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공간 혁신 - 학교 공간 개선 솔루션
서예식 외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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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공간의 재구성을 교육청이나 교장 마음대로 하지 않고,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실제 사례가 포함된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그런 과정에서 안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듯하다. 예를 들어, 교문을 리모델링하면서 아치형으로 만들었는데 그럴 경우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그냥 보기에도 큰 바람에 쓰러질 것 같은 위태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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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학업 성취도와 건축 연령 및 건물 상태와의 관계를 연구한 자료를 보면, 건물이 최악의 상태인 학교와 가장 좋은 상태의 학교 학생 간의 학업 성적은 4~9% 차이가 나고, 가장 오래된 학교와 가장 최근에 지어진 학교 학생 간의 학업 성적은 5~9%의 차이가 난다.

(아마도 여기 자료? https://nap.nationalacademies.org/read/11574/chapter/8)

 

낡은 교문을 새롭게 시공할 때에는 소방법이 정하는 높이를 확보해야 한다. 어느 학교의 경우 교문 제작 당시 4.3m 높이의 구조물로 시공을 하였으나 소방 점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형 소방차의 진입에 문제가 없는 높이 4.5m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구조물을 재시공하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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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리커버 특별판)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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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을 두고 논쟁을 하면 예전에 속으론 성악설을 지지하지만 겉으론 성선설을 주장한다. 즉 도덕적으로 접근해서 성선설을 주장해야 남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리부동한 위선적 태도야말로 비도덕적인 행동이니 오히려 남부끄러운 일이다.

요즘엔 성악설을 주장하는 쪽이 많다. 당당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얘기하니 적어도 위선적이지는 않다. 즉 오히려 도덕적이다. 그러나 과학적이지는 않다.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의 문제는 예전의 도덕적 윤리적 철학적 논쟁의 장을 벗어나 과학의 영역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저자는 어마어마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과학적인 분석을 해내고 있다. 기존에 우리가 알았던 상식들을 모두다 깨버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성악설의 대표적인 근거였던, ‘파리대왕’, ‘이스터섬’, ‘스탠퍼드 교도소’, ‘스탠리 밀그림의 전기 실험’,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등등이 모두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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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디어의 광란은 일상에 대한 공격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삶은 예측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좋기는 하지만 지루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루한 삶을 살고 있는 훌륭한 이웃을 더 좋아하지만, ‘지루함은 당신을 주목하게 만들 수 없다. ‘좋다로는 광고를 팔 수 없다. 그래서 실리콘밸리는 어느 스위스 작가의 재담처럼 뉴스가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면서도 우리에게 점점 더 선정적인 클릭베이트를 계속 제공하는 것이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교리는 서구에서 종교적으로 신성시되는 전통이다. 위대한 사상가들의 목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루키디데스,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루터, 칼뱅, 버크, 벤담, 니체, 프로이트,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은 각각 문명의 껍데기 이론에 대한 그들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모든 인지 능력 검사에서 인간의 두 살 아기와 동등한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학습에 관해서는 유아들이 매우 수월하게 이긴다. 대부분의 유아는 100퍼센트, 대부분의 유인원은 0퍼센트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초사회적 학습 기계로, 우리는 배우고 유대감을 형성하며 놀기 위해 태어났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얼굴을 붉히는 능력을 갖춘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어쨌든 얼굴을 붉히는 것은 전형적인 사회적 형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신뢰를 증진시키고 협동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인간에게는 또 다른 특이한 특징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눈에 흰자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좀 더 사회적인 동물로 진화하면서 우리는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네안데르탈인은 천재와 비슷하다. 개개인의 뇌는 더 컸지만 집단으로서는 똑똑하지 못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개별 호모 사피엔스보다 더 똑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더 큰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았고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더 자주 이주했으며, 아마 모방도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 네안네르탈인이 초고속 컴퓨터였다면 우리는 구식 PC이지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던 셈이다. 우리는 더 느렸지만 더 잘 연결되었다.

 

우울한 책인 이기적 유전자? 이것은 뉴욕이라는 잡지에서 자기중심시대로 칭송되던 1970년대 사고방식과 맞아떨어진다. 1990년 후반 리처드 도킨스의 열렬한 팬이 도킨스의 아이디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실천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CEO 제프리 스킬링에게 거대 에너지 기업인 엔론 전체를 탐욕의 메커니즘으로 운영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스킬링은 엔론의 업무 평가를 위해 랭크 앤드 양크(Rank and Yank 등급 매겨 쫓아내기)’를 도입했다. 1등급을 받은 사람은 최고 실적을 달성했으므로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반면 최하위인 5등급을 받은 사람은 시베리아로 유배 가는 집단에 속하게 되고 망신을 당할 뿐 아니라 2주 내로 사내의 다른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해고되었다. 그 결과 직원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홉스식의 기업 문화가 탄생했다. 2001년 말 엔론이 대규모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보고되었다.

과학은 1970년대 이래 눈부시게 발전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후속판에서 인간의 천성이 이기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수정했으며, 그 이론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었다. 투쟁과 경쟁이 생명체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협동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생물학과 1학년이면 누구나 배우게 된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공동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개인을 우상화하는 일은 드물었다. 가장 추운 툰드라에서 가장 뜨거운 사막에 이르는 세계 모든 곳의 수렵채집인들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모든 동물, 식물 그리고 대지와 연결된 휠씬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고 보았다.

우리의 몸이 음식을 갈망하듯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를 갈망한다. 우리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불평등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결정은 집단의 권한이며 구성원 모두가 발언권을 가지고 오랜 시간 숙고한 끝에 내려졌다. 미국의 한 인류학자가 무려 339건의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확증한 사실에 따르면 떠돌이 수렵채집인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관심을 갖는다

동시에 이 사회는 구성원들을 겸손하게 유지하기 위해 수치심이라는 단순한 무기를 사용했다. 캐나다 인류학자 리처드 리는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과 함께 생활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수치심이 우리 조상들 사이에서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쿵족의 일원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자랑하는 사람을 거부한다. 언젠가는 그의 자존심이 누군가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그가 잡은 고기를 쓸모없다고 말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화하게 만든다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의 금기사항은 쌓아놓기와 몰래 숨겨놓기였다. 우리는 역사의 대부분 동안 물건이 아니라 우정을 쌓았다. 이에 대해 유럽 탐험가들은 언제나 대경실색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의 너그러움에 불신을 나타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일지에 당신이 그들에게 가진 것을 달라고 요구하면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어느 누구와도 나누겠다고 제안한다라고 기록했다.

 

과학자들은 남녀평등이 호모 사피엔스를 네안네르탈인과 같은 다른 호미닌보다 우세하게 만들어준 핵심 장점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남성은 대부분 형제 및 남성 사촌과 어울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권위가 여성과 공유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보다 다양한 사회관계망을 갖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친구가 많을수록 궁극적으로 더 똑똑해진다.

 

수렵채집인들도 그들의 연애 생활에 대해 꽤 느긋했다는 뚜렷한 징후가 있다. ‘연속적 일부다처제는 일부 생물학자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평생 파트너가 평균 2,3명이고 여성이 선택권을 가진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을 예로 들어보자. 또는 여성이 평생 동안 평균 12명의 남편을 두는 파라과이의 산에 거주하는 아체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잠재적인 아버지들의 이처럼 거대한 네트워크는 모두 자녀 양육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17세기의 한 선교사가 이누 부족의 일원에게 외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의 지각이 없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자식만을 사랑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우리 부족의 모든 자녀를 사랑한다

 

정착지와 사유재산의 출현은 인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퍼센트가 99퍼센트를 억압하기 시작했고, 달변가는 지휘관에서 장군으로 그리고 족장에서 왕으로 등진했다. 자유, 평등, 형제애의 시대는 끝났다.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인들이 일주일에 평균 20시간에서 30시간 일하면서 매우 편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농부들은 들판에서 땀을 흘려야 했다.

사유재산과 농업의 부상은 원시 페미니즘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결혼 적령기의 딸들은 소나 양 같은 물물교환용 상품에 불과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들의 새로운 집안에서 이 신분들은 의심을 받았으며, 아들이라는 선물을 낳은 뒤에야 비로소 어느 정도 지위를 인정받았다. 합법적인 아들을 말이다.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탄생한 것이다.

유목민으로서의 우리는 운동도 많이 하고 비타민과 섬유질이 풍부한 다양한 식단을 즐겼다. 그러나 농부로서 우리는 매끼마다 단조로운 곡물 메뉴를 먹기 시작했다.

도한 우리는 더 좁은 구역에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 근처에서 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소와 염소 같은 동물들을 길들여 우유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이는 마을을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변이시키는 거대한 배양접시로 만들었다. 우리는 소를 통해 홍역에 걸리고, 독감은 인간과 돼지, 오리 사이의 미생물이 모두 한곳에 사는 삼자 동거에서 발생하며 지금도 새로운 변종이 출현 중이다. 성병도 마찬가지다. 유목시대에는 사실상 없던 질병이 목축을 하면서 만연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축을 기르면서 수간도 이루어졌다.

 

모리스는 몇 주 동안 독일군 포로를 한 명씩 차례로 심문했다. 똑같은 답변이 반복되었다. 그들을 이끈 것은 나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여전히 자신들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세뇌된 적도 없었다. 독일 군대가 신기에 가까운 전투를 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훨씬 더 단순했다. 바로 전우애였다.

수백 명의 제빵사, 정육점 주인, 교사, 재단사 그리고 연합군의 진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저항한 모든 독일인들은 서로를 위해 무기를 들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동료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군도 마친가지였다. 1949년 사회학자팀들이 미국의 참전용사 약 50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상주의나 이념은 참전용사들의 주된 동기가 아니었다. 이들이 싸운 것은 조국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전우를 위해서였다.

 

우리는 텔레비전과 영화산업에 속아 넘어갔다. ‘왕좌의 게임같은 시리즈나 스타워즈같은 영화는 다른 사람을 꼬챙이로 찌르는 것이 식은 죽 먹기라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다른 사람의 몸을 찌르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어렵다. 그렇다면 지난 1만년 동안 전쟁에서 발생한 수억 명의 사상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사망 원인을 예로 들어보겠다.

기타 1퍼센트, 화학 2퍼센트, 폭발/압착 2퍼센트, 지뢰/부비트랩 10퍼센트, 총알/대전차 지뢰 10퍼센트, 박격포/수류탄/공중포폭탄 75퍼센트.

이 희생자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대부분이 원격으로 제거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적이 너무 가까워지면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만일 강제로 소를 도살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면 즉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과 같다

어느 시대엥서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멀리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쏘는 것이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15,16세기에 아메리카를 정복한 방법이자 오늘날 미군이 무장 무인기 편대로 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군대는 장거리 무기 외에도 적과의 심리적 거리를 넓히는 수단을 추구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만일 독일 군대가 메스암페타민 알약(일명 크리스탈 메스, 극도의 공격성을 유발할 수 있는 마약) 3500만정을 먹이지 않았다면 1940년 파리가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대는 군인들을 조건화할 수 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할 신병들은 신병훈련소에서 전우애뿐만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폭력성도 고취되어 병사들은 죽여! 죽여! 죽여!’라고 목이 쉴 때까지 외쳐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대부분 죽이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은 이런 종류의 훈련 이미지를 보여주자 충격을 받았다.

타고난 뿌리 깊은 감정인 폭력에 대한 혐오감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현대 군대에서 전우애는 작아졌다. 그 대신 미국의 한 참전용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만들어진 경멸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기법으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과 구식 군대를 마주치게 하면 구식 군대는 매번 박살이 나고 만다.

미군은 발사율을 높이는 데 어렵사리 성공해 총을 쏘는 병사의 비율을 한국전쟁에서는 55퍼센트, 베트남전쟁에서는 95퍼센트까지 높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랐다. 수백만 명의 젊은 병사들을 훈련 중 세뇌시킨다면 베트남 전쟁 이후 많은 젊은이들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수많은 병사들이 다른 사람들을 죽였으며, 이때 그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도 함께 죽었다.

적과의 거리를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지도자들이다. 높은 곳에서 명령을 내리는 군대나 테러 조적의 지휘관은 적에 대한 공감의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 테러전문가와 역사학자들이 일관되게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권력을 가지 사람들의 심리학적 상태는 독특하다.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 같은 전쟁범죄자들은 권력에 굶주린 편집증적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 사례이다.

 

1513년 겨울 술집에서 또다시 긴 밤을 보낸 빈털터리의 시청 서기가 군주론이라고 일컬은 소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군주론은 프랑스의 황제 샤를 5, 루이 14, 구소련의 서기장인 스탈린의 침대 옆 탁자에 놓였으며, 독일 수상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처칠, 무솔리니,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이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 직후 나폴레옹의 마차에서도 발견되었다.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인간은 배은망덕하고 변덕스러우며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탐욕스럽다고 할 수 있다마키아벨리의 책은 종종 현실적이라고 불린다. ‘대부’, ‘하우스 오브 카드’, ‘왕좌의 게임은 모두 기본적으로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저술한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각주이다.

대커 컬트너 교수는 응용 마키아밸리즘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다. 이 미국인 심리학자는 기숙사에서 여름 캠프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배권을 위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일련의 환경에 잠입했다. 그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바로 이런 종류의 장소에서 시대를 초월한 마키아벨리의 지혜가 온전히 드러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실망했다. ‘군주론이 처방한 대로 행동한다면 캠프에서 바로 쫓겨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켈트너의 발견에 따르면 권좌에 오른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었다. 가장 친근한 자의 생존이다.

켈트너는 이미 권력을 갖게 된 뒤에 받게 되는 영향도 연구했다. 세 명의 지원자로 이루어진 소규모 그룹의 한명은 그룹 리더로 무작위 배정되었고 그룹이 함께 나누어 먹을 쿠키 5개가 남긴 접시를 가지고 왔다. 모든 그룹은 접시에 하나의 쿠키를 남겼지만(예절의 황금률) 대부분의 경우 네 번째 쿠키는 리더가 급하게 먹어치웠다.

켈트너와 그의 팀은 값비싼 자동차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또 다른 연구를 수행했다. 이 실험에서 첫 번째 피험자들은 낡은 미쓰비시나 포드 핀토를 횡단보도 방향으로 운전해갔다. 모든 운전자가 자동차를 멈췄다. 연구의 2부에서는 피험자들이 멋진 메르세데스 벤츠를 운전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45퍼센트가 정지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비쌀수록 도로상의 매너는 더 거칠어진다.

운전자의 행동을 관찰한 켈트너는 그것이 무엇을 생각나게 했는지를 깨달았다. ‘후천적 소시오패스라고 하는데, 19세기에 심리학자들이 처음으로 진단한 유전되지 않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이다. 머리에 타격을 받아 뇌의 주요 부위가 손상되면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가장 좋은 사람을 최악의 마키아벨리안으로 만들 수 있다. 알고 보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뇌손상을 입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보통사람보다 더욱 충동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모하고 오만하며 무례하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를 속이고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더 높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으며, 그들의 관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들은 더 뻔뻔스럽고 종종 영장류 사이에서 인간을 구별할 수 있는 하나의 얼굴 현상을 나타내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2014년 연구에서 세명의 미국 신경학자는 경두개 자기자극 기계를 사용해 권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인지 기능을 검사했다. 권력을 가졌다는 느낌은 공감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신적 과정인 미러링(mirroring)을 방해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항상 미러링을 한다. 누군가 웃으면 당신도 웃는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당신도 하품을 한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매우 약하다. 이는 마치 플러그가 뽑힌 것처럼 자신들이 더 이상 동료 인간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는 것과 같다.

수많은 연구에 따르면 권력의 영향 중 하나는 타인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르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에게는 감독과 감시, 관리와 규제, 검열과 명령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한 권력은 당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당신이 이 모든 감시를 담당해야 한다고 믿게 될 것이다. 권력을 갖지 못하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힘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감도 훨씬 떨어진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주저하고 집단에서 스스로를 더 작아 보이게 만들며 자신의 지능을 과소평가한다.

권력자들에게 이러한 망설임은 편리하다. 자기 의심은 사람들이 반격할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어리석은 것처럼 대하면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다고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통치자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추론하게 만든다. ‘대중은 너무 멍청해서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비전과 통찰력을 가진 내가 책임을 맡아야 해하지만 진상은 정확히 그 반대가 아닌가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액턴경은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대커 켈트너는 이를 권력의 역설이라고 일컫는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을 선택해 우리를 이끌도록 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상에 이르면 권력은 종종 그들의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곧장 들어가버린다. 그후 그를 몰아내는 일에 행운이 따르기를.

 

호모 퍼피는 타고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약간의 불평등도 인정한다고 강조한다. 겉으로 공정해 보이는 한 그렇다. 대중에게 당신이 더 똑똑하거나 더 낫거나 더 신성하다는 것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책임자의 자리가 타당하며 반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족장과 왕은 자신이 신민들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는 이유를 정당화해야 했다. 유목민족의 족장들이 모두 겸손했던 것과 달리 이제 지도자들은 잘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왕은 자신이 신성한 권리에 의해 다스리고 있다거나 그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장점(merit)’ 논리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누가 큰 장점이 있는지 어떻게 결정할까? 은행가 아니면 청소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잘 만들어낼수록 자신의 몫은 더 커진다. 사실 문명의 진화 전체를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이론을 지속적으로 고안해 낸 통치자들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일주일에 40시간 동안 금속이나 종이조각 혹은 은행 계좌에 숫자 몇 개를 추가하는 대가로 우리가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우리에 숨죽이고 갇혀 있을까? 청구서를 무시하거나 세금을 내지 않으면 벌금이 나오거나 수감된다.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국은 당신을 뒤쫓을 것이다. 돈은 허구일 수 있지만 매우 실제적인 폭력의 위협이라는 강제력을 갖는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뻔뻔함은 매우 유리한 속성이다. 수치심에 개의치 않는 정치인은 다른 사람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대담한 행동은 대중매체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현대사회에서 보상으로 돌아온다. 뉴스는 비정상적이고 터무니없는 것을 집중 조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세상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가장 친절하고 공감력이 큰 사람이 아니라 그 반대인 사람이다. 오늘날의 세상에서는 가장 뻔뻔한 자가 살아 남는다.

 

자본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모두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당근과 채찍 두가지 뿐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자본주의자들은 당근(돈이라고 읽는다)에 의존한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주로 채찍(처벌이라고 읽는다)에 의존했다. 모든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양쪽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본 전제는 사람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의 비즈니스 컨설턴트 중 한 명인 프레더릭 테일러는 약 100년 전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높은 임금이다라고 주장했다. 테일러는 공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가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과를 최대한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개념을 전제로 한 과학적 경영기법의 창안자로 명성을 떨쳤다.

프레더릭 테일러 이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서로의 내재적 동기를 대거 훼손하느라 바쁘다. 142개국에서 23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직장에서 업무에 참여한다고 느끼는 비율은 13퍼센트에 불과하다.

 

(네덜란드 가정건강돌보미 조직 뤼트트조르흐 창립자 요스 드 블록)의 견해에 따르면 직원은 자신의 업무가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내재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 전문직이자 전문가이다. “내 경험에 따르면 대체로 관리자들은 아이디어가 거의 없다. 그들은 지시를 잘 따르고 시스템에 스스로를 맞추기 때문에 일자리를 얻는다.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높은 성과 리더십과정을 수강한 뒤 갑자기 자신이 대단한 혁신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회사 인력은 100명에서 500명으로 늘어났고, 변속기 포크 시장의 50퍼센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핵심 부품의 평균 생산시간은 11일에서 단 1일로 단축되었다. 경쟁사들이 저임금 국가로 사업장을 이전할 때 파비(프랑스 자동차 부품 생산사) 공장은 유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동안 조브리스트(파비 CEO)의 철학은 아주 단순했다. 직원을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존재로 대하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심지어 그는 그것에 관한 책도 저술했는데, 책의 부제는 사람들이 선량하다고 믿는 회사이다.

 

10개국의 부모 12,000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야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시간대학의 연구원들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981년에서 1997년까지 18퍼센트 증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숙제를 하느라 보낸 시간은 145퍼센트 증가했다.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육아에 투자하는 시간이 1980년대보다 15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일하는 엄마는 1970년대의 전업주부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순위와 성장을 압박하기 시작하면서 학부모와 학교는 시험과 그 결과에 집중하게 되었다.

교실이나 수업이 없는 학교를 상상해보라. 숙제나 성적 평가도 없다. 교감과 팀 리더들이라는 계층 구조가 없으며, 자율적인 교사로 구성된 팀들만 존재한다. 사실 책임은 학생들의 몫이다. 이 학교에서 교장은 아이들에게 회의 공간을 내줘야 하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사무실에서 쫓겨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을 모두 받아주는 이 학교의 이름은 아고라이다.

영국 서퍽에 있는 서머힐스쿨은 1921년부터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믿고 맡길 수 있음을 입증해왔다. 매사추세츠의 서드베리밸리스쿨도 마찬가지이다. 1960년대 이후 수천 명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했다.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를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의 여부이다.

 

오늘날에도 토레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민 참여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 15,000명의 시민이 의견을 제시하고, 매년 초 시 전역 560곳의 장소에서 위원회가 열린다. 누구에게나 제안서를 제출하고 대표를 선출할 기회가 주어진다. 시민들은 세수입 수백만 달러를 어느 곳에 배정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한다.

이보다 더 큰 일화는 1989년 브라질의 대도시 포트투알레그리라는 도시에서 예산의 4분의 1을 대중에게 맡기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면서 시작되었다. 10년 뒤 브라질 전역 100여 곳 이상의 도시에서 따라했으며, 다시 세계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2016년까지 뉴욕시에서 세비야, 함부르크에서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1,500여곳의 도시가 참여 예산을 제정했다.

 

공산주의는 적어도 공식적인 정의에 따르면 수백년 동안 성공적인 체제였으며, 구소련과 유사하지 않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그것을 연습한다. 당신은 식탁에 앉아 있고 소금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놓여 있다. “소금 좀 건네주세요라고 말하면 누군가 무료로 소금을 건네준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일상적 공산주의라고 일컫는다. 인류는 공원과 광장, 음악과 이야기, 해변과 침대를 공유하면서 이런 종류의 공산주의에 열광한다. 아마도 이런 관대함의 가장 좋은 예는 가정일 것이다. 전 세계의 수십억 가정이 공산주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 있다. 부모는 자신의 소유물을 아이와 공유하고 능력껏 기여한다.

 

오늘날까지 알래스카 영구 기금 배당금은 전적으로 무조건적이다. 이는 특권이 아니라 권리이다. 그 덕분에 알래스카 모델을 구식 복지국가의 정반대가 된다. 일반적으로 당신은 먼저 자신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거나 지원을 받아야 할 만큼 충분히 궁핍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증빙하는 수십 개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시스템은 사람들을 슬피고 무기력하며 타인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반면, 무조건적인 배당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는 신뢰를 키워준다.

대부분의 알래스카 사람들은 배당금을 교육과 아이들에게 투자했다. 기금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빈곤을 크게 감소시켰다.

 

노르웨이 숲에는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교도소 중 하나가 있다. 감방이나 철장을 볼 수 없으며, 권총이나 수갑으로 무장한 교도관도 볼 수 없다. 할렌 교도소의 수감자에게는 바닥 난방을 갖춘 개인 전용 방이 주어진다. 텔레비전과 욕실, 주방이 있다. 도서관, 암벽등반 연습용 벽, 음악 스튜디오까지 완비하고 있다. 바스퇴위 일부 수감자들은 직장으로 출퇴근하기도 한다. 할렌과 바스퇴위는 평온한 공동체이다. 바스퇴위의 소장인 톰 에버하르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대하면 그들은 쓰레기가 될 것이다. 인간처럼 대하면 그들은 인간처럼 행동할 것이다

노르웨이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재범률을 자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교도소는 가장 높은 재범률을 보이는 시스템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수감자의 60퍼센트가 2년 뒤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지만 노르웨이의 경우는 20퍼센트에 불과하다.

노르웨이 교도소의 수용비용은 유죄판결 건당 평균 6151달러나 된다. 이는 미국의 약 2배에 이른다. 그러나 전과자들의 범죄 횟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르웨이 법 집행기관은 1건당 71,226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구하므로 정부의 지원이 필요 없고, 이들이 납부한 세금으로 정부는 67,086달러를 추가를 절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희생자 수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노르웨이 교도소 시스템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의 2배 이상을 절약하는 결과로 돌아온다.

 

당신이 가끔 속임수에 넘어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다고 그녀(마리아 코니코바)는 말한다. 그것이 우리가 평생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사치에 지불하는 조그마한 대가이다.

 

우리가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음식이 없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우리가 돕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서로가 없으면 우리는 말라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은 것은 그것이 실제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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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조은영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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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이자 달리기 선수인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1940~)의 과학책, 달리기책, 자서전이다. Bernd라는 이름이 뜻이 곰처럼 강한(bern+hard강한=Bernhard Bernd)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독일계이고, 운명적으로 생물학자이다. 전작 우리는 왜 달리는가60대에 쓴 책인데, 이건 80대에 쓴 책이니 두 책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과학자에게 신은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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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고난 달리기 선수다. 이게 현존하는 호미니드 중에서도 인간을 고유하게 만드는 점이다(도구를 만들어 썼다는 이유로 유인원보다 우월하다 할 수도 없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이유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다). 발자국은 그 주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체형에 대한 간접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가볍게 쌓인 눈 위에서 달릴 때와 걸을 때 남은 흔적을 비교해보았다. 화산의 얇은 응회암층에 보존된 인간 이전 사람들의 발자취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고대 호미니드들은 걷는 건 물론이고 정말 달릴 수 있었다. 그들이 현재의 달리기 선수와 전혀 달랐다고 가정할 이유도 없다.

추위에 민감한 점, 털이 없는 몸, 두껍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특히 땀을 다량으로 흘리는 것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고 뜨거운 기후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다.

 

달리기는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암컷과 수컷 모두에게 유익하다. 이 능력은 인간이 수백만 년 전 형편없는 사냥꾼으로 시작해 대형 고양잇과나 갯과 동물들이 죽인 사체를 먹고 살던 아프리카의 너른 벌판에서 특히 장점으로 여겨졌다. 나는 이 인류 진화의 요람에서 독수리들이 하늘에서 맴돌다가 포식자가 죽인 사체로 내려오는 모습과 한낮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 사자가 먹이를 앞에 두고도 그늘에서 쉬는 장면을 수시로 보았다. 땀을 흘리는 능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독수리가 가리키는 살육의 현장으로 뛰어갈 수 있었고, 먹이를 지키는 맹수가 없는 짧은 틈을 활용할 수 있었다. 더위를 견디고 뛰어다니는 만큼 더 많이 먹이를 구해 자손들을 먹일 수 있었고, 그 결과 땀을 흘리는 반응이 선택됨과 동시에 물에 접근하기 쉬워야 했을 것이다.

인간과 다른 동물(많은 새를 제외하고)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몸이 크고 부모가 쉽게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는 이동할 때 아기가 들러붙을 수 있는 두꺼운 털이 없다. 그러므로 어린 생명은 보호가 필요했고 어미가 아기를 돌봐야 했다. 그 바람에 먹을 것을 구해올 사람이 필요해졌고, 주거지는 물론이며 음식을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짝을 선호하게 되었다. 최근까지도 많은 부족에서 남성은 영양의 일종인 일런드나 쿠두 같은 대형 먹잇감을 구해와 자신이 훌륭한 사냥꾼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는 아마 현대에 와서는 외식, 자동차, , 넉넉한 통장 잔고같이 가족을 부양할 잠재력을 나타내는 조건들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물학적으로 역사의 훨씬 이전부터 같은 종족이었으며 진화적으로 선택된 사냥꾼이다.

 

우리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 애쓰고, 사회적 존재로서 스포츠 팀, 가문, 나라처럼 자신보다 큰 가치가 있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제는 그 가치를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속한 자연으로 보면 어떨까? 자연을 사랑하고 원하며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그러기만 한다면 자연은 영원히 장엄하고 아름답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이다.

어린 시절 메인주에서 다닌 굿윌학교에서의 나의 가치는 일요일 예배 전 흰 셔츠를 빨아 다림질하고, 교회와 저녁 공부 시간 전에 주기도문을 외우고,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에 있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았다면 이내 혼란스러웠겠지만 우리는 따라야 할 확실함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이었기에 아무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더 큰 압박을 느꼈다. 모든 것이 그저 막막하기만 하고 논리를 거부한 채 불투명해 보였다. 자연이 곧 신이라는 사실을 진작 배웠더라면 덜 외롭고 덜 불안했을 것이다. 아마 진작 자연에 대한 이해와 헌신을 자처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여든 번째 생일을 치른 나는 더는 과거처럼 달리기 선수도, 과학자도 아니다. 허나 나는 내가 바라던 꿈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달리기 선수와 과학자로서의 역할은 최근까지도 내 관심과 에너지를 차지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더 관심을 쏟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평생 독행하고 긴급한 과제에 감정을 억누르며 지낸 바람에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삶의 충만함을 놓치고 살았다. 인생의 마지막 단락을 쓰며 이제 내가 달려야 할 새로운 경주는 더 깊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내 죽음으로 숲속에서 잔치를 열고 싶기도 하다. 거기서 울트라 마라톤 결승선에 차려진 만찬처럼 모든 것의 출발점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와 공짜 맥주를 나누고 싶다. 내 마지막이 축하의 자리가 되면 좋겠다. 많은 이름과 명언이 새겨진 테이블을 둘러싸고 예전에 그랬듯 사람들이 마음과 악기로 연주하는 록 음악이 울려 퍼지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토양은 미국밤나무가 자라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그 자리를 찾은 모든 이들이 근처에서 묘목 한 그루씩을 찾아 집에 가져가 심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웨스트브룩 로드를 거치고 텀블다운 산의 산자락을 지나 웨브 호수를 한 바퀴 뛰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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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 이름에 숨겨진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김동섭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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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릴 땐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금은 원망의 대상이다. 특히 트럼프가 전세계 나라를 향해 관세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덕분에 미국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특히 미국 지명에 대해.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책이 특히 어원에 관련해서는 최고로 자세한 것 같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자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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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티에는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귀에 도착해 자신이 명명한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일대를 탐험했다.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조우한 카르티에 일행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가리키며 카나다Canada’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카르티에는 그 말이 원주민의 땅을 가리키는 말로 마을을 뜻한다. 드 라살은 강을 따라 내려가 미시시피강의 어귀에 도달한 후 자신이 탐험한 지역을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했다. 그는 귀국해 자신이 발견한 이 땅을 루이지애나라고 명명하고 루이 14세에게 바쳤다.

 

영국이 북미 대륙으로 진출해 개척한 최초의 식민지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친 버지니아였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박해를 받던 분리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영국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16208102명의 순례자가 영국의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약 두 달 후, 그들은 애초에 가기로 계획했던 버지니아보다 훨씬 북쪽 지방인 코드곶Cape Cod(현재의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머스 항의 이름을 따라 플리머스라고 명명했다.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뉴욕주는 뉴욕이라는 세계 최대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방은 본래 아메리카 인디언들 중에서도 델라웨어족, 모히칸족, 이로쿼이족 같은 가장 강력한 부족들이 정착해서 살던 곳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지금의 맨해튼섬에도 정착해 요새를 짓고 도시를 세웠다. 이들은 인디언 추장과 협상해 24달러가량의 물품이 든 상자 두 개로 맨해튼 섬을 구입했다. 1625,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며 정착해갔다.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맨해튼을 차지한다.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이 땅을 자신의 동생인 요크 공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바꾸어 불렀다.

 

맨해튼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지방에 살던 알곤킨족의 언어로 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현재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과거 네덜란드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충돌이 잦던 지역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공격을 막기 위해 이곳에 휴전선처럼 섬을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세웠는데 이것이 월스트리트의 기원이다.

 

1660년에 영국에서 왕정이 복고되자 찰스 2세는 프랑스에서 본국으로 돌아온다. 찰스 2세는 망명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저지섬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미국 동부에 새로 개척한 식민지의 이름을 뉴저지 식민지Province of New Jersey로 지었다.

 

뉴햄프셔주의 이름은 영국의 햄프셔 지방에서 유래했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사람들은 영국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프랑스의 샹플랭 같은 탐험가도 이 지방을 거쳐 갔다. 이주 초창기에는 영국인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뉴프랑스의 붕괴 이후 퀘벡에 살던 프랑스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그 결과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프랑스계 주민들의 비중이 높은 주이기도 하다.

미국의 북동부 지방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코네티컷주도 1614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드리안 블록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블록은 이 지방을 탐험하고 알곤킨족의 언어로 코네티컷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다로 흘러가는 큰 강 옆의 초원이라는 의미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지금의 필라델피아 근처에 정착하고 이 지방을 뉴스웨덴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 지방은 네덜란드에 넘어갔다가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원래는 영국의 요크 공작이 이곳을 통치했으나, 1681년 찰스 2세가 윌리엄 펜Wiliam Penn에게 이 지방의 개척권을 허가해준다. 동부의 다른 주 이름은 당시 영국 군주들의 이름이나 지명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지만, 펜실베이니아는 식민지를 개척한 윌리엄 펜의 이름에 을 의미하는 라틴어 ‘Silva’ 그리고 을 의미하는 ‘-(n)ia’가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필라델피아Philadelphia라는 말은 그리스어 사랑Phila’형제adelpphos’가 합쳐진 것으로 우애를 의미한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피츠버그다. 본래 이 도시는 프렌치-인디언전쟁 때 프랑스군이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뒤켄Duquesne 요새에서 생겨난 곳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 요새의 이름을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를 기념해 피츠버그로 바꿨다. 미국의 역사는 역시 승자의 역사임을 또 한번 볼 수 있다. 만약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뒤켄빌Duquesneville(뒤켄의 도시)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발음은 영어식으로 듀케인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이름은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에 여전히 남아 있다.

 

메릴랜드 식민지는 찰스 1세 때 건설되었기에 찰스 1세의 왕비인 앙리에트 마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리Marie의 영어식 이름이 메리Mary.

 

볼티모어Baltimore는 영국의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Goerge Calvert Baltimore 남작의 이름을 따라 1729년에 세워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최대 도시인 찰스턴Charleston찰스의 도시라는 뜻의 찰스 타운Charles Town’에서 따온 지명이다.

캐롤라이나Carolina찰스의 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영국 왕의 이름에 등장하는 찰스Charles, 프랑스 왕실에 자주 보이는 샤를Charles, 스페인 왕실의 카를로스Carlos 그리고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카를Karl이라는 이름은 모두 프랑크 왕국(서기 5세기 말 서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서유럽 지역에 세운 왕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 대제(독일명 카롤루스)’에서 나온 이름이다. 유럽의 군주들은 부강한 나라를 꿈꾸며 서로마 제국의 위대한 군주의 이름을 그들의 후손에 남겼다.

 

뉴잉글랜드는 미국 북동부의 6개 주, 즉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를 포함하는 지방이다. 이 지방을 통틀어 가장 큰 도시가 바로 매사추세츠의 주도인 보스턴이다. 매사추세츠주는 하버드대학교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같은 교육 기관이 많은 주로도 유명하다. ‘매사추세츠라는 말은 원주민인 나바호족의 언어로 큰 산 옆의 초원혹은 큰 언덕 위에라는 뜻이다.

 

1732, 조지아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당시 영국 왕 조지 2세에게 식민지 건설을 위한 헌장을 요구했다. 조지 2세는 독일에 뿌리를 둔 하노버 왕조 출신의 국왕이었다. 조지아주의 이름은 조지 2세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메인Maine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프랑스의 노르망디 남쪽 지방인 멘Maine에서 왔다는 설이다. 프랑스계 주민들이 이 지방에 먼저 정착했고, 북쪽에는 프랑스 영토였던 퀘벡주가 가까이 있으니 설득력이 있다.

 

뉴올리언스 도시 이름은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어 누벨오를레앙Nouvelle Oreléans을 영어로 옮긴 것이 뉴올리언스다

 

루이지애나의 주도인 배톤루지Baton Rouge에도 프랑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배톤루지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말뚝이라는 촉토우 인디언 말을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어로 배톤Baton’막대기’, ‘루지rouge’붉은을 뜻한다.

 

오하이오는 이로쿼이 부족의 언어로 좋은 강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오하이오를 프랑스어로 본 리비에르Bonne Rivière(좋은 강)’라고 옮겼다. 주 이름 중에서 인디언들의 언어에서 온 것들은 대개 강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프랑스가 북미에서 영국을 제압했다면 오하이오주의 이름은 본 리비에르주가 될 수도 있었다.

 

오하이오주 남서부 도시, 신시내티의 이름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처음 정착민들이 들어왔을 때 이 도시의 이름은 로잔트빌Losantville이었다. 그런데 1790년에 로마의 정치인 킨키나투스Cincinnatus(기원전 519-430)의 이름을 본떠 신시내티로 도시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킨키나투스의 영어 발음이 신시나투스).

 

버몬트Vermont는 프랑스어로 푸른vert+mont’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발음으로 읽으면 베르몽이다.

 

버몬트의 주도 몬트필리어Montpelier는 인구가 불과 7천 명밖에 안 되는 곳으로, 미국의 주도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몬트필리어라는 이름은 남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왔다.

 

일리노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인 일리노이족에서 왔다.

시카고Chicago는 본래 영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치카고라고 발음해야 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정한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음대로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시카고의 본래 뜻은 원주민인 알곤킨족의 언어로 야생 양파가 많은 여우 서식지혹은 스컹크 냄새가 나는 고얀 곳이라는 뜻이다.

위스콘신이라는 이름은 알곤킨족의 언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인 탐험가들은 이를 메스쿠싱Meskousing이라고 옮겨 적었고, 철자를 잘못 옮겨 위스콘신Ouisconsin이라고 기록했다. 지금 위스콘신의 철자는 이를 영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메스쿠싱이란 말은 마이애미 인디언의 말로 붉다라는 의미다. 이 지방의 소도시 위스콘신델스에 있는 붉은 사암을 보면 메스쿠싱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위스콘신주는 우리가 흔히 먹는 선데Sundae’ 혹은 선디아이스크림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을 일요일 아이스크림Sunday Ice Cream’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신성한 주일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해서 마지막 철자 하나만 바꾸어 선데 아이스크림이 된 것이다.

 

미시간은 오지브와족의 언어로 큰 물혹은 큰 호수를 뜻하는 미시가마Mishigama에서 나왔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프랑스인들이 이를 미시간Michigan이라고 옮겼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 지방을 발견했다면 프랑스어의 ‘ch’는 영어의 ‘sh’와 같기 때문에 ‘Mishigan’이라고 옮겼을 것이다. 오대호 주변에 있는 주들 중에는 유난히 Mi’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원주민의 말에서 온 지명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미시간Michigan: 큰 물

미주리Missouri: 구름이 낀 물의 색

미시시피Mississippi: 진흙탕 물

미네소타Minnesota: 하늘 빛을 띤 물

미시간주는 엄청난 면적의 오대호와 맞닿아 있다. 위의 지명에서 공통분모를 보면 Mi’가 아메리카 인디언 언어로 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고구려어에서도 물을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과 북미 인디언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시간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이름은 1701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악이 세운 데트루아Détroit 요새에서 나왔다. ‘데트루아는 프랑스어로 호수와 강이 교차하는 해협을 의미하며, 이를 영어로 읽으면 디트로이트가 된다.

 

캐딜락Cadillac’이라는 미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자동차의 이름이 바로 디트로이트를 세운 카디악(영어식 발음으로는 캐딜락)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이름은 아이오와족의 이름과 아이오와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이오와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디모인Des Moines이다. 영어라기에는 발음이 생소하고,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름이 수도사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디모인을 프랑스어로 읽으면 데 무안이다. 중부 지방을 개척하고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프랑스인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미시시피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오지브웨이족의 말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주에서 가장 큰 도시 잭슨은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서 따온 이름이다.

 

앨라배마라는 이름은 크리크족의 한 부족인 앨라배마족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칸소주는 철자와 발음이 특이하다. ‘Arkansas’를 발음하면 알캔자스가 될 것 같은데 발음은 아칸소다. 사실 ‘Arkansas(아칸소)’‘Kansas(캔자스)’가 인접한 지방인 것처럼 명칭의 뿌리도 동일하다. 아칸소는 캔사족의 말로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강의 상류에는 캔자스주가 있고, 하류에는 아칸소주가 있으니 지명과 지역이 일치한다. 아칸소에서 마지막 ‘s’를 발음하지 않는 것은 프랑스어에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 어려운 까닭에 아칸소의 주법에는 아칸소라는 발음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50개 주 중에서 유일하게 인디언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인디애나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인디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개척한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인디애나 지방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이었다.

 

초기에 이 지방을 개척한 프랑스인들의 흔적도 몇몇 대학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대로 유명한 퍼듀Purdue대학교에서 퍼듀는 중세 프랑스어로 신에게Pour Dieu, For God’라는 의미다. 주로 신에게 맹세할 때 쓰는 말로, 프랑스어 발음은 푸르디외. 그리고 대학 미식축구로 유명한 가톨릭 계열의 노터데임Notre Dame대학교의 이름은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노트르담Notre Dame, Our Lady’에서 나왔다

 

켄터키라는 이름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말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그 유래는 여러가지인데, 어떤 이들은 이로쿼이족의 언어로 내일의 땅을 의미하는 ‘Ken-tah-ten’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피의 강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버번Bourbon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부르봉을 영어로 읽은 것인데,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와준 프랑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켄터키주의 카운티 하나를 버번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 지역에서 난 위스키를 버번위스키라 부르게 됐다.

 

켄터키주와 프랑스의 인연은 도시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 루이빌Louisville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미국 중남부 지방에서 ‘-ville’로 끝나는 이름의 도시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식민지 개척 초기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독립전쟁 이후,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ville’이라는 이름의 도시들이 많이 생겨났다. 프랑스어로 도시를 의미하는 이 말은 독립전쟁 때 군대를 파견해 미국을 도운 프랑스에 대한 동경과 우호의 상징으로 많은 지역에서 사용됐다. 테네시주의 네시빌Nashville, 아칸소주의 파이에트빌Fayetteville(독립전쟁 때 프랑스군의 사령관이었던 라파이에트La Fayette의 이름에서 왔다), 플로리다의 잭슨빌Jacksonville 같은 중남부 도시들이 그 예다.

 

미네소타의 주명은 원주민인 다코타족의 언어로 흰 거품 물혹은 하늘 빛을 띤 물이라는 뜻이다. 1만 개의 호수가 있는 이 지방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또한 미네소타주의 북부에는 북미 최대 강인 미시시피강의 발원지가 있다.

 

미주리강의 이름은 강 근처에 살던 미주리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주리족은 자신들의 언어로 우에메수리타Ouemessourita’라고 불렸는데, 이는 카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미네소타, 미시시피 같은 주명 속에 들어 있는 mi’가 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미주리주의 이름에도 물과 관련된 카누라는 뜻이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세인트루이스는 13세기에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9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네브래스카라는 발음에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들 언어의 느낌이 난다. 네브래스카는 주 전체를 흐르는 플랫강을 부르는 원주민들의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말의 뜻은 평평한 강이다. 다른 중부의 주들처럼 이 지방도 최초의 탐험가는 프랑스인들이었고, 그들은 이 땅을 루이지애나에 편입시켰다. 네브래스카는 남북전쟁 당시에는 주로 승격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주로 승격됐다. 그래서 링컨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주도의 이름을 링컨으로 정했다.

 

미국에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남북과 동서로 분리된 주가 6개 있다. 동부의 버지니아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중부의 사우스다코타와 노스다코타가 그런 주들이다. 여기서 다룰 사우스다코타주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주다. 다코타주는 1889112, 남북으로 분리되어 같은 날 미합중국의 일원이 됐다. 다코타라는 말은 원주민의 언어로 우리는 친구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지방에는 7개의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서약을 맺었다. 그러나 훗날 이 지역에서 이주민과 원주민 간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는 친구라는 지명이 슬프고도 모순되게 느껴진다.

 

촉토족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오클라호마주는 20세기 초에 합중국에 들어온 막내 주에 속한다.

 

테네시는 이 지방에 살던 체로키족의 언어로 마을을 뜻하는 테나시Tenasi’에서 나온 말이다.

 

테네시주의 멤피스Memphis는 기원전 2200년까지 이집트 고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멤피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이집트인들은 이를 하얀 담이라는 뜻의 이네브 헤지Ineb Hedj’라고 불렀다. 이후 신왕국 시대에 다시 이곳이 이집트의 수도가 되면서 오래 가면서 변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멘 네페르Men nefer’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 명칭에서 그리스어 멤피스가 나왔다.

 

애리조나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주로 스페인어와 관련된 것이 많다. 스페인어 황무지Zona arida’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고, 북부 스페인의 소수어인 바스크어로 좋은 참나무Aritz ona’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거쳐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애리조나주는 48번째로 미연방에 합류한 주다. 알래스카주(49번째)와 하와이주(50번째)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가입했다.

 

플로리다 식민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다. 1513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이 지방을 발견하고 이곳을 플로리다라고 불렀다. 플로리다는 꽃의 축제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파스쿠아 플로리다Pascua Florida’에서 나왔다. 스페인어에서 파스쿠아Pascua는 부활절을 의미하며, 플로리다Florida는 꽃을 뜻하는 플로라Flora에서 나온 말이다.

 

플로리다의 최대 도시 마이애미Miami는 인디언 말로 부드러운 물이라는 뜻이다.

 

광산업 로비스트인 조지 윌링이 광산 개발에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쇼니족의 말 ‘E Dah Hoe(에 다 호)’를 가지고 와 이 말의 뜻이 보석의 땅이라고 퍼뜨리고 다녔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용한 광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윌링의 실망도 컸다. 이미 아이다호라는 말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흘러 이 지역에서 정말로 광물이 발견되었고, 지금은 아아디호에서 금, , 구리 등 많은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 아이다호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보이시Boise는 프랑스어로 을 의미하는 ‘Bois(부아)’에서 온 말이다.

 

몬태나는 스페인어로 을 의미한다.

 

네바다라는 말은 라틴어의 ‘Nivea’에서 온 말로, ‘눈으로 덮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가 그 어원이다.

 

뉴멕시코의 주도 산타페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믿음이라는 뜻이다.

 

포틀랜드 남쪽에는 주도 세일럼Salem이 있는데, 세일럼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에서 온 말이다.

 

텍사스는 이 지방의 원주민인 카도족의 말로 친구를 의미하는 타이샤를 스페인어로 옮긴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을 불러준 친구의 땅텍사스를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합병했다. 그리고 주의 공식 모토를 우정으로 정했다. 친구의 땅을 빼앗았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를 내비치다니 아이러니하다.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휴스턴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다음으로 큰 도시다. 휴스턴은 텍사스 개척의 영웅 샘 휴스턴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샘 휴스턴은 텍사스 공화국 시절에 대통령을 지낸 인물로, 1836년 텍사스 독립전쟁에서 멕시코의 산타 안나 장군을 생포하여 텍사스의 독립을 받아냈다. 텍사스 독립의 아버지로는 스티븐 오스틴도 빼놓을 수 없다. 오스틴은 미주리에서 300가구를 이끌고 텍사스에 정착한 텍사스 개척의 아버지다. 그의 이름은 텍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오스틴시에 남아있다.

 

유타Utah라는 말은 유트Ute 인디언들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수도에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수도 외에도 무려 미국의 88개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애틀이다. 이 지명은 위대한 인디언 추장인 시애틀의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 50개 주의 모양을 보면 중동부의 주들은 강이나 산맥 같은 지형으로 주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확정되었지만, 서부는 경계가 직선으로 된 주들이 많다. 콜로라도주와 이번에 소개하는 와이오밍주가 완벽한 직사각형의 모양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 지대와 드넓은 초원 지대가 많다는 말이다. 와이오밍이란 말은 알곤킨족의 언어로 대초원의 땅을 의미한다. 주도이자 와이오밍 최대 도시 샤이엔Cheyenne도 이 지방의 원주민 샤이엔족의 이름에서 나왔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뉴스페인이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한 소설에 등장하는 섬의 이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소설가 가르시 로드리게즈 데 몬탈보의 작품 에스플란디안의 모험에는 가공의 섬 칼라피아가 나온다. 칼라피아 왕비가 통치하던 이 섬은 금과 진주가 많고 검은 피부의 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소설의 내용대로 된 것일까? 실제로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달려갔다.

 

콜로라도는 스페인어로 붉은 빛을 띠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족인 알류트족의 언어로 섬이 아닌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에스키모라 부르지만, 막상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는 의미의 이누이트라고 부른다.

 

하와이Hawaii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 언어로 고향을 뜻하는 오화히Owhyhee’를 영어로 옮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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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 - 트럼프에 관한 가장 치명적이고 은밀한 정신분석 보고서
메리 트럼프 지음, 문수혜.조율리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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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난리다. 우리 나라도 윤석렬 때문에 난리를 치르고 있는데, 비슷한 점이 있다.

 

윤석렬의 아버지는 윤기중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회 회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사회 저명인사이다. 그러나 아들 윤석렬을 대학생 때까지 고무 호스로 체벌했을 정도로 엄했다. 또한 지인인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우리 아들이 뭐 모르고 자라서 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에 너무 집착하는 성질이 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꼭 좀 충고를 해 달라'라고 죽기 전에 당부했다고 하니, 윤석렬은 내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트럼프 역시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병약했고,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자가 되길 가르쳤고 그 과정에서 실패한 큰 아들(트럼프의 형)은 가혹하게 버림 받고 죽었다.

 

그 결과 트럼프는 평생을 승자인 척하며 살았다. 앞머리 숱이 없어서 옆머리로 가린 것처럼. 물론 그 과정에선 숱한 부정이 있었다. 심지어 SAT도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치렀으니. 2번이나 대통령이 된 그는 현재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본인이 조카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행동이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가 말년에 아무리 치매가 들었다고 하지만 손녀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성추행적 행동들이 근거이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육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애 하나 잘못 키우면 지구가 멸망한다.   

 

<밑줄>


병에 걸린 할머니가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잘 돌봤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마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잘 자랄 수 있다고 믿었던 듯,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을 트럼프매니지먼트에서 일만 하며 보냈다.

프레드의 무관심 속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아이들은 도널드와 로버트였다. 영유아가 보이는 일종의 애착행동에는 양육자의 긍정적이고 평안한 반응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가 미소 지으면 양육자도 미소 지어야 하고, 아이가 울면 양육자는 즉시 아이를 안아줘야 한다. 아마도 프레드는 집안 상황이 정상적이었더라도 그러한 애정 표현의 필요하다는 사실을 귀찮게 여겼을 것이다.

도널드와 로버트는 애정에 굶주렸다.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뿐아니라 그의 부재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들들의 괴로움이 커갈수록 프레드는 이들을 더욱 멀리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고, 자식들이 정서적으로 굶주려하는 모습을 귀찮아했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들 사이에 위험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부모에게 위로와 안정을 이끌어내도록 설계된 두 아이의 본능적인 행동이 아버지의 분노와 무관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도널드와 로버트에게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일은 곧 굴욕, 체념, 절망의 동의어가 됐다. 프레드는 집에 있을 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어떻게 해서든 요구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규칙은 사회의 규칙을 반영하므로,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가정에서의 규칙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안 되고, 친구를 때리거나 놀려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는 이 모든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집에서 배운 규칙(최소한 남자들에게 해당되었던 규칙)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한다’, ‘거짓말은 해도 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나약한 것이다등이었는데, 이는 (당연히) 학교에서 맞닥뜨린 규칙과 충돌했다. 세상을 향한 프레드의 기본 신념은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패자였으며, 이는 공유하는 능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생각이었다. 도널드는 프레드를 통해 아버지의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가혹할 뿐 아니라 때로는 공개적인 굴욕을 당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권위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아버지의 규칙을 따랐다. 도널드가 이해하는 옳은 것그른 것은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규칙과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는 위험을 피하고자 시험을 잘 치는 똑똑한 아이 조 샤피로(Joe Shapiro)에게 SAT를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에는 신문등에 사진이 붙어 있지도 않았고 신분증이 기록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쉽게 대리시험을 칠 수 있었다. 한 번도 돈이 모자랄 적이 없었던 도널드는 그의 몫을 두둑이 떼어주었다.

 

맨션의 모든 세간에는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거실의 규모는 약167제곱미터에 높이는 약 13미터에 달했다. 맨션의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화려했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저녁식사 자리에는 나, 도널드, 말라뿐이었다

나는 수영복에 반바지만 입은 채 점심식사를 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골프복을 입고 있던 도널드가 이전에는 한 번도 나를 본 적 없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세상에, 메리, 가슴 죽이는데!”

여보!” 말라가 짐짓 경악한 척하며 도널드의 팔을 살짝 때렸다.

 

내가 서재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녕.” 할아버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더니 지갑을 꺼냈다. 할아버지의 지갑은 너무 두꺼워서 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지갑 속에 반쯤 벗은 여자의 사진을 넣고 다녔다. 내게 열두살 때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가 다시 그 사진을 보여줄까 걱정이 되었다.

이것 좀 보렴.” 당시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며 내게 말했다. 나이가 많아봐야 열여덟 살은 넘지 않았을 법한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한 채 카메라를 향해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자는 드러난 가슴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도널드는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조언을 구하듯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람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물으며 웃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그때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 하고 말하며 비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일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은 그의 수표책을 숨기는 등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소비를 하며 할머니를 비난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면 할아버지는 절묘한 모습을 보이며 할머니를 충격에 빠뜨린 표정을 짓게 했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돈 걱정을 했고, 자신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며 두려워했다. 할아버지는 인생에서 단 한 푼도 가난했던 적이 없는데도 가난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문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잠잠해졌지만, 할머니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계속됐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퇴근한 할아버지는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옷과 양말, 신발만 신고 내려오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다들 잘 있냐? 잘 있다고? 그래. 잘 자, 여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어느 날 밤, 할머니와 내가 서재에 앉아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가와 물었다. “이봐 여보,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의 대답을 들은 후 할아버지는 서재를 나갔다. 몇 분 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물었다.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가 또 대답했다.

 

오빠는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내가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오빠에게 가한 마지막 일침은 내용이 약간 달랐다. “너희 아버지는 두 손에 하나씩 들고 비밀 동전 두 닢도 없이 죽었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돈뿐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자격 있는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추잡한 여자(Nasty Woman)’라 부르며 조롱한 일부터 뉴욕타임스소속 장애인 기자 서지 코발레스키(Serge Kovaleski)를 비하한 일에 이르기까지, 도널드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내뱉은 모든 발언 중 내 예상은 벗어난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을 나는 실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본 도널드의 태도들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 못생기고 뚱뚱하며 게으른 여자들을 자주 입에 올렸다. 자기보다 성공했다고 더 영향력 있는 남자들은 루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와 메리앤 고모, 엘리자베스 고모, 로버트 삼촌은 도널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으며 거들었다. 이렇듯 트럼프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동들이 흔하게 일어났곤 했다. 내가 놀란 점은 그가 그런 짓을 하고도 늘 처벌을 모면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그에게는 성장·학습·발달 능력이 없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반응을 절제하거나 정보를 받아들여 취합할 기술도 없다. 그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지지자 중 대다수가 유세 현장이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그와 말도 섞지 않았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욕구를 채워 넣어야 했는데,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채워도 갈 수 없는 독에 붓자마자 사라질 ‘칭찬’이라는 물을 계속해서 필요로 했다.

무엇도 도널드의 욕구를 완전하게 채우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나르시시즘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도널드는 단순히 유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허상을 믿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 또한 모를 리 없다. 그 때문에 타인의 지지와 인정을 통해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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