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인간의 경제학 - 경제 행위 뒤에 숨겨진 인간의 심리 탐구
이준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지 않았어도 보이지 않는 손을 들어는 봤을 것이다. 그놈의 손(스미스는 아마도 신의 손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했을 텐데... 신께 죄송)은 얼마나 많이 언급되었는지 아마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쌍벽을 이룰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말을 대충 정리하면,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합리적이라서 각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경제학󰡕을 읽으면 그 생각이 달라진다. 인간은 이기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는 것! 이 책은 전통적 경제이론의 모순을 따뜻한(?) 시선의 형태경제이론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밑줄>

어떤 정책이 부자에게 100의 이득을 주는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는 1의 이득만 준다고 하자. 전통적 경제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람직한 정책이다. 가난한 사람의 이득은 1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가 이득을 보니 당연히 사회후생이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간다. 따라서 모두가 이 정책을 지지하리라는 것이 전통적 경제이론의 예측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측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은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라고 가정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면 남이 얼마나 큰 이득을 얻든 상관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부단히 나와 남을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남이 100의 이득을 얻는데 자신은 1의 이득밖에 얻지 못하는 정책을 달가워할 리 없다.(이준구, 프롤로그, 󰡔인간의 경제학󰡕 )

 

이스라엘의 한 탁아소는 약속한 시간에 맡겨 놓은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는 부모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생각 끝에 탁아소측은 늦게 나타나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늦게 나타나는 부모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오히려 더 늘어났던 것이다. 탁아소측이 사람의 심리를 잘못 읽은 데서 빚어진 촌극이었다.

이 세상에 벌금 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면 가능한 한 일찍 탁아소로 와 아이를 데려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전통적 경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그럴듯한 추론이다. 사실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정책이 이와 같은 논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즉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사람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부모들은 왜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후 오히려 예전보다 더 늦게 나타난 것일까? 그 배경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벌금을 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늦어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늦게 나타날 때 탁아소 직원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퇴근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그들에게 몇번씩이나 허리를 굽혀 사죄하는 광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벌금제도가 도입된 후에는 그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자신의 잘못은 벌금으로 이미 그 대가가 치러진 셈이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차원에서 사과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벌금제도가 도입된 후에는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탁아소에 늦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보는 예처럼 경제적 유인이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하는 사례가 생각 밖으로 많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는 사람들이 단 한 푼의 돈에도 벌벌 떠는 것으로 상정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금전적 이득이나 손해에만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외의 측면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체면, 자존심 혹은 죄책감 같은 비경제적 측면이 그들의 행동에 훨씬 더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탁아소의 벌금 부과 결정은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같은 맥락의 조처라고 볼 수 있다. 경제적 유인에 반응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해 그들의 행동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게을리 일하는 사람을 벌주는 한편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성과급제도가 그 좋은 예다.

그렇지만 성과급제도가 도입된 후 생산성이 반드시 향상된다는 보장은 없다. 서투른 방법으로 이를 실시하면 오히려 생산성 저하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나서 일하게 만들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며 더 많은 보수를 주겠다는 약속만으로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 수는 없다. 오히려 성과급제도의 도입이 탁아소의 벌금 부과와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성과급제도의 도입은 공정성의 문제를 일으켜 사기 저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공정하게 대접받고 있다고 생각해야 열심히 일하려는 태도가 나온다는 점을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임금은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다. 입사 동기생이 받는 보수가 자신의 두 배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신나게 일할 리 만무하다.

행태경제이론은 우리로 하여금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단순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느냐에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몇 푼의 돈보다는 공정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훨씬 더 중요하다. 또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이준구,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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