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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의 과학자들 - 과학자와 떠나는 즐거운 산행
제임스 트레필 지음, 정주연 옮김 / 지호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자연의 변화 원리를 알면 자연의 신비가 없어질까, 아니면 더 경이로울까. 자연의 본질을 알게 되면 자연의 매력이 없어질까, 아니면 더 아름다워질까. 덤덤하게 지나치는 돌덩어리 하나도 그 변화 원리를 알고 본질을 알게 되면 더욱 경이롭고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른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 자연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들이 다소 정(靜)적인 자연이라면 산은 보다 동(動)적인 자연이다. 산을 오르다보면 인간이 자연에 비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이 우리가 모르는 자연세계에 온통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굉음을 폭발하듯 떨어지는 폭포수, 원시림 같은 나무의 군락, 산의 폐부를 깎아 내리며 흐르는 듯한 계곡물들. 경외스럽고 신비롭고 힘이 느껴지는 자연이 산속에 숨어 있다.
<산꼭대기의 과학자들>은 그 동적인 자연 속으로 안내한다. 맨 먼저 왜 산이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이미 과학자들이 밝혀놓은 원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을 바로 말하지 않는다. 여러 의구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을 나열하고 하나 하나 실타래를 풀듯이 풀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판구조론이나 조륙운동, 조산운동이 얼마나 겉핥기식이었는지를 점차 느껴나가게 된다. 대륙은 물에 떠 있는 나무조각이라든가, 대류가 움직이는 원리가 지구 저 밑에서도 똑같이 움직이면서 지구의 지각을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라든가 하는 원리가 메마른 땅바닥 사이로 물이 스며들 듯 신비롭게 젖어든다.
산에 있는 바위의 나이, 나아가서 지구의 나이가 몇 살인가를 밝히는 것 역시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논증해간다. 그냥 46억년이라고 암기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몇 조각 흩어져 있는 퍼즐 조각을 제시한다. 도저히 맞춰지지 않을 퍼즐 조각 같은데 저자는 이를 모아서 맞춰나간다. 이를 따라가다 보면 46억년이라는 결론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거려진다. 과학을 탐구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고, 얼마나 체계적이고 신비로운 과정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산의 형성 과정이나 지구의 나이만이 아니라 계곡을 흐르는 물, 오른쪽으로만 감아도는 오른손잡이 나무, 산에서 바라보는 하늘 등 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뒤로 갈수록 너무 다양한 과학 원리가 전개되고, 산을 다소 벗어난 주제까지 포괄하고 있어 집중도가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산에 관해 쉽게 과학의 원리를 접하게 함으로써 더욱 산을 아름답고 경이롭게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제임스 트레필이 1986년에 쓴 책으로 국내에는 15년이 지난 소개된 셈이다. 15년이 과학의 세계에서는 상당한 간극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질학자나 물리학자의 감수가 있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