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함께 A학점을 - 시험 잘 보며 세상 바꾸기
버텔 올먼 지음, 김한영 옮김 / 모멘토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영리(怜悧)한 사람은 사적인 영리(營利)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자는 영리한 사람치곤 사익보다 공익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똑똑하면서도 착할 수 있다니 참 대단하고 부럽다. 닮고 싶다.

학생들은 사적 이익에 관심이 많은데 그걸 아무리 탓한들 소용이 없다. 저자처럼 제자들과 거래(?)를 해야겠다. 성공시켜 줄테니 사회에 보답하라고...

 

<밑줄>

모든 학생이 꿈에 그리던 시험이 있다. 열 개의 오엑스 문제에서 모든 정답이 오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시험. 답을 깜빡 잊었더라도 모든 정답이 문제지 뒷면에 적혀 있는 시험. 시험을 망쳤어도 합격할 때까지 종일 되풀이하여 볼 수 있는 시험. 바로 이것이 미시건 주에서 권총 소지 허가를 받기 위해 보는 자격 시험이다. 그래서인지 이주에서 가장 큰 도시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살인 수도라 불린다. 여러분이 치르는 모든 시험이 이런 식이라면 당장 이 책을 집어 던져도 된다. 그게 아니라 이제부터 내가 알려줄 시험 요령들은 아주 유용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고, 조건이 하나 있다.

나는 학생 시절에 시험을 수백 번 봤고,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그보다도 많은 시험을 출제했다. 그러는 사이 시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줄 마음이 별로 없다. 이것이 문제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자본주의, 즉 우리 사회의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인데, 그 주제에 끌리는 학생은 아마도 별로 없을 테다. 하지만 시험에 관한 나의 도움말은 듣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래를 하자. 이게 조건이다.

여러분이 나의 자본주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준다면, 시험을 최대로 잘 보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점들을 말해주겠다. 이 책은 우리의 거래가 될 것이다.

 

채점은 얼마나 주관적일까? 1912년 대니엘 스타크와 에드워드 엘리엇은 200명의 고등학교 교사에게 두 편의 영어 과목 리포트를 보내 채점을 의뢰했다. 그중 142편이 채점되어 돌아왔는데, 한 리포트의 점수 폭은 50~99, 다른 리포트의 점수 폭도 64~99점이었다. 영어는 객관적인과목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교사들은 수학에 관한 논술형 리포트에도 그렇게 점수를 매겨, 점수 폭이 28~95점에 이르렀다. 두 경우 모두 대부분의 점수는 중간에 몰려 있었지만, 아무튼 시험 점수라는 건 대체로 누가 시험을 보았느냐보다 누가 시험을 채점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분명해졌다.

더 심각하다고 볼 문제가 있다. 다른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똑같은 선생님이라도 채점할 때의 기분에 따라, 하루 중 어느 때에 채점하느냐에 따라, 직전에 본 답안이 얼마나 좋거나 나빴는지에 따라(아주 뛰어난 답을 채점한 직후에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대개 낮은 점수를 준다), 그리고 맨 처음에 채점하느냐 마지막에 채점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단답형 시험이 논술시험보다 객관적이라고 결론짓지 않기를 바란다. 채점만을 놓고 보면 단답형이 객관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교수의 편견들은 이미 문제의 선택에서부터 그 표현방식, 그리고 선다형 문제의 경우 제시된 선택지의 수와 유형에까지 녹아들어있다. 또한 출제자는 논술시험이 아닌 단답형 시험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획일성을 선호하고 창조성과 다향성을 멀리하는 자신의 편향을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들 나눠줄 때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그들은 왜 가난할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라 부른다.” 브라질의 대주교였던 엘더 카마라의 말이다.

 

사회적으로 모든 중요한 자리가 혈통에 따라 분배되었던 봉건제와 비교할 때,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시험 제도는 중대한 발전이었다. 기회의 평등이 전무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얼마간의 기회의 평등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다.

1) 현재의 시험 제도는 평등보다는 불평등이 일반화한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 관계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

2) 시험, 특히 이토록 많은 시험이 교육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3) 시험의 주된 기능은 사회의 승자를 선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수가 훨씬 많은 패자들로 하여금 미래의 가혹한 운명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것인가?

4)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시험이 없는 교육은 어떤 모습이고, 그런 개혁을 가능케 하려면 그 밖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야 하는가?

 

미국에서 해마다 살인 사건으로 죽는 사람은 19000명인 데 비해 산업재해로 죽은 사람은 56000명으로, 다른 공업국보다 월등히 많다. 그런데도 미디어에선 온통 살인 사건 이야기만 늘어놓지, 일과 관련된 사망과 부상에는 지면과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는다.

 

20만명이 응시하는 경영대학원입학시험(GMAT)에 나오는 두개의 논술문제가 이미 기계로 채점되었다. ‘-레이터(E-rater)’라고 불리는 이 채점 기계는 대체 어떤 것인가? 관계자들도 인정하듯이, 분명 창조적 사고를 평가하는 건 아니다. 그 시험을 주관하는 회사의 한 대변인은 사고의 체계성과 구문론적 구조를 평가한다는 했는데, 카플란 교육센터(각종 시험준비 전문 대기업)에서는 이 기준에 맞춘 답안 작성 요령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 선명한 개요로 시작한다(체계적인 답안이라는 증거) 2)‘그러므로’, ‘~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따위 연결 어구들을 많이 사용한다(글 구조가 잘 짜인 답안이라는 증거) 3)동의어를 풍부하게 사용한다(어휘력이 강하다는 증거)

 

우리의 자본주의 사회는 한 손으로 법적 권리를 나눠주고는 다른 손으로 그걸 빼앗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예를 들면, 우리 각자에겐 하고 싶은 말을 할 권리가 있고, 그걸 표현의 자유라 부른다. 다만 주요 미디어의 지면을 살 만큼 큰 돈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물론 언론은 자유롭다. 언론을 소유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오늘날 대부분의 수업은 시험 위주가 되고, 학생들의 합격을 돕는 수단이 되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무엇을 배웠느냐가 아니라 그걸 배웠다는 증거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수들은 가르치는 역할보다는 시험 코치나 트레이너 노릇을 더 많이 한다.

 

그래, 자유시장은 부당하고, 불공평하고, 비민주적이고, 심지어 자유롭지도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어쨌든 경제적으로 볼 때 계획경제보다는 효율적이잖아?”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현 제도하에서 외부비용으로 간주하는 모든 것, 즉 광고와 관련된 비용, 수백 수천만 노동자와 소비자의 건강을 좀먹고 환경을 오염하는 것과 관련해 발생하는 비용 따위를 다 제외한다면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것 말고도, 소유주에게 충분한 이익을 남겨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기계와 원자재와 노동력을 가동하지 않고 버려둘 때 발생하는 엄청난 낭비가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찬양하는 이들은 저 모든 불필요한 낭비와 비용을 절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이 물질적 궁핍의 위험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이게 노동자에겐 좋기만 한 일도 아니다)에만 초점을 맞출 따름이다.

 

사장이 고용인에게 말한다. “젊은 친구, 이 회사에서 아주 빠르게 출세했군. 2년 전 사환으로 시작해서 두 달 뒤 사무직원이 됐고, 판매요원, 부지배인, 지배인을 거쳐 어느덧 부사장이네. 소감이 어때?” 고용인이 대답한다. “고마워요, 아빠.”

 

1830년대 초에 미국을 두루 여행한 프랑스의 젊은 귀족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한 겨울에 교향에서 쫓겨나는 것을 목격했다. 노인들, 아이들, 병자들도 눈밭에서 얼어 죽었다... 10년 후 미국은 멕시코의 3분의 1을 빼앗았다... 1898년 팽창하는 미 제국에 쿠바와 필리핀을 포함시키기 위해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베트남 전쟁은 삼사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세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1990년 미국 정부는 가장 정교한 무기들을 사용해 수십만 명의 이라크인을 죽였다...1998년 유고슬라비아가 일부 국민을 학대한다는 이유로 폭격을 당했다... 지금도 우리의 돈과 군사고문들이 페루와 콜롬비아의 파시즘 군대를 돕고 있다.(불과 얼마전까지도 니카라과,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인도네시아, 칠레, 브라질의 군대를 도왔다) 그런 가운데 군사 파시즘 정권들은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우겨주는 그들의 정부를 지킨답시고 수천 수만의 자국민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몰래 내다버렸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큰 거짓말이론을 소개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작은 거짓말들을 하고, 그래서 그런 거짓말을 들을 때 쉽게 알아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주 큰 거짓말을 할 정도로 대담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큰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냉소적인 사람은 별로 없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보다는 아주 큰 거짓말을 하고 무사히 넘어갈 확률이 더 높다. 이 교훈을 실제로 적용한 사람은 히틀러뿐이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이자 어쩌면 그 때문에 가장 성공적일 수 있었던 거짓말 중 하나는 미국 정부의 대외 정책이 인권 보호와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자유 수호를 지향해 왔다는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이자 철학자였던 크세노폰의 저술 키루스의 교육에는 사상 최초의 시험 중 하나가 기록되어 있다. 오래지 않아 페르시아의 유명한 왕이 될 키루스가 열 살쯤 났을 때였다.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문제를 냈다. 너에게 너무 큰 소매 없는 외투(당시에 주로 입던 겉옷)가 있고, 너보다 나이가 많은 어느 소년이 너무 작은 외투를 입고 있다면 어떡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선생은 물었다.

키루스는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을 테고, 그래서 즉시 대답했다. “물론 그와 외투를 교환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 둘 다 몸에 맞는 옷을 갖게 될 테니까요.” 이 대답을 듣자마자 선생은 채찍을 꺼내(당신 선생들의 일반적인 도구였다) 키루스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외쳤다. “틀렸어. 너의 외투는 네 것이고, 그의 외투는 그의 거야. 각자 자기의 것을 갖고 있어야 해.”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사유재산을 존중하라. 아무튼 예전부터 어떤 말이든 채찍질을 곁들이며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곧 상식을 물리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더 세련된 방법들이 나와서 선생님들의 채찍질이 조금 완화됐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키루스의 외투 이야기는 시험의 원형, 훗날 모든 시험의 패러다임이 된다. 그 주된 목표는 학생들이 얼마만큼 아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와 (그것이 만들어내고 필요로 하는) 계급적 관계가 핵심가치인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1950년대 중반 내가 위스콘신 대학교를 다닐 때 미국재향군인회는 미국적 생활양식에 비판적인 책들을 너무 많이 소장하고 있는 대하 도서관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표현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편지를 재향군인회에 써 보냈고, ‘미국주의를 위한 주위원장으로부터 미국적 생활양식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은 모르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확신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그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유도 모르는 채 죽고 죽이거나 남들을 도살장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있는 듯한데, 이런 사람들을 흔히 애국자라 부른다.

 

시험공부를 할 때 수면은 얼마나 중요할까? ‘인지신경과학저널’(20003월호)은 기억력 향상과 충분한 야간 수면 사이의 뚜렷한 연관성을 입증하는 연구 논문을 게재했다. 8시간 잠을 잔 학생들이 시험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 또한 잠을 많이 잔 학생들은 적게 잔 학생들보다 사실뿐 아니라 기술도 더 오래 기억했다. 연구를 주도한 하버드대 교수 로버트 스틱골드는 심지어 이렇게 주장했다. ‘다음 날 시험을 다시 보도록 했을 하버드대 학생들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내는냐는 그들이 졸업한 예비학교나 수능시험 성적, 또는 노력의 정도에 달려있지 않았다. 대체로 그보다는 얼마나 잘 잤느냐에 의해 좌우됐다

 

뉴어크의 고등학교 교장인 조 클라크는 학교를 평화롭고 조용하게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해결책은 말썽꾼들을 전부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 때문에 주변 지역의 범죄율은 증가했다. 그 말썽꾼들이 학교 밖에서 말썽을 피웠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에 자유주의자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방식도 바로 이런 식의 의자 빼앗기 놀이다.

 

작은 정부, 긴축재정, 개인의 책임, 가족의 가치 같은 보수주의의 덕목들은 어떠한가? 글쎄, 보수주의자들이 이런 것들을 들먹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들 대부분에게 이는 치부를 가리는 무화과나무 잎이고, 그들의 선거강령 제정을 담당한 홍보 회사가 짜 맞춘 설교에 불과하다. 이른바 보수주의자중 거의 누구도 자기네 이익에 도움이 되는 정부 확대에 반대하지 않고, 정부 지원금을 받는 쪽이 자기들일 때 그걸 거절하지 않는다.

 

성적과 돈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잔인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 자기 집 쇠침대에 누이고는 그 크기에 꼭 맞게 만들었다고 한다. 키가 큰 사람은 다리를 자르고 작은 사람은 늘리는 식이었다. 돈과 성적도 우리 사회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역할을 한다. 돈은 서로 아주 다른 물건들을 가격을 가지고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성적은 아주 다른 사람들을 글자 하나로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고 나면 그것의 다른 특질들은 훨씬 사소해지고, 종종 완전히 무시된다. 이와 똑같이, 우리가 누군가를 'A', 'B' 또는 'C' 학생으로 규정할 때 그의 개성적 특질들은 사소해지거나 무시된다.

상품화란 물건이 가격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의식주 등 구체적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시장에 이르고 나면 주로 가격을 기준으로 고려되고 평가된다. 성적은 학습 과정의 상품화를 상징한다. 화폐가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온갖 다른 상품들을 대변하듯이, 성적은 온갖 종류와 수준의 지식을 대변한다. 성적은 엄청나게 다양한 인간 재능과 성과를 단 하나의 차원(테스트의 대상)으로 환원하여 측정한 다음, 결국 학생과 교사, 일반 대중의 의식에서 그것을 대체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종종 병적으로까지 성적에 신경을 쓰며, 그 증상이 돈에 대한 탐욕과 아주 흡사하다는 사실도 전혀 놀랍지 않다.

성적은 단순한 통제 수단을 넘어, 학업의 예속화 과정이 완료되었다는 표시다. 그리하여 성적은 지배관계가 피해자들 자신에 의해 수행되는 형식이 되었는바, 학생들의 웃웃 가슴에 꿰매어진 노란 별(나치가 유대인들의 상의에 붙이도록 한 다윗의 별)을 올림픽 금매달처럼 여기도록 격려받는다.

 

일본은 시험에 미친 나라다. 학생들은 방학이 끝나자마자 9월에 큰 시험을 치르고, 네다섯 차례 더 시험을 본 후 초여름에 또 한 번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은 이런 일을 매년 반복하다 아주 중요한 시험을 통과한 후 대학에 들어간다. 시험 성적이 성공을 크게 좌우하는 제도하에서 사설 입시학원 산업이 엄청난 규모로 발전했다. 수백만의 학생이 매일 방과 후 학원엘 가고, 많은 가정이 비싼 학원비 때문에 큰 빚에 시달린다. 교육의 모든 단계에 각기 대비하는 학원들이 있고, 심지어 유치원용 학원까지 있다. 학원이라고 다 같지 않고 실적이 뛰어난 학원이 따로 있기 때문에, 더 좋은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에 대비하는 학원도 있다.

이런 시험들은 대부분 단순 암기를 요구한다. 생각할 필요가 거의 없으며 비판은 더욱 없다. 당연히 이 모든 상황의 최종 결과물은 다음 퀴즈쇼에서 좋은 성적을 낼 준비가 되어 있는, 규율이 잘 잡히고 상상력 없고 자살 경향이 있는 수재들이다(일본 TV에서 퀴즈쇼가 최고의 인기 프로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해 여러분이 일본 학생들에게 과도한 우월감을 느낄까봐 하는 말인데, 자본주의 세계를 휩쓸기 시작한 이른바 교육 개혁이 바로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시험이 우리의 지배계급에게 해주는 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사회 환경의 불리함을 개인적 결함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 자신은 어떤 종류의 시험을 낼까? 여러분이 궁금해할지 모르므로 얘기하자면,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학과 졸업시험을 제외하고 나는 15년 동안 한 번도 시험을 실시한 적이 없다. 사실 시험에 대비해서 하는 식의 공부는 내가 강의를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정치이론 및 방법론의 비판적 이해를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또한 시험이 학생들의 지식을 테스트하는 최선의 방법도 아니라 믿고, 학기가 끝날 때마다 두 주일 동안 학생들의 불안 수치를 하늘 높이 끌어 올리는 일이 즐겁지도 않다. 몇몇 강좌에서 나는 학기말 리포트를 요구하지만, 대개는 학생들에게 일종의 지적 일기장인 생각 노트를 만들어 그들이 읽는 책과 나의 강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도록 해왔다.

 

이 책을 다 읽음으로써 거래의 의무를 완수한 여러분에게 아래 찾아보기를 제공하니, 시험을 잘 보고 세상을 바꾸는 데 활용하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