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보여지는 영상은2009년도에서 바라보는 1970년대를 회상하게 하는 시골 농촌의 풍경 그대로다. 그때 우리나라는 누가뭐래도 전형적인 농경사회였고 대가족 사회였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농경작물을 통해 생계를 영위했다. 한명의 사람은 농사를 짓기 위한 노동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는 동물을 이용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소였다.

농촌에서 소는 농사를 짓는 데 노동력을 보태기 위한 필수동물이었고, 재산의 상징이었다. 송아지라도 태어나면 재산증식과 재테크의 수단이 되었다. 기계화 되지 않은 농경사회에서 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걷기 힘든 할아버지의 교통수단이자 친구지만 소 또한 늙어서 걷기조차 힘들어 한다> 

농촌은 크게 농번기와 농한기로 구분한다. 본격적으로 농번기는 농사짓는 기간중 가장 바쁜시기로 이른 봄부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 지속된다. 농한기는 추수가 마무리 되는 싯점부터 시작하여 1~2월까지로서 1년중 3~4개월정도이다.

소가 농사에 이용되는 시기는 농번기 동안 지속되지만 사람과 달리 농번기와 농한기에도 나름대로 쓰임새가 너무 많아 그야말로 편히 쉴 틈이 없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겨울을 거쳐 땅이 해동되는 시기부터 논과 밭을 뒤집기 위해 소를 이용한 쟁기질이 시작되고 밭에 씨를 뿌리기 위해 밭고랑을 만드는 일까지 소의 유용성은 다양하다. 논에 쟁기질을 한 후에는 흙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물을 대며, 5~6월경에는 모심기가 시작되면서 땅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소를 이용해 로타리(갈아놓은 흙을 부수는 일)와 써래질(물에 흙을 부드럽게 흐트러 놓는 일)을 한다. 추수때에는 짐을 나르기 위해 소를 이용하고, 농한기에는 땔감을 마련한 후 이동수단인 달구지를 끌기 위해 이용된다. 일년내내 쉴틈이 없을 정도이니 부지런한 사람의 대명사가 소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소는 음식물 섭취를 위한 육류의 공급에 이용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과거 전형적인 농경사회에서와 대비되는 현상이다. 워낭소리는 이러한 농경사회의 마지막을 알리는 듯한 뉘앙스를 전달해 주었고 그 곳에서 나고 자라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았던 이들에게는 쓸쓸하고도 슬픈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40년동안 농촌에서 전형적인 우리나라 농경사회를 주인과 더불어 고락을 함께 하며 살아온 소, 그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어온 마지막 농군이 될 수 밖에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인공이 된 이영화는 그들의 삶을 다큐형식을 빌어 조명해 주고 있다. 아마도 오늘을 살아가는 기성세대에게는 농촌의 아련한 추억을 회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소의 수명 40년은 인간으로서도 백수를 다한 연령에 해당된다. 늙고 병이 들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소와 평생을 같이 한 할아버지의 힘겹게 보이는 삶이 너무 똑같았다. 비록 동물이지만  할아버지와 소는 젊은 날의 생사고락을 함께 한 영원한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할아버지와 쟁기질을 하고 있는 소, 할아버지나 소 모두가 힘에 겨워 보인다> 

 농촌은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더이상 소의 이용가치가 없어진다. 논과 밭을 갈기 위해 경운기가 이용되고, 모심기와 벼베기는 이양기 등을 이용해 간편하게 마무리 된다.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제초제라는 농약이 뿌려지면서 논과 밭에서 우리들의 친구이자 놀잇감이었던 우렁이와 메뚜기, 개구리, 미꾸라지 들이 사라지면서 생태계까지도 변화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끝까지 이런 변화를 거부하면서 소를 이용해 논과 밭을 갈고, 농약을 뿌리지 않고 김을 손수 매면서 힘겨운 농사일을 고집한다. 평생을 부부로 함께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눈 두 노부부는 이런 장면에서 티격태격하고, 할머니의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신세한탄과 팔자타령이 이어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통달을 하셨다는 듯 귀뚱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의 고집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의 신세한탄이 이어지지만 그 말속에는 평생을 부부로 살아온 할아버지에 대한 영원한 사랑이 묻어나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도 한다.

소는 이제 움직일 수 조차 없는 상태가 되면서 40년 동안 짓눌렸던 노동에 대한 삶의 무게를 내려 놓으면서 죽음을 맞는다. 할아버지는 힘겹게 살아온 소의 마지막 자유를 위해 사람에 대한 영원한 복종으로 상징되는 꼬뚜레를 해체하면서 평생을 함께 한 동반자를 편안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해 준다. 소로서 사람에게 복종하면서 평생을 희생해야 하는 운명의 굴레였던 코뚜레와 워낭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멍에를 벗었다는 것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소는 비로소 죽음을 통해 영원히 쉴 수 있는 자유를 얻고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언뜻 사람의 잔인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소가 가진 슬픈 운명 이기에 애잔한 마음이 든다.


<평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소를 건사하는 할아버지> 

워낭소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자연환경에 대한 중요성과 어린시절 소와 함께 했었던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고,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경험했었던 고향의 옛날이야깃거리를 제공하면서 추억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해준다.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나는 고향 들녘에 있었고, 논두렁과 밭고랑을 뛰어다니고 뒹굴기도 했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는 메뚜기를 잡았고 둠벙에서는 미꾸라지를 잡았지만 미끌미끌 손아귀를 벗어나 놓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소꼴을 베고, 풀을 뜯기기 위해 지키고 있다 지루함에 바위에 누워있다가 깜박 졸음에 떨어졌던 기억이 회생되기도 했다. 겨울에는 사랑방에서 쇠죽의 구수함을 맡기도 하고, 아궁이에서 감자를 구워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이렇듯 이영화는 어린 시절 우리의 고향이었고,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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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9-03-1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낭소리,,, 저도 어릴 적 시골 할머니댁에서 보냈던 기억에 가슴이 뭉클했는데,,,
40년을 할아버지와 함께 한 소도, 자식 뒷바라지에 농사일에 자기 몸이 망가져도 병원 한번 편히 못가는 할아버지도, 내가 영감을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이라고 팔자타령하시는 할머니도 모두 안스럽고 가슴 시린 모습들 이더군요.
아들녀석들은 같이 보자고했는데 안 내켜해서 그냥 옆지기랑 둘이서만 봤어요.^^;;
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전호인 2009-03-16 16:53   좋아요 0 | URL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서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였습니다.
힘겹게 농사일을 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 저희 시골의 풍경과 별반다르지 않아 남의 일 같지 않았어요.
소의 운명이 참 딱하죠?

소나무집 2009-03-1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봉 영화를 볼 수 없는 지역적인 환경이 원망스럽습니다.
목포까지 나가야 극장이 있다는...
하지만 원앙소리 기사와 리뷰를 하도 많이 보아서 영화를 본 듯해요.
저도 영화를 보앗다면 님과 비슷한 평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렸을 적부터 외양간에 늘 소가 있는 집에서 살았거든요.
지금도 친정에 가면 소가 있어요.

전호인 2009-03-16 16:5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비록 영화지만 70년대 농촌환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영화였어요.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 속에서 놀고 있었던 제 자신을 발견했거든요.
님의 홈피에 영화를 보실 수 있는 해결방법을 올려드렸으니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2009-03-15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6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3-2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를 왜 작게 하는지~ 읽기가 어려워요, 노안에 가까운 친구를 위해 키워주심 안되나요?^^

전호인 2009-03-23 11: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명심하겠습니다.
리뷰에서는 글씨크기 조절이 고정되어 있어서 조정이 되질 않네요.
앞으로는 굴림체로 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