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없다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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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ꡔ잡초는 없다ꡕ, 보리
스콧 니어링, ꡔ스콧 니어링 자서전(the making of a radical)ꡕ, 실천문학사
스콧 니어링·헬렌 니어링, ꡔ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ꡕ, 보리
헬렌 니어링, ꡔ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ꡕ, 보리


책을 잡아 들었을 때 첫느낌
보리 출판사판 ꡔ잡초는 없다ꡕ, ꡔ조화로운 삶ꡕ, ꡔ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ꡕ는 책 표지부터 마음에 들었지요. 화려한 색깔도 없이 누런 종이 색 그대로였습니다. 속을 펼쳐보니 또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더군요. 재생지에 본문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책을 읽어 보기도 전에 이미 느낌이 좋았어요. 누렁 송아지 빛 마냥 친근한 색감도 그렇지만 펼쳤을 때 펴지는 퀴퀴한 냄새는 마치 구수한 청국장에 밥을 비벼 먹는 듯한 행복을 크······. 허허, 청국장을 싫어하는 친구들에겐 반감만 사겠군요.
단, 실천문학사판 ꡔ스콧 니어링 자서전ꡕ은 반가움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고교시절 지긋지긋했던 수학정석을 다시 펼치는 느낌이랄까요. 딱딱하고 두꺼운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고 게다가 또 하나의 표지를 덧씌웠습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늘 흘러 떨어지기 일쑤라 귀찮기 짝이 없는 장식용 표지를 하나 더 붙인 책에 왠지 ‘사회·정치적 급진혁명을 꿈꾸는 자’라는 제목은 어울리지 않은 듯 했습니다. 값도 다른 책에 비해 2배나 비싸니 불만도 2배가 되었답니다, 물론 내용이 좋아서 다 용서하였지만요.

학교가 공장 같다네요
현재 우리 학교 제도도 공장과 비슷하다. 저마다 다른 학생들의 소질과 소망과 능력과 취향을 무시하고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없지 않다. (잡초 20쪽)

교직에서 해임된 뒤, 미국의 대학과 학교들은 점점 더 거대한 공장이 되어갔다. 학생과 교수들 모두 개성을 상실하고,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 채 지냈다. (자서전 202쪽)

아,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이거든요. 그래서 잠깐 제 이야기를 하지요. 동료 선생님들이랑, 저녁에 술 먹으면서 학교 얘기 많이 하거든요. 그러면 어느새 ‘공장 얘기 그만해’ 하며 핀잔을 주시는 분이 있어요. 졸지에 저는 공장에 다니는 직원이 되어버렸지요. 전 속으로 ‘그럼 학생들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공산품인거네요.’라고 생각했지요. 핑크플로이드란 외국 밴드 ‘벽(THE WALL)’이라는 뮤직비디오를 보셨나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으로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 나오죠. 막, 그 장면이 떠오르더군요.
윤구병님이나 스콧 니어링님이나 교육을 바라보는 생각이 같은 것 같아요. 아이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고요. 공장에서 수동적으로 만들어지는 빵이 아니라. 자연에서 스스로 길러지는 밀과 같은 존재라고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공장에서 똑같은 빵을 구워내는 것 같아, 참 안쓰러워요.

과학과 기술아! 잘난 체 하지 마라!
과학기술 영역에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은 무엇이고 망치는 것은 무엇인지 단 한 시간이라도 자기 시간을 내서 우선 순위에 따라 목록이라도 작성하고 생각해 보는 겨를을 갖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으랴 (잡초 170쪽)

고등학교 국어 (상) 교과서에는 ‘현대과학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윤순창씨가 써놓은 글이 있지요. 그 글의 결론에는 과학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결자해지(結者解之)라, 묶어 놓은 사람이 과학자이기 때문에 풀어 헤칠 사람도 과학자란 말인가요. 물론 풀어야 할 책임이 있지요. 하지만 과연 풀어 낼 능력은 있는가 의문이랍니다. 또한 근본적인 문제는 과학자의 윤리적 양심과 가치관에 있을 터인데 단지 죄를 졌으니 죄값만 치르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탐탁치 않아요. 일단은 저질러 버리고 나중에 수습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지요. 수업시간에 이 글을 가르치려니 차라리 윤구병씨가 대덕과학기술원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내용을 읽어주고 싶었답니다.

흙내가 그립지 않나요.
어차피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사는 편이 낫다. 노점에서 먹을 것을 사거나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대신 시골에서는 적어도 자기가 먹을 것은 재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서전 374쪽)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자서전 375쪽)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 밑에 땅을 느껴라 (아름다운 186쪽)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 친구에게 질문 하나 하지요. 오늘 하루 중 흙을 밟아본 시간 얼마큼 되나요? 아, 글쎄요. 전혀 없었다는 친구도 있네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시멘트로 된 방을 지나, 콘크리트 복도를 걸어, 철근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죠. 콘크리트 계단을 내려 시멘트 보도블럭을 몇 번 걷다가 간혹 기름덩어리 아스팔트를 건너 학교에 들어가게 되겠죠. 운동장에는 흙이 가득합니다만 그것을 밟고 갔다간 신발 바닥이 더러워 질 것이니, 웬만하면 또 시멘트와 콘트리트와 철근을 밟고 교실에 들어 설 것이죠.
교실은 왜 그리도 아이들을 졸립게 하거나 무섭게 떠들게 만들까요. 20평 남짓한 콘크리트 공간 속에 50명이 가득차 있으니 얼마나 비인간적이겠어요.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닭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놈의 닭들이 때도 없이 울어대는 것이에요. 다들 미쳤다고 잡아먹어야 한다고 화를 냅니다. 그런데 그럴 만도 하죠. 그 좁은 울타리 속에서 일생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어느 생명체인들 미치지 않겠어요. 미치진 않았더라도 미친 척이라도 해서 빨리 세상을 하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흙을 밟지 않는 날이 많아질 수록,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잊어버리고 황폐해진답니다.
제 어린 시절의 집은 도시 변두리에 있어서, 반쯤은 시골 생활을 했습니다. 집의 바깥벽 밑에는 빼곡히 화분들이 있었지요. 말이 화분이지, 화분의 역할만 할 수 있으면 어떤 것이든 주워 왔습니다.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담던 스티로폼,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담던 궤짝, 깨진 양동이, 심지어는 타이어까지 화분 노릇을 했답니다. 할머니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그 화분들과 함께 하셨지요. 고추, 호박, 파, 마늘, 상추 등을 길러 입을 즐겁게 해 주셨고, 봉선화, 나팔꽃, 박꽃, 채송화, 사루비아 등을 길러 눈을 즐겁게 해 주셨답니다.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그나마 인간적인 면이 남아있다면 아마도 그 시절의 추억이 그것을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던 중에 먼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될 일이 생겼습니다. 이사를 가기 며칠 전 동네를 걷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동네를 떠난다는 것이 여간 마음 아픈 것이 아니지요. 불쑥 동네를 걸어 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간절한 걸음이었지요. 한 군데 건너 한 군데씩 다 내 추억을 건드리는 곳들이었지요. ‘저 집 살았던 아줌마는 참 지독했어, 공이 넘어가면 절대 꺼내 주지 않았으니까. 그래 우리가 일부러 유리창을 깨뜨리고 도망갔었지’ ‘이 골목은 따뜻한 볕이 잘 들었지, 그래 겨울이면 여기서 쪼그리고 앉아 만화책을 보곤 했지’
어느새 발길은 불알친구 집으로 가고 있었답니다. 혹시나 해서 불러 보니까 녀석이 집에 있더군요. 둘 다 직장인이라 평소에 전화를 해도 잘 연락이 안되는 사이였는데 그냥 걸어가보니까 집에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답니다. 그건 아마도 그때 그 시절 느낌을 마지막으로 가져 보라는 하늘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두메산골에서 나고 자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걸음 거리로 한 시간을 넘지 않는 곳에 모든 생활 공간이 있어, 그 곳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 자식 기르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내 고향 충청도’이지요. ‘내 아내와 내 아들과 셋이서 함께 살고 싶은 곳, 논과 밭 사이 작은 초가집 내 고향은 충청도라오’라는 가사가 마음에 와 닿지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지만, 정작 그렇게 말한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하고 지금은 오히려 좁은 세상(?)에 들어가야 할 처지에 있답니다. 도시에서 세상이 넓다고 외치는 것보다, 시골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내가 곧 세상이고 우주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근육의 팽팽한 긴장을 느껴가며 일하는 것이 참맛이려니
작업장이나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을 때 비로소 참 공부는 시작된다고 본다. 이 말은 농사꾼으로 살아온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배운 것이, 교수로서 15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책에서 얻은 것 보다 훨씬 더 많음을 느끼기에 스스럼없이 하는 말이다. (잡초 14쪽)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구체적으로 실천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기계의 버튼을 누르는 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서전 394쪽)

사람이 죽는 날까지 건강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려면 농부가 되어야 하고 목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것을 기르고 살 곳을 짓는 것은 본능적인 일이 아닐까요. 비록 도시에 살더라도 흙과 가까이 하며 나무를 다룰 줄 알아야 하지요. 흙에 씨를 뿌려 기르는 것은 단지 먹을 것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무를 다루어 여러 살림 도구와 집을 만드는 것은 단지 생활에 편리를 찾는 것 정도에 그치지 않아야 해요. 그것은 단지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지요. 본능적인 것은 동물적인 것이므로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많아요. 실제로 요즘 사람들은 피부로 느끼려고 하지 않고 머리 속으로만 이해하려 들죠. 먹을 것을 살 줄 알았지, 기를 줄을 모르고 집을 살 줄 알았지, 지을 줄을 모르다보니 직접 경험의 참 맛을 모르죠. 땀 흘려 일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진정한 맛을 여러분들이 느껴 보았으면 참 좋겠네요.

더불어 함께 살기
한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다면, 그 두 사람 다 불평등 때문에 타락한다 (자서전 125쪽)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132쪽)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조화로운 214쪽)

우리 학교 여선생님, 특히 아줌마선생님들에게 내가 인기가 많다고 해요. 인기가 많은 것은 기분 좋은 일이나, 총각 입장에 유부녀의 관심은 가끔 부담스러울 때가 있지요. 하하, 어디선가 마구 돌이 날아 올 것 같군요. 하여간 원인을 파악해 보니, 내가 남자답지 않게 살림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나요. ‘한살림’이라고 유기농산물로 밥상을 차리자는 단체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매주 한 번씩 우리농산물, 유기농산물을 공동구매하고 있으니 여선생님들이 날 귀엽게 봐 줄 이유가 될 수도 있겠죠.
‘온 우주 생명체의 협동 활동을 통해 밥이 만들어지듯 이 밥을 먹는 사람의 삶도 더불어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밥이 만들어지기까지 온 우주 생명체가 협력하듯, 밥을 먹는 사람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내 머리를 망치로 내려 때리듯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답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뭐, 이런 말을 사회 시간, 윤리 시간, 심지어는 국어 시간에도 귀에 박히도록 들어 봤지만, 정말로 그런지 몸으로 느껴 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특히나 요즘 아이들처럼, 무남독녀, 혹은 무녀독남으로 혼자 자란 친구들에게는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이 오히려 귀찮게 느껴지나 봅니다. 우리 반 아이들 사는 이야기를 듣다가 좀 의아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반 친구들에게 꽤 좋은 아이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유는 그 아이가 물건을 잘 빌려주기 때문이라나요. 물건을 잘 빌려주기 때문에 좋다라는 말은 거꾸로 생각하면, 다른 아이들은 물건을 잘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겠죠.
우리 친구들에게 두 편의 이야기를 소개해 줄 테니, 읽으면서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먼저 첫째 이야기입니다. 줄이 네 개 달린 볼펜을 가운데 둡니다. 각 줄의 끝을 한 아이씩 잡고 있습니다. 동시에 줄을 잡아 당겨 자기 쪽으로 끌고 오면 점수를 얻게 됩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당연히 네 아이가 모두 자기 쪽으로 줄을 당겨 점수를 아무도 얻을 수 없었답니다. 만약에 서로 순서를 정해 한 아이 쪽으로 힘을 몰아 주면 모두 점수를 얻을 수 있었겠죠.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천국과 지옥에 똑같은 음식을 배달했습니다. 단, 사람 팔 길이 보다 긴 숟가락을 주면서 그것으로 먹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천국 사람들은 건강히 잘 있는데, 지옥 사람들은 모두 굶어 죽었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지옥 사람들은 자기 팔 보다 긴 숟가락으로 어떻게든 자기 입에 음식을 넣어보려고 했으나 결국 넣을 수 없었고 천국 사람들은 남에게 먹여 주며 포식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이지요.

덧붙여 한 마디
ꡔ잡초는 없다ꡕ는 농사꾼이 된 철학 교수 윤구병님의 시골생활을 담고 있지요. 이 책과 비교해서 읽어 볼 만한 것이 「조화로운 삶(living the good life)」입니다. 경제학 교수였던 스콧 니어링이 아내와 함께 숲 속에서 산 스무 해의 기록이지요. ꡔ잡초는 없다ꡕ가 ꡔ조화로운 삶ꡕ보다는 훨씬 잘 읽힐 것입니다. 우리네 이야기가 가득하니까요. ꡔ조화로운 삶ꡕ에는 실제로 시골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자세한 안내서가 될 것입니다.
ꡔ잡초는 없다ꡕ에서 윤구병님의 삶에 감동을 얻었다면 그리고 또 그와 같은 느낌을 얻으려면 오히려 ꡔ스콧 니어링 자서전(the making of a radical)ꡕ을 권하고 싶습니다. 100세가 되던 해 스스로 금식하여 죽음마저도 자기의 의지대로 택했던 철저한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스콧 니어링의 강철같은 삶을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스콧 니어링은 ‘안락한 삶을 열망하는 사람과 끊임없는 결단과 투쟁으로 이어지는 힘겨운 삶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 중에서 투쟁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됩니다. 어려울 적마다 ‘확실하게 지속되는 안락보다 더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 사람이랍니다.
두 남자 분의 이야기가 너무 이성적이어서, 머리가 벅차온다면, 이젠 가슴이 벅차오르는 책과 만나보세요. 스콧 니어링의 두번째 아내 헬렌 니어링이 쓴 책이지요. ꡔ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loving and leaving the good life)ꡕ, 이 책에서 헬렌은 사랑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콧 니어링 못지 않게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자유로운 영혼 헬렌 리어링의 울림은 깊이 깊이 간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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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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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요약 :

노동운동을 하기 어려운 시절에 그래도 희망은 역시 노동운동이라는 말을 구체적인 통계자료와 체험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답하고 싶은 물음:

1. 노동자란?

2. 노동운동은 (집단)이기주의인가?

3. (집단)이기주의는 나쁜 것인가?

4. 중립이란? 양비론, 양시론이란? 극단적이란?

5.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여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늘리는 것은 좋은가 나쁜가?

6. 노사갈등의 문제는 노동자와 사용자 가운데 누구에게 더 있는가?

7. 재벌은 우리 사회에 좋은 기업인가 나쁜 기업인가?

8. 노동조합의 파업이 사회에 미치는 유익한 또는 유해한 영향은?

9. 기타




본문에 밑줄 긋기 :




“자네는 박정희 나쁘다는 얘기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왜 김일성에 대한 욕은 한 마디도 안 하나? 공평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김일성을 비난하는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흘러 넘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박정희가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는지는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살잖아요. 하루아침에 귀한 목숨을 8명씩이나 목 매달아 죽였는데 누군가는 학생들에게, 시민들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들이 전심전력을 기울여 박정희가 한 나쁜 짓을 열심히 알려도 우리 사회의 균형이 맞으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줄타기 광대는 손에 부채 하나만 달랑 들고 줄 위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광대의 부채는 언제나 광대의 몸이 기울어지는 반대편으로만 펼쳐져야 합니다. ‘나는 이쪽저쪽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항상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중립을 유지할 거야’라고 똑똑한 척하며 부채를 가운데로만 펼쳤다가는 바로 줄에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 사회에 범람하는 양비론이 대부분 옳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양비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했다는 만족감을 줄 뿐, 무책임할 때가 많습니다. 바늘 끝만큼이라도 옳은 편이 있다면 그 편을 들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쪽저쪽 그 어느 편도 들지 않는 것’이 점잖은 교양인이 갖춰야 할 ‘중용’의 미덕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늘 끝 만큼이라도 옳은 편에 서서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조상들이 가르친 중용의 미덕입니다.

한 쪽은 막강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자본가들이고 다른 한 쪽은 맨몸뚱어리밖에 없는 노동자들인데 그 사에서 중립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성실한 인품의 인사노무 관리자들이 회사 입장에서는 충신이지만 역사 앞에서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17쪽




우리 노동운동의 잘못된 점들에 대해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지 않고, 노동운동에 대한 그릇된 혐오감에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보통 사람들, 스스로 양심적 지식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릇된 제도권 교육의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 노동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할 기회가 단 한번도 없었던 학생들, “내 생각에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조선일보 생각’을 말하는 사람들, 고의적으로 노동운동을 호시탐탐 헐뜯는 사람들도 모두 다 보는 언론 매체에 대고 말하는 것은, 최소한 제가 어제 만난 공무원 노동자들, 병원 노동자들, 공공부문 대기업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착한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비웃게 만듭니다.

노동운동에 대한 정상적인 이해가 대중적 정서로 올바르게 자리 잡아 본 적이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는 사회에서 노동운동을 비판할 때에는, 자신의 말이 얼마나 옳은가 하는 것에 못지않게, 자신의 말이 얼마나 옳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22쪽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본가와 인격적 결함이 있는 노동자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할지라도, 시민들은 노동자들 편에 서는 것이 우리 사회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 사회가 옳게 발전하는 방향이란, 가능한 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유익한 방향이라는 뜻입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24쪽




대기업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소 영세 하청업체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대자본과의 관계에서조차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6쪽




평등은 경제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고, 불평등은 경제 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것이 최근 몇 년간 거시경제학 분야의 중요한 연구성과입니다. -29쪽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의 주장에도 옳은 내용이 있습니다. “시장경제란 잘하는 경제 주체와 못하는 경제 주체를 차별해 못하는 쪽을 탈락시키고, 잘하는 쪽은 더욱 지원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입니다. 시장에서 우월한 경쟁력을 갖는 재벌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그렇게 주장했겠으나, 이 말은 자승자박입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제 정책은 재벌기업이 아무리 부실경영·족벌경영의 잘못을 해도 시장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금융 특혜 등 온갖 지원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잘못이 결국 수십억 달러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리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도산할 수밖에 없는 치욕적인 경제 위기를 초래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있고 돈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두둔하는 주장을 들을 때는,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함으로써 얻는 유익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31쪽




노사관계를 향상시켜야 하는 책임은 경영진에게 75%, 노동조합과 직원에게 25% 있다 (GM대우자동차 닉 라일리 사장)

경영진이 잘하면 노조도 잘하게 돼 있다 (한국도요타 오기소 이치로 사장)

고약한 노조는 회사가 경영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BAT코리아 존 테일러 사장) -36쪽




장애인 성공담들이 일방적으로 강조되는 것이 석연치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토록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도 그렇게 훌륭하게 성공했으니 그보더 별로 더 어렵지도 않은 조건에서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게으르거나 멍청하기 때문이라는 은근한 조장이 그 글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모순된 억압구조를 개인의 불성실로 은폐하고 싶어하는 불순한 음모가 알게 모르게 그 글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41쪽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반드시 만나야 한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아직) 계급 투쟁이 아니다. -46쪽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나는 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들의 소득은 얼마나 늘었을까? 사람들에게 욕 먹어 가면서 죽어라 임금인상 투쟁해 봐야 10% 인상시키기도 어렵다. 연봉 수천만원을 받는 노동귀족들도 갈수록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과 잘 섞이지 않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따로 놀고 있는 부자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진짜 부자들에게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투쟁에 대해서는 ‘노동귀족’의 파업이라고 분개하는 것이다.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엄청난 양극화 현상을 보지 못하는 착한 노동자들이 노동자 내부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극화 현상에 가슴 아파하면서, 자신의 임금인상 투쟁은 한국경제에 유익하지 않다고 자격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들끼리 정규직이네 노동귀족이네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진짜 부자들이 내려다보며서 얼마나 가소로워하고 있을 것인가 -51쪽




고임금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는 많다. 그러나 노동하지 않는 고소득층과 땀 흘려 노동하는 사라들과의 소득 차별을 설명하는 자료들은 별로 없다. 기업에 투자할 생각은 하지 않고 ‘돈 놓고 돈 먹는’ 곳만 찾아 떠돌아 다니는 자금이 420조원. 국민들 중 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나 소유. 2004년도 가처분소득이 기업은 41%나 증가했는데, 가계는 0.9%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상장기업의 순익이 전년도에 비해 두배나 늘었고, 주가는 사상 최고액을 기록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는 130억 달러나 되고,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나 되고, 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66조원이나 되는 등 기업경쟁력은 역사상 최고 수준인데 고용증가율은 0%대에 머물고 있고 민간소비는 오히려 0.5% 감소. 2005년 땅값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 총액이 같은 해 전체 노동자 1년 임금총액보다 많다. 부동상 가격 폭등으로 발생한 불로소득은 346조 원으로 이 수치는 1,400만 임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총액 342조원보다도 많은 금액. -52쪽




삼보일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은근히 최근 노동자들의 행태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삼보일배의 중심이 된 네 분은 모두 성직자들인데, 일반인들에게 성직자의 거룩한 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63쪽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OECD 가입 30개 국가 중에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고, 전형적 시장경제주의자들인 국제금융자본조차 한국 정부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숫자를 줄이라고 요구 -65쪽




기업의 이익이 곧 나라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69쪽




정부로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이 정치적으로 결코 불리한 일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화살을 기업이나 정부에 돌리기보다 상대적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기 때문입니다. -72쪽




2000년을 기준으로 ‘소비’의 부가가치 유발계수는 0.79입니다. ‘투자’의 유발계수는 0.65이고, ‘수출’의 유발계수는 0.63입니다. 이 수치들의 의미는 우리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수출이나 투자보다 소비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훨씬 크다는 뜻입니다. -74쪽




우리 사회는 국민 대부분이 직장인이거나 그 가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소수의 부자가 빨리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직장인들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건전한 소비를 창출하는 가장 올바른 지름길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직장인들의 봉급이 인상되는 것은 우리 경제에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경영자 단체가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는 것이 애국적인 결단인 양 주장하지만, 그것은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대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은 빨리 철폐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낮추는 방식으로 그 차별을 줄이는 것은, 수출이 줄어드는 것보다 우리 경제 더 해롭습니다. 대기업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수 있는 방식으로 그 차별을 철폐해야 합니다. 노동자 임금이 인상되면 기업 경영에는 당연히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도한 임금인상이 원인이 되어 도산한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부실 경영의 원인은 대부분 다른 곳에 있습니다. 노동자의 적정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나라 기업 경영자들이 시급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영자가 바로 무능한 경영인입니다. -75쪽




자본가들은 끊임없이 ‘돈’과 ‘빽’이라는 무기로 유혹을 합니다. 남들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위치의 노조 간부가 술 먹고 실수하기만 호시탐탐 노릴지도 모릅니다. 혹시라도 해서는 안 될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냈을 때 어디선가 사 측이 ‘빽’이 되어 구출해 준다면 그 노조 간부는 그 사실이 드러날까봐 회사한테 큰소리치는 데 주춤거리게 될 겁니다. -83쪽




다른 부가가치 생산 능력이 없이 인건비를 절약하는 것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기업, 즉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중국으로 가겠다”고 협박하는 기업은 우리 사회에 유익한 기업이 아닙니다.  -95쪽




노동조합 활동은 본래가 이기적입니다. 헌법의 노동3권 조항이나 노동관계법 어느 규정에도 노동자가 노동3권을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노동자들은 우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투쟁합니다. 그러나 그 투쟁이 결국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바꾸는 것입니다. -96쪽




외국에서는 단체행동권을 단체교섭권에 포함시켜 ‘노동2권’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교섭권과 행동권은 따로 구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101쪽




연가 투쟁은 전교조 교사들뿐 아니라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흔하게 실천해 온 방식입니다.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각종 휴가의 실시 시기를 일치시켜 회사의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차츰 집단 휴가내기 방식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하자 노동부, 검찰, 법원에서 불법 쟁의행위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쨌든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한 것은 사실이니 위법성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른 노동조합들의 연가 투쟁이 불법행위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투쟁이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전교조의 연가 투쟁은 과거의 예로 보아 수업 결손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과 수업시간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수업을 대체하고 연가 투쟁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학교 관리직에 있는 선생님들이 연가 투쟁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수업을 다른 교사들이 대체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써 수업 결손을 유도한 예까지 있었습니다. 전교조 교사들의 연가 투쟁이 실제적으로 수업 결손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그 연가 투쟁을 불법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사라지는 셈입니다.

이쯤에서 전교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 없이 학습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며, 총체적인 관점에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서 당장 며칠의 수업을 이어 가는 것은 진정한 학습권이 아닙니다 -105쪽




삼성전자의 경우 임원과 직원간 연봉 격차는 100배가 넘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보통 인간보다 100배 더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일까요? 대기업 노동자들이 잔업철야 휴일특근으로 1년 동안 뼈빠지게 일하면서 5천만 원을 받는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100배가 넘는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이사들의 임금에 대한 자신의 생각부터 정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연 누구의 고임금을 지적해야 할까요? -142쪽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인간적으로 따뜻한 말 한 마디 붙이기 싫어서 바쁘게 일하고 쌀쌀맞은 게 아니거든요. 노동자들 인격 탓이 아니거든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사업을 다른 자본주의 사기업에서와 같이 노동을 최대한으로 시키면서 최소 인원으로 최고의 수입을 창출하려는 대한민국의 병원 구조가 잘못돼 있기 때문인 거지요. -165쪽




신입사원 초임 연봉이 3,40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신입사원들의 표정은 자신만만한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마 자가용 정도는 취업하자마자 바로 할부로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만 부지런히 돈을 모으면 남들보다 일찍 아파트 한 칸 장만할 수 있겠지요. 그 다음부터는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넓히면서, 자가용도 점점 큰 차로 바꾸면서, 냉장고도 문이 서너 짝 정도는 달린 것으로 들여 놓고 살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만일 그 직장인들이 인생의 가치를 그런 것에만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돈을 버는 사람보다 결코 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외에 다른 일에도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며 살고자 한다면,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211쪽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정규수업시간에서부터 노사관계를 가르친다. 교과서에서는 노사관계에 대하여 “가족관계를 제외하고 인간이 자기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관계”이며 “민주주의와 공동결정”의 장이라고 정의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생활 그 다음이 직장생활이다. 실제로 가정보다도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장차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는 학교의 정규 수업 과정에서부터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비중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독일 중등학교 사회과목의 한 교과서에서는 모두 340쪽의 분량 중 93쪽을 노동교육에 할애하고 있다. 청소년 실업에 관한 내용만 29쪽이나 되는 교과서도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생한 사실들”을 토론 주제로 다룬다. 독일 금속 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임금협약, 금융 노조와 사용자단체가 체결한 기본 협약과 함께 노동조합이 발표한 성명서, 노동문제에 대한 신문기사 등이 교과서에 수록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학년에서부터 ‘모의 노사교섭’이 일상화된 특별활동으로 자리 잡혀 있어, 기업 경영에 관한 각종 자료들이 주어지면 학생들은 스스로 경영자 대표를 뽑고 노동조합 대표를 뽑아 임금협상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 보기도 한다. 적정한 임금인상률에 대한 고민과 그 단체협약이 노동자의 삶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판단을 초등학교 때부터 경험하는 것이다. 한 사회과목 교과서에서는 모의 노사교섭을 모두 6회에 걸쳐 진행하도록 편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마찬가지다. 궁금한 분들은 한국노동교육원이 발행한 400쪽이 넘는 보고서 “선진 5개국 학교노동교육실태”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217쪽




주5일제 근무제 실시와 관련하여 “기존의 임금 수준이 저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한 것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규정은 글자 그대로 “일은 적게 하되, 돈은 그대로 받는다”는 뜻인데, 이것을 ‘도둑놈 심보’라고 볼 것만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는 사람들이 조금씩 더 적게 일하면서 조금씩 더 잘 사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260쪽




인간 이하의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싶어하는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회사를 중국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국민들을 위협합니다. 이런 회사는 빨리 망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만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기업들은 빨리 도산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이롭습니다. 그래야 다른 건전한 기업들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합니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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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자살해 버린 좀머씨, 그러나 좀머씨는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잔소리하는 엄마, 심부름 시키는 형이 싫어서 나무에 올라가 시간 때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가 주인공이다. '나'는 늙고 코밑에 솜털이 나 있고 젖가슴도 없는 피아노 선생님은 싫어하고, 목덜미와 귓볼 밑에 솜털이 있는 여학생은 좋아한다.

유년기에 있을 법한 이러저런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별 재미나 감흥은 없다. 쥐스킨트의 전작 '향수'에 비해 그냥 '식수'같다. 그러나 하나 남는 것이 있다면, '나'가 경험했던 유년기는 독일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무성한 숲길을 자전거로 통학하지도 않고, "텔레비젼은 집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습성을 망쳐 놓고, 눈을 나쁘게 만들기도 하고, 가족 생활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을 전반적으로 멍청이로 만들기 때문"에 텔레비젼을 집에 들여 놓지 않는 아버지도 드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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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교 -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 우리교육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위기의 학교 (school report)

영국의 교육은 왜 실패했는가

닉 데이비스 지음, 이병곤 옮김

우리교육

(발췌)










<문제점 (영국)>




케니스 베이커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1988년 교육 개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겨날 무렵, 그는 공교육에 시장 요소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지역 교육청은 각 학교에 학생을 배정하는 권한을 잃은 반면, 학부모들은 스스로 학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각 학교는 아이들에게 전국학력평가시험을 치르게 했고, 시험 결과에 따른 학교 순위를 공개하여,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많은 학생을 끌어들인 학교는 보상으로 추가 예산을 받았다. (58~59쪽)




단위 학교 책임 경영제는 수천 명의 교사들이 단위 학교의 경영자와 개별적으로 문제(임금이나 노동 조건 협약 등)을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교원노조를 분열시키고 단체 협상의 기회를 박탈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교육청이 교육 재정에서 손을 떼게 하여, 학교 현장에 대해 갖고 있던 강력한 권한과 기능을 제거하는 방편으로 삼기도 했다. “나는 이 제도를 입안했고, 결국 교원노조와 지역 교육청의 권한을 축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증오하지요. 하하.” 베이커 장관은 안경 너머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지만 단위 학교 책임 경영 제도로 교육의 질이 향상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77쪽)




베이커 장관은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도입으로 학교가 양극화되고 결국 종합중등학교 체제가 효과적으로 무너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을까? “오, 그래요. 그런 의도가 있었죠. 변화를 이끌어 내려면 어딘가 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하거든요.” ··· 정치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간단했다. 선택은 자유를 의미하고, 자유란 좋은 것이니까. 그러니까 베이커 장관의 의도는 훨씬 큰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전면 허용해서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교들이 말 그대로 문닫기를 바랐습니다.” ··· 먼저 그는 공식적으로 교육 상품권 제도 voucher system를 도입하여 종합중등학교 체제를 뿌리부터 뒤흔들고자 했다. 이 제도는 정부에서 받은 ‘교육 상품권’을 학부모가 선택한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이 제도로 인해 인기가 없는 학교는 교육 재정에 허덕이게 된다. (78~79쪽)




표준 교부금은 어느 지역이 더 빈곤한지에 따라 학교 건물 보수 예산을 지급하는 방식과는 달리, 공모한 사업에 입찰하는 방식에 따라 단순히 분배된다. 자유민주당 전 교육 담당 대변인인 돈 포스터는 교육부에서 나온 통계 자료를 검토한 끝에, 공모 사업에 입찰하여 선정된 지역과 빈곤 지역 사이에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공모 사업 입찰에는 부유한 지역이 선정되는 경향이 많았다. 부유한 지역에 있는 지방 정부는 공모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5쪽)




초창기 귀족형 사립학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이 학교들을 ‘공립public' 학교라고 불러 온 것이다. 예를 들어 1442년 이튼 칼리지를 설립한 당시 헨리 6세는 다음과 같이 명했다. “1년 수입이 5마르크 이상인 사람은 이 학교에 입학할 자격이 없노라” ··· 럭비, 하로우, 웨스트민스터 학교도 역시 빈곤층 자녀들을 위해 설립한 무상학교였다. 그러나 결국 이 학교들은 모두 수업료를 지불하는 부유층에게 넘어갔다. 돈을 벌 수 있게 된 교장들은 신바람이 나서 이 같은 탈취를 돕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 (159~160쪽)




1970년대 말까지 히스, 월슨, 그리고 칼라한 행정부까지 모두 합심하여 10만 명의 교사를 충원하였다. 이렇게 해서 공립학교는 사립학교와의 격차를 줄여 나간 것이다. 그 결과 1970년대 초반 26명에 이르렀던 공립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1979년 19명으로 줄어들었다. ··· 바로 그 시점인 1779년 5월, 대처 총리가 집권을 하게 되었다. ··· 신보수당the new conservative 행정부는 이때를 공립학교 교사들을 해고하는 절호의 기호로 삼았다. 1970년대에 신규 충원된 교사들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절반에 이르는 5만 명이 해고되었다. ··· “1991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들은 교사 1인당 학생 수를 10~12명 수준으로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영국 공립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여전히 19명에 머물러 있었다. 1990년대 초반, 25개 선진국 가운데 네 곳만이 영국보다 높은 학급당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었다(아일랜드, 홍콩, 싱가포르, 대한민국) (163~164쪽)




교육 예산을 삭감해야 했다. 이 액수는 대부분 학교 예산에서 직접 줄인 것으로, 이로 인해 교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학교 건물 유지 보수비는 감축되었다. ··· 반면 사립학교들은 번창해 갔다. 일단 19세기와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충분한 특별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사립학교 발전의 부분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노동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당 정부는 수많은 사립학교들이 ‘자선 단체’라는 법적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이는 사립학교가 주식, 증권, 신탁, 부동산에 부과되는 모든 소득세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부가가치세, 학교 운영 수익금에 대한 법인세, 금융 소득세, 부동산 매입이나 양도에 따른 인지세, 기부금에 대한 상속세 등도 모두 면제되었고, 영업세까지 100퍼센트 면제 받았다. ··· 사립학교협의회 소속 학교들이 등록금의 30퍼센트에 이르는 돈을 면제받고 있다는 것은, 학생 1인당 362만 원 가까이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가장 부유한 학생들에게 공적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167쪽)




빈곤층을 위한 무상교육을 강탈하면서 만들어진 전통적인 귀족형 사립학교의 탄생에서,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공립보다는 사립학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최근까지, 영국 교육의 역사는 부유층 자녀들에게는 안락한 안식처를 제공해 준 반면, 공립학교에는 최소한의 정치적 보호만 받도록 내버려 두면서, 엄밀히 말해 사립학교가 적극적으로 공립학교 영역을 침범하도록 방치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의미에서, 두 학교 체제의 공존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었다. 더욱이 그 너머에서는 학교라는 하나의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지면서, 일찍이 공립학교가 겪어 보지 못한 두 번째 심각한 피해를 가져왔다. 공립학교의 우수한 아이들을 사립학교에서 데려간 것이다. (170~171쪽)







1999년 여름, 금융·증권의 중심인 시티의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는 다가오는 10년 사이, 많은 사립학교들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내다보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사립학교의 13퍼센트가 적자 상태이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립학교 대상 공적 자금 지원 정책’이 폐지되면서 재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특히 소규모 사립 여학교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174쪽)




기업들이 교육 예산이 부족한 틈을 타서 교육 현장으로 파고들었다. 3년 전 전국소비자협의회는 기업들이 학교를 대상으로 연간 5,500억 원을 후원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많은 후원 기업들이 자사 상품을 광고 (180쪽)




소외층 학생들은 시험 성적이 나빴고,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학교 성적 순위표에서 곤두박질쳤다. 반면, 중산층 학부모들은 부동산 시장에서의 전문 기술과 강점을 이용해 교육 환경이 좋은 학군으로 학습 동기화가 잘된 자녀들을 데리고 갔다. 물론 이들이 전학을 갈 때 정부의 지원금도 함께 따라갔다. 교육 환경이 어려운 학교는 학습 동기화가 낮은 아이들과 부족한 학교 운영비로 인해 더욱 곤란을 겪으며 결국 몰락해 갔다. ··· 이 학교들은 학교 성적 순위표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다루기 힘든 학생들을 퇴학시키는 직접적인 재정 유인책을 써 왔다. (205쪽)




교사 성과급 제도는 경험 많은 교사들에게 연간 372만원을 더 지원하는 정책으로, 학업 성취도가 향상되었을 경우에 한해 지급된다. 이 새로운 유인책은 나쁜 성적을 내거나 수업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216쪽)




학교 간 성적 순위표나 교사 성과급 제도같이 이 목표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인해 그나마 흔들리던 출렁다리가 완전히 무너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무단결석하던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쫓겨 나왔을 때 여전보다 더 열악한 사회 안전망밖에 없다면, 더욱 많은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218쪽)




학교에서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엄격한 교문 지도 정책을 펼 것이다. 부적응한 학생들만이 대부분 교문 지도에 걸려들 것이며, 이로 인해 교직원과 부적응 학생들이 신뢰감을 회복하여 학교생활을 잘해 나가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219쪽)




여러분은 하나의 잘못된 통계가 교사 경력을 쌓아 가는 사람들의 앞날과 학교의 미래를 파멸로 이끄는, 시험과 목표 달성의 세계, 교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편법을 택해야 하는 긴장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배우는 세계에 입장했다. ··· 우리는 지금까지 취재를 위해 교사, 교장, 지역 교육청 고문, 교육기준청 장관, 교육 공무원들과 교원노조 지도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웠다. 이 가운데 교육부 장관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종의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육 관계자들이 보고하는 속임수는 중등학교 졸업자격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일이 아니다. 표준 성취도 검사를 비롯하여 전반적인 무단결석과 출석률의 조작, 퇴학생 수에 대한 거짓 기록에 이르기까지 속임수는 여러 분야에 걸쳐 만연되었다. (223쪽)




장학감사 동안 학교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정보통신 관련 장비를 대여하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부적응 학생들을 숨기기도 하고 학급 기록을 조작 (228쪽)




교육부는 ··· ‘시험을 위해 억지로 지식을 채워 넣거나 가르치는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모든 초점이 표준 성취도 검사에 맞춰져 있는 이러한 현상이 교육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229~230쪽)




실제로 출제되는 시험 문제의 정답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학교들이 있으며, 어떤 학교에서는 정답을 마치 학습 자료처럼 위장하여 교실 게시판에 붙여 놓은 경우도 있고, 학생들이 답안을 작성할 때 교사들이 일일이 정답을 점검하여 답안지가 제출되기 전에 올바르게 답을 썼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 만약 우리가 시험지를 미리 뜯어보고 내용을 열람했다 해도 겉봉을 밀폐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학교에 흔히 있는 전열 봉합기를 사용해서 다시 밀봉을 하면 그만이니까요 ··· 교장과 교사들은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키라는 압력 속에서 불가피하게 규칙을 어기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는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 만큼 엄격하지 않아요. 시험 문제가 유출되었는지, 아니면 공정하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강력한 장치가 없거든요 (233~234쪽)




마치 육상 선수들 사이에 존재하는 스테로이드처럼, 이 같은 부정행위는 학교 현장에 만연되어 있다. 만약 어떤 교사가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을 높였다면, 정직한 다른 교사는 더없이 무능해 보일 것이고, 교육부의 새로운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압력을 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 (235쪽)




교사 성과급 제도나 학교 간 성적 순위표 공개 같은 정책을 폐지하지 않는 한 ···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 사이의 교육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281쪽)







<해결책 (네덜란드)>




왜 우리(영국)는 그토록 오랫동안 교육을 학문(즉, 인문계 교육) 중심으로만 생각해 왔을까? (253쪽)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기에 진급을 하고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이와는 달리 영국에서 유급은 아주 특별한 예외에 한한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음 학년으로 밀려 올려가고, 여지없이 각 단계마다 실패의 덫에 빠지게 된다. ··· 우리(영국) 교육체제에서 유급제도의 부재와 상대평가의 결합은, 단순히 학업 실패를 방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학업 실패를 조장하는 역할을 해 왔다.  (263~264쪽)




네덜란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 단위의 교육 예산을 지급하지만,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기본 단위의 1.25배를 지급한다. 또 선원의 자녀는 1.4배, 이민자나 부랑자의 자녀들은 1.7배, 교육을 받지 못한 소수 인종의 자녀들은 기본 단위의 1.9배를 받는다. ···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보다 직업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원한다 (265쪽)




네덜란드에는 숨은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268쪽)




우리(네덜란드) 일생에서 변호사가 필요한 경우는 한두 번뿐입니다. 하지만 빵 만드는 기술자는 날마다 필요하죠 (269쪽)







<옮긴이 주>




영국 공립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school governing board가 예산권과 인사권을 직접 행사한다. 일종의 작은 공기업 형태, 또는 공적인 법인체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운영위원회의 결정 없이는 교직원의 임면을 교장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297쪽)




영국에서는 학생 1인당 국가가 지원하는 교육비가 평균 370만원에 이른다. 이 지원금은 재학생 수에 따라 단위 학교로 지급되기 때문에, 전입, 전학, 자퇴 등으로 학생 수에 변동이 생기면 학교 예산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재정이 열악한 학교일수록 학생 수 변화에 민감하다. (297쪽)




교회가 설립한 사립공영학교voluntary-aided church schools는 가톨릭 교단이나 영국 국교회와 같은 종교 단체에서 만든 학교를 말한다. 이들 학교는 원래 자발적으로 설립된 사립학교였으나 1870년에 시행된 교육법의 적용을 받아 공공 재원을 지원받게 되면서 ‘공영’학교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학교 운영은 교회가 하지만 교육비는 정부 보조를 받는다. 교직원의 고용 주체는 학교 운영위원회이며, 100년 이상 오래된 학교들이 많다. 중앙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학교grant-maintained schools는 1988년 교육법에 따라 설립되었다. 그 전에 영국의 공립학교는 모두 144개의 지역 교육청 관할 아래 있었으나 중앙 정부가 직접 교육 재정을 지원하여 유지되고 있었다. 중앙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학교는 특히 학교 운영위원회의 권한이 커서 위원회가 학교의 부동산을 소유하며, 입학 정책도 자유롭게 결정하고, 교직원의 임면 권한도 가지는 등 마치 독립된 법인체처럼 운영되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에는 정책 변화로 인해 ‘foundation school'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뒤, 지역 교육청 관할로 다시 편입되었다. (300쪽)




영국에서는 지난 1999년까지 모든 대학의 등록금이 무료였다. 아직도 중등학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35퍼센트에 머무는 영국의 대학에서는, 강의와는 별도로 교수와 학생 사이의 1:1 지도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막대한 교육비가 소요된다. 대학생 1인당 교육비는 평균 1,300만원으로, 그 동안 이 비용은 모두 국가에서 부담해 왔다. 뿐만 아니라 기숙사 비용을 지원하고 약간의 용돈까지 지급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모두 폐지되었고, 그 대신 학자금 융자 제도로 개편되었다. 게다가 고등교육에 대한 재정 압박이 심해지자 2000~2001학년도부터는 학생 1인당 연간 180여만원의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이 액수는 해마다 인상을 거듭하여 2006~2007학년도에는 540만 원으로 올랐다. 물론 부모의 재산세 납부 정도에 따라 빈곤 가정의 학생들은 이러한 등록금을 면제 받을 수 있다. 영국에서 대학생이 되면 국가에서 등록금의 일부를 자동으로 지원받는 셈이다. 그런데 부유층 출신 학생들이 더 많이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그만큼 국가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고등교육의 혜택을 부유층 학부모들이 더 많이 받게 되는 셈이다. (303쪽)




영국의 교육행정은 일반 행정과 분리되어 있지 않기 않기에 우리나라의 교육청처럼 별도의 교육 행정 조직이 없다. 지방 정부의 교육 관련 담당 부서가 우리나라의 교육청에서 담당하는 일을 맡아서 처리하고 있다. 이 번역서에서 사용한 ‘지역 교육청’은 우리나라(한국)의 매락을 고려하여 사용한 용어로, 사실 본문에 표기된 ‘local education authority’는 지방정부 산하에 있는 ‘교육국’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다. (3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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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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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라길래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사실 별 재미도 감흥도 없었고,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생각의 전환점도 얻지 못했다. 다만 왜 스테디셀러인가의 답은 알 수 있었다.


이야기도 대화도 모두 알듯말듯한 비유로 표현되기 때문에 정확한 감을 잡을 수는 없지만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라는 구절을 통해 볼 때, 이 책의 주제는 아마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정도가 아닐까?


인생의 목표, 자신의 꿈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하게나마 위로가 되어 줄 법한 내용이다. 그래서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았을까?


한나절을 투자해 읽었던 책 속에서 그래도 건질만한 구절을 뽑아보자면,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212쪽)”

“우리 인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목숨이나 농사일처럼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들을 잃는 일이오. 하지만 이러한 두려움은, 우리의 삶과 세상의 역사가 다같이 신의 커다란 손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단숨에 사라지는 거라오(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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