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만든 50개 주 이야기 - 이름에 숨겨진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김동섭 지음 / 미래의창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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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릴 땐 선망의 대상이었고, 지금은 원망의 대상이다. 특히 트럼프가 전세계 나라를 향해 관세전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덕분에 미국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특히 미국 지명에 대해.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는데 이 책이 특히 어원에 관련해서는 최고로 자세한 것 같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저자께 감사.

 

 

<밑줄>

 

카르티에는 지금의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귀에 도착해 자신이 명명한 세인트로렌스강을 따라 일대를 탐험했다.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조우한 카르티에 일행은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마을을 가리키며 카나다Canada’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을 듣게 된다. 카르티에는 그 말이 원주민의 땅을 가리키는 말로 마을을 뜻한다. 드 라살은 강을 따라 내려가 미시시피강의 어귀에 도달한 후 자신이 탐험한 지역을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했다. 그는 귀국해 자신이 발견한 이 땅을 루이지애나라고 명명하고 루이 14세에게 바쳤다.

 

영국이 북미 대륙으로 진출해 개척한 최초의 식민지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바친 버지니아였다.

 

영국 국교회로부터 박해를 받던 분리파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영국을 떠날 것을 결심한다. 마침내 16208102명의 순례자가 영국의 플리머스 항을 떠났다. 약 두 달 후, 그들은 애초에 가기로 계획했던 버지니아보다 훨씬 북쪽 지방인 코드곶Cape Cod(현재의 매사추세츠주 연안)에 상륙했다. 그리고 그곳을 자신들이 떠나온 영국의 플리머스 항의 이름을 따라 플리머스라고 명명했다.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뉴욕주는 뉴욕이라는 세계 최대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방은 본래 아메리카 인디언들 중에서도 델라웨어족, 모히칸족, 이로쿼이족 같은 가장 강력한 부족들이 정착해서 살던 곳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지금의 맨해튼섬에도 정착해 요새를 짓고 도시를 세웠다. 이들은 인디언 추장과 협상해 24달러가량의 물품이 든 상자 두 개로 맨해튼 섬을 구입했다. 1625,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을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며 정착해갔다.

 

영국인들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내고 맨해튼을 차지한다. 당시 영국의 국왕 찰스 2세는 이 땅을 자신의 동생인 요크 공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바꾸어 불렀다.

 

맨해튼이라는 이름은 원래 이 지방에 살던 알곤킨족의 언어로 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현재 맨해튼에서 가장 유명한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과거 네덜란드인들과 인디언들 사이에 충돌이 잦던 지역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공격을 막기 위해 이곳에 휴전선처럼 섬을 가로지르는 울타리()를 세웠는데 이것이 월스트리트의 기원이다.

 

1660년에 영국에서 왕정이 복고되자 찰스 2세는 프랑스에서 본국으로 돌아온다. 찰스 2세는 망명 당시 자신을 지지해준 저지섬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으로 미국 동부에 새로 개척한 식민지의 이름을 뉴저지 식민지Province of New Jersey로 지었다.

 

뉴햄프셔주의 이름은 영국의 햄프셔 지방에서 유래했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사람들은 영국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프랑스의 샹플랭 같은 탐험가도 이 지방을 거쳐 갔다. 이주 초창기에는 영국인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뉴프랑스의 붕괴 이후 퀘벡에 살던 프랑스인들이 대거 이주했다. 그 결과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프랑스계 주민들의 비중이 높은 주이기도 하다.

미국의 북동부 지방에 최초로 정착한 사람들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코네티컷주도 1614년 네덜란드의 탐험가 아드리안 블록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블록은 이 지방을 탐험하고 알곤킨족의 언어로 코네티컷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바다로 흘러가는 큰 강 옆의 초원이라는 의미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스웨덴 사람들이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지금의 필라델피아 근처에 정착하고 이 지방을 뉴스웨덴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 지방은 네덜란드에 넘어갔다가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원래는 영국의 요크 공작이 이곳을 통치했으나, 1681년 찰스 2세가 윌리엄 펜Wiliam Penn에게 이 지방의 개척권을 허가해준다. 동부의 다른 주 이름은 당시 영국 군주들의 이름이나 지명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지만, 펜실베이니아는 식민지를 개척한 윌리엄 펜의 이름에 을 의미하는 라틴어 ‘Silva’ 그리고 을 의미하는 ‘-(n)ia’가 붙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필라델피아Philadelphia라는 말은 그리스어 사랑Phila’형제adelpphos’가 합쳐진 것으로 우애를 의미한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피츠버그다. 본래 이 도시는 프렌치-인디언전쟁 때 프랑스군이 전략적 요충지에 세운 뒤켄Duquesne 요새에서 생겨난 곳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이 요새의 이름을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윌리엄 피트William Pitt를 기념해 피츠버그로 바꿨다. 미국의 역사는 역시 승자의 역사임을 또 한번 볼 수 있다. 만약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뒤켄빌Duquesneville(뒤켄의 도시)이 되지 않았을까? 물론 발음은 영어식으로 듀케인빌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이름은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대학교에 여전히 남아 있다.

 

메릴랜드 식민지는 찰스 1세 때 건설되었기에 찰스 1세의 왕비인 앙리에트 마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마리Marie의 영어식 이름이 메리Mary.

 

볼티모어Baltimore는 영국의 조지 캘버트 볼티모어Goerge Calvert Baltimore 남작의 이름을 따라 1729년에 세워졌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최대 도시인 찰스턴Charleston찰스의 도시라는 뜻의 찰스 타운Charles Town’에서 따온 지명이다.

캐롤라이나Carolina찰스의 땅이라는 의미의 라틴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자면, 영국 왕의 이름에 등장하는 찰스Charles, 프랑스 왕실에 자주 보이는 샤를Charles, 스페인 왕실의 카를로스Carlos 그리고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카를Karl이라는 이름은 모두 프랑크 왕국(서기 5세기 말 서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서유럽 지역에 세운 왕국)의 황제였던 샤를마뉴 대제(독일명 카롤루스)’에서 나온 이름이다. 유럽의 군주들은 부강한 나라를 꿈꾸며 서로마 제국의 위대한 군주의 이름을 그들의 후손에 남겼다.

 

뉴잉글랜드는 미국 북동부의 6개 주, 즉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를 포함하는 지방이다. 이 지방을 통틀어 가장 큰 도시가 바로 매사추세츠의 주도인 보스턴이다. 매사추세츠주는 하버드대학교나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같은 교육 기관이 많은 주로도 유명하다. ‘매사추세츠라는 말은 원주민인 나바호족의 언어로 큰 산 옆의 초원혹은 큰 언덕 위에라는 뜻이다.

 

1732, 조지아에 정착한 영국인들은 당시 영국 왕 조지 2세에게 식민지 건설을 위한 헌장을 요구했다. 조지 2세는 독일에 뿌리를 둔 하노버 왕조 출신의 국왕이었다. 조지아주의 이름은 조지 2세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메인Maine이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프랑스의 노르망디 남쪽 지방인 멘Maine에서 왔다는 설이다. 프랑스계 주민들이 이 지방에 먼저 정착했고, 북쪽에는 프랑스 영토였던 퀘벡주가 가까이 있으니 설득력이 있다.

 

뉴올리언스 도시 이름은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랑스어 누벨오를레앙Nouvelle Oreléans을 영어로 옮긴 것이 뉴올리언스다

 

루이지애나의 주도인 배톤루지Baton Rouge에도 프랑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배톤루지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말뚝이라는 촉토우 인디언 말을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프랑스어로 배톤Baton’막대기’, ‘루지rouge’붉은을 뜻한다.

 

오하이오는 이로쿼이 부족의 언어로 좋은 강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 정착한 프랑스인들은 오하이오를 프랑스어로 본 리비에르Bonne Rivière(좋은 강)’라고 옮겼다. 주 이름 중에서 인디언들의 언어에서 온 것들은 대개 강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프랑스가 북미에서 영국을 제압했다면 오하이오주의 이름은 본 리비에르주가 될 수도 있었다.

 

오하이오주 남서부 도시, 신시내티의 이름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처음 정착민들이 들어왔을 때 이 도시의 이름은 로잔트빌Losantville이었다. 그런데 1790년에 로마의 정치인 킨키나투스Cincinnatus(기원전 519-430)의 이름을 본떠 신시내티로 도시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킨키나투스의 영어 발음이 신시나투스).

 

버몬트Vermont는 프랑스어로 푸른vert+mont’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발음으로 읽으면 베르몽이다.

 

버몬트의 주도 몬트필리어Montpelier는 인구가 불과 7천 명밖에 안 되는 곳으로, 미국의 주도 중에서 가장 작은 도시다. 몬트필리어라는 이름은 남프랑스의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왔다.

 

일리노이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인 일리노이족에서 왔다.

시카고Chicago는 본래 영어식 발음으로 읽으면 치카고라고 발음해야 한다. 하지만 이 도시의 이름을 정한 사람들이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발음대로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시카고의 본래 뜻은 원주민인 알곤킨족의 언어로 야생 양파가 많은 여우 서식지혹은 스컹크 냄새가 나는 고얀 곳이라는 뜻이다.

위스콘신이라는 이름은 알곤킨족의 언어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인 탐험가들은 이를 메스쿠싱Meskousing이라고 옮겨 적었고, 철자를 잘못 옮겨 위스콘신Ouisconsin이라고 기록했다. 지금 위스콘신의 철자는 이를 영어식으로 적은 것이다. 메스쿠싱이란 말은 마이애미 인디언의 말로 붉다라는 의미다. 이 지방의 소도시 위스콘신델스에 있는 붉은 사암을 보면 메스쿠싱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위스콘신주는 우리가 흔히 먹는 선데Sundae’ 혹은 선디아이스크림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스크림을 일요일 아이스크림Sunday Ice Cream’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신성한 주일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해서 마지막 철자 하나만 바꾸어 선데 아이스크림이 된 것이다.

 

미시간은 오지브와족의 언어로 큰 물혹은 큰 호수를 뜻하는 미시가마Mishigama에서 나왔다. 이 지방을 처음으로 탐험한 프랑스인들이 이를 미시간Michigan이라고 옮겼다. 만약 영국인들이 이 지방을 발견했다면 프랑스어의 ‘ch’는 영어의 ‘sh’와 같기 때문에 ‘Mishigan’이라고 옮겼을 것이다. 오대호 주변에 있는 주들 중에는 유난히 Mi’로 시작하는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원주민의 말에서 온 지명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정리해보자.

미시간Michigan: 큰 물

미주리Missouri: 구름이 낀 물의 색

미시시피Mississippi: 진흙탕 물

미네소타Minnesota: 하늘 빛을 띤 물

미시간주는 엄청난 면적의 오대호와 맞닿아 있다. 위의 지명에서 공통분모를 보면 Mi’가 아메리카 인디언 언어로 을 뜻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고대 고구려어에서도 물을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우리 조상과 북미 인디언들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시간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Detroit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이름은 1701년 프랑스의 탐험가인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악이 세운 데트루아Détroit 요새에서 나왔다. ‘데트루아는 프랑스어로 호수와 강이 교차하는 해협을 의미하며, 이를 영어로 읽으면 디트로이트가 된다.

 

캐딜락Cadillac’이라는 미국의 고급 자동차 브랜드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자동차의 이름이 바로 디트로이트를 세운 카디악(영어식 발음으로는 캐딜락)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아이오와주의 이름은 아이오와족의 이름과 아이오와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이오와주의 주도이자 가장 큰 도시는 디모인Des Moines이다. 영어라기에는 발음이 생소하고,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들은 이 도시의 이름이 수도사들을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디모인을 프랑스어로 읽으면 데 무안이다. 중부 지방을 개척하고 도시를 세운 사람들이 프랑스인이므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미시시피라는 이름은 원주민인 오지브웨이족의 말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주에서 가장 큰 도시 잭슨은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서 따온 이름이다.

 

앨라배마라는 이름은 크리크족의 한 부족인 앨라배마족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칸소주는 철자와 발음이 특이하다. ‘Arkansas’를 발음하면 알캔자스가 될 것 같은데 발음은 아칸소다. 사실 ‘Arkansas(아칸소)’‘Kansas(캔자스)’가 인접한 지방인 것처럼 명칭의 뿌리도 동일하다. 아칸소는 캔사족의 말로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미시시피강의 상류에는 캔자스주가 있고, 하류에는 아칸소주가 있으니 지명과 지역이 일치한다. 아칸소에서 마지막 ‘s’를 발음하지 않는 것은 프랑스어에서 마지막 자음을 발음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음이 어려운 까닭에 아칸소의 주법에는 아칸소라는 발음을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50개 주 중에서 유일하게 인디언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인디애나주는 이렇게 탄생했다. 물론 인디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개척한 새로운 땅이라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인디애나 지방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 로베르 드 라살이었다.

 

초기에 이 지방을 개척한 프랑스인들의 흔적도 몇몇 대학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대로 유명한 퍼듀Purdue대학교에서 퍼듀는 중세 프랑스어로 신에게Pour Dieu, For God’라는 의미다. 주로 신에게 맹세할 때 쓰는 말로, 프랑스어 발음은 푸르디외. 그리고 대학 미식축구로 유명한 가톨릭 계열의 노터데임Notre Dame대학교의 이름은 성모마리아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노트르담Notre Dame, Our Lady’에서 나왔다

 

켄터키라는 이름은 원주민 인디언들의 말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그 유래는 여러가지인데, 어떤 이들은 이로쿼이족의 언어로 내일의 땅을 의미하는 ‘Ken-tah-ten’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며, 또 다른 쪽에서는 피의 강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버번Bourbon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의 부르봉을 영어로 읽은 것인데, 독립전쟁 당시 미국을 도와준 프랑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켄터키주의 카운티 하나를 버번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 지역에서 난 위스키를 버번위스키라 부르게 됐다.

 

켄터키주와 프랑스의 인연은 도시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켄터키주에서 가장 큰 도시 루이빌Louisville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이다. 미국 중남부 지방에서 ‘-ville’로 끝나는 이름의 도시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식민지 개척 초기에는 없었던 이름이다. 독립전쟁 이후, 특히 중남부 지방에서 ‘-ville’이라는 이름의 도시들이 많이 생겨났다. 프랑스어로 도시를 의미하는 이 말은 독립전쟁 때 군대를 파견해 미국을 도운 프랑스에 대한 동경과 우호의 상징으로 많은 지역에서 사용됐다. 테네시주의 네시빌Nashville, 아칸소주의 파이에트빌Fayetteville(독립전쟁 때 프랑스군의 사령관이었던 라파이에트La Fayette의 이름에서 왔다), 플로리다의 잭슨빌Jacksonville 같은 중남부 도시들이 그 예다.

 

미네소타의 주명은 원주민인 다코타족의 언어로 흰 거품 물혹은 하늘 빛을 띤 물이라는 뜻이다. 1만 개의 호수가 있는 이 지방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또한 미네소타주의 북부에는 북미 최대 강인 미시시피강의 발원지가 있다.

 

미주리강의 이름은 강 근처에 살던 미주리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미주리족은 자신들의 언어로 우에메수리타Ouemessourita’라고 불렸는데, 이는 카누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미네소타, 미시시피 같은 주명 속에 들어 있는 mi’가 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미주리주의 이름에도 물과 관련된 카누라는 뜻이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주리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세인트루이스Saint Louis. 세인트루이스는 13세기에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9세의 이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네브래스카라는 발음에서부터 아메리카 인디언들 언어의 느낌이 난다. 네브래스카는 주 전체를 흐르는 플랫강을 부르는 원주민들의 말에서 유래했는데, 그 말의 뜻은 평평한 강이다. 다른 중부의 주들처럼 이 지방도 최초의 탐험가는 프랑스인들이었고, 그들은 이 땅을 루이지애나에 편입시켰다. 네브래스카는 남북전쟁 당시에는 주로 승격되지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 다음 주로 승격됐다. 그래서 링컨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주도의 이름을 링컨으로 정했다.

 

미국에는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남북과 동서로 분리된 주가 6개 있다. 동부의 버지니아주와 웨스트버지니아주,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중부의 사우스다코타와 노스다코타가 그런 주들이다. 여기서 다룰 사우스다코타주는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주다. 다코타주는 1889112, 남북으로 분리되어 같은 날 미합중국의 일원이 됐다. 다코타라는 말은 원주민의 언어로 우리는 친구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지방에는 7개의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전쟁을 하지 말자는 서약을 맺었다. 그러나 훗날 이 지역에서 이주민과 원주민 간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 ‘우리는 친구라는 지명이 슬프고도 모순되게 느껴진다.

 

촉토족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오클라호마주는 20세기 초에 합중국에 들어온 막내 주에 속한다.

 

테네시는 이 지방에 살던 체로키족의 언어로 마을을 뜻하는 테나시Tenasi’에서 나온 말이다.

 

테네시주의 멤피스Memphis는 기원전 2200년까지 이집트 고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멤피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이집트인들은 이를 하얀 담이라는 뜻의 이네브 헤지Ineb Hedj’라고 불렀다. 이후 신왕국 시대에 다시 이곳이 이집트의 수도가 되면서 오래 가면서 변하지 않는이라는 뜻의 멘 네페르Men nefer’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 명칭에서 그리스어 멤피스가 나왔다.

 

애리조나라는 이름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주로 스페인어와 관련된 것이 많다. 스페인어 황무지Zona arida’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고, 북부 스페인의 소수어인 바스크어로 좋은 참나무Aritz ona’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스페인과 멕시코를 거쳐 미국의 영토로 편입된 애리조나주는 48번째로 미연방에 합류한 주다. 알래스카주(49번째)와 하와이주(50번째)를 제외하면 가장 늦게 가입했다.

 

플로리다 식민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식민지다. 1513년 스페인의 탐험가 후안 폰세 데 레온이 이 지방을 발견하고 이곳을 플로리다라고 불렀다. 플로리다는 꽃의 축제를 의미하는 스페인어 파스쿠아 플로리다Pascua Florida’에서 나왔다. 스페인어에서 파스쿠아Pascua는 부활절을 의미하며, 플로리다Florida는 꽃을 뜻하는 플로라Flora에서 나온 말이다.

 

플로리다의 최대 도시 마이애미Miami는 인디언 말로 부드러운 물이라는 뜻이다.

 

광산업 로비스트인 조지 윌링이 광산 개발에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쇼쇼니족의 말 ‘E Dah Hoe(에 다 호)’를 가지고 와 이 말의 뜻이 보석의 땅이라고 퍼뜨리고 다녔다. 하지만 이곳에서 유용한 광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윌링의 실망도 컸다. 이미 아이다호라는 말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흘러 이 지역에서 정말로 광물이 발견되었고, 지금은 아아디호에서 금, , 구리 등 많은 광물이 채굴되고 있다. 아이다호의 주도이자 최대 도시인 보이시Boise는 프랑스어로 을 의미하는 ‘Bois(부아)’에서 온 말이다.

 

몬태나는 스페인어로 을 의미한다.

 

네바다라는 말은 라틴어의 ‘Nivea’에서 온 말로, ‘눈으로 덮인이라는 뜻의 스페인어가 그 어원이다.

 

뉴멕시코의 주도 산타페는 스페인어로 신성한 믿음이라는 뜻이다.

 

포틀랜드 남쪽에는 주도 세일럼Salem이 있는데, 세일럼은 히브리어로 평화를 뜻하는 샬롬에서 온 말이다.

 

텍사스는 이 지방의 원주민인 카도족의 말로 친구를 의미하는 타이샤를 스페인어로 옮긴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을 불러준 친구의 땅텍사스를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합병했다. 그리고 주의 공식 모토를 우정으로 정했다. 친구의 땅을 빼앗았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고 싶다는 의미를 내비치다니 아이러니하다.

 

텍사스주의 최대 도시 휴스턴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다음으로 큰 도시다. 휴스턴은 텍사스 개척의 영웅 샘 휴스턴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샘 휴스턴은 텍사스 공화국 시절에 대통령을 지낸 인물로, 1836년 텍사스 독립전쟁에서 멕시코의 산타 안나 장군을 생포하여 텍사스의 독립을 받아냈다. 텍사스 독립의 아버지로는 스티븐 오스틴도 빼놓을 수 없다. 오스틴은 미주리에서 300가구를 이끌고 텍사스에 정착한 텍사스 개척의 아버지다. 그의 이름은 텍사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오스틴시에 남아있다.

 

유타Utah라는 말은 유트Ute 인디언들의 말로 산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수도에는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런데 워싱턴이라는 이름은 수도 외에도 무려 미국의 88개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지명이라 할 수 있다.

 

워싱턴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시애틀이다. 이 지명은 위대한 인디언 추장인 시애틀의 이름에서 나왔다.

 

미국 50개 주의 모양을 보면 중동부의 주들은 강이나 산맥 같은 지형으로 주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확정되었지만, 서부는 경계가 직선으로 된 주들이 많다. 콜로라도주와 이번에 소개하는 와이오밍주가 완벽한 직사각형의 모양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산악 지대와 드넓은 초원 지대가 많다는 말이다. 와이오밍이란 말은 알곤킨족의 언어로 대초원의 땅을 의미한다. 주도이자 와이오밍 최대 도시 샤이엔Cheyenne도 이 지방의 원주민 샤이엔족의 이름에서 나왔다.

 

캘리포니아는 원래 뉴스페인이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캘리포니아는 스페인의 한 소설에 등장하는 섬의 이름이다. 16세기 스페인의 소설가 가르시 로드리게즈 데 몬탈보의 작품 에스플란디안의 모험에는 가공의 섬 칼라피아가 나온다. 칼라피아 왕비가 통치하던 이 섬은 금과 진주가 많고 검은 피부의 미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소설의 내용대로 된 것일까? 실제로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황금이 발견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황금을 찾아 서부로 달려갔다.

 

콜로라도는 스페인어로 붉은 빛을 띠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알래스카는 에스키모족인 알류트족의 언어로 섬이 아닌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에스키모라 부르지만, 막상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는 의미의 이누이트라고 부른다.

 

하와이Hawaii라는 이름은 이 지방의 원주민 언어로 고향을 뜻하는 오화히Owhyhee’를 영어로 옮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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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과한데 만족을 모르는 - 트럼프에 관한 가장 치명적이고 은밀한 정신분석 보고서
메리 트럼프 지음, 문수혜.조율리 옮김 / 다산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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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계가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난리다. 우리 나라도 윤석렬 때문에 난리를 치르고 있는데, 비슷한 점이 있다.

 

윤석렬의 아버지는 윤기중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회 회원으로 선출될 정도로 사회 저명인사이다. 그러나 아들 윤석렬을 대학생 때까지 고무 호스로 체벌했을 정도로 엄했다. 또한 지인인 이종찬 광복회장에게 '우리 아들이 뭐 모르고 자라서 좀 고집이 세고 자기주장에 너무 집착하는 성질이 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꼭 좀 충고를 해 달라'라고 죽기 전에 당부했다고 하니, 윤석렬은 내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트럼프 역시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병약했고, 아버지는 일밖에 몰랐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자가 되길 가르쳤고 그 과정에서 실패한 큰 아들(트럼프의 형)은 가혹하게 버림 받고 죽었다.

 

그 결과 트럼프는 평생을 승자인 척하며 살았다. 앞머리 숱이 없어서 옆머리로 가린 것처럼. 물론 그 과정에선 숱한 부정이 있었다. 심지어 SAT도 돈을 주고 대리시험을 치렀으니. 2번이나 대통령이 된 그는 현재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으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본인이 조카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행동이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가 말년에 아무리 치매가 들었다고 하지만 손녀인 메리 트럼프에게 한 성추행적 행동들이 근거이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우리 속담처럼, 육아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애 하나 잘못 키우면 지구가 멸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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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 걸린 할머니가 감정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자리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연히 아이들의 주 양육자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잘 돌봤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마치 아이들은 날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잘 자랄 수 있다고 믿었던 듯,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주 6일을 트럼프매니지먼트에서 일만 하며 보냈다.

프레드의 무관심 속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아이들은 도널드와 로버트였다. 영유아가 보이는 일종의 애착행동에는 양육자의 긍정적이고 평안한 반응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가 미소 지으면 양육자도 미소 지어야 하고, 아이가 울면 양육자는 즉시 아이를 안아줘야 한다. 아마도 프레드는 집안 상황이 정상적이었더라도 그러한 애정 표현의 필요하다는 사실을 귀찮게 여겼을 것이다.

도널드와 로버트는 애정에 굶주렸다.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뿐아니라 그의 부재에 큰 괴로움을 느꼈다. 그러나 아들들의 괴로움이 커갈수록 프레드는 이들을 더욱 멀리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고, 자식들이 정서적으로 굶주려하는 모습을 귀찮아했다. 이러한 태도는 가족들 사이에 위험한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서 부모에게 위로와 안정을 이끌어내도록 설계된 두 아이의 본능적인 행동이 아버지의 분노와 무관심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도널드와 로버트에게 애정을 필요로 하는 일은 곧 굴욕, 체념, 절망의 동의어가 됐다. 프레드는 집에 있을 때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식이 어떻게 해서든 요구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다.

 

일반적으로 가정의 규칙은 사회의 규칙을 반영하므로,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가정에서의 규칙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장난감을 빼앗으면 안 되고, 친구를 때리거나 놀려서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도널드는 이 모든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집에서 배운 규칙(최소한 남자들에게 해당되었던 규칙)어떻게 해서든 강해져야 한다’, ‘거짓말은 해도 된다’,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건 나약한 것이다등이었는데, 이는 (당연히) 학교에서 맞닥뜨린 규칙과 충돌했다. 세상을 향한 프레드의 기본 신념은 승자는 오직 한 명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패자였으며, 이는 공유하는 능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생각이었다. 도널드는 프레드를 통해 아버지의 규칙을 따르지 못하면 가혹할 뿐 아니라 때로는 공개적인 굴욕을 당하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권위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계속 아버지의 규칙을 따랐다. 도널드가 이해하는 옳은 것그른 것은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규칙과 당연히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도널드는 위험을 피하고자 시험을 잘 치는 똑똑한 아이 조 샤피로(Joe Shapiro)에게 SAT를 대신 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당시에는 신문등에 사진이 붙어 있지도 않았고 신분증이 기록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쉽게 대리시험을 칠 수 있었다. 한 번도 돈이 모자랄 적이 없었던 도널드는 그의 몫을 두둑이 떼어주었다.

 

맨션의 모든 세간에는 금박이 입혀져 있었다. 거실의 규모는 약167제곱미터에 높이는 약 13미터에 달했다. 맨션의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한 대로 화려했지만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밤 저녁식사 자리에는 나, 도널드, 말라뿐이었다

나는 수영복에 반바지만 입은 채 점심식사를 위해 테라스로 향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골프복을 입고 있던 도널드가 이전에는 한 번도 나를 본 적 없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세상에, 메리, 가슴 죽이는데!”

여보!” 말라가 짐짓 경악한 척하며 도널드의 팔을 살짝 때렸다.

 

내가 서재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는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녕.” 할아버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더니 지갑을 꺼냈다. 할아버지의 지갑은 너무 두꺼워서 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지갑 속에 반쯤 벗은 여자의 사진을 넣고 다녔다. 내게 열두살 때 그랬던 것처럼 할아버지가 다시 그 사진을 보여줄까 걱정이 되었다.

이것 좀 보렴.” 당시 할아버지가 지갑에서 사진을 꺼내며 내게 말했다. 나이가 많아봐야 열여덟 살은 넘지 않았을 법한 여자가

짙은 화장을 한 채 카메라를 향해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자는 드러난 가슴을 손으로 받치고 있었다. 도널드는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조언을 구하듯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할아버지는 그저 사람을 힐끗거릴 뿐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물으며 웃었다. 할아버지의 웃음소리를 그때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마 할아버지는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즐거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 하고 말하며 비웃음을 짓는 게 전부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일이 할머니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할아버지의 이상한 행동들은 그의 수표책을 숨기는 등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소비를 하며 할머니를 비난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하면 할아버지는 절묘한 모습을 보이며 할머니를 충격에 빠뜨린 표정을 짓게 했다.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돈 걱정을 했고, 자신의 재산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며 두려워했다. 할아버지는 인생에서 단 한 푼도 가난했던 적이 없는데도 가난에 집착하게 되었다. 가난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문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다시 잠잠해졌지만, 할머니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계속됐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퇴근한 할아버지는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은 후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왔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옷과 양말, 신발만 신고 내려오는 경우가 잦았다는 것이다. “다들 잘 있냐? 잘 있다고? 그래. 잘 자, 여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몇 분 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어느 날 밤, 할머니와 내가 서재에 앉아 있을 때 할아버지가 다가와 물었다. “이봐 여보,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의 대답을 들은 후 할아버지는 서재를 나갔다. 몇 분 뒤 할아버지는 다시 돌아와 물었다. “저녁은 뭐 먹나?” 할머니가 또 대답했다.

 

오빠는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둘의 대화는 내가 할머니와 나눈 이야기와 거의 비슷했다. 그래도 할머니가 오빠에게 가한 마지막 일침은 내용이 약간 달랐다. “너희 아버지는 두 손에 하나씩 들고 비밀 동전 두 닢도 없이 죽었어.”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돈뿐이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자격 있는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추잡한 여자(Nasty Woman)’라 부르며 조롱한 일부터 뉴욕타임스소속 장애인 기자 서지 코발레스키(Serge Kovaleski)를 비하한 일에 이르기까지, 도널드가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내뱉은 모든 발언 중 내 예상은 벗어난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을 나는 실제 가족 식사 자리에서 본 도널드의 태도들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 못생기고 뚱뚱하며 게으른 여자들을 자주 입에 올렸다. 자기보다 성공했다고 더 영향력 있는 남자들은 루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와 메리앤 고모, 엘리자베스 고모, 로버트 삼촌은 도널드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으며 거들었다. 이렇듯 트럼프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동들이 흔하게 일어났곤 했다. 내가 놀란 점은 그가 그런 짓을 하고도 늘 처벌을 모면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널드는 세 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그에게는 성장·학습·발달 능력이 없고,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반응을 절제하거나 정보를 받아들여 취합할 기술도 없다. 그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지지자 중 대다수가 유세 현장이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그와 말도 섞지 않았을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욕구를 채워 넣어야 했는데,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아무리 채워도 갈 수 없는 독에 붓자마자 사라질 ‘칭찬’이라는 물을 계속해서 필요로 했다.

무엇도 도널드의 욕구를 완전하게 채우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는 일반적인 나르시시즘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도널드는 단순히 유약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허상을 믿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허상이라는 것 또한 모를 리 없다. 그 때문에 타인의 지지와 인정을 통해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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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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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살 것인가?’로 검색하면, 315건이 나온다. 판매량순으로 정렬하면,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1위이다. 그다음이 2위가 유현준의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315권의 책을 다 봐도 대부분 ‘how to live’ 즉 인생론이고, 간혹 ‘where to live’ 즉 주거론이지, ‘how to buy’ 즉 구매법에 대한 책은 한 권도 없다.


쇼핑중독자를 위한 책은 없나? 아니 굳이 중독이 아니더라도 우리 일생, 우리 일일의 상당 부분이 무엇을 사는 데 시간과 돈을 들이는데 말이다.


여하튼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50대의 필자가 이제껏 살아온 인생과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가 50대면 공감할 것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이빨 빠지고 눈 침침해진다는 대목에서ㅠ.


필자의 인생론은 거칠게 정리하자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되, 이왕이면 타인의 복지에도 관심을 가지란 거다.


백퍼만땅공감

 

다만, 좀 안타까운 구석이 있다. 차라리 문재인 대신 유시민이 출마했다면? 최소한 이낙연과 윤석렬 같은 사람은 안 나오지 않았을까? 문재인은 64세에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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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리더십 세대교체는 사회적 정치적 현상이지만 그 배후에는 생물학적 필연성이 놓여 있다. 조용하고 순조로운 교체든 시끄럽고 폭력적인 변화든 어쨌든 세대교체는 반드시 일어난다. 물론 꼭 예순다섯 살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다. 그러니 나이가 너무 많이 들면 남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일과 자리는 피하는 게 현명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국회의원이나 장관, 기업의 최고 경영자도 사양하는 게 좋다. 좋은 일 하자고 나섰다가 외려 큰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일시적으로 15퍼센트 정도의 대선 여론 조사 지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선 예비 후보로서의 정치 행위를 일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지지율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 잠시 내 이름으로 가등기된 것일 뿐이기에 자격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무현재단 문재인 이사장은 내게 민주당과 합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라고 간곡하게 권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에게 정치 참여와 대통령 출마를 권했다.

 

나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법을 좋아한다. 생물학적 접근법에 따르면 진보주의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다. 이러한 의미의 진보주의자는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또는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한다. 생물학적으로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진화가 인간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가족과 친척이 아닌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을 자발적으로 내놓는 것은 기나긴 생물학적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새롭게 나타난 행동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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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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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 판단은 필요악

 

분별(分別)과 판단(判斷)은 좋은 거다. 이게 있으면 똑똑한 거고, 없으면 멍청한 거니까. 그런데 왜 그럴까? 단어를 살피면 이들의 공통점은 가르고[] 자르는[] 거다. 즉 칼[]과 도끼[]로 잘라내는 것을 왜 좋다고, 똑똑하다고 생각했을까?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말이 있다. 나쁜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이게 본능이고 좋은 거다. 즉 달면 대개 이로운 거니 삼켜야 하고, 쓰면 대개 해로운 거니 뱉어야 한다. 그게 자기 보호 본능이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맛 보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슬슬 똥과 된장을 굳이 맛보지 않고도 판단하기 시작한 거다.

 

그런데 이처럼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간접 경험을 통해, 즉 고정관념과 편견에 따라 사물을, 인간을 분리, 구분, 분별, 판단하다보니 또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바로 잘못된 구분이다. 예를 들어, 다른 인종끼리 결혼하지 말라. 동성동본끼리 결혼하지 마라. 동성끼리 연애도 결혼도 안된다는 구분이다.


약자를 배려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장애인차, 경차, 친환경 전용주차 구역은 필요한 분별이다. 한편 우리 학교는 설립자의 가족들만 주차를 하는 '온리패밀리존'이 있다. 강자를 배려(?)하는 분별은 불필요를 넘어 불법이다.   

 

서로 가르는 자르는 분별과 판단은 최소일수록 선이고, 최대일수록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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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화된 정보를 스테레오타입, 또는 고정관념이라고 부른다. 스테레오타입은 1700년대에 신문 지면과 같은 한 페이지를 통째로 찍어내는 금속 인쇄판을 지칭하는 단어로 처음 등장했다. 1922년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이 그의 책 여론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리프먼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각인된 그림을 가지고 경험하지 않은 세상을 그린다고 생각했다. 바깥세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폭은 좁다. 그런데 스테레오타입은 효율적으로 무언가 아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여론을 형성한다. 문제는 이렇게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다는 것이다. 일부 특징을 과잉 일반화하는 결과, 즉 편견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볼 때 즐거워한다고 했다. 웃음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을 우월성이론이라고 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만 하면 공정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된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준ㅇ르 적용하는 것이 도리어 누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간접차별의 예들이다. 내가 유학을 한 학교에서는 비영어권에서 온 학생들에게 입학 후 일정 기간 동안 시험시간을 더 주는 정책이 있었다.

 

능력은 한가지가 아니며 그 사람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특정한 평가기준으로 단정지어 판단해버리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첫 차별의 경험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편애다.

 

카페나 식당에서 영유아와 아동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키즈존논쟁이 한참이더니, 중고등학생의 입장을 거부하는 노스쿨존도 나타났다. ‘노장애인존은 어떤가? 한 식당에서는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장에인에게 자리가 없다며 입장을 거부했다.

 

1959년 미국의 한 판사는 백인과 유색인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종을 백인, 흑인, 황인, 말레이인, 홍인으로 창조하였고, 서로 다른 대륙에 살게 하였다. 그의 섭리를 방해하지 않고서는 그런 결혼의 이유가 없다. 그가 인종을 구분했다는 사실이, 인종을 혼합할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1958년 민법의 제정과 함께 등장한 동성동본 금혼규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한 채 가정을 꾸려야 했고 연인들이 이를 비관하여 자살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1997년이 되어서야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사라진다.

 

동성동본 금혼의 시대를 지나, 오늘날에는 동성결혼 인정하면 가정, 사회, 국가가 무너진다며 동성 간의 결혼을 반대하는 주장이 거세다. 2001년 최초로 동성결혼을 인정한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1,200~1,400쌍의 동성커플이 결혼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무너지지않았으며, 핀란드/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등 역시 동성결혼이 인정되는 다른 나라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의 하나로 건재하다.

 

선거와 입법 등의 절차는 대개 다수결의 원칙을 택하는데, 이 의결 방식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다수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려지는 결정이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 복종하는 태도는 민주주의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복종은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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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주말 집짓기 - 한 칸짜리 작은 집을 지으며 건축의 세계를 탐구하다
마이클 폴란 지음, 배경린 옮김, 나기운 감수 / 펜연필독약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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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 지어진 소로우의 엉성한 오두막집과 그것에 대한 소로의 찬양은 후대 미국 건축에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자연을 향한 투명성과 탁트인 공간의 추구가 바로 그가 남긴 유산이다.”

 

소로가 매사추세츠주 월든 호숫가에서 직접 지은 오두막은 10피트 × 15피트 (3m × 4.5m), 높이 약 8피트(2.4m)였고, 재활용해서 지었다고 한다.

 

한편 폴란이 설계와 시공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조수 정도로 참여하여 지은 집은, 9×12피트 (2.7m × 3.6m), 높이 약 9피트(2.7m)의 오두막이다.

 

비슷한 크기이고, 구조도 경량목구조로 비슷하다. 다만 소로는 월든이란 책에서 집을 짓는 과정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고, 폴란은 주말 집짓기란 책에서 월든보다는 더 집짓기에 치중한 이야기를 한 점이 다르다.

 

내 꿈도 비슷하다. 4.8m × 2.4m × 2.4m 크기의 경량목구조 오두막을 내 손으로 지으면서 글을 쓰고 싶은 거다.

 

경골 구조는 나무를 이용하는 기술이긴 하지만 기계 시대의 산물이다. 일정한 규격의 목재를 언제든지 생산해 낼 수 있는 증기동력 제재소와 공장제 못의 발명 없이는 상용화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경골 구조 건축물은 시카고에 지어진 성 마리아 성당이다. 1833년 세 명의 인부가 석 달간 작업하여 완성한 건물이다

 

집을 짓는 방법은 참 다양하지만 혼자 지어도 크게 어렵지 않게 제법 괜찮은 집을 짓을 수 있게 해주는 공법이 경량목구조이다. 콘크리트 기초와 아스팔트슁글 지붕마감만 제외하면 모든 걸 나무로 다 지을 수 있다. 각재로 기둥을 세우고, 합판으로 벽을 붙이고. 이 재미있고 보람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땅만 있으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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