한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도토리의 집'이라는 7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작가인 야마모토 아사무씨가 10년의 작업기간 끝에 내놓은 수작이다.

이 책은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토리의 집'은 일본 사이타마 현 오오미야시에 실존하는 농중복장애인들이 다니는 공동작업장이다. 이 책은 도토리의 집 설립과 관련된 농중복장애인들의 가족과 농아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관계자들의 수기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농중복장애는 청각장애 외에 시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신장애 등을 겹쳐 갖고 있는 장애를 말한다. 12살이 되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 몇몇 단어를 수화나 말을 더듬거리는 것으로 표현하나 '쓸쓸하다'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는 몇 개월에 걸친 훈련이 필요한 아이,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고 자해하는 아이, 다른 세계를 향해 전혀 나아가려 하지 않는 아이 등, 이러한 아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러한 아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부모와 선생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냉대 및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중증 장애인들의 인권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들이다. 끝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아이들의 작은 변화 하나에서도 큰 의미를 찾으며 기뻐하면서 어둠을 헤쳐 나온 사람들이다.

일본에서 중복장애인은 1979년까지 교육 받을 권리를 빼앗겨 왔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 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복장애인 학급을 만들어내고 이 아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도토리의 집이라는 작업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눈물겹다.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 나온 "약자를 배제해야만 성립하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참교육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절규는 우리 모두의 폐부에 와 닿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작은 승리를 얻어낸다. 작게 시작했던 도토리의 집을 5년간의 모금운동 끝에 1996년 '정이 오가는 마을 - 도토리'로 정식 개장한 것이다.

저자는 무한경쟁 속에서 무가치하다고 여겨왔던 장애인들이야말로 그동안 우리들이 사회적 이익을 위해 버려왔던 다양한 아름다운 인간적인 덕목들을 새롭게 구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장애인 주제의 만화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들의 승리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생명존중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에서 120만명 이상이 관람하기도 했으며, 1년에 한 번꼴로도 추천작을 선정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일본 문부과학성 추천, 후생성 추천, 일본 PTA전국협의회 특별 추천 등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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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
박정훈 지음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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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환경의 역습’이 경각심이 느슨해진 우리 삶을 역습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편에 소개한 빌딩증후군, 새집증후군, 화학물질과민증이나 ‘미래를 위한 행복의 조건’편에 소개한 치아 아말감의 유해성 등은 환경오염이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덮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그 충격은 컸다. 그리고 시청자만이 아니라 사회까지 변화시켰다. 방송 직후인 2월부터 ‘친환경 건축자재 품질인증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건설교통부가 새집증후군 예방을 위한 안내서를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환경의 역습’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훌륭한 사례다.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는 수단이고, 그 중심에는 박정훈 PD라는 일개인의 집요한 추적이 있었다.

‘환경의 역습’은 2002년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연장선에 서 있다. 이 프로젝트들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주제도 주제이지만, 박 PD의 문제접근 방식에도 기인하고 있다. 박 PD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준비할 때는 자신의 집 식단을 바꾸는 실험을 통해 스스로 확신을 다지고, 이를 사회에 대해 실험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3인을 대상으로 6개월에 걸친 변화반응을 추적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환경의 역습’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새집으로 이사하여 병을 앓기 시작한 중학생과 실내 인테리어 공사 이후 아토피를 앓게 된 5세 어린이에 대해 장기간에 걸친 추적을 함으로써 결국 실내 화학물질이 아토피 및 두드러기와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끈기 있게 밝혀냈다. 책에서 고백하고 있듯 추적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경우에는 전체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은 전국민적인 반향으로 이어졌다.

『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은 TV 프로그램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TV 프로그램은 경종을 울리기에는 충분하나, 내용이 시청자 개개인에게 내재화되기에는 충분치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책은 TV보다 장점이 있다.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TV의 짧은 시간에 못다 내놓은 얘기들을 모두 들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이 점이 TV를 관심 있게 본 사람이 책을 봐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도시인은 95%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그만큼 실내 공간의 환경문제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이 극히 적은 게 사실이다. 거리에 나가서는 매연에 코를 막기도 하지만, 집안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낸다. 실상 이제는 화학물질이 우리 가정 안에 더 많이 스며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책에는 TV에서보다 훨씬 풍부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실내의 각종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은 휘발성유기화합물, 포름알데히드 등 300여종에 이른다. 입주 후 3개월이나 지난 아파트에서 WHO 기준치의 11배나 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과 2배 이상의 포름알데이드가 나왔다는 사례도 충격적이다. 준공 5년 이내 아파트 거주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4%가 새집증후군을 겪었다는 내용도 심각하게 들린다.

인테리어공사를 새로 하고, 오래 되지도 않은 집을 부수어 새로 짓고, 우아하게 하기 위해 온갖 가구 위에 화학물질로 덧칠을 하고, 벌레가 살지 못하도록 벽지에, 장판에, 가구에 살균제 처리를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추구했던 현대적 삶이다. 화려하고 우아한 삶을 산다는 게 오히려 더 많은 화학물질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니 아이러니이지 않을 수 없다.

화학물질과민증은 결코 유난떠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칼러판으로 된 여행서를 샀는데 너무 잉크냄새가 독해서 책을 보기만 하면 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교환을 요구했더니 아주 민감한 사람인 양 이상하게 치부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본다. 페인트칠 냄새에 민감하거나,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가면 아기가 계속 울어대거나 하는 등의 경험 한두 가지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정도다.

불황은 서민의 가계에 먼저 찾아오듯, 환경재난은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다. 어린이, 임산부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들을 인간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탄광에서 위험한 가스가 나오는지 시험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갱도에 들어간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환경재난에 가장 쉽게 노출되고 있는 사람이 어린이고,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위험한 풍요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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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
남효창 지음 / 청림출판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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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연구소라는 곳이 있다. 숲체험교실, 숲생태 지도사 양성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곳이다. 인터넷(www.ecoedu.net)으로 신청하면 ‘바람’이라는 소식지를 무료로 보내주는데, 최근의 소식지에서는 전나무를 소개하면서, 내소사 전나무 잎 2장을 붙여보내와 내소사 향기를 전하는 듯 했다.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는 숲연구소 대표인 남효창 박사가 최근 쓴 책이다. 수십 년 동안 숲을 연구해온 결과 위에 2년여의 기간 동안 숲연구소를 운영한 실제 경험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자연스럽게 신비한 숲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이끌고 있는 중심축은 학술적 접근이나 경험적 접근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그 중심축은 숲에 대한 경이로움과 애정이다. 경이로움으로 인해 숲의 생태계를 존중하게 만들고, 애정으로 인해 숲에 보다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이 책 곳곳에 나와 있는 상수리나무 얘기 역시 재미난 얘기를 전달하는 듯 싶지만, 결국은 상수리나무를 만나고 싶은 느낌으로 마무리된다.

도토리 한 알이 거목으로 성장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과 비슷하다고 한다. 상수리나무는 불과 몇 그램의 열매에서 수천 배, 수만 배 크기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 해도 신비로운데, 우리가 보는 거목들이 그 무수한 확률을 뚫고 자라났다니 경이롭기까지 한다.

이 기적이 일어나는 데는 어치라는 새의 역할이 크다. 어치는 겨울 양식을 위해 도토리를 땅 속 여기저기에 묻는 일을 열심히 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어치가 잊어버리거나 귀찮아서 그냥 둠으로 인해 다음해 발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발아한 상수리나무가 거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땅 속 깊이 들어갔기 때문에 많은 물과 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으며, 뿌리가 튼튼하여 외부 환경변화에 견디기 쉽기 때문이다. 어치를 통해 거목을 키우는 자연의 순환과정이 놀랍기만 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전달하는 여러 숲의 모습들은 지식으로 그치지 않고 호기심과 신비함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숲을 찾으면 이를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책 뒤편에는 숲을 체험하는 방법까지 소개하고 있다. 숲연구소에서 시행해 온 여러 숲체험교실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숲속 놀이도 소개해놓고 있다. 그러한 놀이는 신선하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도 그런 놀이를 통해 숲을 체험하게 된다면 숲의 모습을 더욱 온전히 느낄 수 있겠다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한 권에 숲의 모든 것이 나타나 있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으로 숲에 담기에는 한 권은 작다. 그러나 숲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느낌을 담기에는 한 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이 책 끝 부분에 “가장 큰 대학교는 바로 학교 밖 자연이라고 생각한다”는 인디언 타탕가 마니의 말이 나온다. 매일 출근과 등교한다는 것은 어렵겠지만, 현대인들이 좀 더 자주 숲으로 출근하고, 우리의 아이들 역시 좀 더 자주 숲으로 등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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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타 2004-09-1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에서도 숲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강병남 외 옮김 / 동아시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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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는 세상을 좁게 한다. 우리는 간혹 우연한 경험에 의거하여 "세상은 참으로 좁다"는 것을 실감하는데, 이는 결국 네트워크의 문제에 다가서게 한다. 이 네트워크를 얘기할 때 흔히 '에르되스 넘버' 사례를 든다. 유명한 수학자인 에르되스와 공동 저작을 하면 이 넘버는 1이고, 에르되스 넘버가 1인 사람과 공동 저작을 하면 이 넘버는 2가 된다. 이 넘버가 작을수록 명예로운 셈인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2에서 5 정도의 비교적 작은 에르되스 넘버를 갖고 있다.

미국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 넘버'도 많이 얘기되고 있다. 이 영화배우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면 넘버가 1이 되고, 넘버가 1인 영화배우와 같이 출연한 영화가 있으면 넘버가 2가 되는 식인데, 대부분의 영화배우들이 2 내지 3의 넘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케빈 베이컨이 그만큼 유명한 배우라는 뜻이 아니라, 웬만한 영화배우일지라도 그런 식으로 2 내지 3개의 링크가 거치면 해리슨 포드나 줄리아 로버츠와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연구는 63억명의 인류라는 거대한 집단 마저도 대부분 6단계의 링크 안에 들어온다는 연구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가 미국 대통령과도 6단계 정도를 거치면 연결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은 좁은 정도가 아니라 작은 울타리 안으로 느껴질 정도다.

<링크>의 초반은 이런 흥미진진한 얘기부터 풀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링크>를 세인의 흥미진진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얇을 수 있는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내는 책이라고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이 책의 부제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이 얘기하듯, 이 책은 네트워크가 이 세상을 해석하는데 얼마나 유용한 도구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은 네트워크 과학의 단서를 사회관계의 링크에서 풀고 있다. 왜 이렇게 몇 번의 링크를 거치면 세상 사람들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 바라바시는 많은 사람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고, 이 클러스트 간에 한 번의 링크라도 이어진다면 링크는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우리 세계에는 이런 확장력을 가진 커넥터들이 있고, 이들이 네트워크의 허브가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예컨대 세상은 고속버스 노선도처럼 격자모양의 그물망처럼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항공 노선도처럼 소수의 노드에 항공노선이 집중되고, 일부 주요 거점 노드에 약간의 노드들이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링크의 갯수를 많이 가지고 있는 노드는 극히 적고, 링크의 갯수를 작게 가지고 있는 노드는 무수히 많게 된다. 결국 세상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정규분포를 이루는 종형곡선보다는 멱함수(로그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80/20의 파레토법칙이나 지니계수 역시 멱함수를 따르고 있다.

그러면 이 네트워크 구조를 밝히는 것이 무엇에 도움이 될까. 저자는 이를 경영, 경제, 의학, 인터넷 등 다방면에 걸쳐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에이즈의 확산 역시 이런 멱함수를 따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확산추세가 누그려뜨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에이즈의 전파에는 소수의 허브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 소수에 치료 역량을 집중시켜야 확산을 급격히 격감시킬 수 있으나, 치료는 복지의 문제로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때문에 확산추세를 떨어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마케팅에서 오피니언 리더를 활용하는 것이나, 2000년 5월의 러브 버그 처럼 인터넷에서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것이나 모두 이러한 네트워크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 위상구조를 밝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 몸의 세포가 타 세포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 역시 멱함수 구조를 가지고 있어,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 역시 네트워크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이에 대한 구조를 파악하면 혁신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p3 단백질에 이상이 생기면 암에 걸릴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는데, p3 단백질의 네트워크 구조를 개인별로 파악해낸다면 부작용이 전혀 없이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에도 적용 가능하다. 최근 연쇄도산의 경우 역시 경제의 허브에 이상이 생길 때 그 영향력이 아주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경제구조 내부에 존재하는 네트워크 위상구조에 대한 파악이 잘 되어 있다면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수십억년 동안 진화해 온 인간세포의 네트워크나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네트워크 역시 진화의 산물이고 안정적 구조를 향해 내달려 왔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는 넓은 세상을 좁게 사는 길이자, 먼 길을 가깝게 해주는 길일 수 있다. 그 길을 의학에 적용하면 치료의 길이가 짧아지고, 인간관계에 적용하면 관계가 가깝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링크>는 주변의 다양한 범주를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도와주는 네트워크과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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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좀 된 얘기다. 지난 봄에 아이들이과 함께 상추랑 토마토랑 묘종을 사서 길다란 화분에 심고는 그 화분을 베란다 바깥으로 걸린 철제선반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어느 정도 컸는데, 이상하게 잘 자라던 토마토 꼭지가 똑 떨어진데다 상추 하나도 완전히 거의 뽑힐 정도로 뜯어져 없어져 버린 거다. 화분 전체적으로 훼손된 것이 아니라 아파트 베란다쪽으로 길게 훼손된 것이다.

큰애(윤호)가 식물을 그렇게 대할 아이도 아닌데, 작은애(윤하)는 키가 닿지 않아 그럴리 없고. 누가 도둑이 들리도 없고. 그래서 윤호를 불러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윤호 너 이거 뜯었니?"

아이를 의심한거다. 윤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안했다고 간단히 대답하고 만다. 그래도 내 의심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윤하가 의자를 놓고 올라가 위험스런 장난을 했을까. 아냐.. 아냐.. 하여간 아이들에 대한 의심을 풀지 못한 채 그냥 덮어두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의혹을 완전히 풀린 것이다. 범인은 바로 비였다. 비가 며칠 계속 왔는데 비가 오면 비가 어디를 타고 흐르다가 떨어지는지 위에서 똑 똑 똑 낙수물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 낙수물이 상추를 완전히 쪼아서 파버리고, 토마토 윗 부분을 꺾어버린 것이다.

범인은 비였는데, 아이를 의심하다니. 내 스스로 백지에서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고 했는데 나 자신이 그렇지 못했다니. 더군다나 아이를 상대로 말이다. 참, 내 자신이 우습고 부끄러워서 잠시동안이나마 윤호를 제대로 못봤던 기억이 있다.

# 2

그런데 이런 반성은 오래가지 않나 보다. 아니, 어른들은 좀체 버릇을 고치기 힘든 존재라서 잠깐 반성했다가 다시 잊어버리나보다. 어제 일이다. 밖에 나갔다 와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욕조목욕을 시켰다. 녹물을 다 쏟아내고 물을 받아 놓으니 아이들이 안에서 신나게 물장난을 치며 놀았다.

한 10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작은애가 와락 울며 목욕탕에서 뛰쳐나오는 것이다. 또 둘이 싸웠으려니 했다. 그런데 작은애 왼쪽 눈에서 피가 물에 번져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그래?"
"내가..(울먹울먹) 요.. 물총.. 피하... 숙였는데..요.. 갑자기..(울먹울먹) 눈에서.. 피.. (울먹울먹) 났어요.."

도대체 작은애 설명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큰애가 물총을 가지고 작은애에게 장난을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큰애에 대한 야단에 걱정까지 겹쳐 목소리가 대뜸 커졌다.

"윤호야! 어떻게 한 거야! 네가 설명해 봐!"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게 아니라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음은 한참 뒤에서나 깨달은 것일뿐 이미 큰애가 어떻게 한 것이라고 짐작을 한 것이다.

"내가요. 마요네즈통에 물을 담아 윤하에게 뿌렸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주저앉더니 울었어요."

큰애는 겁에 잔뜩 질려 얘기를 한다. 내가 마요네즈통 끝이 윤하 눈에 닿은 것인가 하여 마요네즈통 구멍을 살피는데, 아내는 이미 범인은 큰애라 단정하고 큰애를 다그치며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은애가 말린다.

"형이 그런 게 아녀요.(울먹울먹) 그냥 내가 피하려고 앉았는데 피가 났어요."

형이 야단맞지 않도록 두둔하는 정도려니 했다. 아직도 윤하 눈에서 피는 좀 진정되긴 했지만 눈물과 섞여 약간씩 흐르고 아랫 눈썹 안에 생채기도 선연해 다소 걱정이 되었다. 아내는 화장지로 피눈물을 한번 찍어낼 때마다 큰애를 몰아붙였고, 큰애는 죄인마냥 목욕탕 문턱에서 꿇어앉은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어떻게 된거냐고 재연해보라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상황이 짐작되었다. 욕조 안에는 아이들 장난감과 함께 물에 뜨는 돌이 떠 있었고, 욕조 바닥에는 돌가루와 미세한 녹물가루 약간이 침전되어 있었던 것이다. 큰애가 물을 뿌리자 작은애는 주저 앉았고, 그러면서 물이 눈에 들어갔는데, 그 물과 함께 미세한 돌가루가 갔을 터이고, 눈이 불편하니 작은애가 눈을 비볐을 것이고, 그래서 눈 안쪽 약간이 살짝 찢어져 피가 났을 게다.

확실한 원인 규명 없이 엄마, 아빠 둘이서 아이를 밀어붙였다는 게 여간 미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녹물가루 탓이라면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일단 상황을 설명하고 사태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큰애가 조그만 목소리로 묻는다.

"내가 잘못한 거예요?"
"아니, 네 잘못은 없지만, 네 책임은 약간 있다."
"동생 보살피지 못해서요?"
"그래."

이 기회에 동생과 같이 있을 때는 네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것인데, 말을 해놓고도 가슴 한 구석이 찔렸다. 아마 내 잘못이 더 컸을 텐데도 그것을 아이에게 고백하지 않고서 큰애에게 책임을 느끼도록 했으니...

우리는 보통 아이의 비논리적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럴 경우 아이 말보다는 부모의 직관에 의해서 판단하고 행동하곤 한다. 아이의 상황판단을 믿지 못하는 것이며, 간혹의 경우는 아이를 의심까지 하곤 한다.

이 땅에 아이들은 억울한 경우를 많이 당할 것이다. 제대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고,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하지도 않은 일을 한 것처럼 오해받는 경우가 모르긴 몰라도 의외로 많을 것이다.

아이가 했을 것이라고 의심되는 경우, 확인되지 않았다면 일단 물러서는 게 옳지 않을까? 설사 아이가 했을 확률이 높을지라도 그냥 넘어갔을 때의 문제점보다도 억울하게 아이에게 누명을 씌우는 문제점이 몇 십 배 몇 백 배 더 큰 게 분명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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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0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모든 부모들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