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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저리 아저씨 - 한흑구 제3수필집·유고집
한흑구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5월
평점 :
한흑구가 생전에 낸 수필집은 두편인데, 사후에 남은 수필들을 묶어서 낸 세 번째 수필집인 셈이다.
“나의 이름과 내가 쓴 시가 영문으로 인쇄된 것을 처음부터 바라볼 때에 나는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것보다는 알바는 물론이고, 학보 문예부의 여학생 기자들까지도 나를 큰 시인인 것 같이 대우하고 또한 격려하였다. 나는 용기를 얻어서 밤을 새우면서 영미 시인들의 시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학보에 수십 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순정의 학우 알바 中)”
한흑구는 수필가로 유명했지만 시작은 시인이었다. 그가 밤을 새우면서 시를 쓴 이유는 그가 좋아했던 스웨덴 여학생 알바와 학부 문예부 여학생들 때문이었다. 스물의 흑구는 나라 잃은 설움이나 조국에 두고온 어머니나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아버지 생각은 잠시 잊어도 될 나이였다.
“중학시설에 나는 새벽마다 모란봉을 산책하는 것으로 새벽 일과를 삼았었다. 두 손에 아령을 쥐고 뛰기도 하고, 대동강 물에 냉수마찰을 하였다. 서문 안에서 살고 있던 나의 산책 코스는 서편 길로 모란봉을 올라가곤 했다. 서문여고, 숭의여고, 정의여고가 서 있는 길 복판을 뚫고, 만수대를 넘어서 서평야에서 들어오는 큰길을 건너 토성을 끼고 칠성문을 지나 을밀대로 오르는 것이었다 (모란봉의 봄 中)”
실향민 한흑구가 평양 살던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남중생 한흑구에게 서문여고, 숭의여고, 정의여고 길은 매일 산책 코스였나 보다. 숭의여고는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서문여고랑 정의여고는 남쪽에 동명이교(?)가 나중에 개교하였다.
“정해진 주제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소재의 탐구에 오랜 시간을 보내며 관찰과 이해를 얻기에 노고를 해야 할 것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나무’를 쓰는 데 5년, ‘보리’ 3년, ‘석류’ 2년, ‘코스모스’ 2년 등의 시간을 경과하며 관찰한 뒤 붓을 들었던 일이 있다 (직관력과 영감 中)”
수필 한편 쓰기 위해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니, 작가로 밥벌이를 한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ㅠ.ㅠ 다만 가난은 부유보다 좋은 글감이니 벌이를 위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게 역설적인가?
“70이 다 되어가는 나는 젊어서 나의 집과 땅과 재산과 고향마저 잃어버리고, 타향에서 늘 향수의 서러움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잃었던 나의 조국을 되찾은 기쁨과 행복 속에서 더 오래 살고 싶은 희망에 차 있는 것이다. 어서 남북이 통일이 되고,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젊은 날에 뛰어놀던 나의 모란봉 꼭대기에 입을 맞추는 기쁨에 감격하고 싶은 것이다 (노년이 맞이하는 일 년 中)
조국이 통일되어 평양으로 귀향하여 젊은 날 뛰어 놀던 모란봉에 입 맞추는 기쁨을 소망하며 이 수필을 썼는데, 그로부터 3년만에 별세를 하고 만다. 한흑구 사후 50년이 지난 오늘도 조국은 여전히 분단된 상태이다. 2026년 기준 실향민 생존자 약 3만 명 중 70% 이상이 80대와 90대라서 10년후에는 거의 다 돌아가실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