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가 아이들의 학원 등록을 상담하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단다. 그 말을 전해 듣고 많은 것들이 헷갈린다. 범석은 6학년, 해람은 5학년이다. 두 녀석 모두 학원을 보내지 않고 옆지기 도움을 받아 스스로 공부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12시간 이상씩 모든 과목을 학원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도 해당학년의 과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선행학습으로 이미 중학교 과정을 배우거나 그 과정을 모두 마쳤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부모로써 우리 아이들만 뒤쳐지는 것이 아닌 가 하는 조급한 마음도 있다. 반대로 선행학습의 효과가 바로 성적이나 실력향상으로 직결될 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아이들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황당한 일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하려 한다.

학교에서 범석과 해람은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로 이미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렇다 보니 학부모와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 사이에서의 반응도 각각 다른가 보다. 옆지기 모임의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들로부터 원성의 대상이 되니까 학원을 보내라는 압력(?)이 들어오고, 아이들은 방과후 학원으로 가지 않고 곧장 집으로 향하는 친구를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는단다. 선생님들은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자기의 할 일을 잘 해내는 아이들이 대견하다는 칭찬과 그런 부모님도 대단하다고들 한다.

옆지기와 나 모두 아이들이 초등학생이기에 순위와 점수에 민감하거나 연연해 하진 않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수준이 어떨 지는 궁금하다.
범석과 해람 모두 평균점수가 90점대 후반에 속하고 늘 1~3위 안에 포진해 있다. 점수가 몇 점인가가 아니라 몇 개를 틀렸고 왜 틀렸을까를 분석하는 수준이라면 그저 우수한 편에는 속한다.

범석이는 성격상 성적에 크게 개의치 않는 유형이다. 초등학생으로서는 마지막인 이번 6학년 기말고사의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0.5점이 부족해서 목표한 평균점수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워는 했지만 1문제만을 틀린 친구보다 몇 개 더 틀린 것뿐 이라며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자기보다 잘한 친구의 점수를 알려 주면서도 학원에서 12시간 이상을 보내는 친구인 데 그 정도는 맞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라는 말로 일갈해 버린다. 자기도 실수를 해서 틀린 거지 몰라서 틀린 것이 아니란다. 학원을 다니고 다니지 않고는 단지 문제를 푸는 기법과 실수를 극복하는 요령에서의 차이일 뿐 실력 차이가 있지는 않은 듯 하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이것도 실력차이다.

해람은 범석과는 180도 다르다. 욕심이 지나치리만큼 많고, 승부욕도 강하다. 자기가 만든 생활계획표 대로 움직이면서 꼬박꼬박 승부를 다짐하는 글과 목표를 작성하여 책상 유리 밑에 깔아 놓거나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피아노를 전공하기 때문에 개인교습을 받고 하루 3시간 이상은 연습을 한다. 학원을 다닐 시간이 없다. 그런데도 반에서 순위가 뒤쳐질 때면 학원을 보내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을 보면 녀석의 성격을 알만하다. 이번 기말고사에서는 빼앗긴 선두도 다시 찾아왔고, 목표한 점수도 초과하면서 녀석의 생각대로 달성 되었다. 서울관내 초등학교 독후감쓰기 대회에는 학년 학교대표로 참석했고, 교내 글짓기대회에서는 최우수상도 수상했다. 튼튼영어만을 하면서도 듣기 평가에서 외국인강사들에게 직접 학습받는 아이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만점을 받는 녀석이기도 하다. 방과 후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노에 올인하고 시간표대로 자신의 일을 묵묵히 실천하는 승부욕이 하늘을 찌르는 무서운 아이(?)다. 해람은 당분간 현재의 방법을 고수할 것이다.

범석이는 이제 중학생이 된다. 중학생이기에 집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무리일 것이라고 판단한 옆지기가녀석을 설득하여 학원 학습을 결심하게 했고, 등록을 위한 상담(수학과목만 등록)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은 학원의 선행학습이 문제였다. 학원 선생님의 일성이 범석이가 같은 학년에 비하여 뒤쳐진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불거졌다. 또래의 아이들 진도는 이미 중학교 3학년 수준의 과정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근의 여러 학원과 상담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같았다고 한다. 학원과의 원만한 상담을 거쳐 범석이의 수준에 맞는 과정을 등록했고, 녀석도 이젠 초등학생과 학원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평균점수가 95점 이상이고 3위 이내의 성적을 거두거나 1~2 문제를 틀리는 아이를 두고 같은 또래에 비해 뒤쳐지는 아이라니 참으로 웃긴 세상이다. 그렇다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면서도 범석이나 해람이 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란 말인지 너무 헷갈린다.

아이들이 학년을 마치면 겨울방학 중에 해당 학년의 수학을 다시 복습해서 기초를 다지고 앞으로 배울 과정 몇 단원을 미리 예습하는 방법으로 학습을 했었는 데 이번 학원등록 거부사건을 계기로 옆지기의 교육방법이 바뀌게 될 런지 기다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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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12-04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요지경이지요. 본말이 전도된 교육시스템이에요. 이런 과열과 경쟁은 윈윈이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것인데 참 갑갑하지요. 범석이와 해람이는 지금도 충분히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는데 말예요.

전호인 2008-12-29 14:28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지만 학원을 다녀온 후로 옆지기의 걱정이 늘었답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 이끌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이네요. 주변이 다 그렇다보니 왠지 모르게 뒤쳐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순오기 2008-12-0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저 선행학습이란게 맘에 안 들어요~ 학원에서 미리 다 배워서 학교 수업은 시시하고~ 그러니 공교육이 점점 우스워지는 거죠. 선생님들도 학원에서 다 배웠지? 이러면서 대충 넘어가고~ 학원 안 다니는 우리애들은 어쩌라고???
그래도 난 부모의 소신을 믿는 쪽이죠. 이제 고딩되는 아들녀석 수학이 바닥인지라 이번주부터 과외 시작했어요. 카이스트 대학생한테 중1 개념원리부터 시작했어요. 3년 실컷 놀았으니 이젠 공부하겠다네요~ 그래서 두달간 시켜보려고요.

전호인 2008-12-29 14:30   좋아요 0 | URL
다행이로군요. ㅎㅎ,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극히 비정상적이 되어 가는 것이 요즘 세상인가 봅니다. 중학생이 되는 범석이를 위해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를 심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 아이들 스스로가 어찌할 까를 고민해야 하는 것인데 부모들이 그 고민을 대신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