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교장 이강석, 행정실장 이강복, 두 사람은 쌍둥이였다. ······ 설립자 이사장이 이준범이고, 아마도 그 쌍둥이 아들들이 이강석과 이강복인 모양이었다.

- 전형적인 족벌사립학교




“이 사람 참 말 길게 해야 알아듣는구만. 원래는 큰 거 한 장인데 안사람이 서울 조카애의 친구라서 작은 거 다섯 장으로 하겠다는 거예요. 이달 안으로 행정실에 제출하세요. 수표는 안됩니다.”

- 교사채용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




말 끝에 수위는 빙그레 웃었다. 말투 자체는 공손했으나 강인호의 귀에는 ‘신경쓰지 말고 어서 꺼져, 인마’처럼 들렸다.

- 수위도 내막을 잘 알고 있으나 밝히지 않는다




“참 나, 어디서 이런 씹새가 굴러왔어? 너 지금 누구 훈계하냐? 경찰서에서까지 나온 거 못 봤어? 지금 학교가 발칵 뒤집혔는데 너 말고도 줄서 있는 선생들 많아!”

- 신규교사를 함부로 대하는 행정실장




“당신들 이렇게 날 해고할 순 없어!” ······ “밖의 저 사람 누굽니까? 왜 그러시는 거죠?” ······“내가 전에 충고하지 않았나요? 그거 알아서 뭐 하시려고요?”

- 학교의 비리를 알린 죄로 해고당한 교사, 영문을 몰라 묻는 신규교사, 동료교사가 잘려나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교사




“교장선생님은, 서간사도 아시다시피 이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점잖고 훌륭한 분인데, 어떻게 귀머거리 애 말 하나만 믿고 그분에게 경찰서로 갑시다, 합니까”

- 경찰도 한패




최수희 장학관은 성폭행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 “우리 소관이 아니네요”

- 교육청도 한패




시청 사회복지과 장과장은 ······ “학교 일인데 교육청으로 가셔야지”

- 시청도 한패




시의원 몇명이 성폭행으로 성추행으로

- 시의원도 한패




담임목사가 ······ “우리 성도 가운데 두 사람이 지금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 남자니까! 사춘기 가슴 빵빵한 아이들 보고 ······ 그럴 수 있는데!”

- 목사도 한패




“성폭행의 경우에는 외음부 외에도 다른 신체부위에 멍이나 상처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아 식별하기가 쉽습니다. ······ 다른 멍자국이나 신체의 상처는 전혀 없습니다.

- 의사도 한패




“유리 할머니도 합의서를 내셨대”

-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 피해자를 돕던 사람들에게 이제 가해자가 역공할 차례




판사의 선고가 끝나고 수화통역사가 마지막 숫자와 함께 집행유예라는 것을 알리자

- 변호사, 판사도 한패




보수언론들은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자신보다 몸집의 큰 남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한 그녀는 여기저기 타박상을 입고 눈이 찢어졌으며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어 상당한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버리는 보수언론도 한패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 불행한 결말에 대한 작가의 변론




사립학교 교장, 행정실장 형제가 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성폭행하여 학생들이 자살을 했는데도 그 학교 교사, 수위, 그 지역 경찰, 교육청, 시청, 시의원, 목사, 변호사, 판사, 언론이 다 한패로 비호한다. 물론 일부 교사, 시민단체, 목사, 진보언론, 인권위 등에서 피해학생을 돕지만 중과부적이다.




이 소설의 결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현실은 비극이지만 소설에서 희극이 되어 준다면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게 될텐데라는 불만이다. 하지만 작가는 단호하다. 예술에 비극이 많은 이유는 비극이 찜찜함, 즉 혼란을 주기 때문이고 그것이 진정한 희망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위해선 소설의 주인공은 독자들과 같은 소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9월 전국국어교사 강연회에서)




나는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사건을 겪고서 해직을 당했다가 복직했다. 그 과정을 소설로 묶어낼 마음이 있었으나 가해자들의 명예훼손 역공도 두렵고, 더 두려운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소설 속에서 제대로 형상화되지 않았다고 서운해 할까봐 감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가니>에는 내가 쓰고 싶었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다만 매우 중요한 플롯이 빠져있다. 그건 바로 노조의 힘으로 승리를 얻어낸다는 점이다.




작가가 <무진기행>에서 발상하여 <도가니>를 썼듯, 나도 훗날 이 <도가니>의 속편에 해당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앞서 <도가니>를 읽고 힘들어했던 많은 독자들이 위해 진실이 거짓을 이기는 결말을 만들어 주고 싶다. 다만, 소설 속에 형상화될 내 주변 사람들의 원망을 없애거나 피하는 방법에 대해 공지영씨의 특강을 먼저 듣고 나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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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배 2010-02-0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적이구나. 네가 겪은 어려운 일을 다시 돌아보며 공정택 같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같이 마음손 잡고 이 되먹지 않은 시대를 잘 살아가자꾸나.

신나 2010-04-1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승훈이형 여기까지 왕림하시다니 영광입니다. 감사감사

신나 2010-04-1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이 소설 우리학교 국어과에서 추천도서로 올렸는데 관리자가 허락을 안하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