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아는 게 더 재밌어졌대요, 규진이는
아이 질문엔 질문으로 대답했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요. 슬럼프 땐 서점에 함께 갔지요. 그리고 엄마 아빠와는 친구처럼 지내며 대화의 끈을 이었죠.

사진 촬영을 위해 책 두 권쯤 들고 나오란 말에 중1 아이는 '공업수학'과 '일반 물리학'을 챙겨왔다. '공업수학'엔 제법 손때가 묻어 있다. 잠시 책 보는 듯한 포즈를 취해 달라는 사진 기자의 요청에 아이는 '공업수학' 중간 부분을 폈다.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기던 손이 느려졌다. 장난기 있던 표정도 점차 사라졌다. 옆에 앉아 있던 엄마가 툭 건드린 뒤에야 아이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이는 서울 양천구 신서중 1학년인 오규진(13)군. 그는 한국과학영재고의 2007학년도 신입생 중 한 명이다. 144명 중 중1은 그를 포함해 네 명뿐이다. 그는 수학 성적 최우수 학생으로 뽑혔다.

오군은 소감을 묻자 "세상에 존재하는 무궁무진한 것을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며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면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군의 어머니 임영재(40)씨에게서 오군이 어떻게 공부했고, 옆에서 어떻게 도왔는지 얘기를 들었다. 다음은 임씨의 말.

◆ 블록 조립을 즐겼다=규진이는 3, 4세 때 한글을 스스로 깨쳤다.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1번부터 99번까지 돌리다가 숫자는 물론 덧셈.뺄셈 개념도 깨쳤다. 구구단도 원리를 얘기해줬더니 바로 빈 종이에 9단까지 적더라. 블록 조립을 즐겼는데 제 나이 것보다 어려운 것도 척척 만들어냈다. A4용지로 가족 신문이나 이야기 등으로 책 만들기도 즐겼다.

당시 규진이는 조기 교육을 많이 받는 편이 아니었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유치원 다니기 전에 소근육 운동 기관에 1년 다닌 정도다. 유치원은 인성 교육 위주였다. 그 무렵부터 또래에 비해 똑똑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친척도 '영재성이 있으니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권유했다.

◆ 여섯 살 때 영재 판정을 받다=민간 영재교육기관에 갔더니 영재란 판정이 나왔다. 일곱 살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그 기관에서 수학.과학.인문사회.사고력 교육을 받았다. 거기에 다녔던 아이들과 별도 기관에서 철학도 배웠다. 생각이 깊어지는 데 도움을 줬다고 본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엔 사고력 수학으로 유명한 학원으로 옮겼다. 사실 좋다는 학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아이가 적응하느라 불안정해질 수 있고 (학원에서도) 아이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엄마와 아빠의 역할 분담=우린 규진이와 친구처럼 지낸다. 규진이가 나를 '엄'이라고 하면 난 '오'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아빠는 지적인 부분을 채워줬다. 백과사전을 찾아서라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렇다고 바로 답을 주는 건 아니었다. "총알의 속도는 어떻게 구해"라고 하면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했다. (규진이도 "아버지는 궁금한 것을 많이 가르쳐 주셨고, 어머니는 제 마음의 지주가 돼 주셨다"고 말했다.)

사실 사교육 시장(논리)에 갇히기 쉽다. 그때마다 남편은 아이 편에서 제어해 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가 지치지 않도록. 그래서 남들보다 적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두 개 정도 더 줄였어야 했던 건 아닌가 싶다. 더 여유있게 책을 볼 시간을 갖도록….

◆ 슬럼프를 느낄 때 서점에 갔다=규진이에게 전집을 사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이가 손을 잘 대지도 않더라. 아이가 선택할 수 있을 나이가 된 뒤론 직접 고르게 했다. "산책 갈래"하며 집앞 서점을 가곤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대형서점에서 책을 왕창 사올 때도 있다. 아이가 슬럼프인 듯하면 "서점에 갈까"라고 하곤 했다.

우리는 규진이의 생각을 존중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과학영재학교에 가겠다고 결심한 이후 규진이의 생각이 바뀐 적은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가장 행복해할 일을 선택한다면 우린 그걸로 족하다.

◆ 자극이 있어야 한다=규진이는 초등학교 5, 6학년 때 서울교대 영재센터를 다녔다. 올해 연세대 영재교육원 수학 과정에 다니고 있다. 격주에 한 번 꼴이다. 천재라면 흔히 하나를 듣고 백을 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하나를 던져주고 끌어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전에 규진이는 흥미위주로 수학책을 골랐다. 그러다 대학 교수에게서 정수론 등 원론적 수학 개념을 배운 뒤엔 두꺼운 대학 수학, 과학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엄마 임영재씨가 중1 아들 규진이를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시킨 뒤 소회

■ “규진이가 질문하면 오히려 질문으로 답했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

■ “어렸을 때 인성 위주로 교육했다. 7세 때야 영재란 판정을 받았다. 그때도 교육학을 전공한 친척이 영재성이 있는 듯하다고 해 알았다.”

■ “지금도 산책하러 가자면서 함께 서점에 간다. 규진이가 책을 고른다.”

■ “규진이가 대학수학 등 두꺼운 책을 붙잡기 시작한 건 한 교수님으로부터 정수론을 배운 뒤였다. 영재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 백을 안다고 한다. 그래도 제대로 하나를 던져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영재 판정 이후에 꾸준하게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이가 힘들어하는 듯 보이면 공부량을 줄였다. 남들 절반만 한다고 했는데도 그랬다. 돌이켜 생각하면 여유있게 책을 볼 시간을 더 줬어야 했던 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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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6-09-01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두 퍼가요님

전호인 2006-09-0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임이네님, 아유 욕심쟁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