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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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박완서 작가는 구리시 아치울에 사시던 이이화 선생에게 한문을 배운 것이 인연이 되어 아예 그 동네에 집을 짓고 살다가 13년 만에 돌아가셨다. ‘호미는 그 시기에 쓴 수필집이다. 돌아가신 후에 따님이 어머니의 글을 묶어낸 노란집이란 산문집도 바로 그 아치울 마당 있는 집에서 썼다고 한다. 마당이 있는 곳에서 태어나 마당이 있는 곳에서 돌아가셨다. 그 마당 속의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고 떨어지고, 심지어 잘라낸 나무의 그루터기에서 새 가지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그 순환 속에서 돌아가셨으니 말 그대로 돌아서 가셨을 뿐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다.

이 작품집에서 꽃 출석부 1’이라는 수필 한편이 교과서에 실렸다. 학습목표는 글에서 공감하는 부분을 찾는 거다. 공감을 하려면 같은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조언을 했다. “학습목표를 달성하려면, 즉 중간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야 해ㅋㅋ

 

<밑줄>

그러나 잎만 그렇게 무성할 뿐, 이듬해 봄에도 꽃은 피지 않아 나를 안타깝게 했고, 나는 또 나무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너를 죽이려 한 것도, 너의 꽃을 싫어한 것도 사과할 테니 내년에는 꽃 좀 피라고 자꾸자꾸 말을 시켰더니... 그래서 나는 요새도 나의 목련나무에게 말을 건다. 나를 용서해주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박완서 -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박완서 -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

 

70년은 끔직하게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연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다행히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깊은 위안과 평화를 준다. (박완서 - 다 지나간다 )

 

나는 그래서 살구나무가 좀 미워지더라도 라일락 쪽으로 뻗은 가장귀를 왕창 잘라낼 목적으로 튼실한 받침대 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가장귀를 끌어당겨만 놓고 차마 잘라내지 못했다. 나무의 체온이랄까, 살아 있다는 유연함, 피돌기 같은 수액의 움직임, 그런 게 생생하게 느껴질 뿐 아니라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은 돌기는 내년 봄에 터뜨릴 꽃망울의 시작이 아닌가. 살구꽃도 벚꽃도 매화도 우리 눈엔 어느 날 갑자기 활짝 피어나는 것 같지만 이렇게 미리미리 준비를 하는구나. 꽃망울이 얼어죽지도 말라죽지도 않게 보호하고 견디어내야 하는 겨울은 나무들에게 얼마나 혹독할까. 숙연해지는 한편 내년에도 살구꽃을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 (박완서 - 만추 )

 

올해는 복수초가 1번이 되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산수유가 1번이었다. 4월이 되면 목련, 매화,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등이 다투어 꽃을 피우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날짜를 달리해 순서대로 피면서 그 그늘에 제비꽃이나 민들레, 은방울꽃을 거느린다. 꽃이 제일 먼저 핀 것은 복수초지만 잎이 제일 먼저 흙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상사초고 그 다음이 수선화다. 수선화는 벚꽃이 필 무렵에나 필 것 같고 상사초는 잎이 시들어 지상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더 있다가 꽃대를 밀어올릴 것이다. 이렇게 그것들을 기다리고 마중하다 보니 내 머릿속에 출석부가 생기게 되고, 출석부란 원래 이름과 함께 번호를 먹이게 되어 있는지라 100번이 넘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름을 모르면 100번이라는 숫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멋대로 피고 지면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그것들은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것들이 올해도 하나도 결석하지 않고 전원출석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것들이 뿌리로, 씨로 잠든 땅을 함부로 밟지 못한다. 그것들이 왕성하게 자랄 여름에는 그것들이 목마를까봐 마음 놓고 어디 여행도 못 할 것이다. 그것들은 출석할 때마다 내 가슴을 기쁨으로 뛰놀게 했다. 100식구는 대식구다. 나에게 그것들을 부양할 마당이 있다는 걸 생각만 해도 뿌듯한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사치를 해도 되는 것일까. 괜히 송구스러울 때도 있다.

그것들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기쁨 때문에 기다린다. (박완서 - 꽃 출석부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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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
버텔 올먼 지음, 김한영 옮김 / 모멘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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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리(怜悧)한 사람은 사적인 영리(營利)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자는 영리한 사람치곤 사익보다 공익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똑똑하면서도 착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하고 부럽다. 닮고 싶다.

학생들은 사적 이익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아무리 탓한들 소용이 없다. 저자처럼 제자들과 거래(?)를 해야겠다. 성공시켜 줄테니 사회에 보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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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생이 꿈에 그리던 시험이 있다. 열 개의 오엑스 문제에서 모든 정답이 오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시험. 답을 깜빡 잊었더라도 모든 정답이 문제지 뒷면에 적혀 있는 시험. 시험을 망쳤어도 합격할 때까지 종일 되풀이하여 볼 수 있는 시험. 바로 이것이 미시건 주에서 권총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보는 자격 시험이다. 그래서인지 이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살인 수도라 불린다. 여러분이 치르는 모든 시험이 이런 식이라면 당장 이 책을 집어 던져도 된다.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 내가 알려줄 시험 요령들은 아주 유용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고, 조건이 하나 있다.

나는 학생 시절에 시험을 수백 번 봤고,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그보다도 많은 시험을 출제했다. 그러는 사이 시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줄 마음이 별로 없다. 이것이 문제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자본주의, 즉 우리 사회의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인데, 그 주제에 끌리는 학생은 아마도 별로 없을 테다. 하지만 시험에 관한 나의 도움말은 듣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를 하자. 이게 조건이다.

여러분이 나의 자본주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준다면, 시험을 최대로 잘 보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점들을 말해주겠다. 이 책은 우리의 거래가 될 것이다.

 

채점은 얼마나 주관적일까? 1912년 대니엘 스타크와 에드워드 엘리엇은 200명의 고등학교 교사에게 두 편의 영어 과목 리포트를 보내 채점을 의뢰했다. 그중 142편이 채점되어 돌아왔는데, 한 리포트의 점수 폭은 50~99, 다른 리포트의 점수 폭도 64~99점이었다. 영어는 객관적인과목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교사들은 수학에 관한 논술형 리포트에도 그렇게 점수를 매겨, 점수 폭이 28~95점에 이르렀다. 두 경우 모두 대부분의 점수는 중간에 몰려 있었지만, 아무튼 시험 점수라는 건 대체로 누가 시험을 보았느냐보다 누가 시험을 채점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분명해졌다.

더 심각하다고 볼 문제가 있다. 다른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똑같은 선생님이라도 채점할 때의 기분에 따라, 하루 중 어느 때에 채점하느냐에 따라, 직전에 본 답안이 얼마나 좋거나 나빴는지에 따라(아주 뛰어난 답을 채점한 직후에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대개 낮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맨 처음에 채점하느냐 마지막에 채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단답형 시험이 논술시험보다 객관적이라고 결론짓지 않기를 바란다. 채점만을 놓고 보면 단답형이 객관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교수의 편견들은 이미 문제의 선택에서부터 그 표현방식, 그리고 선다형 문제의 경우 제시된 선택지의 수와 유형에까지 녹아들어있다. 또한 출제자는 논술시험이 아닌 단답형 시험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획일성을 선호하고 창조성과 다향성을 멀리하는 자신의 편향을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들 나눠줄 때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왜 가난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라 부른다.” 브라질의 대주교였던 엘더 카마라의 말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중요한 자리가 혈통에 따라 분배되었던 봉건제와 비교할 때,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시험 제도는 중대한 발전이었다. 기회의 평등이 전무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얼마간의 기회의 평등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1) 현재의 시험 제도는 평등보다는 불평등이 일반화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관계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2) 시험, 특히 이토록 많은 시험이 교육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3) 시험의 주된 기능은 사회의 승자를 선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수가 훨씬 많은 패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가혹한 운명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것인가?

4)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시험이 없는 교육은 어떤 모습이고, 그런 개혁을 가능케 하려면 그 밖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미국에서 해마다 살인 사건으로 죽는 사람은 19000명인 데 비해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은 56000명으로, 다른 공업국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도 미디어에선 온통 살인 사건 이야기만 늘어놓지, 일과 관련된 사망과 부상에는 지면과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20만명이 응시하는 경영대학원입학시험(GMAT)에 나오는 두개의 논술문제가 이미 기계로 채점되었다. ‘-레이터(E-rater)’라고 불리는 이 채점 기계는 대체 어떤 것인가? 관계자들도 인정하듯이, 분명 창조적 사고를 평가하는 건 아니다. 그 시험을 주관하는 회사의 한 대변인은 사고의 체계성과 구문론적 구조를 평가한다는 했는데, 카플란 교육센터(각종 시험준비 전문 대기업)에서는 이 기준에 맞춘 답안 작성 요령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선명한 개요로 시작한다(체계적인 답안이라는 증거) 2)‘그러므로’, ‘~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따위 연결 어구들을 많이 사용한다(글 구조가 잘 짜인 답안이라는 증거) 3)동의어를 풍부하게 사용한다(어휘력이 강하다는 증거)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는 한 손으로 법적 권리를 나눠주고는 다른 손으로 그걸 빼앗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예를 들면, 우리 각자에겐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고, 그걸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다만 주요 미디어의 지면을 살 만큼 큰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물론 언론은 자유롭다. 언론을 소유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늘날 대부분의 수업은 시험 위주가 되고, 학생들의 합격을 돕는 수단이 되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느냐가 아니라 그걸 배웠다는 증거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가르치는 역할보다는 시험 코치나 트레이너 노릇을 더 많이 한다.

 

그래, 자유시장은 부당하고,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이고, 심지어 자유롭지도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볼 때 계획경제보다는 효율적이잖아?”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현 제도하에서 외부비용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 즉 광고와 관련된 비용, 수백 수천만 노동자와 소비자의 건강을 좀먹고 환경을 오염하는 것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 따위를 다 제외한다면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 말고도, 소유주에게 충분한 이익을 남겨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기계와 원자재와 노동력을 가동하지 않고 버려둘 때 발생하는 엄청난 낭비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찬양하는 이들은 저 모든 불필요한 낭비와 비용을 절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물질적 궁핍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이게 노동자에겐 좋기만 한 일도 아니다)에만 초점을 맞출 따름이다.

 

사장이 고용인에게 말한다. “젊은 친구, 이 회사에서 아주 빠르게 출세했군. 2년 전 사환으로 시작해서 두 달 뒤 사무직원이 됐고, 판매요원, 부지배인, 지배인을 거쳐 어느덧 부사장이네. 소감이 어때?” 고용인이 대답한다. “고마워요, 아빠.”

 

1830년대 초에 미국을 두루 여행한 프랑스의 젊은 귀족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한 겨울에 교향에서 쫓겨나는 것을 목격했다. 노인들, 아이들, 병자들도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 10년 후 미국은 멕시코의 3분의 1을 빼앗았다... 1898년 팽창하는 미 제국에 쿠바와 필리핀을 포함시키기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베트남 전쟁은 삼사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1990년 미국 정부는 가장 정교한 무기들을 사용해 수십만 명의 이라크인을 죽였다...1998년 유고슬라비아가 일부 국민을 학대한다는 이유로 폭격을 당했다... 지금도 우리의 돈과 군사고문들이 페루와 콜롬비아의 파시즘 군대를 돕고 있다.(불과 얼마전까지도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칠레, 브라질의 군대를 도왔다) 그런 가운데 군사 파시즘 정권들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우겨주는 그들의 정부를 지킨답시고 수천 수만의 자국민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몰래 내다버렸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큰 거짓말이론을 소개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작은 거짓말들을 하고, 그래서 그런 거짓말을 들을 때 쉽게 알아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주 큰 거짓말을 할 정도로 대담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큰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냉소적인 사람은 별로 없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아주 큰 거짓말을 하고 무사히 넘어갈 확률이 더 높다. 이 교훈을 실제로 적용한 사람은 히틀러뿐이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이자 어쩌면 그 때문에 가장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거짓말 중 하나는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자유 수호를 지향해 왔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크세노폰의 저술 키루스의 교육에는 사상 최초의 시험 중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오래지 않아 페르시아의 유명한 왕이 될 키루스가 열 살쯤 났을 때였다.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너에게 너무 큰 소매 없는 외투(당시에 주로 입던 겉옷)가 있고,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어느 소년이 너무 작은 외투를 입고 있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선생은 물었다.

키루스는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을 테고, 그래서 즉시 대답했다. “물론 그와 외투를 교환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 둘 다 몸에 맞는 옷을 갖게 될 테니까요.” 이 대답을 듣자마자 선생은 채찍을 꺼내(당신 선생들의 일반적인 도구였다) 키루스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외쳤다. “틀렸어. 너의 외투는 네 것이고, 그의 외투는 그의 거야. 각자 자기의 것을 갖고 있어야 해.”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유재산을 존중하라. 아무튼 예전부터 어떤 말이든 채찍질을 곁들이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곧 상식을 물리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 세련된 방법들이 나와서 선생님들의 채찍질이 조금 완화됐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키루스의 외투 이야기는 시험의 원형, 훗날 모든 시험의 패러다임이 된다. 그 주된 목표는 학생들이 얼마만큼 아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와 (그것이 만들어내고 필요로 하는) 계급적 관계가 핵심가치인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950년대 중반 내가 위스콘신 대학교를 다닐 때 미국재향군인회는 미국적 생활양식에 비판적인 책들을 너무 많이 소장하고 있는 대하 도서관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표현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편지를 재향군인회에 써 보냈고, ‘미국주의를 위한 주위원장으로부터 미국적 생활양식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은 모르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그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유도 모르는 채 죽고 죽이거나 남들을 도살장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듯한데, 이런 사람들을 흔히 애국자라 부른다.

 

시험공부를 할 때 수면은 얼마나 중요할까? ‘인지신경과학저널’(20003월호)은 기억력 향상과 충분한 야간 수면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8시간 잠을 잔 학생들이 시험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 또한 잠을 많이 잔 학생들은 적게 잔 학생들보다 사실뿐 아니라 기술도 더 오래 기억했다.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스틱골드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다음 날 시험을 다시 보도록 했을 하버드대 학생들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는냐는 그들이 졸업한 예비학교나 수능시험 성적, 또는 노력의 정도에 달려있지 않았다. 대체로 그보다는 얼마나 잘 잤느냐에 의해 좌우됐다

 

뉴어크의 고등학교 교장인 조 클라크는 학교를 평화롭고 조용하게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해결책은 말썽꾼들을 전부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 때문에 주변 지역의 범죄율은 증가했다. 그 말썽꾼들이 학교 밖에서 말썽을 피웠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방식도 바로 이런 식의 의자 빼앗기 놀이다.

 

작은 정부, 긴축재정, 개인의 책임, 가족의 가치 같은 보수주의의 덕목들은 어떠한가? 글쎄,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것들을 들먹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 대부분에게 이는 치부를 가리는 무화과나무 잎이고, 그들의 선거강령 제정을 담당한 홍보 회사가 짜 맞춘 설교에 불과하다. 이른바 보수주의자중 거의 누구도 자기네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부 확대에 반대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는 쪽이 자기들일 때 그걸 거절하지 않는다.

 

성적과 돈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잔인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 자기 집 쇠침대에 누이고는 그 크기에 꼭 맞게 만들었다고 한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작은 사람은 늘리는 식이었다. 돈과 성적도 우리 사회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역할을 한다. 돈은 서로 아주 다른 물건들을 가격을 가지고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성적은 아주 다른 사람들을 글자 하나로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고 나면 그것의 다른 특질들은 훨씬 사소해지고, 종종 완전히 무시된다. 이와 똑같이, 우리가 누군가를 'A', 'B' 또는 'C' 학생으로 규정할 때 그의 개성적 특질들은 사소해지거나 무시된다.

상품화란 물건이 가격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의식주 등 구체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시장에 이르고 나면 주로 가격을 기준으로 고려되고 평가된다. 성적은 학습 과정의 상품화를 상징한다. 화폐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온갖 다른 상품들을 대변하듯이, 성적은 온갖 종류와 수준의 지식을 대변한다. 성적은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재능과 성과를 단 하나의 차원(테스트의 대상)으로 환원하여 측정한 다음, 결국 학생과 교사, 일반 대중의 의식에서 그것을 대체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종종 병적으로까지 성적에 신경을 쓰며, 그 증상이 돈에 대한 탐욕과 아주 흡사하다는 사실도 전혀 놀랍지 않다.

성적은 단순한 통제 수단을 넘어, 학업의 예속화 과정이 완료되었다는 표시다. 그리하여 성적은 지배관계가 피해자들 자신에 의해 수행되는 형식이 되었는바, 학생들의 웃웃 가슴에 꿰매어진 노란 별(나치가 유대인들의 상의에 붙이도록 한 다윗의 별)을 올림픽 금매달처럼 여기도록 격려받는다.

 

일본은 시험에 미친 나라다. 학생들은 방학이 끝나자마자 9월에 큰 시험을 치르고, 네다섯 차례 더 시험을 본 후 초여름에 또 한 번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은 이런 일을 매년 반복하다 아주 중요한 시험을 통과한 후 대학에 들어간다. 시험 성적이 성공을 크게 좌우하는 제도하에서 사설 입시학원 산업이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다. 수백만의 학생이 매일 방과 후 학원엘 가고, 많은 가정이 비싼 학원비 때문에 큰 빚에 시달린다. 교육의 모든 단계에 각기 대비하는 학원들이 있고, 심지어 유치원용 학원까지 있다. 학원이라고 다 같지 않고 실적이 뛰어난 학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더 좋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 대비하는 학원도 있다.

이런 시험들은 대부분 단순 암기를 요구한다. 생각할 필요가 거의 없으며 비판은 더욱 없다. 당연히 이 모든 상황의 최종 결과물은 다음 퀴즈쇼에서 좋은 성적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 규율이 잘 잡히고 상상력 없고 자살 경향이 있는 수재들이다(일본 TV에서 퀴즈쇼가 최고의 인기 프로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해 여러분이 일본 학생들에게 과도한 우월감을 느낄까봐 하는 말인데, 자본주의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이른바 교육 개혁이 바로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시험이 우리의 지배계급에게 해주는 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회 환경의 불리함을 개인적 결함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 자신은 어떤 종류의 시험을 낼까? 여러분이 궁금해할지 모르므로 얘기하자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학과 졸업시험을 제외하고 나는 15년 동안 한 번도 시험을 실시한 적이 없다. 사실 시험에 대비해서 하는 식의 공부는 내가 강의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정치이론 및 방법론의 비판적 이해를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또한 시험이 학생들의 지식을 테스트하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라 믿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두 주일 동안 학생들의 불안 수치를 하늘 높이 끌어 올리는 일이 즐겁지도 않다. 몇몇 강좌에서 나는 학기말 리포트를 요구하지만, 대개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지적 일기장인 생각 노트를 만들어 그들이 읽는 책과 나의 강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도록 해왔다.

 

이 책을 다 읽음으로써 거래의 의무를 완수한 여러분에게 아래 찾아보기를 제공하니, 시험을 잘 보고 세상을 바꾸는 데 활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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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임금 - 몽상, 그 너머를 꿈꾸는 최고임금에 관하여
샘 피지개티 지음, 허윤정 옮김 / 루아크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셀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빠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잠을 안 잘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숨을 참을 수 있을까? 고작해야 2~3? 그런데 극소수 억만장자는 지구상의 일반 성인보다 279000배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단다. 불평등이 극한에 온 것 같다. 그 해결책이 바로 이 책에 있다.

 

<밑줄>

우리는 대부분 과하지 않으려 한다. 중용을 지킬 때 모든 것이 더 잘 돌아간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다. 무엇이든 과하면, 심지어 건강에 필요한 요소나 좋은 마음도 지나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식을 하면 심각한 비만으로 이어질 수 있고, 운동을 너무 격렬하게 해도 몸이 상할 수 있다. 사랑도 지나치면 숨 막히는 집착으로 변한다.

과하면 엉망이 되는 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실상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기에 과함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다. 가령, 도로에서 최고 속도를 제한하고, 공장에서 하천으로 내다버리는 폐수를 규제한다. 이웃 주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소음도 통제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것에 제한을 가하지는 않는다. 개인 소득은 제한하지 않는다.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속도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부자로 말이다.

 

2017년 중반에 상위 1퍼센트의 갑부들이 전 세계 부의 50.8퍼센트, 곧 나머지 99퍼센트 사람들의 부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부를 보유. 순자산이 5000만 달러 이상인 초고액자산가148000명 이상이고, 이 가운데 약 절반은 미국에 있다고 추정. 극소수 억만장자는 지구상의 일반 성인보다 279000배 많은 자산을 보유

 

미국에서도 불평등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다 위태롭게 만든다. 이혼율은 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미국에서 최고치를 달린다. 소득이 최상위 경제층에 심하게 집중된 주에서는 탄소 배출량이 더 많았으며 환경보호에 더 소극적이었다.

 

확연한 불평등 국가인 미국은 인당 평균 건강관리비용을 선진국보다 ‘3배 가까이지출하고 있는데도 국민의 기대수명이 선진국들 가운데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1970년대 후반 이래 미국의 정치 엘리트들은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자들에게 대단히 관대한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줄이고 부자들이 경영하는 사업에 대해 규제를 풀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1978년 이후 최하위 50퍼센트 미국인의 실질소득을 실제로 1퍼센트가 줄었다. 반면 최상위 1퍼센트의 부자들의 실질소득은 같은 기간 3배 가까이 늘었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에 연동된 국가에서는 사회 극빈층의 소득이 먼저 증가해야만 최고 부유층도 자신의 개인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어서다. 그런 사회에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를 증진하면서 개인의 기득권을 누릴 것이다. 착취들이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0.01퍼센트 갑부 지위에 오르려면 최소 1130만 달러의 소득을 올려야 했다. 이 상위 0.01퍼센트 부자들의 평균 소득은 3160만 달러였는데, 이는 최저임금 직종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미국인 노동자 연소득의 ‘2100에 가까운 금액이다. 미국의 최저임금노동자는 상위 0.01퍼센트 부자가 단 1년 만에 벌어드리는 금액의 돈을 모으려면 ‘2000을 꼬박 일해야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196391퍼센트였던 최상위 소득층의 세율이 1965년에는 70퍼센트로, 1982년에는 50퍼센트로 그리고 1988년에는 28퍼센트까지 떨어졌다.

 

해리슨은 17000명의 캐나다퍼시픽철도 직원의 일자리를 없앴다. 이는 회사 전체 인력의 34퍼센트에 달하는 숫자였다. 일자리 감축은 매우 힘든 일일 수 있다. 해리슨은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수를 확실하게 받았다. 그는 캐나다퍼시픽철도에서 CEO로 장기재직하는 동안 4년에 걸쳐 8900만 달러를 챙겼다. 이 돈은 전임자가 동일한 기간을 재직하면서 받았던 연봉의 두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오늘날 기업의 중역 회의실은 헌터 해리슨 같은 임원들과 보상을 갈망하는 고위 간부들로 넘쳐난다. 경제정책연구소 산출에 따르면, 1978년에서 2015년 사이 대기업의 CEO 보수는 941퍼센트 증가했고, 이는 주식시장의 성장보다 70퍼센트 정도 더 빠른 속도이며, 같은 기간 일반 노동자의 보수가 힘들게 10.3퍼센트 늘어난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인상 폭이었다.

기업의 CEO들은 최정상에 앉아 탐욕의 화신이 되었다. 1965, 미국의 주요 CEO들은 일반 노동자보다 평균 20배 많은 보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CEO와 일반 노동자의 보수 차이가 평균 300배 이상 더 벌어졌다.

 

모든 사람을 대표해야 할 정치체제가 억만장자들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그들을 대신해 행동하는 백만장자 정부를 낳는다. 이렇게 억만장자 계층의 자금을 받아 임명된 정부가 생물권을 보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지켜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사자가 야채스프를 먹고 살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2000년도에 소득이 100만 달러가 넘었던 가계들이 실제 기부금액보다 1280억 달러를 더 기부할 수 있었고, 그럼에도 개인 순자산은 연말에 더 증가했을 것

 

2005, 미국의 권위 있는 의료기관인 메모리얼슨론케터링암센터에서는 암 연구를 위해 수천만 달러를 기부한 억만장자 데이비드 코크에게 답례로 기업 리더십 우수상을 수여했다. 이 엄청난 기부금은 환경보호국이 포름알데히드를 발암물질로 분류하지 못하도록 코크인더스트리가 맹렬한 로비를 펼치는 동안 암센터에 전달된 것이다.

 

만약 사회가 부자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상한을 두면 부자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고, 그 상한선까지만 수입을 올린 뒤 한껏 뽐내면서 석양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기업가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자리 창출자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창출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경제는 박살난다.

과연 타당한 논리일까? 그런 논리는 우리가 갑부들에게 고용을 신세지고 있다고 믿을 때만 맞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현재 진짜 부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도 않고 그들에게 기대고 있지도 않다. 지금까지 그런 적도 없다. 걸출한 부자 벤처 투자가 닉 하나우어는 실제로 부자들이 일자리를 최대한 창출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부자가 된다고 말한다.

하나우어는 2013년 미국 상원 경제정책 청문회에서 이런 발언을 했다.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고용을 늘리는 것이 자본가의 최후 수단이고, 고객 수요가 늘어나 고용 증가가 필요할 때, 그것도 꼭 필요할 때만 하는 조치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부자들만으로는 경제 활력을 유지할 만큼의 수요가 절대로 제공되지 않는다고 하나우어는 설명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중간 임금의 1000배를 벌지만, 1000배만큼 물건을 사지는 않습니다. 저희 가족은 차를 세대 소유하고 있습니다. 3000대가 아니고요

하나우어의 상원 청문회 증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탄탄하고 활발한 중산층만이 건전한 일자리 증대에 필요한 수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그런 경제를 창출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경제를 죽이고 있다. 하나우어는 돈이 소수의 수중에만들어가는 사회는 소비를 억누르고 수요를 떨어뜨리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며 자신의 발언을 요약했다.

 

상부에 무게가 실린 경제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말도 한 가지 맞는 게 있다. 엄청난 부자가 되는 기회가 강한 동기가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나 강하게 말이다. 그러나 계석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갈망은 모든 것을 소진시킨다. 갈망이 너무 큰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균형감각을 모두 잃을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을 속이거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든다. 직장에서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부정행위를 일삼으며 남의 것을 도용할 지도 모른다.

소득에 상한을 두는 사회는 그런 사악한 행위의 동기를 둔화시킨다. 최고임금이 존재하는 사회는 엄청난 부자가 되는 기회를 제거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간단하고도 격조 높은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삶은 큰 부를 좇는 것 이상일 수도 있고, 그 이상이어야만 한다고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삶에 대한 이런 정의를 반길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아침에 눈을 떠 자신의 일이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으며 일터로 향한다. 어쨌든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경제에 기여를 한다. 큰 부를 동기로 삼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자기 일이 가치 있기를 진심으로바란다. 일부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한껏 움켜쥘 수 있는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모두가 간절히 바라는 이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인간은 공정성을 중시한다. 모든 직원이 최선을 다해 일하기를 바라는 기업은 모든 직원의 노동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소수의 최상층 직원에게 나머지 직원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보수를 주는 급여체계는 직원들의 노동을 경시하는 처사이며, 그런 평가절하는 노동자의 마음을 회사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곧 최고 임원들이 아침 한나절 만에 버는 돈이 일반 노동자가 한 해 동안 버는 돈보다 많으면, 그 기업에 무슨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선배 평등주의자들은 재분배성 조세제도를 터무니없이 큰 부에 대한 이상적인 해독제로 여겼다. 그들은 선진 국가들의 사회에서 소득과 상속 재산에 대한 누진세율을 투쟁으로 쟁취했으며, 이 누진세율은 20세기 중반 사회를 더 큰 평등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룬 큰 평등은 지속되지 못했다. 최상위층에서 시작되는부와 소득 재분배에 기초한 공평에 이르는 접근법은 장기적으로 최상위층이 가진정치적 힘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오늘날 우리가 얻은 교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최상위층에 집중된 부와 소득을 재분배하는 하는 것 이상을 해야 한다 우리는 부와 소득이 집중되는 것을 먼저 막아야 한다. 공공지갑의 힘을 활용해 기업 최상위층의 소득을 제한하는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눈에 띄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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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생선발지침 - 자유화 파탄, 대학 평준화로 뒤집기
하재근 지음 / 포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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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생선발 지침이란 책 제목은 서울대학교 학생을 선발하지 말자는 지침이다. 즉 대학평준화를 얘기하는 책이다. 다소 장황하고 반복되고, 대학평준화 지침보단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 치우친 아쉬움은 있지만 그 점을 참고하여 참고 읽어낼 가치가 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민주주의 정권이라기 보단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능력에 따라 일류대학에 가고, 돈 버는 능력에 따라 재벌이 되는 것을 자유라고 얘기하는 것은 가짜 자유, 즉 신자유주의다.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가 아니다. 능력이 아닌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고, 아무리 노력을 많이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지나치게 보상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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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금 사람으로 태어나기 싫은 나라이며(OECD 저출산률 1), 재수 없어서 태어났어도 여건이 된다면 국외로 탈출하고 싶은 나라이며(해외 유학, 두뇌유출), 여건이 안된다면, 즉 나갈 돈이 없다면 목숨을 끊어서라도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됐습니다(OECD 자살률 1)

 

옛날엔 종신고용체제로 국가가 중산층 국민공동체를 형성했지만 지금은 상시적인 고용불안뿐입니다. 안 잘리고 남은 사람들은 능력주의, 성과주의 연봉제란 미명하에 소수와 다수로 다시 양극화됩니다.

 

자유시장은 주주와 소비자의 이기심을 합리적 경제행동이라고 찬양하고 노동자의 삶을 향한 절규는 철밥통 이기주의라고 밟아버립니다. 일류학벌을 향한 수요자들과 일류학교들의 이기심을 당연시하고 전교조의 저항을 밟아버립니다. 결국 자산가가 아닌 대다수 국민이 자기 발에 밟히는 겁니다.

 

주주가 가져가는 몫에는 시장 자율의 신장이라며 기뻐하고,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에는 마치 재산을 강탈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적으로 보이는 분위기가 노조에 대한 적개심을 키웁니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과 섞이는 걸 싫어합니다. 국가가 억지로 섞이게 해야 범죄율일 떨어집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자꾸만 자신들만의 별천지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그러면 빈민가가 분리돼, 아이들이 일찍부터 좌절하고, 미국처럼 범죄율이 올라가, 결국 자기들도 고달파지는데 그런 건 생각 못합니다. 소비자로서의 이기성, 단기성 때문이지요. 이들의 이기성과 단기성이 발현된 시장 선택이 바로 자립형 사립고나 특목고 같은 귀족 입시학교와 심화된 대학서열체제를 만듭니다.

 

나 혼자만 시민이면 공화국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다 시민인 나라가 공화국입니다. 즉 나만 자유인인 나라, 다시 말해 내가 왕인 나라는 공화국이 아닙니다. 소수만 자유인인 나라도 공화국이 아닙니다. 모든 국민이 자유시민인 나라가 공화국입니다.

 

대학서열체제가 사라지면 입시지옥이 사라집니다. 전 국민의 삶의 질이 일거에 향상됩니다. 사교육비 고통이 사라집니다. 내수시장이 활성화됩니다. 자영업도 살아납니다. 지방공동화, 저출산이 반전됩니다. 시민이 길러져 민주주의가 발전됩니다. 인재가 길러져 국가경쟁력이 향상됩니다. 덕성이 길러져 사회가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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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살림지식총서 34
이충환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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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삶에 지쳐갈 때는 천문학 책을 읽고 싶다. 100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아웅다웅 다투는 꼴이 영 안쓰러울 따름이다. 이 책이 잡게 된 이유도 요즘 교회 일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일까? 아이러니한 건 이 책 쓰신 분이 같은 교회 성도. 주님은 무슨 뜻으로 이 책을 내게 주셨을까?

태양도 50억년 후엔 죽는단다. 무거운 별일수록 더 빨리 죽는단다. 인간이 태양보다 5천만배이상 무거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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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질량은 진화과정뿐만 아니라 수명도 결정한다. 간단히 말하면 질량이 클수록 별의 수명은 짧다. 무거운 별은 짧고 굵게, 가벼운 별은 가늘고 길게 산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 태양은 50억년을 살았으며 앞으로도 이만큼은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질량이 태양보다 5배 무거운 별은 1억년을 채 살지 못한다.

왜 그럴까? 무거운 별은 가벼운 별보다 태울 연료를 많이 갖고 있긴 하지만, 너무나 헤프게 왕창 써버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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