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집 1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영화 '말아톤'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얼룩말을 좋아하는 자폐아가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이를 이끌어주는 어머니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집념이 수백만명의 관객을 울리고 있다.

이런 영화 말아톤에 비견될만한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도토리의 집'이라는 7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작가인 야마모토 아사무씨가 10년의 작업기간 끝에 내놓은 수작이다.

이 책은 마라톤과 마찬가지로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도토리의 집'은 일본 사이타마 현 오오미야시에 실존하는 농중복장애인들이 다니는 공동작업장이다. 이 책은 도토리의 집 설립과 관련된 농중복장애인들의 가족과 농아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관계자들의 수기에 기초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농중복장애는 청각장애 외에 시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신장애 등을 겹쳐 갖고 있는 장애를 말한다. 12살이 되어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 몇몇 단어를 수화나 말을 더듬거리는 것으로 표현하나 '쓸쓸하다'와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데는 몇 개월에 걸친 훈련이 필요한 아이,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고 자해하는 아이, 다른 세계를 향해 전혀 나아가려 하지 않는 아이 등, 이러한 아이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러한 아이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부모와 선생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냉대 및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중증 장애인들의 인권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들이다. 끝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아이들의 작은 변화 하나에서도 큰 의미를 찾으며 기뻐하면서 어둠을 헤쳐 나온 사람들이다.

일본에서 중복장애인은 1979년까지 교육 받을 권리를 빼앗겨 왔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아 왔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복장애인 학급을 만들어내고 이 아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돕기 위해 도토리의 집이라는 작업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눈물겹다. 이 책의 어느 대목에서 나온 "약자를 배제해야만 성립하는 교육이라면 그것은 참교육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절규는 우리 모두의 폐부에 와 닿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작은 승리를 얻어낸다. 작게 시작했던 도토리의 집을 5년간의 모금운동 끝에 1996년 '정이 오가는 마을 - 도토리'로 정식 개장한 것이다.

저자는 무한경쟁 속에서 무가치하다고 여겨왔던 장애인들이야말로 그동안 우리들이 사회적 이익을 위해 버려왔던 다양한 아름다운 인간적인 덕목들을 새롭게 구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장애인 주제의 만화를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들의 승리를 그려낸 것이 아니라 독자들로 하여금 생명존중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기쁨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 만화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만들어져 일본에서 120만명 이상이 관람하기도 했으며, 1년에 한 번꼴로도 추천작을 선정하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일본 문부과학성 추천, 후생성 추천, 일본 PTA전국협의회 특별 추천 등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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