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으면 그만이지 -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
김주완 지음 / 피플파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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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

1. 교육청은 사립학교에 대한 평가와 감사를 통해 잘잘못을 비교 공개하고, 못하면 국고보조를 줄이거나 잘하라고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2. 단기적으론 사립학교를 공적으로 운영하고, 장기적으론 사립학교를 공립화해야 한다.

 

<이유>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를 낭독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청문회에서 재산이 4억이라고 신고하며 일반인의 평균 재산을 넘어선 것 같아 반성한다고 말할 정도로 청렴한 사람이다. 그가 없었으면 오늘날 우리는 부자유와 불평등한 독재 정권 아래서 숨죽이고 살거나 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릴 때 가난으로 학업을 포기할 뻔했는데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학업에 전념한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그 독지가를 통해 자유, 평등, 박애, 공동체를 깨우쳤다고 한다. 이처럼 문형배 판사와 같은 훌륭한 인재를 가르친 사람은 바로 김장하 선생이다.

김장하 선생은 가난 때문에 학업을 잇지 못했던 자신과 같이 불쌍한 학생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과 한약업을 하면서 환자들에게서 받은 돈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립학교를 세웠고 그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사립학교의 공립화만이 학교의 장래를 위한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립학교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사립학교는 인건비, 일반운영비를 국고로 보조받고 있다. 심지어 자기 부담의 의무를 가진 법정부담금조차 거의 안 내고 있다. 사실은 공립처럼 국민의 혈세로 지원 받고 있으니, 사적으로 설립했을 뿐 공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즉 사립이지만 공영학교인 셈이다.

사립학교법과 법인정관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되 그 구체적인 방법은 관할 교육청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적인 인사와 투명한 예결산이다. 관할청은 사립학교에 대한 평가와 감사를 통해 잘잘못을 공개 비교하고, 못하면 국고보조를 줄이거나 잘하라고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단기적으론 사립학교를 공적으로 운영하고, 장기적으론 사립학교를 공립화해야 한다.

 

<참고 : 김주완-줬으면 그만이지 >

198239세의 김장하는 필생의 사회환원 프로젝트 고등학교 설립에 착수한다. 자신은 끝내 진학하지 못했던 고등학교를 직접 설립,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19837월 학교 신축 기공식을 거쳐 198432일 신입생 488명의 입학식을 열었으니 바로 학교법인 남성학숙 명신고등학교였다.

 

김장하 이사장은 교사와 직원 채용에 세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친인척이나 지인은 쓰지 않겠다. 둘째, 돈을 받고 채용하지 않겠다. 셋째, 권력의 압력에 굽히지 않겠다.

 

학부모에게 손 벌리지 마라.”

이사장의 또 다른 방침이었다. 80년대 당시만 해도 이런저런 잡부금도 많았고 교사들의 회식비를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관행도 있었다. ‘촌지도 전교조가 거부운동을 펴기 전에는 공공연했다.

김장하 이사장은 이런 잘못된 관행을 없애기 위해 매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나면 자신의 사비로 교사들 회식을 시켜주는 한편 해마다 학기가 끝나면 23일 전체 교직원 여행을 보내 주기도 했다. 또한 입시가 끝나면 고생한 3학년 담임교사들을 위해 가족여행을 보내줬는데, 두툼한 봉투를 주면서 제일 좋은 곳에 가서 자고, 가장 먹고 싶은 음식들 마음껏 먹고 오시라고 말했다.

 

명신고등학교에서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집단해직사태 때 단 한 명의 해직교사도 없었다. 공교롭게도 내가 2015년 책으로 펴냈던 풍운아 채현국의 채현국 이사장이 운영하던 양산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 역시 단 한 명의 해직교사가 없었던 것과 상통하는 얘기다.

전교조 결성과 함께 전국 곳곳의 사립학교에서는 사학비리 척결’, 공립학교에서는 교육민주화참교육 실현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고, 실제 수많은 사학비리가 폭로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사학재단과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 간에 대립구도가 형성됐고, 정부의 해직 방침을 빌미 삼아 사학재단이 앞장서 교사들을 자르기도 했다.

그러나 진주 남성학숙과 양산 효암학원에서는 이른바 사학비리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재단과 교사들 간에 대립이 생길 일은 없었으나, 전교조를 불법으로 규정한 노태우 정부의 해직 압력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명신고등학교는 경남지역 초··고등학교를 통털어 전교조 조합원이 가장 많은 학교 중 하나였다. 1987년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시절부터 그 숫자를 불려온 명신고의 조합원은 한때 40여 명에 달했다. 전체 교사가 61명일 때였다.

 

이 학교에는 모든 사립학교에 다 있는 재단이사장실이 없었다. 개교 초기 잠시 있었기는 했다. 커다란 책상과 명패, 소파 등이 있는 교실 1개 크기의 이사장실이었다. 처음엔 으례히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집무를 봤는데, 한 달 정도 지나 보니 학교 시설이 부족한 데다 이사장이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하는 교장에게 이사장실을 비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양호실로 쓰도록 했다. 그래서 학교 안에는 이사장이 머물 공간이 따로 없었다. 그 역시 특별한 행사나 회의가 있는 날 말고는 학교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 법인 이사회도 교장실에서 열었고, 결재할 일이 있으면 서무실에서 했다. 학교에 갈 때도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 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이 학교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는 원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오직 가난 때문에 하고 싶었던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한약업에 어린 나이부터 종사하게 되어 작으나마 이 직업에서는 다소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교를 설립하고자 하는 욕심을 감히 내게 되었던 것은 오직 두 가지 이유 즉, 내가 배우지 못했던 원인이 오직 가난이었다면, 그 억울함을 다른 나의 후배들이 가져서는 안 되겠다 하는 것이고, 그리고 한약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돈을 번다면 그것은 세상의 병든 이들, 곧 누구보다도 불행한 사람들에게서 거둔 이윤이겠기에 그것은 내 자신을 위해 쓰여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일이 곧 장학 사업이 되었던 것이고, 또 학교의 설립이었습니다. 그런 사정을 전후로 해서 본 명신고등학교는 탄생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에서 설립된 것이 이 학교이면,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제 개인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는 것이 본인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교가 공공의 것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공립화요, 그것이 국가 헌납이라는 절차를 밟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본교는 제 전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의 신조는 앞서 말씀드렸듯, 제가 거둔 금전적 이득은 제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 이상은 절대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그 근검 절약의 결과로 쌓이고 쌓인 것이 바로 본교인 것이고 또 그것은 금전적으로도 저의 전 재산이며, 정신적, 상징적으로도 제 전부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내버려두고 떠나는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라 해서 아깝고 서운한 느낌이 없을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그 마음은 향후의 본교에 대한 더 한 층의 애정으로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새로운 것을 쌓아 올려 볼 생각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또 반대하고 나무라는 의견이 있음을 저는 알고 있고, 또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의견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학교의 공립화만이 학교의 장래를 위한 최선의 방책인가 하는 것이며, 또 본교가 가졌던 명문 사학으로서의 긍지, 명신인이라는 그 따뜻한 울타리가 엷어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일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아픔이 크다 할지라도 그것은 잠시 뿐인 것입니다. 제가 계속 이 학교를 움켜쥐고, 지원을 나름대로 해 나간다 하더라도 저의 생전이나 또는 사후에 저와 또는 저를 둘러싼 제반 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본교의 모습 또한 현재의 발전적인 것을 영원히 지속되리란 보장 또한 희미한 것입니다.” - 학교법인 남성학숙 이사장 김장하 퇴임사 중

 

남성학숙은 해산하고 명신고등학교는 국가 재산으로 귀속돼 1991년 공립으로 전환됐다. 사립 시절 채용됐던 모든 교직원도 공립 교직원으로 고용승계됐다.

 

2021년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 345000만 원을 모두 경상국립대에 기증

 

똥은 쌓아 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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