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
박정훈 지음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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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환경의 역습’이 경각심이 느슨해진 우리 삶을 역습한 것은 지난 1월이었다. ‘집이 사람을 공격한다’편에 소개한 빌딩증후군, 새집증후군, 화학물질과민증이나 ‘미래를 위한 행복의 조건’편에 소개한 치아 아말감의 유해성 등은 환경오염이 특정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시 우리의 건강과 목숨을 덮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그 충격은 컸다. 그리고 시청자만이 아니라 사회까지 변화시켰다. 방송 직후인 2월부터 ‘친환경 건축자재 품질인증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지난 9월에는 건설교통부가 새집증후군 예방을 위한 안내서를 전국에 배포하기도 했다.

‘환경의 역습’은 미디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킨 훌륭한 사례다.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는 수단이고, 그 중심에는 박정훈 PD라는 일개인의 집요한 추적이 있었다.

‘환경의 역습’은 2002년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연장선에 서 있다. 이 프로젝트들이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주제도 주제이지만, 박 PD의 문제접근 방식에도 기인하고 있다. 박 PD는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준비할 때는 자신의 집 식단을 바꾸는 실험을 통해 스스로 확신을 다지고, 이를 사회에 대해 실험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3인을 대상으로 6개월에 걸친 변화반응을 추적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환경의 역습’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새집으로 이사하여 병을 앓기 시작한 중학생과 실내 인테리어 공사 이후 아토피를 앓게 된 5세 어린이에 대해 장기간에 걸친 추적을 함으로써 결국 실내 화학물질이 아토피 및 두드러기와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끈기 있게 밝혀냈다. 책에서 고백하고 있듯 추적 결과가 다르게 나올 경우에는 전체 프로젝트가 실패할 수 있는 모험이었다. 그리고 그 모험은 전국민적인 반향으로 이어졌다.

『책으로 만든 환경의 역습』은 TV 프로그램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TV 프로그램은 경종을 울리기에는 충분하나, 내용이 시청자 개개인에게 내재화되기에는 충분치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책은 TV보다 장점이 있다. 체계적인 접근이 가능하고, TV의 짧은 시간에 못다 내놓은 얘기들을 모두 들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주장을 들을 수 있다. 이 점이 TV를 관심 있게 본 사람이 책을 봐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도시인은 95%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그만큼 실내 공간의 환경문제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이 극히 적은 게 사실이다. 거리에 나가서는 매연에 코를 막기도 하지만, 집안에서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지낸다. 실상 이제는 화학물질이 우리 가정 안에 더 많이 스며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책에는 TV에서보다 훨씬 풍부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실내의 각종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은 휘발성유기화합물, 포름알데히드 등 300여종에 이른다. 입주 후 3개월이나 지난 아파트에서 WHO 기준치의 11배나 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과 2배 이상의 포름알데이드가 나왔다는 사례도 충격적이다. 준공 5년 이내 아파트 거주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5.4%가 새집증후군을 겪었다는 내용도 심각하게 들린다.

인테리어공사를 새로 하고, 오래 되지도 않은 집을 부수어 새로 짓고, 우아하게 하기 위해 온갖 가구 위에 화학물질로 덧칠을 하고, 벌레가 살지 못하도록 벽지에, 장판에, 가구에 살균제 처리를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추구했던 현대적 삶이다. 화려하고 우아한 삶을 산다는 게 오히려 더 많은 화학물질을 집안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니 아이러니이지 않을 수 없다.

화학물질과민증은 결코 유난떠는 사람이 아니다. 예전에 칼러판으로 된 여행서를 샀는데 너무 잉크냄새가 독해서 책을 보기만 하면 머리가 아픈 적이 있었다. 그래서 출판사에 교환을 요구했더니 아주 민감한 사람인 양 이상하게 치부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경우는 주변에서 쉽게 본다. 페인트칠 냄새에 민감하거나,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가면 아기가 계속 울어대거나 하는 등의 경험 한두 가지 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정도다.

불황은 서민의 가계에 먼저 찾아오듯, 환경재난은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찾아온다. 어린이, 임산부 등이 그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들을 인간 카나리아에 비유했다. 탄광에서 위험한 가스가 나오는지 시험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데리고 갱도에 들어간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화학물질과민증 환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환경재난에 가장 쉽게 노출되고 있는 사람이 어린이고,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위험한 풍요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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