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그룹 사태의 파문이 갈수록 커지면서 연말연시 정기 인사를 앞둔 재계에 ‘핵심 인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경위야 어쨌든 그룹 법무팀장 등을 지내며 7년간 100억 원 이상의 급여 등 파격적 혜택을 받았던 영입 임원이 자신이 몸담았던 회사에 결국 치명상을 입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로열티(충성심)’의 중요성을 새삼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력’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조직 내부보다는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왔던 많은 기업인이 이번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A그룹의 한 임원은 “지금까지 최고경영자(CEO)급으로 올라갈수록 능력 못지않게 조직에 대한 로열티를 중요하게 봐 왔지만 앞으로는 일반 임원급도 주요 보직을 맡을 때 무엇보다 로열티가 중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B그룹 관계자도 “당장 이번 연말연시 임원 인사 때부터는 아무리 업무능력이 있더라도 신뢰성이 의문시된다면 중요하고 예민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 경향이 확산될 것”이라며 “능력과 로열티를 겸비하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둘 중에 굳이 선택하라면 로열티가 우선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다만 상당수 기업에서 퇴사 후 갑자기 돌변해 회사의 등에 비수(匕首)를 꽂는 사람 가운데 회사에 있을 때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오버’하던 사람이 적지 않아 ‘사람의 심성(心性)’ 평가가 어렵다는 고민을 기업인들은 털어놓고 있다.
이번 사건이 경력직 채용시장을 위축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김 변호사 사건을 계기로 외부 인사 영입이나 경력사원 채용 때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 검증이 더욱 중시될 것이란 얘기가 많이 나온다”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경력직 채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하지만 C그룹의 한 임원은 “스카우트된 인재에게 처음부터 로열티를 기대할 수도 없고 오래 근무했다고 뒤통수를 안 치는 것도 아니다”라며 “그보다는 영입된 인재가 빨리 새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하고 로열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과 투명경영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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