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으로만 듣던 꽃게탕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침을 꼴깍 삼킨다. 냄비에 그득하게 잠겨있는 꽃게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모습과 콧등을 간질이는 구수한 된장 냄새에 시장기가 확 몰려온다.

백사장 수산물 회센터의 아주머니는 통째로 나온  꽃게를 솜씨 좋게 분해해낸다. 뚜걱 뚜걱 다리를 자르고 가위 날로 등딱지를 대번에 들어올려 남은 껍질과 살점을 먹기 좋게 잘게 잘라준다. 탕은 모름지기 국물 맛을 먼저 보는 게 순서다.

발갛게 익은 꽃게와 진한 국물이 어울려 담긴 앞 접시로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가져간다. 얼마간 누구도 말을 잇지 않는다. 햇살 좋은 태안군 백상장항의 한산한 식당 안은 마치 고단한 일과 마친 직장인들이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는 종로 골목처럼 캬 하는 감탄사만 메아리친다.

집에서 만든 된장에다 집집마다 다른 비장의 양념을 넣고 끓인 꽃게탕. 입에 짝짝 들러붙는 진한 국물과 갑옷 같은 붉은 껍질을 헤치고 고소하고 연한 질감이 살아있는 꽃게 살을 빼내 먹으니 연신 맛있다는 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그럼요, 꽃게 드시러 여기까지들 오시는데 맛없으면 되나요?”

저만치 서 있던 주인아저씨는 당연하다는 듯 천천히 태안의 꽃게 맛을 자랑한다. 수온이 높아 이맘 때 태안 꽃게가 유난히 좋기도 하거니와, 이곳에선 꽃게탕에 대하를 함께 넣어 끓이기 때문에 국물이 특히 시원하단다.

이번에는 이거 한 토막이면 밥 한 공기 게 눈 감추듯 사라진다는 꽃게장이다. 막 잡은 꽃게는 쫀득한 살맛이 살이 있고, 지난해 잡아 냉동시킨 꽃게로 담아 한 계절 묵힌 꽃게장은 살은 삭았지만 진한 감칠맛이 으뜸이다.

영양 솥밥에 각종 젓갈, 나물 반찬이 한정식집 못지않게 펼쳐져 있지만 젓가락이 몰리는 곳은 단연 꽃게장이다.  

꽃게의 계절이 돌아왔다. 일년 열두 달 언제라도 식탁 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꽃게지만 그중에서도 일년에 두 차례 5월과 10월이 그야말로 꽃게 철이다.

대중적으로는 10월  가을 꽃게가 더 유명하지만 꽃게 맛을 아는 미식가는 봄 꽃게를 찾아 먹는다. “이 맛 아는 사람은 봄 꽃게만 대놓고 먹어요. 가을 꽃게도 맛있고 푸짐하지만 봄 꽃게의 그 싱싱한 맛은 못 따라가지요.”

백사장항 위판장에서 만난 수산시장 상인의 말처럼 가을 꽃게가 조금 저렴하고 살이 많지만 그 맛은 여간해서는 봄 꽃게에 미치기 어렵다. 봄 꽃게의 절정은 산란기를 목전에 두고 알이 통통하게 오른 암게로 말 그대로 알짜배기를 맛볼 수 있는 연중 유일한 시기다.

수영 실력이 탁월해 영어로는 스위밍 크랩(swimming crap)이라 불리는 꽃게가 동면을 마치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건 3월이다. 이때부터 수온이 따뜻한 서해안으로 이동해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을 찌우기 시작해, 5월에 접어들면 그야말로 상품 가치 최고의 꽃게가 되는데 살이 꽉 차고 단맛 또한 최고다.

한 달 남짓 꽃게의 단맛이 절정에 이루고 나면 암게는 품었던 알을 6월경 산란한다. 산란이란 고단한 숙명을 감당한 암게는 맛이 확연히 떨어지고 이때부터 숫게가 인기를 끈다. 그래서 봄에는 땡글땡글한 알이 가득 찬 암게가 금값인 대신 가을엔 살이 찐 숫게가 인기를 끈다.

7월과 8월은 법적인 금어기로 꽃게를 어획할 수 없다. 갓 태어난 새끼 꽃게를 보호해야 장기적인 어장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어기에도 계속 맛좋은 꽃게를 만날 수는 있다. 꽃게 절정기인 5월에 잡아 올린 일정량의 꽃게를 급속 냉동해 보관하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대접받는 귀한 종족
식탁 위에서 꽃게만큼 대접받는 음식도 드물다. 사실 팔뚝만한 꽃게라도 다리를 자르고 껍질을 떼어내면 정작 입으로 들어오는 살점은 한줌도 안 된다. 그래서 비싸고 먹기 어려워 더 대접 받는다는 오해도 종종 받는다. 하지만 꽃게의 위력은 그 귀하고 부드러운 살점과 더불어 껍질에서 우러나는 국물 맛이 다른 부재료의 도움 없이도 제 맛을 낸다는데 있다. 냉동 꽃게의 경우 멸치나 다시마 등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싱싱한 생물 꽃게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꽃게의 위력은 온갖 귀한 생선들이 몸값 다툼을 벌이는 어판장에서도 여전하다. 해삼물의 특성상 숨이 끊어지면 반의 반 가격으로 그 가격이 곤두박질치는데 이놈의 꽃게는 매운탕과는 비교도 안 되게 귀한 꽃게탕을 끓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절반 수준을 유지한다.

“고깃배가 잡을 때는 다 살아있는 거 잡잖아요. 근데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그 잠깐 사이에 하늘나라 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면 가격이 아주 천지차이죠. 그래도 꽃게는 그렇게 많이 떨어져요. 꽃게탕이 끝내주잖아요.”홍일냉동수산 아주머니의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마리만으로도 풍미 좋은 국물로 식탁의 질을 바꿔놓으니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저만치 선 이웃 상인들은 꽃게는 씻어낸 물도 허투로 쓰면 안 된다며 거든다.

5월 꽃게는 그 자체가 워낙 좋으니 볶거나 튀기는 거보다 담백하게 찌거나 탕으로 끓이는 게 최고란다. 날 게에 부담이 없는 사람이라면 즉석에서 고춧가루와 물엿 등 양념장에 즉석에서 버무려 먹는 꽃게무침도 훌륭하다.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항. 모래밭이 유명해 그 이름 그대로 지명이 된 백사장항에서 꽃게를 만날 수 있는 식당은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배가 들어오는 곳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상인들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수협 어판장 내에 있는 도매상,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중간 단계의 수산 시장, 그리고 널찍한 규모에 깨끗한 시설을 자랑하는 횟집 순이다. 가격은 자연스레 어판장부터 횟집 순으로 저렴하다.

고깃배가 도착하면 한산하던 어판장은 정신없이 바빠진다. 고깃배 저장실에서 막 건져낸 각종 생선이 도착하기 무섭게 크기와 종류, 상태별로 눈 깜짝할 새 나뉜다. 취재진이 꽃게다 하고 손가락을 가리키는 새 수십 마리의 꽃게는 이미 여러 개의 바구니에 나뉘어 담겨 제 자리를 찾는다.

도시 사람 눈에는 그게 그거 같아 보이지만 옆으로 걷는다고 다 같은 게가 아니다.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대게와는 엄연히 다를 뿐더러, 함께 잡히는 범게나 돌게는 꽃게의 10분의 1가격도 안되는 그야말로 사돈의 팔촌쯤 되는 대체품이다. 꽃게에 비해 조금 더 험하게 생긴 범게(바카지)나 크기가 훨씬 작은 돌게는 껍질이 딱딱하고 맛이 떨어져 주로 대체 탕이나 게장용으로 쓰인다.

배에서 막 내린 꽃게도 대부분 꽃게의 상징인 가장 위의 집게 다리가 손상되어 있다. 어부들의 안전에다 배 안에서 꽃게 끼리 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잡아 올리자마자 1차적으로 집게를 잘라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뛰어오를 듯 씩씩하게 움직이지만 집게를 잃은 꽃게는 얼마든지 악수를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하다.

꽃게 가격은 경매를 하러 나온 횟집 사장님도, 어판장의 분류담당 직원도, 하물며 배에서 막 내린 뱃사람도 모를 일이란다. 그날그날 어획량이 다르니 철 시작이라 비싸고, 한창 때는 싸다는 공식이 들어맞기는 쉽지 않다.

특히 서울에 비해 많이 싸지 않다는 불만이 종종 나오는데, 서울 등 대도시에서 수입산과 양식이 섞여 팔리는데 그건 수협 어판장 내에서는 철저히 직접 잡아 올린 자연 국산만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근처 수산 시장이나 횟집에서는 저렴한 양식이나 수입산을 주문할 수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기까지 왔으면 진짜 맛은 보고 가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태안의 자랑은 좋은 꽃게를 못 구한 경우 다른 식당을 알려주지 냉동 꽃게를 자연산으로, 수입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어판장에선 상품 기준에 불합격한 꽃게는 가차 없이 한쪽으로 밀려나는데 이곳 직원들은 마치 회를 먹듯 다리를 와작 비틀어 투명한 살을 날름 뽑아먹는다. 그렇게 먹어도 되느냐고 물으니 먹을 줄 아는 사람에겐 이게 훨씬 맛나단다.

그 먹는 모습이 너무 맛있어 푸짐한 꽃게 만찬을 마친지 두어 시간 만에 다시 입맛을 다신다. 요즘엔 택배와 냉장 시스템이 좋아 대부분의 어판장과 수산에서 택배 서비스를 해준다. 어판장에서는 3~4시간까지 신선도를 유지하는 얼음 상장에 포장해가는 고객들도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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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서산 IC 또는 해미 IC를  지나 태안으로 빠진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당진과 서산을 거쳐 태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백사장항은 안면대교를 지나 안면읍 초입에 있고, 남쪽 방향으로 향하면 삼봉 해수욕장부터 그 유명한 꽂지 해수욕장까지 십 수개의 해변을 만날 수 있다. 완만한 길가에 한쪽으론 소나무 사이로 바다가 지척이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다.

맛집
백사장항 수협 어시장은 소매상도 겸한다. 홍일냉동수산 등 여남은 집이 빼곡하게 붙어있는 이곳에서는 자연산만 취급한다. 가격도 좋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한데, 포장 전문이라 현장에서 먹기는 조금 불편하다. 그 밖으로 하마수산(041-673-1711) 등 백여 곳의 도산매 수산집이 늘어서 있다. 시설 편리한 횟집은 수산물 회센타(041-672-6782)등 항구 초입 회센터 쪽에 대단위로 있다. 5월 초순 현재 식당 가격은 2인이 먹기에 좋은 꽃게 찜이 1kg에 9만 원선, 꽃게탕이 6만 원 선이다. 꽃게장은 식당에 따라 1만 5천~ 2만원이고, 도산매 수산에서는 돌게장을 플라스틱 병에 담가 12마리 내외를 1만원에 판다.

태안의 축제
오는 6월 16일부터 7월 1일까지 제 2회 태안군 백합꽃축제가 ‘200만 송이 꽃의 향연’으로 개최된다. 장소는 충남 태안군 태안읍 송암리 화훼단지. 실내와 실외 전시를 비롯해 백합에 대한 다양한 테마 전시와 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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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5-2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님, 글죠! 넘 먹고 싶습니다. 제가 꽃게라면 사족을 못쓰는 지라.......

Mephistopheles 2007-05-22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거이....진정한 밥.도,둑.

전호인 2007-05-22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네 맞습니다. 밥도둑! 아마도 짜기 때문에 밥을 많이 먹을 수 밖에 없겠죠

소나무집 2007-05-2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정엄마한테 배워서 간장게장은 자신 있게 담그는구만요!

전호인 2007-05-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와 그렇군요, 이것이 비린내를 없애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고 하던데.제가 무척 좋아하는 데 울 옆지기가 배웠으면 좋겠네요.

스위밍 크랩 2011-02-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화조 같은 데 보면 크랩이 둥둥 떠다니는 걸 볼수있는데
그런게 스위밍 크랩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