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 신들의 열매
소피 도브잔스키 코 외 지음, 서성철 옮김 / 지호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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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래 제목은 초코릿의 진짜 역사이다. 서양문명의 대표 상품인 초콜릿이 알고 보니, 남미 원주민들의 음식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론 침략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착취가 있는 초코릿에 대한 슬프지만 진실한 역사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통해 유럽인에게 빼앗긴 초콜릿을 다시 남미 원주민들에게 돌려주자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이 책은 초콜릿에 대해 주로 역사적 관점으로 썼다. 사회적 관점으로 쓴 책으로 캐럴 오프의 나쁜 초콜릿이 있다. 과학적 관점으로 쓴 책은 (비록 부분적으로 다뤘지만) 진 웰스타인의 쾌감 본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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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나의 아내 도브잔스키 코는 스페인 정보 이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의 식생활에 관해 대단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초콜릿의 역사에 관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다...나는 그녀가 이 책의 주 저자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며 내가 이 책을 꼭 완성하겠다고 약속하였다...소피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나는 롱아일랜드의 노스 쇼어에서 자랐다. 그곳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 가르치려고 하는 자는 결코 배우기를 멈춰서는 안된다라는 문장이 걸려 있던 것을 기억한다. 비록 소피가 죽은 뒤였지만,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아내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스페인인들 가운데서도 가난한 자들은 원주민 여성들과 결혼하였다. 반면 부유한 사람들은 원주민 여자들을 첩으로 삼았다. 이 때문에 식민지 시대의 많은 가정에서 부엌을 담당한 사람들은 아즈텍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에 스페인계 크리오요 세대가 아스텍 왕국이 있었던 이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부모들의 고향에는 결코 발을 딛지 못할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전혀 새로운 크리오요화된 문화가 형성되었다. 곧 이것은 양쪽의 문화가 혼합된 것인 동시에 각각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초콜릿은 신스페인의 식생활에 등장하였고 결국 스페인 본국을 시작으로 전 유럽에 퍼지게 되었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끌려와 백인이 경영하는 카카오 농장에서 일했던 수십만명 노예들의 고향인 서아프리카가 오늘날 세계 제일의 카카오 산지로 바뀐 것은 정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런데 이것 역시 유럽이 벌린 식민지 사업의 일환이었다. 1824년에 포르투갈인들은 브라질에서 가지고 온 포라스테로종 카카오나무를 기니 만에 있는 가봉 서쪽의 상 도메에 이식했다. 그 결과 19세기 말까지 카카오는 이 섬들의 주요 수출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1991년에 나온 시장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카카오의 55퍼센트는 아프리카산이고, 멕시코산(초코릿뿐만 아니라 카카오란 용어가 탄생한 곳인)은 불과 1.58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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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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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갈수록 글이 집중도가 떨어지는 건 아마도 인용문이 과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천반적으론 읽을 만하다. 소장가치도 있다. 김찬호샘은 문화만 잘 아시는 줄 알았는데 경제도 해박하시구나. 역시 성공회대 교수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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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1661년 스톡홀롬 은행이 처음으로 지폐를 발행하였다. 그런데 스톡홀롬 은행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금은동 귀금속보다 많은 종이 돈을 찍어내는 바람에 파국을 자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신 나치의 한 연구소에서 사람의 몸을 원소별로 분해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보통 성인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것은 한 줌의 소금과 설탕 한 컵, 쇠못 하나 정도를 만들 수 있는 철로 약 3,300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는 노비가 소보다 훨씬 싼 값에 거래되었다. 같은 나이일 경우 여자가 남자보다 조금 더 비쌌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도 모른다.”

 

부자들끼리만 사는 세상에서 부자는 더 이상 부자가 아니다. 돈이 전혀 아쉽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돈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돈을 필요로 하는 타인이 존재할 때, 그리고 상대방이 그 돈에 상응한다고 여겨지는 가치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을 때 돈은 비로소 제구실을 한다. 따라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결국 상호의존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돈은 효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경제학자와 기상예보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미래에 대해 예보한다는 것, 그런데 그 예보가 너무 자주 빗나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기상예보관은 적어도 오늘의 날씨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현재 상황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물리학자 뉴턴은 1720년 영국의 투기 열풍을 경험하고 자신도 큰 손실을 입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부동산 투기는 도박보다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도박은 참가자들끼리만 벌이는 게임이다. 일확천금을 얻든 알거지가 되든 판에 뛰어든 사람들만의 이야기다. 그런데 부동산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 집값이 저절로 뛰어올라 부자가 되기도 한다. 반면에 오로지 내 집 마련을 위해 성실히 일하며 돈을 모아왔는데 꿈이 점점 멀어져가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이 몇천만, 몇억의 큰 돈을 굴리면서 대박을 꿈꾸는 사이에, 정작 티끌 모아 태산은 대기업들이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동네 슈퍼까지 잠식하면서 꼬마들의 군것질 푼돈까지 훑어가고, 이동통신회사들은 10초 단위의 요금제 덕분에 매년 9천억 원 이상의 낙전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국내 예금과 보험금 가운데 휴면계좌의 잔고 총액이 약 15천억원, 휴면주식이 25천만 주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소비자로 살아간다. 직장인들은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다. 주식투자를 아예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도 동시에 소비자다. 그리고 직장에 다니면서 주식이나 펀드에 돈을 넣어놓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자이면서 투자자이면서 소비자이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한 개인의 경제 행위 안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결국 스스로에게 손실을 끼치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어느 미국인이 인디언 시장에서 양파를 파는 어는 노인과 나누었다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미국인이 노인에게 가격을 물었다. 10센트라고 대답하자, 미국인은 좌판에 있는 양파를 모두 사면 얼마에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노인의 대답은 뜻밖에도 한꺼번에 양파를 모두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묻자 노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는 양파만 팔려고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오. 나는 지금 인생을 살러 여기 나와 있는 거요. 난 이 시장을 사랑하오. 북적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흔들리는 종려나무를 사랑하오. 친구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네고, 자기 아이들,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사랑한다오. 그것이 내 삶이오. 바로 그것을 위해 하루 종일 여기 앉아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거요. 그런데 한꺼번에 몽땅 다 팔면 돈은 벌겠지만 그걸로 내 하루는 끝이오. 사랑하는 내 삶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그렇게는 할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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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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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보수도 진보도 아닌 학자가 MB정권의 지나친 보수화 때문에 쓰기 시작한 사회비평 글을 모았다. 대운하, 종부세폐지, 영어몰입교육 등을 반대하고, 한미FTA를 찬성한다. 한미FTA 찬성글은 장하성 교수의 글과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듯하다.  * 이준구의 또 다른 저서 '인간의 경제학'보다는 덜 재미있다는 게 흠이라면 흠... 역시 전공인 경제관련 글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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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협정 체결과 함께 미국 상품들이 우리 시장을 휩쓸 것처럼 말하고 있다. 미국 상품들이 과거보다도 더 많이 진출하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싹쓸이를 하는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 환경이 더욱 험난해지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그와 같은 경쟁의 압력이야말로 우리 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농업같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산업에서도 경쟁의 압력이 유용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 몇 년 전 우리가 가전제품 시장을 개방한 경험을 다시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때 가전제품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가전제품 산업이 궤멸의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어두운 예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뒤의 경험은 그와 같은 예언이 전혀 근거가 없었음을 생생하게 입증해주고 있다. 현재 우리 가전업체들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의 가전업체와 맞상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실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시장 개방이 국내 산업의 궤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별 근거가 없다. (이준구, 한미 FTA, 걸어볼 만한 도박인가?」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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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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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지 않았어도 보이지 않는 손을 들어는 봤을 것이다. 그놈의 손(스미스는 아마도 신의 손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을 텐데... 신께 죄송)은 얼마나 많이 언급되었는지 아마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쌍벽을 이룰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말을 대충 정리하면,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이라서 각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경제학󰡕을 읽으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 이 책은 전통적 경제이론의 모순을 따뜻한(?) 시선의 형태경제이론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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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책이 부자에게 100의 이득을 주는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1의 이득만 준다고 하자. 전통적 경제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람직한 정책이다. 가난한 사람의 이득은 1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이득을 보니 당연히 사회후생이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따라서 모두가 이 정책을 지지하리라는 것이 전통적 경제이론의 예측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측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면 남이 얼마나 큰 이득을 얻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부단히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남이 100의 이득을 얻는데 자신은 1의 이득밖에 얻지 못하는 정책을 달가워할 리 없다.(이준구, 프롤로그, 󰡔인간의 경제학󰡕 )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는 약속한 시간에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생각 끝에 탁아소측은 늦게 나타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늦게 나타나는 부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늘어났던 것이다. 탁아소측이 사람의 심리를 잘못 읽은 데서 빚어진 촌극이었다.

이 세상에 벌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면 가능한 한 일찍 탁아소로 와 아이를 데려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그럴듯한 추론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정책이 이와 같은 논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모들은 왜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후 오히려 예전보다 더 늦게 나타난 것일까? 그 배경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벌금을 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늦게 나타날 때 탁아소 직원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그들에게 몇번씩이나 허리를 굽혀 사죄하는 광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벌금제도가 도입된 후에는 그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잘못은 벌금으로 이미 그 대가가 치러진 셈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과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벌금제도가 도입된 후에는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탁아소에 늦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보는 예처럼 경제적 유인이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생각 밖으로 많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는 사람들이 단 한 푼의 돈에도 벌벌 떠는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금전적 이득이나 손해에만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측면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체면, 자존심 혹은 죄책감 같은 비경제적 측면이 그들의 행동에 훨씬 더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탁아소의 벌금 부과 결정은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같은 맥락의 조처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해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게을리 일하는 사람을 벌주는 한편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성과급제도가 그 좋은 예다.

그렇지만 성과급제도가 도입된 후 생산성이 반드시 향상된다는 보장은 없다. 서투른 방법으로 이를 실시하면 오히려 생산성 저하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나서 일하게 만들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며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약속만으로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성과급제도의 도입이 탁아소의 벌금 부과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성과급제도의 도입은 공정성의 문제를 일으켜 사기 저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공정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열심히 일하려는 태도가 나온다는 점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임금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다. 입사 동기생이 받는 보수가 자신의 두 배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신나게 일할 리 만무하다.

행태경제이론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단순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느냐에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몇 푼의 돈보다는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중요하다. 또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이준구,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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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 음악과 과학의 만남
로베르 주르뎅 지음, 채현경.최재천 옮김 / 궁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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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의 원제는 Music, the Brain, and Ecstasy이다. 사실 이 책은 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EBS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론 영상이 훨씬 낫다. 그렇다고 책이 나쁘단 것은 아니다. 다만 소리를 문자로 이해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책은 강추, 영상은 초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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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의 근저에는 맥박, 즉 리듬 패턴이 기댈 수 있는 멈추지 않는 시계의 박이 있다. 이상적으로 맥박은 계속적인 수축과 이완, 긴장과 완화의 일정한 반복, 그래서 모든 박이 새로 태어나는 경험과도 같은 것으로 존재해야 한다. 두뇌가 일단 일련의 맥박들을 감지하기 시작하면, 개별적인 맥박들이 아주 멈춰버리거나 또는 오래 지속되는 음으로 변하더라도 계속해서 그들을 예상한다. 이 같은 일련의 맥박들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지 않으면 두뇌의 예상은 점점 약해진다. 음악의 하모니가 조성 중심의 반복을 필요로하듯, 리듬도 기본적인 맥박의 끊임없는 되풀이를 필요로 한다. 단 몇 초만 멈춰도 듣는 이는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

 

아주 뛰어난 음악적 신경계는 소리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는 큰 소리가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했고, 멘델스존은 음악을 들을 때마다 울곤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종종 침대 속에서 이 음악 소리! 제 머리 속에 있어요. 이거 좀 꺼내주세요라며 울부짖기도 했다 한다 ... 하지만 한 쪽에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쪽에는 나쁜 일이 있게 마련이다. 아름답지 못한 소리는 고통을 준다. 헨델은 모든 악기들이 조율을 마칠 때까지는 연주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으며, 바흐는 틀린 음을 들으면 화가 나서 펄펄 뛰었다고 한다.

 

단 하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불 같은 성격이다. 헨델이 무대로 가로질러 케틀드럼을 던진 것을 생각하면 바흐가 더듬대는 연주자 하나에게 가발을 던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베토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음식이 나오면 조리실 쪽으로 집어던지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 점잖은 쇼팽도 연주를 잘 못했던 어느 불쌍한 제자 앞에서 의자를 부숴버리기도 했다. 말러는 지휘대에서 어찌나 심하게 욕을 해댔는지 연주자들로부터 어려 번의 결투 신청을 받기도 했다. 화나는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분야의 천재들에게 흔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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