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걷다
김태빈 지음 / 레드우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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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골방의 커텐을 걷고 /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드리노니 /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이육사 황혼)”

 

이육사는 1904년생이고, 그의 딸 이옥비는 1941년생이다. ‘육사, 걷다의 작가 김태빈은 197*년생이다.

 

인간은 외로울지 모르지만 육사는 외롭지 않다. 이들이, 우리가 그와 함께 걷기 때문이다.

 

의로운 길을 걸을 때 외롭지 않도록

 

: (일본) 육사를 걷던 박정희나, (한국) 육사를 걷던 전두환은 의로운 길을 걷지 않았으니 (저승길이) 외로울 것이다.

 

<밑줄>

육사는 어려서부터 멋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안경알 없는 안경도 멋 때문에 썼단다. 나는 종종 1941년에 촬영해 가족과 친구에게 선물했던 중년의 육사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청년 육사는 영락없는 모던보이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1940년 육사가 발표한 현주·냉광-나의 대용품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식용품에는 가배에 다분히 딴 놈을 넣는 모양이나 넣을 때 보지 않는 만큼 그냥 마십니다마는, 그도 심하면 아침에 삼월(三越)에 가서 진짜를 한잔합니다.”

여성이란 잡지에 기고했기에 일상생활의 단면을 가볍게 쓴 것으로 보이는 이 글에 따르면, 중일전쟁 이후 부족해진 일용품을 대신한 상품이 널리 팔렸던 것 같다. 대용품이니 질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만 개중에는 가짜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커피 같은 기호품은 더 구하기가 어려웠을 테니 모던보이 육사로선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으리라. 그럴 때 육사는 미쓰코시(三越)에 간다고 했다. 육사와 교우했던 김기림은 조지야(丁字屋)에서 캘리포니아산 커피를 마셨다는 글을 남겼다.

 

그때 옥비 여사는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했다. 너무 놀란 내가 재차 확인했을 정도였는데, 만약 이육사 선생이 해방을 맞았다면 북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말씀이었다. 해방 직후 38선 이남의 반공 체제 확립과 친일파의 준동, 그리고 두 동생의 월북까지 모두 이유가 되겠지만, 육사의 독립운동에서 사회주의는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노선이자 방법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나는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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