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박지원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지음 / 돌베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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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요즘 일제고사(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문제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이 있다.








박지원은 천재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민사고나 대원외고 학생 중에서도 전교1등감이다. 그런데 과거시험을 보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서울대는 물론 하버드도 시험만 보면 들어갈 천재가 시험을 거부한 것이다. 박지원은 예수였을까?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들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 아버지의 문장에 대한 명성은 이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치를 때마다 시험을 주관하는 자는 아버지를 꼭 합격시키려하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눈치 채고 어떤 때는 응시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응시는 하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과거시험장에서 고송과 괴석을 붓 가는 대로 그리셨는데,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는 당신께서 과거 보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박지원의 장인 이보천은 시험을 보지 않는 사위 박지원을 두고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한다. 오늘날 부모 가운데 일제고사를 거부한 자식을 두고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아버지는 회시(會試)에 응시하지 않으려 하셨는데, 꼭 응시해야 한다고 권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래서 억지로 시험장에 들어가긴 했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전해 듣고는 모두 말하기를, “구차하게 벼슬하려 하지 않으니 옛날 사람의 풍모가 있다”고 하였다. 유안옹(이보천, 박지원의 장인)은 이때 시골집에 머물러 계셨는데 그 아들(이재성, 박지원의 처남)에게 말하기를, “지원이 회시를 보았다고 하여 나는 그다지 기쁘지 않았는데, 시험지를 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몹시 기쁘구나”라고 하였다.








조선봉건왕조나 대한민국공화국이나 시험을 안 보겠다는 사람을 보는 족족 족치는 건 다를바가 없다.








하루는 감제(황감제의 준말. 제주도에서 그곳의 특산품인 황감을 진상하면 이를 성균관과 하학의 유생들에게 하사한 다음 보이던 시험)를 보이라는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유생들이 대의(大義)와 관련된 일로 과거장에 들어오지 않았다.(정조10년 이래 유생들은 상소문을 올려 은언군 등 상계군 사건에 연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 처벌에 미온적이었다. 이 일로 유생들은 계속 문제를 제기했으며 급기야 시험을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때문에 임금님께서는 유생들 대신 음관들에게 시험을 보이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또 분부하시기를 이미 과거를 단념한 사람들도 모두 응시하게 하여 감히 빠지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답안지를 바칠 때 이름을 적은 명부도 함께 바치도록 분부하셨다.








아, 그래도 대한민국공화국보다는 조선봉건왕조가 덜 나쁘다. 최소한 일제고사 거부한 박지원을 처벌하지는 않았으니까. 여하튼 예나 지금이나 불의를 따르지 않는 선비들이 곳곳에 있으니 희망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여러 사람을 따라 시험장에 들어가긴 하였으나 답안지를 내지 않고 나오셨다. 이윽고 임금님께서 시험 본 사람들의 명부를 들여오라 분부하시고 친히 살펴보았는데, 명부에는 아버지 이름이 빠져 있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자신을 뜻을 전해오기를, “이처럼 과거시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그 몇 년 뒤의 일이다. 다시 음관들이 보는 시험을 베풀라는 임금님의 분부가 내렸다. 이때 아버지는 제릉령(제릉을 관리하는 종5품 벼슬) 벼슬을 맡고 있었지만 서울에 와 계셨다. 임금님의 이런 분부가 있자 아버지는 즉시 근무지인 제령으로 향해 떠나면서, 자신이 지방에 있어서 응시할 수 없다는 편지를 예조에 보냈다.








그렇다면 왜 박지원은 그토록 과거시험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오늘날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과거시험과 일제고사가 사람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와 사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우리 고을 선비들이 무지하여 경전과 사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지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듣고서야 비로소 과거공부 이외에 문장공부가 있고 문장공부 위에 학문이 있으며, 학문이란 글을 끊어 읽거나 글에다 훈고를 붙이는 것만으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중략) 하루는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자네들이 책을 읽는 데에 부지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글의 뜻과 이치에 깊이 파고들지 못하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닐세. 평소 과거시험의 글을 익히던 버릇이 종이와 입에서 떠나지 않고 있어, 그것을 벗어나 사색하지 않기 때문이지. - 박지원의 제자 이현겸



아버지는 우리나라 선비들이 과문(科文. 과거에서 특별히 요구하는 문체의 글. 내용보다는 형식을 중시하며, 상투적이고 진부한 성격을 띤다)의 낡은 관습에 골몰하여 진부한 말들을 늘어놓거나 남의 글을 모방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순수하고 질박한 글을 짓는 체하여 문풍(文風)이 날마다 거칠고 무잡스럽게 변해감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선악에 대한 연암 박지원의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일제고사에 대한 역사적 심판을 기다리며, 아니 역사적 심판을 함께 하는 그 날을 꿈꾸며....








선과 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 신명(神明)이 굽어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주지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은 단 한 가지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째서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벌을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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