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딴에는 독서에 대한 좋은 방법을 권해준답시고 '자투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방법은 진정한 독서에 대해 그릇되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예컨데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5분씩만 책을 읽어도 한 달이면 웬만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자투리 독서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은 당신의 멀쩡한 눈을 버릴 뿐이고 당신이 선택한 책이 지닌 고유한 열정을 식혀버린다.

 내가 보기에 바른 독서란, 이인삼각 경기와 같다. 때문에 독자는 저자가 그 책을 쓰기 위해 펜을 내어 달렸던 그 열정의 속도와 같은 속도로 읽어 내려가야 한다. 어떤 저자도 아침에 5분, 저녁에 5분 하는 식으로 책을 쓰진 않았으므로 그런 식의 독서는 이인삼각 경기를 파탄낸다. 똑같은 책을 '자투리 독서'로 한 달이 걸려 읽은 독자와 한달음에 읽어 치운 독자는, 엄밀히 말해 다른 책을 읽은 것이다. 동일한 책이되 두 사람이 받은 임펙트가 틀리는 것이다. 폭풍처럼 읽어야 한다. '나는 그 책을 밤새도록 읽었다.'라든가 '나는 이 책을 들자마자 손에서 놓지를 못했다'는 경험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우리 인생은, 특히나 청춘은 그렇게 응축된 몇 개의 경험만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떤 책을 들고 3일 이상 뭉그적거리면 그 책은 당신 손에서 죽은거라고 봐야 한다. '피로 쓰여진 책은 게으른 독자를 거부한다'는 요지의 말을 했던 니체의 생각에 나는 동감하고 있다.

 독서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주제를 발견하거나 구성을 파악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런 방식의 독서는 삭막한 신체해부 작업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독서는 책의 내용과 형식에 구속됨이 없이 곧바로 저자의 열정과 조우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있어 1급의 주제와 최상의 형식이란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는 다만 저자의 금강석 같은 열정과 대면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5, 175~176P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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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31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맞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일단 손에서 한 번 놓아버리면 끝이더군요.^^^^

책읽는나무 2004-05-3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님 벌써 5권을 읽습니까??
님도 책을 엄청 빨리 읽나보죠??...ㅡ.ㅡ;;
참..1권을 읽는중....접혀 있는 부분이 있더군요!!..접혀 있는 부분은 그책을 읽은 것인가요? 아님 읽으려고 하는 것인가요??...갑자기 궁금해지더이다....^^
처음엔 그접힌 부분이 내가 실수로 접은것인줄 알고 다시 펴고..다시 펴고 그랬는데...이상해서 책전체를 보니 접혀 있는 부분이 꽤 되더군요..ㅎㅎ...그래서 더욱더 궁금해지더이다..^^

진/우맘 2004-05-3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요 책나무님~ 2, 3, 4권은 안 읽었습니다. 지난 오프모임 때 5권을 조선남자님이 선물해 주셨어요.^^
접힌 부분이요, 말하자면 <책 더럽히기 연습>입니다. 인상깊은 구절이 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있는 페이지를 접어 놓은 거예요.(볼펜 찾으러 가기 싫어서...누워서 뒹굴거리며 쓰윽 접는다는 설도...^^;)
1권보다는 5권이 훨씬 잘 읽히더군요. 이제 4, 3, 2도 추적해 봐야지요.^^
그런데 책나무님, 잠은 언제 주무시고...어젯밤도 늦게까지 서재에 머무신 것 같더니만. 저는 오늘 아이들 시험보는 날이라 1교시 빕니다. 룰루랄라 앗싸아~

이럴서가 2004-05-3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로운 글을 두고 꼼꼼하게 맞춤법 따지는 건 질색이지만, 인용하신 글이니... '예컨데'의 경우, '예컨대'가 옳은 표기입니다. 청컨대, 짐작컨대,처럼. 비슷한 오류로 종결어미 '-데'와 '-대'도 자주 헛갈리는데, 자신이 경험한 바를 전달할 땐 -데,를, 들은 바를 전언할 땐 '-대',를 쓰지요. 예컨대, '어제 보니까 마태우스님 무지 취하셨', '마태님이 그러는 진우맘님이 지방간이라?'처럼요.

아침에 괜히 한 번...;;


진/우맘 2004-05-31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좋아.^^ 저 맞춤법 지적 좋아해요. 하지만 제가 쓴 글에서 틀린 부분을 발견했을 땐, 저한테만 속삭여 주셔야 합니다!!!
요즘 김지님께 열심히 맞춤법 배우고 있는데...우리말이 어렵긴 어려워. 에휴....

진/우맘 2004-05-3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811111

헤헤, 신기한 카운트다. 11111^^;;;


갈대 2004-05-3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딴지를 하나 걸자면
'두 사람이 받은 임펙트가 틀리는 것이다' 에서 '틀리는' -> '다른'

진/우맘 2004-05-31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그러게. 아침에 김지님 서재에서 배우고 왔던 내용이군요. 틀리다와 다르다.^^
ㅋㅋㅋ 불쌍한 장정일....(서, 설마 내 오타는 아니겠지?^^;;;)

연우주 2004-05-3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조선남자의 맞춤법 강의... 나도 엄청 찔리는구려...--;

호랑녀 2004-05-3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부분 읽으면서, 와, 진우맘님 내공이 엄청 깊어지셨구나... 어쩜 이런 글을 쓰실 수 있지... 했습니다.
밑에 보니, 옮기신 글이네요 ^^ (허무~)

마립간 2004-05-31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따라서는 첫번째 읽을 때 감동이 크고 반복해서 읽으면 감동이 줄어든 책이 있는 반면 (예컨대, 추리소설),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예컨대, 수학책)이 있습니다. 5분동안 두 세줄을 읽어도 감동이 하루 종일 가는 경우도 있어 그 감정을 음미하느라고 책을 손에서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몇년에 걸쳐 읽는 책도 있는데 오히려 죽은 책이 아니라 불사조처럼 느겼집니다.

진/우맘 2004-05-3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수학책이 있다는 것은, 수학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는 저로서는 받아들여 지지가 않는군요.^^;;; ㅎㅎㅎ
호랑녀님> -,.-

두심이 2004-05-31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작가는 서문에 제발 천천히 읽어달라고 하더이다. 그건 아마 자신이 그책을 쓰며 한구절 한구절 곱씹어가며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정상으로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수 있지만 책읽기에 관해서는 작가도 주인일 수 없다는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다연엉가 2004-05-3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춤법과 띄워쓰기등 작년에 독서,논술지도사 공부할 때 무진장 듣고 연습한다고 했는데 요모양 요꼴입니다... 애들은 가르치면서 실제로 제가 써보면 엉망진창입니다...(이만큼 적는데도 엉망이네요...정말 어무이 소리나옵니다..어무이!!!!!)

明卵 2004-06-01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와 -대, 이거 정말 헷갈렸는데 좋은 거 알고 가네요^^
그런데, 장정일의 말에 따르면 전 대체 책을 몇 권이나 죽음으로 몰고 간 거랍니까?;; 읽은 책들 중에서 '폭풍처럼' 읽은 것은 오로지 해리포터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요ㅜㅜ

진/우맘 2004-06-0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명란님... 책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겠네요.^^
저도, 초반의 해리포터는 길바닥에서도 읽었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