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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후 전호인과 비자림

 


“복지관에서 언제 올거야?”

손자 녀석과 장기를 두던 남편이 내게 묻는다. 젊은 시절엔 큰아들과 장기 두느라 바쁘더니 요즘은 손자 녀석과 장기 두는 데 아주 맛을 들였다.

“할아버지, 빨리 장기 두세요.”

“어어 그래.”

현관 거울을 흘낏 쳐다보며 내일쯤은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복지관이 아니고 오늘은 사랑의 집에 봉사 활동 가는 거에요.3시쯤 올게요. 점심은 알아서 드세요.”

집을 나오며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우산을 챙기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침 5번 마을버스가 오는 것 같아 둔중해진 몸을 이끌고 뛰어갔다.

정년퇴임한 후 나는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 읽어주기, 복지관에서 한글 가르쳐 주기, 사랑의 집에서 아이들 돌봐주기. 가사일 말고 이 일들을 하느라고 조금 바쁜 날들을 보내지만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내가 좋다.

버스에서 내린 후 전철을 타고 1시간, 다시 전철에서 내린 후 마을 버스를 타고 20여 분 가면 ‘사랑의 집’이 나온다. 사랑의 집에 도착하니 오늘은 서울에서도 봉사팀이 온다고 다들 분주하게 청소하고 있었다. 나는 늘 하던대로 가장 중증아이들이 있는 소망반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뇌성마비인 우람이가 나를 보자 빙긋이 웃으며 걸어 왔다.

그 때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아마 서울에서 온 봉사팀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나눔이란 단체에서 왔어요.” 구수한 사투리가 배인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의 남자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혹시 비자림님 아니에요? 나 모르겠소? 나, 전호인.”

세상에, 세월이 이렇게 흘렀건만 그는 여전히 50대 같았다. 일흔이 조금 넘은 나이인데도 붉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간만이네요. 근데 내일 알라딘 번개가 있다던데 가실거에요?”

“아, 그럼 내가 빠지면 안되쥐. 흠”

여전히 약간의 왕자병 증세가 있었지만 30년 전의 사람들 중 현재도 알라딘 활동을 왕성히 하는 사람은 그 밖에 없다. 요새 그의 서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좋아해서 “스트레스 있는 자여, 전호인서재로 가라”는 설은 벌써 알라딘의 표어처럼 나돌고 있다고 한다.

전호인님과 같이 봉사 활동을 하면서 어찌나 웃었는지 허리가 다 아플 정도이다. 그는 봉사하러 온 것 같지 않고 그냥 아이들과 놀러 온 사람처럼 굉장히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아이들과 노는 것이 전공인 사람처럼 참 잘 놀아 주었다.

그런데 점심 시간에 씹는 게 영 시원치 않아 내가 막 놀려줬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치아가 요새 안 좋아 치과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천안에 있을 때 마태우스님과 친해져 의학상식도 많이 주워들었을텐데 왜 그렇게 관리를 못 했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핀잔 받는 게 간만이라 즐겁다며 또 허허 웃어댔다. 아이구 예나 이제나...

내일은 홍대 앞에서 알라딘 번개가 있다고 한다. 사실 번개라기 보다는 동창회 식이다. 30년 정도 꾸준히 알라딘에서 정을 쌓아 온 사람들이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것이니..내일이 기대된다. 그런데 집에 갈 때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철역까지 나를 태워 준 전호인님이 건넨 우산을 들고 나는 내일 되돌려 주지 않고 내가 가져 버린다고 농담을 하였다. 그는 절대 안된다며 내일 우산을 갖고 꼭 나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즐거운 하루였다.

 

 

* 알라딘에서 인기 많은 전호인님에 대하여 써서 돌팔매질을 맞을 것 같사오나 그냥 심심하여 또 써보았사옵니다.  심심한 사람의 글장난이오니 너그러이 이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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