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람주의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5
설재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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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방에 사는 사람을 직접적인 소재로 한 영화가 기생충이라면 창작의 동기가 된 소설이 바로 범람주의보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 네팔의 홍수가 가장 끔찍한 참사였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벌어지는 자연재해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 체계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그런 재해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는 영화 돈룩업에서 상상된 것처럼 여차하면 지구를 버리고 안전한 행성으로 이주해 버릴 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소설 범람주의보는 개연성 있는 현실로 다가온다. 다만 청소년문학 답게(?) 작은 희망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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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수향 씨가 함께 일했던 회사는 도시의 지상과 지하와 여러 거대한 구조물을 설계하는 것에도 관여했다. 여기서 관여했다라는 말은,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수단을 써서 일의 방향을 자신들이 원하는 쪽으로 끌고 갔다는 뜻이다. 할아버지는 수향 씨보다 먼저 알아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 그 누구도 매끈한 도덕성이 보장된 매뉴얼을 따르며 일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 도시가 온통 그렇게 설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일의 가장 선두에 서서 땅을 파내는 일을 지휘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대로 두면 이 도시의 모든 오수가 한곳으로 냅다 흘러갈 거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가정을 꾸린 후였다. 가족 모두가 할아버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참았다. 엄마가 회상하는 서창식의 전성기였다. 엄마의 표현을 한 번 더 빌리자면, ‘단단히 고장 나기전 말이다.

할아버지와 수향 씨가 친해졌던 이유는 간단했다. 말이 통했다. 신문을 펼친 채 눈을 감고 검지를 허공에 돌리다 기사 하나를 쿡 찍어 보면, 그 기사에 대해서 할아버지와 수향 씨는 정말이지 쌍둥이처럼 똑 닮은 논평을 해 냈다.

할아버지는 신문에서 자주 보던 우두머리가 긴 팔을 뻗어 허수아비 사장을 세우곤 기업을 키워 내는 걸 지켜보았다. 그 기업만이 워터프루프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성공시킨 건 당연했다. 배리어를 맞고 튕겨나가는 빗물의 성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높으신 분들이 눈감아 준 유일한 기업이었기 때문이었다. 튕겨나간 빗방울 하나하나의 변화는 무시하고 지나갈 수준이니 무해하다고 기업은 광고했으나, 그 빗방울들이 모여 어딘가에 잔뜩 고인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러나 제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보통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 곳에 모아 둔다면 상관없었다.

통협동이 그곳이었다.

할아버지는 더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걸 폭로하고 싸우면 어떨지 물었던 날 처음으로, 서창식과 이수향은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고야 말았다.

나는 그곳 사람들이 걱정돼 미치겠어. 그곳에는 물고기 하나 없이 썩은 내 나는 늪이 생길 거고 사람 몸에 해로운 벌레만이 가득할 거야. 죽음의 마을이 될 거야. 우리는 지금 멀쩡한 마을을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만들고 있어. 사람이 통과해서는 안 되는 길들을 내고 있다고. 저승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야. 이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돼. 무고한 사람들이 파멸할 걸 알면서 겨우 월급이나 받자고 이럴 수는 없다고.

목에 핏대를 올리던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수향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당신에겐 겨우 월급이구나. 미안한데 창식 씨, 나는 싸울 수 없어. 싸움도 배가 든든해야 할 수 있거든, 근데 나는 아니야. 그리고 창식 씨, 창식 씨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동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처지야. 창식 씨가 생각도 교양도 없다고 싫어하는 지혁 씨나 이문 씨, 정오 씨 다 나랑 똑같은 사람들이야. 한 달만 월급을 받지 못해도 집에서 쫓겨날 사람들이라고. 부모님이 신혼집을 사 준 창식 씨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월급의 대부분을 한 달 방세로 내고 있어. 그 싸움을 위해서 밖으로 나앉는다면 누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줄 것 같아? 창식 씨가? 부모님의 돈으로?

아버지는 싸우지 않았다. 대신 어느 특정 집단의 미래를 갈기갈기 찢으며 그것이 발전이라 말하는 장면들을 견디지 못하고 천천히 말라가다가 조용히 회사를 나왔다. 함께 싸울 사람은커녕 할아버지의 생각이 옳다고 고개를 끄덕여 줄 이조차 없었다.

그리고 수향 씨는 그런 할아버지를 모르는 척했다.

같이 말을 섞으면 내 미래를 망쳐 버릴 것 같았어. 서창식이란 사람은 부모가 돈이 많아서 저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고 생각했어. 나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결국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었어. 작은 동의 표시라도 하면 바로 나를 진창으로 끌어들일 것 같아서. 그때는 내가…….”

수향 씨는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그때는 내가, 이 도시와 이 나라가 진짜로 진창, 끝없는 펄밭이 될 거라는 걸 몰랐지.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어.”

 

 

작가의 말

서울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던 시민들이 여럿 사망했던 날, 방의 불을 모두 끈 채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솔직히 말하자면 기후 위기라는 네 글자 말에 크게 걱정하는 타입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지금 사람들의 코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문제에 비해 약간은 먼 시기의 이야기라고 착각했거든요. 그런데 그날 하수구가 범람하고 사람들이 죽는 걸 보며 제가 너무 안이했다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후 위기라는 문제가 벌써 내 근처 누군가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조금 뒤늦게 알게 된 것이죠.

물론 인류는 참 끈질기고 성실해서, 아마 쉽게 멸종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기후 위기가 찾아와도 명맥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아요. 마치 소설 속에서 누비스를 개발한 것처럼요. 하지만 그런 성공 사례가 역사에 기록되기 이전에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수많은 목숨, 혹은 지독히 괴로워야 했던 개개인의 나날은 슬프게도 기억되거나 호명되는 일이 드뭅니다.

폭우가 내리던 시기, 저는 몇 달 후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사정이 썩 좋지 않고 서울의 집값은 너무 비싸서 반지하 주택을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저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자각과 함께, 기후 위기를 늦추려는 모든 시도의 효과가 빠른 시일 내에 가시화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 저를 더욱 슬프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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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램의 희망 -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강인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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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학석사, MIT 박사, 그리고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학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자동차 전복사고로 목 이하를 움직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다. 어쩔 것인가?

식물인간이 아닌 것만으로도 희망은 남아 있었다.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스스로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에겐 다시 웃을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심지어 자신만을 위했던 그간의 삶을 반성하고, 남을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 앞에선 절망은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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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설 수 있겠습니까? 손을 쓸 수는 있을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완전한 절망은 아닙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C4가 완전히 손상됐나요?”

그렇습니다

간결한 대답이었다.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런, 괜히 큰돈 쓰면서 비싼 병원에 왔잖아

USC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사용료는 하루에 2천만원이 넘었다.

 

MIT에는 유명한 통계가 있다. 교수의 이혼율이 70%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는 솔로몬 교수의 말을 들으며 그 통계의 의미를 깨달았다. 늘 고민하지만 가정생활과 연구 과학자로서의 생활을 둘 다 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혼자서 하는 입시 형태의 공부에는 강할지 몰라도 연구에서 뒤처지는 것이 토의를 통해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MIT에서 가장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입시 식의 공부를 지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기초연구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결과까지 한꺼번에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연구결과를 왜곡하거나 과대포장하는 것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연구 결과가 과장되었을 때 이를 잡아내고 제재를 가할 제도나 윤리적인 기준도 거의 없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면 될까?”

제가 보기에 형은 다친 직후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신 것 같은데요?”

그 순간, 나는 맞아. 내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나만을 위한 삶에 대해 후회했었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정도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과학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다. 그런데 과학은 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과학은 불행히도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다. 과학은 절대적이나 모든 것에 답을 주지는 못한다. 한 예로서 과학은 왜 우리가 사는지, 선과 악은 왜 있는지, 죽음은 무엇인지 등등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학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을가 싶어서 성직자들에게 물어본다. 그들은 이 문제들에 대해 우리에게 그럴싸한 설명을 해 준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 설명들에 기대기는 어렵다. 언제나 의심과 회의가 싹튼다. 러셀은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놓인 그 넓은 회색지대가 철학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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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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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그럼 점성술사astrologer가 별을 보고, 천문학자astronomer는 점을 치나? 책을 끝까지 읽어도 대답을 직접적으로 들을 순 없었다. 다만, 날씨가 허락되는 날엔 누구든 별을 볼 수 있고, 별을 노래하는 건 가수의 몫이듯, 천문학자는 별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사람들인가 보다.

 

<밑줄>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그러니 연구실에 홀로 남아 연구에 집중하는 밤은 정말이지 근사하다. 누군가로부터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으며,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는 일을 잊어도 되는 밤. 한 시간이든 세 시간이든 한 가지 주제에 오롯이 집중해 화장실 가는 것도 잊는 그런 밤. 어떤 사람의 직업은 정해진 시간을 성실히 채우는 일이고, 또다른 사람의 직업은 어떤 분량을 정해진 만큼 혹은 그에 넘치게 해내는 것이라면, 나의 직업은 어떤 주제에 골몰하는 일이다. 하나를 들여다봐도 이건 왜 그런지, 저건 왜 그런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 하나씩 일일이 검색해보고, 찾아서 읽어본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료를 분석해보고, 그래프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본다. 그러다보니 한 단계 전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그 즐거운 지루함이 자연의 한 조각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면 금상첨화다.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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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 봐요 - 판사 김동현 에세이
김동현 지음 / 콘택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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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고, 카이스트, 연대 로스쿨로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의료사고로 한순간에 시력을 잃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지만 분노하고 좌절하고 말았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극복했다. 아니 극복이 아니라 적응했다. 아니 오히려 진화했다. 몸의 시력을 잃고 맘의 시력을 얻었다.

 

하늘이 저자에게 그런 고통을 주신 것은 어찌 보면 이런 진화를 원하셨던 것일까? 남의 도움 없이 혼자의 능력으로 충분했던 그에게, 남의 도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실수로 다른 사람에게 월세를 송금하여 세 달 분의 월세를 밀린 세입자를 집주인이 법대로 내쫓았다. 저자는 이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세입자의 편을 들어주는 판결을 한다.

 

신은 저자 개인에겐 원치 않은 장애를 주었으니 너무나 불공평하다, 하지만 저자는 장애를 계기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눈을 떴고 그 결과 소외된 이들을 배려하는 판결을 하게 되었으니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는 오히려 공평하다.

 

성경에서 선한 욥이 고통을 받고, 심지어 신의 아들이 예수가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다. 신은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남부끄럽게 살지 않도록 고난을 주신다. 신의 아들조차도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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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이든 후회가 남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고, 길을 잘못 들었으면 돌아가면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성이다. 조금 방황하고 돌아가더라도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장애를 극복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장애라는 건 그냥 불편한 상태에 적응하고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것이지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마지막 3천 배를 마쳤다. 눈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실망스럽지 않았다. 편안하고 담담했다. 스님께서는 기도를 마친 내게 말씀하셨다.

육신의 눈을 뜨지 못했지만 이제 마음의 눈을 뜬 거야.”

스님 말씀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내가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기에게 큰 피해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나라고 다를 바 없었다. 사고 직후,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를 낼 기운마저 없었다.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알았다. 사고가 난 그날 밤 나는 절망과 분노와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문득 병실 구석에 웅크린 채 잠든 의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저 의사도 자기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 텐데 새벽까지 혼자 동분서주하며 사고를 수습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생각나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밉고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도리는 하는 사람이다 싶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렇다고 나를 착해빠진 순둥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대방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내 기준에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그쪽이 상당한 힘의 우위를 쥔 상태라면. 나는 시킨다고 무조건 하는 스타일이 못 된다. 일일이 돌볼 여유가 없어 그냥 넘어가는 일도 많지만 중요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군대에 있을 때도 부당한 지시에는 들이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 직장에서는 할 말 하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위원장까지 했다.

 

현대와 같은 위험 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사고 또는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노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능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이 본인이 될 수도, 가족, 친구, 이웃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가서 불편한 것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복이 사람 복이라는데 정말 과분한 복을 받았다. 내 존재도 그들에게 복이었으면 한다. 민폐 끼치기를 세상 무엇보다 싫어하던 나였지만 이 시간을 통해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금씩 기대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 이다.

 

한번은 고민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어느 가게가 코로나19로 영업을 못 하게 되면서 월세가 밀렸다. 나중에 두 달 분 월세를 송금했는데 착오로 다른 사람에게 보냈다. 이걸 알아차린 것은 세 달 분의 월세가 밀린 뒤였다. 부랴부랴 월세를 다시 보냈다. 명백한 과실이긴 하지만 후폭풍은 컸다. 임대인은 계약갱신을 거절하고 가게를 비워 달라고 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3기분의 차임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를 때까지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으면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법적으로 임대인이 인도와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다. 영업도 제대로 못 해 보고 권리금까지 모두 날릴 판이었다.

임대인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았다. 월세가 또 밀릴지 모르니 임차인을 내보내고 새로 들이고 싶을 것이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직접 영업을 해도 괜찮다. 법적 요건은 다 갖추었으니 나라도 그럴 것 같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 보았다. 월세가 밀린 건 잘못이 맞지만 송금 한 번 잘못했다고 억대의 돈을 투자한 가게를 내놓아야 하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법이 너무한다. 법은 왜 이러하며 판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냐, 하는 생각이 절로 들지 모른다.

우리 민법은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 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조항으로 판단하는 사건은 극히 예외적이다. 구체적인 개별 조항이 있음에도 이런 추상적인 일반 조항으로 도피해서는 안 된다고 배워 왔지만, 임대인 손을 들어 주자니 임대인의 이익에 비해 임차인의 손해가 너무 컸다. 고민 끝에 상급심에서 파기될 각오를 하고 권리남용이라며 임차인 손을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임대인이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되었다.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선거로 선출하는데 판사를 왜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 않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선거는 다수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대표로 선출하는 절차다. 그렇게 뽑힌 사람들이 또다시 다수결로 법을 만든다. 애초에 다수의 논리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같이 승자독식의 선거 구조에서는 그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힘 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의견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찍어 누른다. 수십 년째 통과되지 않는 수많은 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다 누가 죽기라도 하면 여론에 밀려 겨우 통과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부도 다를 바가 없다. 대통령제에서 지지율이라는 것은 정책을 추진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기득권에 눌려 물러서는 일이 수없이 생긴다. 다수를 위해서라면 소수를 희생시키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게 다수결의 최대 부작용이고, 선출된 권력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법관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지 않는 것은 거기에서 소외된 사람의 인권을 법관이 챙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독립성을 보장하고 탄핵 절차에 의해서만 신분을 박탈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도 그러라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고 사회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는 없다. 공익은 파편화된 사익이다. 판사로서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홀히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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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안준철 / 현대문화센터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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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김창기 작사 작곡 김광석 노래 그날들의 가사이다. 이 가사의 원조는 안준철 시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 나는 이미 그윽해진다이다.

 

거창 고등학교에 다녀온 뒤 나는 교사가 되겠다는 신념을 끝내 버리지 못하여 당시 식솔을 거느린 생활인으로서의 위기감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사범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리고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첫 교단을 밟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신내림을 거부할 수 없어 끝내 무당이 되는 것처럼 안준철 선생님은 그렇게 운명처럼 교사가 되었다.

 

그리곤 담임반 학생들의 생일에 시를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제자의 영전에 바치는 시까지. “계집 아이처럼 / 희고 고왔던 / 네 얼굴보다도 // 으깨진 뼛가루가 / 더 곱고 희더라 // 주검조차 눈부신 / 열아홉살 // 그 젊은 나이로 / 너는 정녕 / 먼 길을 떠난 것이냐 (‘하얀 주검)”

 

나는 고등학교 교사이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넘어선 시기와 질투의 시간, 즉 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쉬거나 공부를 할 수 있는 방학이 아니다. 백여명 학생들의 생기부에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500자씩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악용해서 미사여구가 범벅된 거짓말을 입력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잤다. 떠들었다. 딴 공부했다라고 적어줄 수도 없어 괴로운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안준철 선생님의 이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였다. 안선생님이 교단에 오른 것은 1980년대 말이다. 그때엔 지금처럼 거짓말 생기부를 강제로 입력해야 했던 시기가 아니다. 다만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제자에게 생일시를 써주는 일을 묵묵히 하셨다. , 나도 세특이 아니라 편지를 쓰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안준철 선생님과는 구면이다. 20년전 처음 만났을 때 퇴임을 10년 앞둔 노교사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 대한 사랑은 초임교사 못지 않은 낭만선생님이셨다(실제 별명도 낭만샘). 어느새 지금의 나도 퇴임을 10년도 채 남지 않은 늙은 교사가 되었다. 게다가 방학 내내 세특 작문하는 것에 진이 다 빠져버린.

 

그런데 운명처럼 이 시집을 만나게 되었고 이젠 세특을 편지처럼 써보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안준철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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