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비님의 이벤트 도서가 오전에 도착했다. <총알차 타기>와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오블라디...>는 쉬는 시간 틈틈이 몇 페이지 들여다 봤는데, ㅋㅋㅋ 재미있다. 나는 이 책을 몇 년 전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었다. 하루키는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하루키의 장편소설이다)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런데, 검은비님의 밑줄을 따라가며 읽자니, 묘하게 두 배 정도는 재미있어 진다. 밑줄 중에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차 감퇴하는 것이 비단 성적인 능력만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상처입는 능력'도 감퇴한다.'와 같이 공감이 가는 밑줄이 있는가 하면, '베네치아에서 한 오래 된 호텔에 여장을 풀고,'와 같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밑줄도 있다. 한 오래 된 호텔....검은비님께 뭔가, 영감을 준 단어인가? 참, 검은비님은 글씨체도 뭔가 예술적이다.

아무도 못 알아보라고 일부러 쪼그맣게 올리니, 용서해 주시겠죠? ^^ <책을 강간하듯 읽기를 좋아한다> 하시기에 뭔가 더 많은 가해와 폭력의 흔적을 발견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술적인 강간이라면...뭐.... 심하게 고무되어, 평소에 책 결벽증이 있던 나도 따라가며 밑줄을 그어보기로 했다. 소심하여, 진한 펜선이 아닌 노란 색연필을 선택하긴 했지만.^^; 중간에, 몇 자 끄적여 보기도 하고. (이 역시, 연필을 선택하는 소심함을....^^;;)

 

 

어쩌나. 검은비님께 상처입은 책들을 잘 보듬어 안아 드리겠어요~ 어쩌고 해놓고, 당한 데 또 긁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나저나, 앞으로의 독서가 기대된다. 살짝 들춰보니, 검은비님은 하루키의 뭔가가 되게 마음에 안 드셨나보다. 어쩌나, 난 좋은데.^^ 하긴, 난 귀가 상당히 얇은 편이라, 검은비님의 독설에 혹 하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여하간 신난다. 갖고 싶었던 책 두 권을 택배비만 내고 받아드는 이득 이외에, 이런 즐거움이 따라올 줄이야. 앞으로, 뭔가 좀 재미없을 것 같은 수필류는 검은비님께 먼저 보내서 읽어달라(그리고 흔적을 남겨달라) 청한 후 받아볼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

니임~ 때앵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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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4-0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강간하듯 읽기를 좋아한다.> 충격적인 문구인데요. 저는 책을 접거나 밑줄을 긋거나 등의 책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감히 하지 못하고. 메모도 책을 세번 이상 읽은 책이 아니면 조금의 글자도 남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학교때 연말에 친구가 제 교과서를 보고 새로 구입한 책으로 오해했을 정도였거든요. (어휴, 무서워라!)

진/우맘 2004-04-0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립간님과 비슷한 과예요. 그런데...생각해보니,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감흥 정도는 메모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더군요. 몇 년 후 꺼내 다시 읽는 도중에, 몇 년 전 나로부터의 메세지를 하나 발견하는 기쁨. 꼭, 계절 지난 옷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발견하는 것 같은 기분 아닐까요?

호랑녀 2004-04-0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친구는, 책 뒤에 딸에게 편지를 써둔다고 합니다. 뒷날, 딸이 자라서 그 책을 읽으면서, 아, 엄마는 그때 이런 걸 느꼈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내가 그 딸이라면, 난 책 뒤의 편지만... 쏙쏙 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비로그인 2004-04-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저도 책이 때탈새라 조심스레 보는 스타일인데, 가끔 인상적인 데는 줄도 긋고 싶고, 코멘트도 달아놓고 싶곤 하죠. 나중엔 그때의 기분이 기억이 안날까봐. 아무래도 책에다 그러진 못할거 같고, 다른데 메모장을 하나 만들어얄까봐요. ^^

책읽는나무 2004-04-09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님이 먼저 받았군요....^^....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아까 아침9시에 뜬금없이 우체국서 소포가 갈테니 기다리라고 아침잠을 깨우는 전화만 받았습니다...^^

저도 소심한 소인배죠!!....전 책장하나도 구겨질까봐 아주 조심해서 넘깁니다...책갈피가 없어서 읽은부분 표시한다고 책꺼풀로 끼워넣음....책의 부피로 인해 책앞표지가 좀 모양이 일그러지잖아요....그것또한 마음아파하는 소심함의 극치를 달리죠!!..^^...내가 읽은 책은 도서관에 기증해도 무난할정도로 새책이나 다름없을껩니다...나중에 한 몇년후에 도서관에 기증을 해볼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그래도 요즘은 좀 밑줄긋고 싶은 충동이~~~~ 하지만 펜을 들고서 긋지 못하는 나의 나약함에 무릎을 꿇고 있죠!!.....님이 연필이라도 그으신 용기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짝짝짝!!

ceylontea 2004-04-0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알라딘에 계신 분들은 책 읽는 것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책 자체도 사랑하시어... 흠집을 못내시는 것 같아요...저도 그런 편이고..한 때는 줄도 그어가며 읽었는데.. 어느 날 메모장을 만든 후 주긋는 습관이 없어졌고... 차 타고 다닐때 책을 주로 많이 읽다보니 바로바로 글로 옮겨적지 못해서 페이지 수와 줄 수를 적었다가 옮겨적었지요. 그러다가 이젠 아예 그것도 안하고 그냥 읽습니다.. 인간 게으름의 진행과정이랄까?
사실 지금도 고민이랍니다.. 책이 읽고난 후 정말 새 책같이 구김 하나 없어야 하는 나름대로의 정신병이 있는데... 어쩔 땐 검은비님처럼 밑줄도 긋고, 생각나는 글도 적고 하는 것이 더 책에 애정을 갖고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너무나 깨끗한 책은 서점에도 많은데.. 그리 줄긋고, 글 쓰고 하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애정이 담긴 책이 될 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깨끗한 책을 선호하는 결벽증.....
그나저나.. 단순히 책이 아니었군요... 책+검은비님의 글... 부럽네요...
저도 미리 알았음.. 냉큼 신청할것을... 검은비님의 인기가 너무 좋아 제가 갔을때는 이미 몇권 안남아있었는데...

갈대 2004-04-09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보다 저 메모, 낙서, 그림이 더 탐나네요~

ceylontea 2004-04-0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갈대님과 같은 생각..

가을산 2004-04-09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을 좀 티나게 보는 편입니다. 검은비님 처럼 맛깔난 메모를 하지는 않구요, 읽으면서 기억에 남길만한 부분은 밑줄을 긋고, 그 양이 많으면 그 문단 옆을 따라 세로줄로 표시하고, 오자를 찾으면 교정해 놓고, 내용 중에 이견이 있으면 체크 'V(갈고리 모양)'표시 해놓습니다.
그리고 책 전체의 중심이 될 만한 부분은 책장을 1cm 정도 접어놓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가지고 다녀서 겉장은 지저분해지고... 책싸개가 그래서 필요했구요, 그래서 책을 빌려보지를 못해요. 표시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서 말이에요. ^^

물만두 2004-04-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전 소심해서 책에 쓰는 거 못 하고 메모지 나두고 메모합니다. 앞에다 언제 읽었는지 날짜와 싸인만 합니다. 접는 것도 무지 싫어해서 잘못 나온 책 보면 화나는 쪼잔한 인간이죠. 예전에는 책에 문구도 쓰고 일기처럼 쓰던 적도 있었는데 그 책 잃어버린 다음에는 어쩐지 그럴 수가 없더군요...

가을산 2004-04-1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다음에 방생되는 책들은 경쟁이 더 치열해 질 듯! ^^

마립간 2004-04-10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방생 (절대로) 못해요. (충분한 신뢰가 쌓여야 겨우......) 과학 MaNia님이 책을 빌려 줄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감히 동의하지 못했거든요. 메모의 경우를 이야기하면 (인물 산수화의 사람처럼) 시적인 어떤 것을 남기고 싶지만 그게 쉬운 것이 아니쟎나요. 풍부한 지식과 감성이 농축된 한마디... 아무렇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cf.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을 구입한 경우도 있습니다.)

진/우맘 2004-04-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는 자라면서, <책은 깨끗이 읽어야한다>고 귀에 못이 박혀서인지.... 책결벽증 동지가 의외로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