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어회와 깻잎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간절하게 참 철없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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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8-02-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도 꼭 깻잎 뒤집어서 사먹는데...
안도현, 아무래도 이 시집 사 봐야 할까 봐요.
 

마하타르

 

제가 사는 석남리는

낮은 지붕과 정다운 굴뚝들이 이마를 마주대는

서산에서도 설렁설렁 헐거운 동네인데

서산중학교 네거리 못미처 대웅분식이라는 곳도

그중 소박하고 정겨운 술집이에요

닭발에다 순대도 구수하고

배추김치에 칼국수 맛도 심심삼삼,

얼큰한 등뼈해장국에 막걸리 몇 통 놓고 부담 없이

쌈박하게 취할 수 있는 곳인데

어쩌다 영업 일찍 끝나면

두 양반이 소주 한 병 놓고 권커니 잣커니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지요

대웅분식 바깥양반 김명수 씨

오늘 낮술에 대취해 느닷없이

지나가던 제 손 잡고 하소연합니다

나이 열일곱에 머슴살이부터 시작해

이날 이때껏 목수 미쟁이 연탄장수

안할말로 안 해본 일 없이 살다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이 환경 미화원인데

더럽고 냄새나는 시절들

세상의 온갖 쓰레기 모두 치우면서

좋은 세상 열리는 거 보고 죽어야제

그 흔한 신세타령도 없이

꿍꿍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인데

가장 큰 고민이 면허증이래요

알밤 같은 아들 둘 딸 하나 낳아 잘 키우고

일자무식 마누라 손끝 하나는 맵고 당차

분식집 돈벌이도 쏠쏠하기만 한데

나이 오십 줄에 어쩐지 옆구리가 텅 빈 듯 허전하시대요

세상의 온갖 기계란 기계는 다 만지고

몸으로 때우는 것은 누구도 부러워할 것 없이 해치우는데

그놈의 운전면허 시험에는 서른여섯 번이나 떨어졌다나 봐요

이제 땅도 사고 집도 있어

찌들은 주름살 골짜기에 햇빛 들고 봄눈 녹아

어쩌다 가족끼리 자장면이래도 먹으러 갈라치면

몇 행보씩 오토바이 신세를 진대요

모처럼 쉬는 날이면 고생한 마누라 옆에 태우고

아들딸 앞세워 벚꽃 구경, 단풍 구경 시키고

아 바람 아래 포구에라도 나가

산 낙지에 소주 한잔 재미난 이야기 파도에다 띄우고 싶기도 한데

그놈의 면허증이 늘 문제라고

힘없는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이에요

배우지 못한 놈은 자가용도 탈 수 없냐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노가다하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쓰레기나 치우고

배우지 못한 놈은 평생 연탄이나 배달하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고

한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놈은 무슨 수로 고개 떨구면서

땅을 치며 풀을 뜯는 겁니다

죄 없는 흙을 쥐어뜯는 겁니다

그 위로 달구똥 같은 눈물이 번지기 시작하는데요

 

 

- <크나큰 침묵> 솔.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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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8-02-1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살던 동네가 저 지역이었습니다.
대웅분식 칼국수는 한겨울 얼음이 꽝꽝 얼때 먹으면 뜨거운 국물이 칼칼하니 시원합니다.
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추 겉절이도 짱이고
두어평 남짓한 식당방에 엉덩이를 지지고 앉아 옆자리의 아저씨들 얘기 들음 재밌죠.
기억의 저편에서 사라져가던 한자락을 떠올릴 수 있는 시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석남리'가 아니고 '석남동'이라 불리죠.
유용주 시인은 여적 저 동네에 살고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달빛푸른고개 2008-02-1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옮겨본 시에 직접 가보신 경험이 있으셨군요.
언제 한번 가보고 싶군요. 김명수씨가 계실 때...
어쩌다 들러본 서산은 그 인상에 군산과 매우 비슷하더군요.
어쩌면 구룡포나 (예전) 삼천포, 벌교 등도 비슷하겠지만요.

유용주 시인은 동문동에 여적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숲속의 게으름뱅이
정용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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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리뷰 제목은 내가 뽑은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서두 '시작하는 글'에서 저자 스스로가 표현한 이 책에 대한 '정체'이다.

'나는 약초꾼도 아니고 요가수행을 하는 사람도 아니며, 망초꽃 우거진 숲길을 산책하며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색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바위 밑에 평석을 깔고 정화수 떠놓고 치악산 신령님께 정기를 부어달라고 기도하는 박수는 더더욱 아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일하고 싶으면 조금 하고 싫으면 말고 하면서, 최소한의 것으로 굶어죽지 않으면서 내 멋대로 자연 속에서 뒹구는 게으른 생활인이다.'('시작하는 글'에서)

산문집에는 <무소유>의 철학과 <홀로 사는 즐거움> 또는 <월든> 등의 갖가지 요소가 혼재되어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과 자연을 바라보는 따뜻한 저자의 시각이 도처에서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왜 '산쟁이'가 되었을까. 견디기 어려운 삶의 시련을 피해가려는 도피 또는 '결핍으로의 선택'이었을까. 그러나 그의 움막에는 글을 쓰려는 벗에게 '집필실'을 지어주는 등의 넉넉함이 배어 있다. 즉, 그가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이다. 산 아래 마을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기는 하지만 내가 사람들과의 완전한 절연을 의도적으로 고집하면서 산 속 움막에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를 통해 자연이나 산 생활의 생경함을 얻어듣기보다는, 그가 바라보는 이 세상에 대한 발언을 행간으로 짚어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 산문집과 더불어 <인디언의 女子>(실천문학사. 2007)라는 첫 시집도 함께 내놓았다. 그 시집 소개글에는 '삶의 신산함과 적막함을 견뎌내는 한 자유주의자의 꿈이 담긴 서정의 기록'이라는 헌사가 있다. 다른 장르로 다시 만나보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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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의 게으름뱅이
정용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8월
품절


우편함 - 4킬로미터 아래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내게 오는 우편물들을 보관해놓는데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면 관리사무소 직원은 나무상자 안을 뒤적여 내 이름을 확인한 후 몇 통의 우편물들을 책상 위에 꺼내 놓는다. 전기요금 고지서, 종묘상회 신품종 추천서, 장작보일러 회사의 홍보물, 원주시민회관에서 언제 효도잔치 노래공연을 한다는 포스터... 이런 것들을 한 장씩 꺼내 읽으면서 산길을 되짚어 올라온다. 내 삶에 눈길을 주는 것들의 목록을 떠올려 본다. -62쪽

눈 맞으며 나무 하기 - 화전을 하다 떠나간 사람들이 일구었던 산비탈에는 잣나무가 빽빽하다. 수령이 이십 년쯤 된 제법 굵은 나무들과 그 나무들이 떨어낸 씨앗에서 자라난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끼어있는 이 숲은 고요하다. 누렇게 떨어진 잣나무의 침엽들은 그 위를 지나가는 발자국의 소음을 빨아들이고 양탄자처럼 푹신한 감촉을 전해준다. 딱딱 부러지는 삭정이 소리와 죽은 나무의 밑동을 베어내는 톱질 소리가 깊은 고요를 더욱 깊게 한다. 흐릿하던 오후의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려온다. 바람 없는 허공에서 내려오는 눈송이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한다. 단 하나의 움직임도 없는 잣나무 숲을 느리게 돌아다니며 땔감을 하고 있는 한 마리 짐승의 구부린 등뼈 위로 소리 없이 눈송이가 내려앉는다. 이런 날은 춥지 않다.-117쪽

밤비 소리를 듣다 - 잠시 눈을 붙이려던 초저녁잠을 내쳐 자고 후두둑거리는 지붕의 빗소리에 잠을 깨니 새벽 세 시다. 다시 잠들기에는 너무 많은 잠을 잤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노란 빛깔의 종이 등 불빛이 은은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다. 지붕의 빗소리가 사라지고 마당 위쪽 창고의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이파리가 무성한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린다. 마당의 땅바닥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귀는 여러 가지의 빗소리를 건너다니며 듣고 있다. 나를 두드리는 빗방울들에게 나는 무슨 소리로 화답하며 지나왔을까. 빗속에 흔들리며 울리는 처마의 풍경소리가 상여를 끌고 가는 요령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 새벽, 내가 만들어내는 내 생의 소리를 들어줄 이는 누구인가?-134쪽

찻상에 새겨 넣은 절대고독 -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고독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것 아닌가. 고독감을 몸부림치며 피해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고독감에 도취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마주쳐야 하는 인간 내면의 진실일 뿐이다. 사실 고독감이나 외로움에 지나치게 빠지면 산 생활을 하기 어렵다. 야생은 건강한 몸과 마음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되도록 명랑한 내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명랑한 내면이 가을 낙엽과 겨울의 시린 북풍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다.-192쪽

우정의 장조림 - 두꺼운 솜이불 하나를 덮고 나란히 누워 학창시절 이야기며 소식이 끊긴 몇몇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의 옅은 코골음 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새벽녘 선잠 결에 옆을 보니 그의 자리가 비어있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방문을 연다. 원두막지붕에 하얗게 눈이 덮였다. 주방이 있는 방문을 열자 그가 싱크대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찬물 한 바가지를 옆에다 떠놓고 손을 담그며 간장에 끓인 돼지고기를 찢고 있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밑반찬으로 장조림 한번 해주고 싶어서." 간이 맞나 보라며 찢어놓은 고기 한 점을 내 입에 넣어준다.-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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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생활자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여행기
유성용 지음 / 갤리온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 운남성과 티벳, 인도, 스리랑카, 네팔과 파키스탄...

2004년부터 1년하고도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그가 길에서 길어올린 문장들은 쓸쓸하다.

'나는 어디까지 홀로 되려고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는가. 아름다움 맞는가. 숨구멍이 조여들고 무서움증 같은 것이 인다.'(350쪽)

그러나 이 책에서 보여지는 그러한 쓸쓸함 속에는(역설적인 문장이겠지만) 항상 따뜻함이 공존하고 있다. 그 따뜻함은 고독을 자처하는 듯한('여행생활자'라는 책 제목 자체가 이미...) '자아 성찰'의 시간이 향하는 곳이 항상 사람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 먼 여정 속에서 그는 자연보다는 그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 특히나 아이들의 천진무구한 표정을 많이 담아온듯 한데 그 사진들 면면이 이러한 역설적인 의미를 한층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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