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문명
장 카스타레드 지음, 이소영 옮김 / 뜨인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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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은 30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 결과 구시가지에 가보면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해주는 건물들이 많다. 특히나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장식으로 남은 대성당을 보면 과거 식민지배의 잔재가 후손들의 관광수입이 되는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지배계층의 사치를 위해 피지배계층은 얼마나 많이 희생당했을까 하는 생각 한편엔, 그 사치가 없었으면 문명도 없었을 것이란 장 카스타레드의 얘기에 귀가 솔깃거린다. 마치 전쟁이 없었으면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이 없었을거란 씁쓸한 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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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없이는 문명도 없다. 하지만 사치는 타락과 낭비로 인해 퇴조의 길을 걷기도 한다. 결국 적절한 사치야말로 경제와 지성, 예술, 도덕 면에서 모든 문명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모세는 조형적인 이미지를 금지하면서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를 재현해서도 안 되고 그 자신만으로 정의되는 정신적이고 우주적인 신을 물질적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신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에서는 그리스에서처럼 정교한 인체 조각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고대 이집트의 벽화처럼 세밀하고 생생한 그림들도 찾아볼 수 없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예루살렘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다. 화려하고 세련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이곳은 바빌론과 티루스, 페르세폴리스에 필적할 만한 곳으로 떠올랐고, 해상 무역은 이 도시에 막대한 양의 금과 은, 상아, 보석, 그리고 값비싼 목재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사치가 변질되면서 왕들의 일부다처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솔로몬 왕은 부인과 첩을 천 명까지 두었다. 이런 일탈은 결국 솔로몬 왕의 권위와 믿음을 변질시키고, 이 훌륭한 인물로 하여금 이미 다윗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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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탄생 -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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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목숨을 바치며 우리말 사전을 만들었던 일, 주시경과 같이 잘 알려진 국어학자 이외에 월북으로 이름이 감추어진 이극로와 같은 이들에 대해 알 수 있다. 여기에 이승만 때문에 한글쓰기가 모아쓰기에서 풀어쓰기로 바뀔 뻔했던 에피소드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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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은 음소문자로 창안되었지만 실제 쓰임에서는 음절문자식으로 쓰였다 ...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 중 하나가 한자음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었고, 한자음을 기록하면서 음절문자식으로 훈민정음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근대 들어 서구 문화의 유입과 함께, 영어의 서사 규범을 따라 한글의 서사 규범을 확립하려는 과정에서 풀어쓰기가 논의되었다. ‘세로쓰기가로쓰기로 바꾸고, ‘띄어쓰기를 도입한 것은 모두 영어의 서사 규범을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극단적인 것은 풀어쓰기였다. 영어의 알파벳처럼 풀어쓰기를 하는 것이 음소문자로서 한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주시경은 풀어쓰기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시범적으로 사용하였고, 김두봉, 최현배 등 주시경의 제자들은 이를 실제 언어규범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음절문자식으로 모아쓰는 전통을 일순간에 바꾼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형태주의 표기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음소주의 표기법을 선택할 것인가의 논쟁은 음소문자인 한글을 음절문자로 모아쓰게된 이후로 생긴 논쟁이었다. 그렇다면 이 논쟁은 훈민정음 창제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글 맞춤범은 표준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맞춤법 총칙 제1항은 한글 맞춤법의 운용이 음소주의 표기와 형태주의 표기라는 서로 상반된 원칙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는 우리말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한글로 된 성경을 접하게 된 기독교 계열 지식인들은 한자가 없는 문화 생활의 가능성을 확신하였고, 이들에 의해 한글로 된 다양한 출판물이 나오면서 한글 문화의 지평은 더욱 넓어졌다. 한글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철자법 정리의 필요성이 절실해지자, 결국 이들 중에 우리말 정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서재필과 주시경이었다.

 

오늘날의 한국어가 신라어를 근간으로 형성되었다고 본 남한 국어학자 이기문의 가설을 민족 분열주의자의 반동적 견해로 보는 것에서도 북한 국어학계가 민족어의 기원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북한 국어학계의 특성은 조선어학회의 민족주의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북으로 건너간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철저하게 민족주의적인 견지에서 북한 국어학의 기반을 닦았다. 여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극로, 김두봉, 정열모, 유열 등이 대종교의 중요 인사였다는 사실은 분단 이후 북한 국어학의 연구 경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국어학이 전통적인 언어학 연구와 함께 사전 편찬이나 말다듬기를 비롯한 문화어 운동 등에 집중하면서 보였던 민족주의적 경향은 남한 국어학계에서 나타난 민족주의적 경향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그 공통점 역시 조선어학회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1953년 정부는 현행 철자법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철자법 개정 방침을 천명하였는데 이는 형태 중심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는 대립되는 소리 위주의 표기법으로 개정하는 것을 의미했다. 1930년대 조선어학회가 치열한 논쟁 끝에 확정한 철자법이 그 당시 논쟁 상대의 철자법 안으로 뒤바뀔 처지까지 몰린 것이다. 교육계와 문화계의 저항이 심했지만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은 담화를 발표해 이를 강행할 뜻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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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번역노걸대와 노걸대언해
정광 지음 / 신구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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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상인이 중국에 장사하러 가는 도중에 중국상인을 만나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대화형식으로 쓴 노걸대라는 책이 있다. 고려 때 한문본과 조선 전후기의 한글본이 함께 있어서 중세 국어의 변화과정을 알기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에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어서 또다른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시 학교교육의 단면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매일 새벽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집에 와 밥을 먹고, 다시 학교에 가서 글씨 쓰기, 시쓰기, 시 읊기, 책 읽기를 한다. 저녁엔 제비를 뽑아서 선생님 앞에서 글을 외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는 것은 오늘날과 다름이 없지만 중요한 차이가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밥을 집에서 먹는다는 점이다. 물론 학교에 급식시설이 없어서 집에서 먹었겠지만 그보다도 그만큼 가까운 곳에 집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은 이른바 선택이란 미명 아래 성적이 좋지 않은 또는 돈이 없는 학생이 가까운 곳 대신 먼 곳의 학교에 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 있는 학생이 서울대를 못가는 건 서울 아닌 곳에 있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거나 돈이 많아서 서울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교사의 수업을 일방적으로 듣는 시간은 오전 수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즉 수업의 대부분이 자습과 발표이다. 오늘날은 정규수업, 보충수업, 학원, 과외, 인터넷 모두가 교사의 수업을 듣는 수동적인 방식이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교육은 오히려 퇴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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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육 2017.7.8월호 - 39호
교육공동체벗 편집부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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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SS면 무슨 재민겨? (오늘의 교육 39호 후기)

 

스위스의 산악 지대인 그라우뷘덴 주에는 다보스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 나는 이 휴양지에 모인 이들이 벌이는 파티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모욕감을 느낀다. 그들이 그곳에서 결정한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곳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탓이다(본문 10)”

 

고래로 빈부의 차이가 항시 있었지만 한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난 부의 소유라는 것은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 될 일이지 칭송받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비난받을 만한 일을 성취해낸 사람들을 미화시키는 용어가 기업가 정신인 것이다(본문 28)”

 

나는 개인의 성공을 위한 자본을 만들어 주는 것은 교육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은 항시 공동체교육을 그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공교육의 이념을 상실하는 순간 그것은 교육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 된다(본문 29)”

 

부당하게 해고된 강사 채효정. 이심전심이랄까 동병상련이랄까 나도 짧지만 해직시절이 있어서 그의 글을 관심 있게 읽는다. 이번 오늘의 교육 39호의 특집은 4차산업혁명을 다루고 있는데, 그는 이 미래사회에 대한 담론의 허구성을 참으로 기똥차게 까발린다.

 

소위 4차산업이라는 미래담론은 사람들로 하여금 다 BOSS가 되길 꿈꾸라는 것인데, 사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잦은 해고를 감수하면서도 헛된 다보스의 꿈만 꾸게 하는 자본의 책략일 뿐이다. 다보스는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전우익 선생님이 살아 돌아오시면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리실 텐데. BOSS면 무슨 재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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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 책이다. 다른 것보다 읽기 편하다.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등이 따로 또 같이 쓴 책들.

 

 

 

 

 

 

 

 

 

 

 

 

 

 

 

 

 

 

 

 

 

 

 

 

 

 

 

 

 

 

 

 

 

 

 

 

 

 

 

 

 

 

 

 

 

 

 

윤동주를 좋아했던 일본 여자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 사랑. 일본인의 시각을 볼 수 있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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