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만큼 성공한다 - 김정운교수가 제안하는 주5일시대 일과 놀이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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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다소 고민스런 질문에 쉽게 답하게 해주는, 쉬운 책이다.
그러나 쉽다고 우습다고 가볍다고 얕보는 게 아니다. 
분명 내공이 있는 책이다.
제목의 '성공'은 물론 미끼상품이다. 
원래 제목은 '노는 만큼 행복하다'일 것이다. 
김정운은 이렇게 제목으로 사기(?)를 친다.
최근작도 그렇다. ㅋㅋ  

 

<인센티브 위에 자존심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의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라고 생각할 때,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게 된다. ······




직장에서 오직 월급과 인센티브만으로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있다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보상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질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가 지나면 웬만한 보상에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다. 이런 직원들에게 괘씸하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경영자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직원들은 자존심을 버린 대신에 보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보상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바로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으려 시도한다. ······




20세기적 기업 경영의 핵심은 다양한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의 노동의욕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더 높은 보상을 찾아 다른 직장으로 떠난다. 결국 뛰어난 인재들을 붙잡으려면 갈수록 높은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돈으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늘어난다. ······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개인주의형 인간들과 가족주의형 인간들이 늘어나고 경영자들이 원하는 조직충성형 인간들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인센티브 제도만으로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경영자들이 대부분이다. ······




이렇게 변화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지 못하는 기업 경영은 실패할 수 없다. 더 이상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닭은 서구의 앞서가는 기업들이 채택한 새로운 제도가 있다. ‘Work-Life Balance Program(WLB프로그램)’이다. 이것은 직원들의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과 조화를 배려하려는 새로운 인재 관리 전략이다. 우선 WLB프로그램은 개인의 일과 가족의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갖가지 문제를 유연근무제, 육아휴가, 변동휴가제 등을 통해 해결하려 시도한다. ······




무엇보다도 직원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들은 회사를 어떻게 하면 이용할 수 있을까에만 골몰한다. 당연하다. 회사 또한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이용할 수 있을까만 연구하기 때문이다. 서로 이렇게 자갈 굴러가는 소리 나도록 머리싸움을 하는 회사의 미래는 없다.







<감성적으로 경영하라>




감정을 억압하는 기업 경영은 뒤처지게 되어 있다.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일찍 죽을 뿐만 아니라 사업도 망한다는 이야기다. 합리성이 보편화된 오늘날, 누구나 추구하는 합리적 경영 방식만으로는 남들과 차별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들 같은 합리적 구조로 경쟁한다면 자본 투자가 많은 기업이 승리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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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복잡하지 않다 - 골리앗 전사 이갑용의 노동운동 이야기
이갑용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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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교과서가 있다면  
회사에는 이 책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필독을 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정문을 통과하려면 경비들과 제일 먼저 부딪히게 된다. 대부분 해병대나 특전사 출신들이어서 덩치도 크고 자기들끼리 계급 관계도 뚜렷했다. 노동자들은 이들을 두려워했다. 회사의 기물을 지키는 일보다 노동자 감시가 이들의 주된 임무였다. 정문에서 ‘바리깡’을 들고,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머리를 검사해서 목과 귀를 조금이라도 덮으면 가차없이 그 자리에서 밀어버렸다. ······ 경비들은 머리감독뿐만 아니라 복장검사, 출퇴근체크, 출입증 확인, 퇴근시 몸수색 등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권한이 있었다. ······ 말로는 날마다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하면서 회사는 ‘가족’인 노동자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정해진 작업복에 안전화로 군인을 만들어서 출퇴근을 시켰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군대’였다. 




제복을 입히는 데에는 목적이 있다. 학생은 교복을 입어야 단정하고 학생답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른들이 볼 때 그렇다. 아이들에게 학생이란 정체성을 고정시켜서 ‘학생이란 이래야 한다’는 ‘어른들’의 규율을 더 효과적으로 강제하기 위해서다. 다수에게 고정된 일체감을 느끼게 할 때 복종은 더 쉬운 법이다. 군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혈기왕성한 나이의 젊은 남성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똑같은 머리 모양, 똑같은 옷, 똑같은 자세, 똑같은 훈련을 시키는 목적은 오로지 ‘복종’을 위해서다. 국가에 순응하는 집단을 만드는 것, 지배 권력에 대항하지 않도록 체질적으로 복종을 내면화시키는 것이 군대의 목적이다. 자본은 일터를 군대화시켜, 노동자들이 군대에서 강요당했던 복종과 충성을 다시 한 번 이용하고자 했다. ‘산업 전사’, ‘산업 역군’이란 말은 결코 노동자들을 칭송하는 말이 아니다. 통일된 복장으로 지시에 순종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심히 일만 하는 젊고 힘센 현장판 군인, 자본가들이 원한 건 그런 ‘산업 전사’들이었다.




현대중공업의 슬로건은 ‘가족’이었다. 정문에 들어서면 큰 글씨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표어. “사원을 가족처럼, 회사를 내 집처럼” 자본가들은 가족이란 말을 참 좋아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아무런 의심 없이 통용되듯,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어떤 불순물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한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혈연 공동체, 가족은 그래서 어떤 문제도 일어나선 안 되는 청정 지대여야 하고, 누구도 의심하거나 깨트리면 안되는 집단이다. 노동자 ‘자식’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회사라는 ‘부모’에게, 불만을 표하거나 대드는 노동자는 용납할 수 없는 ‘패륜아’가 되었다. 현대중공업이 가족이라면 날마다 가정 폭력이 넘치고, 자식들이 죽어나가는,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일만 하는 공포 영화 속 ‘조용한 가족’일 따름이다. 문제는 이 ‘가족 신화’를 자본이 너무도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 어떤 자본도 우리는 노동자들과 ‘쿨’하게 서로 노동력과 임금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불평등한 관계가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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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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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 읽어 보셨나요? 한두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얇은 책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방법을 쉽게 풀어 쓴 책이지요. 물론 가정, 학급, 학교를 운영하는 부모, 담임교사, 교장선생님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노사간인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은 조그만 공장의 사장이고, 동생은 공장의 세 노동자 가운데 한명입니다. 그런데 노사간의 불화로 형제간의 우애마저 깨질 위기가 닥쳐, 급기야 가족들이 노사갈등의 현장에 중재의 임무를 띠고 급파되었습니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니, 각각 일리가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보기엔 노동자가 미운 겁니다. 일자리, 잠자리를 줬는데 그 은혜에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자도 사용자에게 서운한 게 많았습니다. 공개적으로 핀잔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차라리 봉급이 적은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고 싶은 겁니다.




중재자들이 내린 처방은 사용자에게 바로 이 책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선물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노동자의 잘못도 있지만 사용자가 바뀌면 노동자도 바뀝니다. 그건 마치 문제아이를 고치기 위해선 먼저 문제부모를 고쳐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첨부 : 책 속의 좋은 구절들)

- 범고래 샴이 가르쳐준 지혜




사람들을 생산적이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회사나 가정에서는 정반대의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며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사기는 계속 저하된다. 많은 사람들이 옳지 않은 일을 마치 당연한 것처럼 행한다. 그 옳지 않은 일 중의 하나가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범고래 쇼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은 벌을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못되고 위험한 행동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씨월드의 조련사들이 사용하는 ‘전환(redirection)’이라는 방법에 매료되었다. 조련사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범고래가 행동했을 경우, 즉시 고래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간단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까다롭고 강력한 이런 전략을 통해 조련사들은 고래들이 잘해낼 수 있는 새로운 여건을 만들어갔다.







- 인간관계가 최고의 경쟁력이다.




오늘날 사업을 하는 데 기술적인 진보나 서비스 혁신, 혹은 가격 경책 같은 것은 큰 경쟁력이 없어요. 왜냐하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 그리고 가격 정책이 발명된다 해도 경쟁사에서 순식간에 모방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환경에서 진정으로 경쟁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회사 구성원들간의 관계인 거죠. 만일 직원들이 당신을 신뢰하고 존경하며 당신의 목표를 믿는다면, 그들은 당신뿐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키려 할 거예요. 그 관계를 바탕으로 해서 품질, 가격, 마케팅, 운송과 관련된 새로운 정책들을 제공하게 된다면 아무도 당신의 조직이나 회사를 꺽을 수 없게 될 겁니다. 명심하세요. 경쟁자가 나로부터 모방하거나 빼앗아갈 수 없는 유일한 것은 나와 내 직원과의 관계이고, 직원과 고객과의 관계라는 걸.







- 일에 대한 보상보다 재미가 중요하다




보상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재미입니다. 재미가 없다면 고래가 즐겁지 않고 우리의 관객이 즐겁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죠.







- 사람을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라.




지금 당신의 상사는 판매고를 올리기 위해서 당신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는 거예요. 고래 반응 관리 방식의 일환으로 당신의 부하 직원들에게 앞으로는 최상, 중간, 그리고 최저로 분류하는 기존의 낡은 평가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건 어때요? 그리고 고래 반응 방식은 모든 사람이 전부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말씀하세요. 그게 실행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능력과 경쟁하게 될 거예요. 다시 말해 자신의 승리를 위해 다른 사람의 실수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만약 누군가가 기준치 이상으로 업무를 해낼 수 없는 경우에도 그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돼요. 대신 그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자리로 재배치를 해줘야 하죠.




관리자가 자신의 부하 직원들을 등급별로 구분하도록 되어 있는 현재의 업무 평가 시스템은 우리 팀에 맞지 않는다







켄 블랜차드 外, <칭찬의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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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 개정판
채만식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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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미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받고 있는 모순적 대상이다. 부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밉고,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부러울 것이다. 1930년대 채만식 소설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 영감을 보면 부자에 대한 반감과 연민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윤직원 영감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 받아 돈과 땅을 빌려주며 큰 부자가 되었다. 돈으로 족보와 벼슬을 사고, 자기 몸에 좋은 온갖 음식은 먹어도 남에게 어찌나 인색한지. 예를 들어 인력거꾼에게 삯을 안 주려고 하고, 무임승차도 상습적으로 한다. 이처럼 본인의 능력으로 부자가 된 것도 아니고 부모가 남겨준 돈으로 고리대금 사채업을 하면서 베풀 줄 모르니 지탄을 받아도 싼 부자이다.




그러나 한편 윤직원 영감의 가족사를 보면 인색한 부자가 된 사연을 알 수 있다. 그의 아버지 윤용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으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생계형 도적들이 많았는데 윤직원의 아버지는 그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참혹하게 죽은 부친의 시체를 안고 윤직원 영감은 “이놈의 세상이 어느날에 망하려느냐, 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라고 절규를 했다. 빈자들의 손에 부자인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으니 윤직원이 없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불로소득(不勞所得)’이라고 욕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욕하니,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일한 만큼만 받고 일한 만큼만 먹는 세상이 되면 이런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즉, 부자에겐 증세를 하고 빈자에겐 최저임금을 보장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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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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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요즘 일제고사(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문제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이 있다.








박지원은 천재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민사고나 대원외고 학생 중에서도 전교1등감이다. 그런데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서울대는 물론 하버드도 시험만 보면 들어갈 천재가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박지원은 예수였을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들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아버지의 문장에 대한 명성은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치를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는 아버지를 꼭 합격시키려하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눈치 채고 어떤 때는 응시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응시는 하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거시험장에서 고송과 괴석을 붓 가는 대로 그리셨는데,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는 당신께서 과거 보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박지원의 장인 이보천은 시험을 보지 않는 사위 박지원을 두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다. 오늘날 부모 가운데 일제고사를 거부한 자식을 두고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아버지는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않으려 하셨는데, 꼭 응시해야 한다고 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험장에 들어가긴 했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모두 말하기를, “구차하게 벼슬하려 하지 않으니 옛날 사람의 풍모가 있다”고 하였다. 유안옹(이보천, 박지원의 장인)은 이때 시골집에 머물러 계셨는데 그 아들(이재성, 박지원의 처남)에게 말하기를,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고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라고 하였다.








조선봉건왕조나 대한민국공화국이나 시험을 안 보겠다는 사람을 보는 족족 족치는 건 다를바가 없다.








하루는 감제(황감제의 준말. 제주도에서 그곳의 특산품인 황감을 진상하면 이를 성균관과 하학의 유생들에게 하사한 다음 보이던 시험)를 보이라는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유생들이 대의(大義)와 관련된 일로 과거장에 들어오지 않았다.(정조10년 이래 유생들은 상소문을 올려 은언군 등 상계군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 처벌에 미온적이었다. 이 일로 유생들은 계속 문제를 제기했으며 급기야 시험을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임금님께서는 유생들 대신 음관들에게 시험을 보이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또 분부하시기를 이미 과거를 단념한 사람들도 모두 응시하게 하여 감히 빠지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답안지를 바칠 때 이름을 적은 명부도 함께 바치도록 분부하셨다.








아, 그래도 대한민국공화국보다는 조선봉건왕조가 덜 나쁘다. 최소한 일제고사 거부한 박지원을 처벌하지는 않았으니까. 여하튼 예나 지금이나 불의를 따르지 않는 선비들이 곳곳에 있으니 희망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여러 사람을 따라 시험장에 들어가긴 하였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이윽고 임금님께서 시험 본 사람들의 명부를 들여오라 분부하시고 친히 살펴보았는데, 명부에는 아버지 이름이 빠져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자신을 뜻을 전해오기를, “이처럼 과거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그 몇 년 뒤의 일이다. 다시 음관들이 보는 시험을 베풀라는 임금님의 분부가 내렸다. 이때 아버지는 제릉령(제릉을 관리하는 종5품 벼슬) 벼슬을 맡고 있었지만 서울에 와 계셨다. 임금님의 이런 분부가 있자 아버지는 즉시 근무지인 제령으로 향해 떠나면서, 자신이 지방에 있어서 응시할 수 없다는 편지를 예조에 보냈다.








그렇다면 왜 박지원은 그토록 과거시험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오늘날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거시험과 일제고사가 사람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와 사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을 선비들이 무지하여 경전과 사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서야 비로소 과거공부 이외에 문장공부가 있고 문장공부 위에 학문이 있으며, 학문이란 글을 끊어 읽거나 글에다 훈고를 붙이는 것만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중략) 하루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네들이 책을 읽는 데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의 뜻과 이치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세. 평소 과거시험의 글을 익히던 버릇이 종이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그것을 벗어나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지. - 박지원의 제자 이현겸



아버지는 우리나라 선비들이 과문(科文. 과거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문체의 글.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며, 상투적이고 진부한 성격을 띤다)의 낡은 관습에 골몰하여 진부한 말들을 늘어놓거나 남의 글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순수하고 질박한 글을 짓는 체하여 문풍(文風)이 날마다 거칠고 무잡스럽게 변해감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선악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일제고사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기다리며, 아니 역사적 심판을 함께 하는 그 날을 꿈꾸며....








선과 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 신명(神明)이 굽어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주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은 단 한 가지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째서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벌을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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