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산문집 (천줄읽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박지원 지음, 박수밀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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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 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어 죽이겠소.”

 

어릴 때 천자문을 공부하면서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을 아무 생각 없이 암송했다. 그런데 이 어린 아이는 아마도 낮 하늘은 검지 않고 푸르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밤 하늘은 검으니 그 아이의 생각이 틀렸다고 여기지 않고 오히려 창의적이라고 평가해 주는 연암의 태도를 눈여겨 보게 된다.

 

자다 깨면 책을 보고, 책을 보다가 또 잤다. 깨워 줄 사람이 없어 혹은 하루 종일 푹 자기도 했다. 때로는 혹 글을 써서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그만 서양 거문고를 새로 배워, 피곤해지면 두어 가락 타기도 했다. 혹은 친구가 술을 보내 주면 문득 기뻐하며 술을 들이켰다. 취하고 나면 스스로를 찬미했다.”

 

휴일에만 가능한 삶인데, 평일에도 이럴 수 있으면 건물주 백수냐 가능할까? 하지만 연암은 그리 넉넉한 삶이 아니었다. 자발적인 가난을 이렇게 즐길 수 있으려면 자본주의의 때를 얼마나 벗겨내야 가능할까?

 

나의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나?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형님을 바라봤지.

이제 형님 보고프면 어디에서 볼까나

두건 쓰고 도포 입고서 냇물 비친 나를 보리.”

 

연암은 죽은 친구, 누나, 형을 위한 조문을 썼다. 하지만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썼다. 그만큼 진실함이 묻어 나오는 글들이다. 특히 고인이 된 형을 위해 쓴 시는 동시처럼 순수하다.

 

똥오줌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밭에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라기같이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덩어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 메고 말 꼬리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이렇게 모은 똥을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혹은 네모반듯하게 쌓거나 혹은 여덟모로 혹은 여섯모로 혹은 누각 모양으로 쌓아 올린다. 똥거름을 쌓아 올린 맵시를 보아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에 버젓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기와 조각과 조약돌, 똥거름이야말로 진정 장관이다. 왜 하필 성곽과 연못, 궁실과 누각, 점포와 사찰, 목축과 광막한 벌판, 나무숲의 기묘하고 환상적인 풍광만을 장관이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장관론-일신수필-열하일기)”

저 엄행수는 똥을 지고 거름을 메어 먹고사니, 지극히 더럽다고 할 수 있으나 그 밥벌이하는 것을 보면 지극히 향기롭단다. 그의 처신은 더럽기 짝이 없지만 그 의로움을 지킴은 지극히 고상하단다. 그의 뜻을 미루어 보자면 비록 엄청난 녹봉도 그를 움직이지 못할 것임을 알 수 있지. (예덕선생전)”

 

연암의 똥사랑(?)은 장관론과 예덕선생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청나라 여행 중에 넓은 들판, 높은 건축물 등을 장관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얘기할 때, 연암은 똥거름 쌓아 놓은 맵시를 장관이라고 얘기한다. 장작 쌓아 놓은 것을 보고 신랑감을 고른다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관점이 보인다. 예덕선생의 예덕(穢德)은 더러운 덕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반어적으로 쓰였다. 똥을 모아서 거름을 만드는 건 표면적으론 더러워 보이나 그 거름으로 인해 먹을 것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이면을 볼 땐 덕이 된다는 말이다.

 

의원 의()는 의심할 의(). 그 의심스런 바를 사람들에게 시험해 해마다 수만 명을 죽게 만든다. 무당 무()는 속일 무(). 귀신을 속이고 백성을 미혹케 해 해마다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다. 그래서 사람들의 분노가 뼛속으로 들어와 금비녀로 변했으니 독해서 먹을 수가 없다.

예전에 내 듣기로 선비 유()는 아첨할 유()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는 세상의 나쁜 이름을 모아 멋대로 내게 붙이더니 지금 다급해지자 눈앞에서 아첨을 하니, 누가 네 말을 믿겠느냐! (호질)”

 

연암은 아재개그의 달인이다. 의사는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이고, 무당은 제사장[]이 아니라 사기꾼[]이며, 선비는 학자[]가 아니라 아첨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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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4
예병일 지음 / 한국문학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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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를 읽고 생각해 볼 문제들

 

1. 질병 형태도 감염병 위주에서 만성병 위주로 변화했다. 감염병에는 특효약이 중요하지만, 만성병은 특효약보다 일상생활을 포함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현대의학에서 인문학이 요구되는 이유다. 인문학에서 출발한 의학이 과학과 사회학을 거쳐 인문학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2. 생명 연장

1997년 영국의 슬랙이 개구리 배아의 유전자를 조작해 원하는 부위의 발생을 막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머리 없는 올챙이를 만드는 데 성공. 1998년 미국의 화이트는 원숭이 2마리의 머리를 교환하여 몸에 붙이는 수술을 성공.

위의 두 연구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어떤 부자가 나이가 들어 운동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그는 머리 없는 청년 한 명을 만들어달라고 인간 복제 회사에 요청한다. 그리하여 태어난 머리 없는 인간에게 자신의 머리를 옮겨 붙이고 노화된 몸은 내버린다. 그러다 머리 부분이 노화되어 쓸 수 없게 되면 자기 뇌의 정보를 심은 인공머리를 사들여 젊음을 유지한다.

 

국민 평균보다 낮다, 재벌 총수 평균 수명은 몇세?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2/03/03/SFHKXXJB7ZH5ZBY5XSKATBNHZM/

 

아들 피 수혈, 혈장도 교환47세 억만장자의 회춘 실험

https://www.seoul.co.kr/news/international/2024/10/20/20241020500007

 

3. 정의

응급실에 두 명의 응급환자가 실려 왔다. 한 명은 살인범이고, 다른 한 명은 형사다. 형사가 살인범을 체포하려는 순간 살인범이 반항하는 바람에 싸움이 벌어져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응급실에 의사는 한 명밖에 없는데 두 환자 모두 중상을 입어서 먼저 치료하는 한 사람밖에 살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살려야 하는가?

 

4. 생명이란?

다음 중 각각 불법, 비도덕, 반생명인 경우는?

성폭행을 당하고 서너 달 흐른 뒤 임신한 것을 알게 되어 태아를 죽임.

산전 진단을 통해 다운증후군이 있음을 알게 되어 태아를 죽임.

임신중독증으로 태아에게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산모와 태아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태아를 죽임.

임신한 줄 모르고 술과 약을 먹어서 태아가 잘못될까봐 태아를 죽임

수정된, 착상된 배아를 죽임.

정자 또는 난자를 죽임 (자위행위, 몽정 등)

 

<참고>

현재 우리나라의 형법 269조와 270조에서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모자보건법 제14)

 

임신 후 24주 이내에 있는 자에 한하여

본인 또는 배우자가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근친상간 임신

산모의 건강을 심히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5. 치료 받을 권리

의식이 없는 환자를 앞에 두고 치료 중단을 요구한 가족의 선택은 윤리를 위반한 것인가?

가족들의 선택은 윤리를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유언을 남긴 적도 없고 대리인을 지정하지도 않았다면 2순위로 대리인 자격을 갖춘 가족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다.

 

2007년 당시 62세였던 환자는 수술을 받기 전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의식 상태가 되더라도 수혈을 원하지 않고, 피해가 발생해도 병원에 어떤 민형사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수술 중 발생한 출혈에 의해 사망하고 말았다.

1,2,3심 모두 의사를 무죄로 결론 내렸다.

본인의 의사가 확고하다면 의사가 진료를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결정인 것이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상태에서 엄청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부모는 미숙아에 다운 증후군을 가진 아들의 치료를 포기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는 자녀가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부모에게 있을까?

없다.

 

6. 치료받지 않을 권리

안락사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 ‘반자발적 안락사’,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다.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거나 선택할 능력이 없을 때 수행하는 안락사를 비자발적 안락사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가 심한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평생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이는 부모의 잘못일까?

유언을 남기기는 않았지만 평소 행적으로 보아 안락사를 원했을 만한 80대 치매 노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효자임이 분명한 아들이 더 이상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동정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안락사를 수행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안락사를 행하는 사람의 의사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할 수 있다. 적극적 안락사에는 치료 중단, 인공호흡기 제거, 약물 주사 등이 해당되며, 소극적 안락사에는 치료 거부, 연명치료 중지 등이 해당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세브란스 병원 김할머니 사건을 판결하면서 2009521일 대법원이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것이 최초로 존엄사를 인정한 판결이 되었다.

 

 

7. 건강수명

건강수명이란 일생 중 부상이나 질병 없이 사는 기간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건강수명은 남성이 68.8, 여성이 72.5세였다. 평균수명을 비교하면 남녀 모두 일생동안 10년 정도 각종 질병을 가진 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자가 8년 더 건강히 산다"'건강수명' 10년 전보다 격차 커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8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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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동녘문예 6
김산 지음, 조우화 옮김 / 동녘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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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큰 빚을 졌다. 박근혜가 담배값을 2배로 올린 해 담배를 끊었기 때문이다. 김문수에게도 빚을 졌다. 노동부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노안에 이어 노이(?)를 의심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다시 읽은 책이 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는 일제 강점기 당시 손기정의 국적이 뭐냐고 일본인에게 물었는데, 그 일본인은 손기정이 한국인인데 사실대로 얘기하면 한국인들이 건방지게 될까봐 조심스럽게 얘기를 한다.


올해 광복절은 79주년만에 두쪽이 나버렸다. 김산이 이런 상황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김산이 감옥에서 앞서 다녀간 사람들이 써 놓은 글귀들을 소개한 대목이 있다. 그 중의 한 문장이 아마도 김산의 마음을 대변하리라 본다. “나는 귀신이 되어 돌아와서 한국에 있는 왜놈이란 왜놈은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밑줄>

(님 웨일즈)는 주저하지 않고 한국인이 극동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단정하였다. 키가 크고 강인하고 힘이 세며 항상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뛰어난 운동선수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손기정이라는 한국 젊은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한국인들은 대단히 흥분하였으며, 그 뉴우스는 어느 곳에서나 화제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일본인들은 모든 신문사에 압력을 넣어서, 마침내 그 사람이 한국 이름을 가지기는 했지만 일본 사람이라고 하는 성명서를 내게 하였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승리라고 하여 그 공적이 크게 보도되었다.

도대체 그 사람이 한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하고 나는 호텔 서기에게 물어보았다.

아마도 한국인일 겁니다그 일본인 서기는 빙그레 웃으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하지만 그대로 발표한다면 한국놈들은 엄청나게 건방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사고가 일어나겠지요. 한국놈들이 바로 이 자리에서 축하행사를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스물 다섯 명이나 되는 혁명가의 자서전을 썼는데, 김산은 내가 만났던 그 혁명가들에게서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품성을 지니고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한국혁명운동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 사람

 

삼일운동 이전까지는 나(김산)도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녔다. 비록 기도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교회가 한국에서 가장 가장 훌륭한 기구라는 것은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파멸을 본 이후에는 내 믿음이 깨져버렸다...구라파 전쟁 때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서로 살상하였던 것이다.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싸워야 하는 것이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었을 때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모조리 미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들은 미국식 정치방법을 배웠다. 그런 후에 191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중산층 정치집단을 대변했다. 거의 모두가 교사, 학생, 언론인, 변호사, 의사였다.

 

일본, 독일, 소련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공산당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이런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신사이고 좋은 지위와 기독교적행동만을 원한다.

 

1923년의 사건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일본의 중요한 정치가는 이 배반적인 학살이 있은 후에 극동의 어느 민족도 일본적 우호의 진실한 내용에 대하여 속지 않게 된 것을 깨닫고 자기들이 한 짓거리에 놀래버렸다.

 

지금까지도 인간본성에 대한 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정한 선량함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면 이 목사님을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두 번 다시 이 안동희 목사나 그의 딸을 보지 못했다...안동희와 그의 부인과 딸은 두 아들이 산 채로 세동강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지켜보았다. 그런 후에 노목사는 억지로 맨손으로 자기 무덤을 파고 그 속에 누웠다. 그러자 왜놈 병사들이 산 채로 그를 매장하였다. 세 명의 죽음을 억지로 지켜본 후에 부인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학창시절의 첫사랑이었던 열네 살짜리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1919년부터 1924년까지 두 부류의 민족주의 그룹이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아메리카파 대 시베리아-만주.

아메리카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한국의 독립을 미국와 윌슨대통령이 도움에 의존하여 이루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 지도자인,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은 월슨대통령과 동기동창이었으며 윌슨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온 대부분의 한국인, 특히 기독교인들은 해외에서 돌아온 유학생, 일반지식인과 함께 아메리카파를 추종하였다. 그들은 모두가 신사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다. 그들은 실제로 설득력있는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 한국이 독립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왜놈들의 사기를 꺾으려는 테러리스트들의 계획에 원조마저도 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아메리카파는 백여명의 의원을 갖는 의정원 내에서는 다수파였다.

시베리아-만주파 의원은 겨우 팔십 명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일파는 초창기부터 민족운동의 지도자였으며 몇 년 동안이나 왜놈들과 싸웠던 이동휘 장군에 의해 영도되었다. 이 일파는 왜놈들과 정식으로 전쟁을 하기를 원했다...여기에 속한 사람들 대부분은 만주와 시베리아로 망명했던 사람들인데, 이곳에서 그들은 한국국경을 따라서 끊임없는 유격전을 수행해 왔던 것이다.

의정원이 자기의 제안을 부결시키자 장군은 의정원의 신사적인고지식함에 너무도 넌덜머리가 나서 총리직을 사퇴하였으며 다시는 임시정부와 협력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공산당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하였다...이동희 장군은 러시아의 선례에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된 최초의 한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한국은 소련과 아주 가까운 사이다. 10월 혁명 때, 수천면의 한국인이 싸웠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극동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18년에 장군은 이르쿠츠크 공산당이라는 최초의 한국인 공산당을 조직했으며, 그 일로 모스크바에 갔다...이동휘는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레닌은 오십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안평산이라는 한국인 변호사가 그 중 삼십만 달러를 소련에서 몽고로 가지고 갔는데, 도중에 비적에게 살해되었고 돈도 강탈당했다...김립이라는 한국인 공산당원이 나머지 이십만달러를 상해에 가지고 왔다...김립은 인력거를 타고 가다가 임시정부측 정적에게 뒤에서 저격을 당했다...그런 후 임시정부는 은행에서 이십만덜러를 꺼내서 사용해 버렸다.

 

의열단원은 마치 특별한 신도처럼 생활하였고, 수영, 테니스, 그 밖의 다른 운동을 함으로써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하였다...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므로 생명의 지속되는 한 마음껏 생활하였던 것이다.

 

우리 진영에는 의사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부상당한 테러리스트들에게 도움을 준다거나 그들의 입원을 보증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내가 부상자와 고통 가운데에서 살아 가리라는 것, 그리고 의학지식 때문에 혁명에 대한 나의 공헌이 높아지리라는 것을 예상하였다. 또한 나는 모든 종류의 과학을 좋아하였다. 더구나 의학은 과학 중에서도 가장 사회적인 과학이고 박애성에 있어서 최대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형과 약속을 하고 중국 굴지의 국립북경의과대학에 들어갔다.

 

나는 톨스토이의 금욕주의와 루소 사이의 어딘가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톨스토이는 처음에는 여자를 좋아하였지만, 창작을 하기 시작한 뒤에는 일체 여자와 관계를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첫 번째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내 갈 길을 가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동지들 사이에서는 그토록 친절하면서도 적에 대해서는 그토록 잔인하다는 것을 나는 생각하였다... 문제는 누가 죽느냐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지배계급은 학살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수세대에 걸쳐서 살육을 해왔던 것이다.

 

나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내 손이 추위로 얼어붙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젊고 행복했던 때 이제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았고, 이제 다른 별 위에서 새 생활이 시작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인류의 짐을 어깨에 지고 있지 않았던가?

 

나는 열한살 때부터 세계를 변혁시키려고 분망하게 뛰어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가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에는 민족주의자였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에는 이상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로,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확고한 발판을 찾아다녔다. 이 발판을 나는 1922년에서 1924년 사이에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는 가운데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공산당에 들어갔다.

 

1932년 초 나는 보정부에 있는 유명한 제2 사범학교의 학생단체로부터 그곳에 와서 강의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중국경찰이 학교를 둘러싸고 나를 체포하러온 일본 경찰 한놈을 데려왔다... 학생들이 달려나와서 내가 체포되지 않도록 교문을 걸어닫아 버렸다...내가 떠날 때 많은 학생들이 울었다.

 

전향을 거부하는 것은 관념적이고 어리석고 미치광이같은 짓이었을까? 대중 앞에서 전향을 하여 재차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 단 하나의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것은 간단한 일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확고히 결심을 하였다. 자기 자신도, 자기 당도, 또한 다른 어떤 사람도 절대로 배반하지 말자.

 

내가 결혼을 했으며 거의 집안일에 빠져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자 그는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처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더니 이윽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이 몇 해를 통털어서 자네와 짝이 될만한 아가씨를 꼭 한 사람 만났지. 지금 그녀는 이곳 상해에 있다네. 무엇 때문에 자네는 타협해버렸나? 이곳에서 세기의 대사랑을 맺어주었으면 했었다네

그녀를 만나고 싶지가 않아요. 내 조그많고 귀여운 마누라를 참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예전에 가졌던 그 모든 덜익은 환상은 모조리 잊어버렸어요. 충성과 관용과 선량함이라는 점에서 나는 도저히 그녀를 따라가지 못해요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어버렸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있다. 그들의 무덤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따위는 아무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전장에서, 사형장에서, 도시와 마을의 거리거리에서, 그네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한국, 만주, 시베리아, 일본 및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그들은 직접적인 것에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좋은 평가를 계속 유지한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가지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인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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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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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그의 저서 그리고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책, 연극, 드라마 등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눈에 가장 띄는 건 영화들이다. 다만 여기에 추가했으면 하는 목록은 빌리엘리엇, 마진콜, 빅쇼트, 카트, 빵과 장미, 다음 소희,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안해요 리키등이다. 음식재료와 경제를 연결한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처럼 영화와 경제를 연결한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해 본다. 덧: 그런데 장하준은 장준하, 정준하, 장범준이랑 무슨 관계?ㅋ

 

96쪽 브레스드 오프

97쪽 월스트리트

100쪽 트라비에게 갈채를(이건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영화지만 꼭 언급했으면 해서)

195쪽 마이 페어 레이디, 리타 길들이기, 마르셀의 여름

196쪽 트루먼쇼

227쪽 매트릭스

272쪽 메리 포핀스

324쪽 슬럼독 밀리어네어

351쪽 로저와 나

352쪽 풀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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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18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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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다, 벼르고 벼르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을 읽었다. 제목이 비슷하다고 하여 영화 트랜스포터나 트랜스포머의 단순 무식한 재미를 기대하면 안된다. 저자의 본문보단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발문, 옮긴이(홍기빈)의 해체가 기억에 남는 건 왜일까?.ㅠ 독자의 무식함 때문이겠지만 역시나 고전읽기는 늘 고전한다ㅋ 그래도 신자유주의자의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할 총알 하나를 더 구한 보람은 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니 나야말로 찐자유주의자. 그러고보니 요즘 뉴라이트(신우익)가 문제던데 찐우익은 어딜가고 짭우익만 판을 치나 뉴라이트가 아니라 노라이트, 또라이트구나.


<밑줄>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는 한마디로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아주 잠시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만의 하나 실현될 경우 사회를 이루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내용물은 아주 씨를 말려 버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 파괴당할 것이며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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