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공간 디자인 산책 - 우리가 몰랐던 교육 공간의 변화와 혁신을 디자인하다
김지호 지음 / 슬로디미디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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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씌우다, 틀에 박히다란 표현이 있다. 여기서 프레임(frame)은 뼈대, 틀은 격식이나 형식 등을 의미한다. 키가 더 이상 크지 않는다는 말은 뼈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뼈가 살과 피를 규정한다는 얘기니, 프레임을 씌우면 그 프레임 밖으론 더 이상 클 수 없다는 말이다. 틀이란 격식, 형식에 박히면 그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프레임, 틀이란 공간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우리는 초중고 12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지낸다. 그런데 십년이 넘는 동안 우리가 묶여 있는 공간은 어떤가? 어디를 가든 똑같다. 그렇게 똑같은 이유는?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조선총복부가 일본 군대의 병영 건축을 모델로 만든 보통학교교사표준설계도 때문이었다. 즉 통제를 위한 건축물이었다.

 

그리고 왜 그렇게 좁은지, 이유를 알고 보니 간접적으로 학원법의 영향인 듯 하다. 우리나라의 학원 공간 규제는 학원법에 근거하는데 학생 1인당 최소 면적 기준은 학생 1인당 최소 1라고 한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약 2.5~3수준인데 반해서 말이다.

 

통제를 위해 최소한의 공간으로 만든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은, 복지는, 감성은, 생각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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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는 학교를 아이들의 첫 번째 집이라고 했고, 핀란드의 교육학자 키모 투오미넨Kimmo Tuominen학교 건물 자체가 교사라고 했다.

 

푸코는 학교가 감옥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기관이 되었다고 했다.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기, 종소리에 반응하기, 줄 맞춘 책상에 앉기, 시험으로 평가하기와 같은 통제적 방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교육 공간에 파놉티콘Panopticon’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보통학교 교사(校舍) 표준설계도는 일본 군대의 병영 건축을 모델로 했다. 이 표준설계도에는 학생들을 쉽게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편복도식 a single loaded corridor 구조가 도입해 있다.

 

교육 공간의 실질적인 변화는 1969, 당시 문교부가 표준설계도를 도입하면서부터다. 표준설계도는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형태의 학교 건물을 빠르게 지을 수 있게 했고, 효율성과 경제성을 중시한 설계였기에 결과적으로 학교 공간의 획일화를 가져왔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4층 높이의 콘크리트 건물, 녹색 칠판, 교단을 향해 일렬로 놓인 책상이 이 시기의 산물이다.

 

1995년은 김영삼 정부의 추진으로 5.31 교육개혁이 이루어진 중요한 때다.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조한 열린교육이라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도입되었고, 교육 공간도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교실 구조에서 탈피해 유연하고 개방된 열린 교실(벽을 허물거나 교실 간 이동이 가능하게 설계된 교실)’ 형태가 제안되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범 운영된 교과 교실제는 교육 공간에 다양성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패러다임이 생기며 교육 공간의 혁신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2014년 시작된 학교 공간 혁신 사업은 기존 학교 공간을 학생 중심으로 재해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업의 핵심은 학생과 교사가 함께 공간을 디자인하는 참여 설계에 있었다.

 

2021년에 시작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사업은 우리나라 교육 공간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2025년까지 약 2,835개 학교를 디지털, 친환경, 공간 혁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이 사업은 18.5조 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문제는 미래학교 구상에 대한 합의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태블릿 PC를 나눠주고, 교과서를 전자책으로 바꾸고, 분필 가루 날리는 칠판 대신 전자칠판을 쓴다고 해서 교육의 질이 높아질까? 첨단 시설이 완비된 교실에서 첨단 기자재를 사용해 스마트한 수업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면 공연물일 뿐이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다. , 공간의 혁신도 필요하지만 시급한 건 아이들에게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질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려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공간은 첨단 시설을 갖춘 공간이 아닌,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 공간 그리고 좋은 교사가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힘든 학교생활도 견뎌내고, 스스로 학교에 오고 싶어 할 것이다. 미래의 학교는 상호작용이 더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일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가 핀란드와 덴마크, 스웨덴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학교의 내부 공간과 디자인 배치였다. 우리나라의 학교처럼 긴 복도를 중심으로 교실이 일렬로 배치된 형태가 아니라, 마치 아이들의 2의 집처럼 설계된 공간들이 눈에 띄었다. 복도의 구석구석에는 아이들이 몇 명씩 모여 대화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교실 내부도 일자형 책상 배열이 아닌 팀별 활동이 가능한 원형이나 모둠형 배치가 대부분이었다. 많은 북유럽 학교가 가정과 사회가 융합되는 교육 환경을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교육을 민주주의, 행복, 복지의 상징으로, 그리고 학교를 경쟁하는 곳이 아닌 협동을 배우는 장으로 생각하여 좋은 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들은 학교의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핀란드의 한 교장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학교를 지을 때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너희가 가장 있고 싶은 공간은 어떤 곳이니?’라고 말이죠. 그리고 아이들의 대답은 건축가들에게 직접 전달되고, 실제 설계에 반영됩니다. 학교의 주인은 아이들이니까요

 

학교 건물이 가르친다라는 이탈리아 건축가 조르조 폰티Giorgio Ponti의 말처럼 잘 디자인된 건축은 그 자체가 교육이 된다.

 

OECD 국가 중 환기 시스템 설치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다. 유럽이나 북미 국가 학교 90% 이상이 기계식 환기 시스템을 갖춘 반면, 우리나라의 기계식 환기 시스템은 20%에 머문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건강과 학습권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일 것이다.

 

교실 내 주요 오염물질은 이산화탄소이다. 일반적인 실외 이산화탄소 농도가 약 400ppm인데 반해, 교실은 1,000ppm을 가뿐히 넘어서고, 환기가 부족한 교실은 2,000~3,000ppm까지도 상승한다. 이런 교실에서 학생들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을 넘어서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2,000ppm이 넘으면 두통, 졸음,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 하버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1,400ppm일 때 950ppm 때보다 인지 기능이 약 50% 저하되었고, 2,500ppm일 때는 무려 70%까지 저하되었다. 이는 아이들에게 졸지 말라고, 수업에 집중하라고 하면서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같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졸음이나 집중력 저하와 싸우고 있다면 개인의 의지력 문제라고 하기보다 환경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학습 효율이 가장 좋은 교실 온도는 겨울철 20~23, 여름철 23~26도라고 한다. 그리고 교실 온도가 24도에서 30도로 상승하면 수학 성적이 최대 13% 하락한다는 결과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교는 적절한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현실이다. 냉난방기가 설치해 있어도 중앙난방 시스템이어서 학생이 직접 조절할 수 없다.

 

핀란드는 모든 교실에 기계식 환기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800ppm 이하로 유지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색온도에 따른 조명 효과를 살펴보면, 석양과 비슷한 주황빛의 따뜻한 빛(2,700~3,000K)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어 휴식과 창의적 활동에 적합하고, 자연스러운 백색광인 중간 온도의 빛(3,500~4,500K)은 일반적인 수업 활동에 적합하며, 푸른빛을 띠는 백색광쿨화이트인 차가운 빛(5,000~6,500K)은 집중력과 주의력이 필요한 활동에 적합하다. 그래서 교육 공간의 조명을 계획할 때, 교실 내부는 차가운 빛을 사용하고, 복도 등의 공용 공간에는 중간 빛, 그 외 특활실이나 화장실, 도서관 등에는 따뜻한 빛을 사용하고는 한다.

 

한국아동안전연구소는 교육 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고 중 문 관련 사고가 약 15%를 차지한다고 보고했다. 이 중 대부분이 경첩 부분에 손이 끼이는 사고였다. 이 통계는 아이들을 위한 문 디자인에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최근 개발된 교육 시설용 문은 경첩 부분에 특수 고무 제품을 사용해 손가락이 끼이면 자동으로 문틈이 벌어지게 하거나, 문이 너무 빨리 닫히지 않게 하는 속도 조절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그간 옥상은 학교 공간에서 화장실 다음으로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일탈의 장소, 위험한 장소로 여기거나 관리가 어렵다고 여겨 옥상 출입을 금지하는 학교도 많다. 한국도예고등학교도 원래는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옥상 정원을 만든 후 학교는 다양한 방면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우선 옥상 개방 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으며, 학생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옥상 정원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옥상은 학부모 모임과 교사들의 회의 장소로 사용되며 소통의 장소로 활용되었다. 교장은 아이들은 옥상에서 자유롭게 바비큐 파티를 하고 대화도 나눕니다. 평상에 눕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죠. 외부에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모시고 가는 장소이기도 해요. 외부인들이 보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우리 학교의 자랑거리예요라고 말했다. 일상을 축제로 만드는 공간이 있다는 건 정원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기쁨일 것이다.

 

알트스쿨의 실패는 우리의 미래 교육이 갈 방향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우선, 미래 교육에도 교육학Pedagogy’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로 무장한다 해도 건전한 교육 이론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래 교육에서 교사는 기술의 보조인이 아니라 여전히 학습 가이드이자 코치로서 존재해야 한다. 교사의 지도, 영감, 관계 형성 능력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다.

 

공항고등학교는 마을결합형 학교로서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높이면서,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균형을 추구했다. 사실 공공기관 발주의 설계 공모 지침은 기존 지침을 짜깁기하거나 두루뭉술하게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공항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지침이 간결하지만 명확했다. 학교 공간을 마을결합형 시설과 학습 시설을 구분하고 몰 타입의 공간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도 명확한 지침 덕분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공항고등학교의 출입문은 시간대별로 개폐되며 도서관, 체육관, 다목적 홀 등은 마을결합형 시설에 포함되어 방과 후나 주말에는 지역민들에게 개방된다. 특히 체육관은 지역민을 위한 공공체육관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학교와 지역 사회의 경계를 허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옥상 정원과 생태 학습장 또한 지역민에게 개방되어 도심 속 자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소중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시설 공유를 넘어 학교와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공유된 경험의 장을 만든다.

 

우리나라의 학원 공간 규제는 학원법에 근거한다. 핵심은 학생 1인당 최소 면적 기준이다. 현행 규정은 보통교과 학원은 학생 1인당 최소 1, 예체능 학원은 활동 특성에 따라 1.5~3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기준 같다. 그러나 이 규제는 면적에 관한 기준이 지나치게 낮고, 교육적 효과나 학습 경험의 질은 기대하기 어렵다. 1는 어른 한 명이 양팔을 벌리면 벽에 거의 닿는 수준이며, 강남의 한 입시학원 원장은 신규 학원 인허가 미팅에서 담당 공무원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이 평수면 교실당 학생 수가 몇 명이에요?’예요. 창의적 학습 환경이나 학생 복지에는 관심 없고, 오직 수용 인원만 따져요라고 토로한 바 있다.

 

핀란드의 교육 공간 규제는 마치 다른 행성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헬싱키 교외의 한 초등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만난 교장은 핀란드에서는 모든 교실이 자연광을 직접 받아야 하고, 학생들이 숲이나 녹지를 볼 수 있도록 창문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 1인당 최소 3.5의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첫째, 최소 면적 기준의 현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1면적이라는 기준은 국제 표준에 미치지 못한다. OECD 국가들의 평균은 약 2.5~3수준임을 고려하여, 우리나라도 최소 2이상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교육 환경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들에 대한 기준 도입이 필요하다. ‘모든 주요 공간에 창문을 통한 자연관 접근성 확보하기’, ‘CO농도, 유해물질, 환기 횟수 등에 대한 기준 설정해 공기 질 확보하기’, ‘적정 소음 데시벨, 반향 제어, 음성 명료도 등에 관한 기준 설정하기’, ‘최소 두 가지 이상의 학습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구성하기’, ‘전체 면적을 10~15%를 비교과 활동 및 휴식 공간으로 구성하기와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셋째, 덴마크의 사례와 같이 달성해야 할 교육적 목표를 제시하고, 그 실현 방법을 교육자와 설계자에게 맡기는 접근법을 선택한다. 결과 중심 규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모든 학생이 편안하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 ‘디지털 기기와 아날로그 자료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할 것’,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촉진하는 요소를 포함할 것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넷째, 일률적인 규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수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 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해 일정 기준 이상의 공간 품질을 갖춘 기관에 인증을 부여하거나,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기관에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제공하거나, 우수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한 임대료 부담 완화 지원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다섯째, 규제 준수 여부를 관료적으로 점검하기보다 실사용자(학생, 교사)의 평가를 반영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육 환경 만족도 조사 의무화’, ‘학생 참여 디자인 리뷰 프로세스 도입’, ‘사용 후 평가 실시 및 결과 공개하는 방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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