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형사 콘돌
오우사카 고우 지음, 박혜정 옮김 / 서울도쿄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야쿠자 형사 콘돌>이라는 다소 촌시런 제목의 이 작품은 오우사카 고우라는 일본 작가의 하드보일드 형사 소설입니다. 오우사카 고우는 나오키 상 수상 작가이고 <때까치의 밤>인가 하는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도 원제는 <콘돌의 밤(대머리 독수리의 밤)>이고요. 밤을 좋아하는 야행성 작가인가 봅니다..-_-;;



주인공은 도쿠도미 다카아키라는 묘하게 리듬감 넘치는 이름을 가진 형사입니다. 이 형사가 시부로쿠 흥업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야쿠자 조직과 마스다라는 남미계 신진 마피아 조직 사이의 항쟁에 끼여들어 피를 본다(!)는 강렬한 내용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쿠도미(콘돌이라는 뜻) 형사의 이름이 제목에 부각될 만큼 이 사람의 매력이 작품의 키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콘돌은 어떤 형사소설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악인 형사입니다. 머리는 비상하고 싸움 솜씨 최강이요, 냉철하고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야쿠자가 오줌을 지릴 정도로 대단한 작자입니다.



콘돌은 생활안전과라는 건전한 부서에서 경위로 일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노점을 하는 노인네의 가슴팍을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내지릅니다. 심지어 지나가던 야쿠자가 말릴 정도입니다.

-_-;;



콘돌은 시부로쿠 흥업의 보스 우스이를 암살하려는 마스다의 킬러 미라부로의 손에서 그를 지켜야 합니다. 물론 거액의 보호비를 뜯지요. 마스다 킬러 미라부로를 초반에 잡은 콘돌은 그를 때려 죽이려 하는데, 역시 시부로쿠 흥업 야쿠자들이 말립니다...-_-;; 야쿠자들이 말리는 바람에 간신히 살아남은 미라브로는 자존심이 상해 온갖 음모와 함정을 파고 콘돌과 우스이를 제거하려 하지요. 이 와중에 콘돌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자가 미라브로의 표적이 됩니다.



대충 이런 내용인데, 저는 콘돌이 아무리 위악적이고 음침하게 묘사되는 인물이지만 끝에 가서는 이 모든 게 잠복 근무라든가 위장술의 일종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냥 악인이었습니다. 야쿠자들한테 보호비를 뜯는 것도 고아원에 기증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자신의 영달과 사치를 위해서였습니다..-_-;;



콘돌이 보호해주는 시부로쿠 흥업도 웃깁니다. 나와바리가 시부야 전역이라면서 등장하는 인물은 몇 명 안됩니다. 사장 우스이, 전무 다니자카, 영업부장 마스다, 총무부장 노다 외 한 3명쯤 더 등장합니다. 명색이 영업부장, 총무부장인 마스다, 노다 콤비는 사장 경호도 해야되고 마스다와도 싸워야 되고 사장 딸이랑 연애도 해야 되고 콘돌도 접대해야 하고 몸소 수금도 뜁니다. 어디 피곤해서 거기서 일하겠습니까..상당히 가족적인 조직입니다.ㅋㅋ



콘돌의 모습도 걸작입니다. 어깨가 비정상일정도로 떡 벌어졌는데, 정확하게 8:2 가르마를 탔고, 눈은 음침하게 푹 꺼졌으며 입술은 얇습니다. 글로 이렇게 써 놨는데,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진짜 웃깁니다. 이런 사람이 주먹으로 한대 치면 야쿠자가 줄줄이 나가 떨어질 정도입니다.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콘돌의 모습과 이런 콘돌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을 연민의 눈동자로 바라보는 야쿠자들의 기막힌 관계 역전! 여기가 바로 작품의 최고 웃음 포인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콘돌같은 캐릭터를 창조한 것일까요? 야쿠자(범죄자)보다 더 야쿠자같은 형사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묻기 때문일까요? 그냥 논스톱 활극을 만들기 위해 폭력적인 형사의 모습을 부각시킨 것일까요? 여지껏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은 독창적인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무수한 의문을 남긴 채 작품은 흘러흘러 갑니다. 뭐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겠죠...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그러면서 별로 머리는 안 써도 되는 값싼 하드보일드 활극입니다. 그런대로 재미는 있으니까 킬링타임용으로 보시고 싶은 분들은 보시길...^^;;



평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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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용주는 집에 돌아왔다. 마침 아버지 정운산이 계시길래 그는 오늘 있었던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했다. 정운산은 한참 듣더니 갑자기 안색이 확 변했다.

"이 녀석아. 너도 경찰이면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당장 가보자."

"아니, 왜요?"

"윤제가 위험해!"

 

8. 정운산 부자는 날듯이 조윤제의 집으로 향했다. 정용주는 아버지가 왜 이리 성화실까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마침내 조윤제 집 문 앞에 도착하자 정운산은 대뜸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용주야. 네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니. 모든 가능성들을 고려한 후 남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사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네. 그러셨죠."

"자, 생각해 봐라. 아까 처음 집에 왔을 때와 지금 무엇이 틀려졌는지를..."

정용주는 한참 생각했다.

"아! 소리!"

"그렇지."

"개소리가 안나는군요."

정용주는 개집을 바라봤다. 과연 개는 없고 개집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정운산은 입을 열었다.

"네가 처음 집에 왔을 때, 그 개는 낯선 너를 보고 엄청 짖어댔지. 하지만 너는 윤제를 찾을 때는, 분명 적막했다고 했다. 개가 사라진 거지. 그렇다면 사라진 것은 두 가지. 개와 윤제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단다."

정용주는 한참 생각한 끝에 마침내 그것이 떠올랐다.

"개밥그릇!"

"자, 그것들이 왜 없어졌을까 추론을 해보렴. 윤제는 찢어지게 가난해 밥 먹기도 힘들었어. 윤제는 화장실을 가다 개밥그릇에 있는 무언가를 본거야. 분명 개밥그릇에 있는 어떤 것은 윤제에게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을 거다. 그래서 윤제는 개줄을 푼 다음 개를 쫓아버리고 개밥그릇에 있는 것을 먹으려 한거야. 그러나 너나 주인 노파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안전한 곳에서 그것을 먹기로 했지."

"그곳은?"

"바로 저기!"

정운산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트릭은 전부 완전히 몽땅 에브리타임 에브리띵 풀렸다!"

 

9. 정운산이 가리킨 곳은 바로 개집이었다.

"그...그럼 저 안에 지금 윤제가..."

"그래. 어서 구해야 해. 네가 도사견이라 했을 때, 나는 대충 알 수 있었지. 도사견은 몸집이 크니까 개집도 크고, 얼추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도 있어 보이지. 그래서 그만 들어갔는데 그만 몸이 끼어버린거야. 윤제는 네가 찾아도 부끄러워서 나올 수 없었던 거지. 개밥을 훔쳐 먹으려 개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친구에게 하겠니."

"그..그렇군요."

"어서 구하자.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어."

 

10. 정운산 부자는 개집을 부숴 조윤제를 꺼냈다. 조윤제의 손에 든 개밥그릇에는 잡채 부스러기가 있었다. 세 사람은 얼싸안고 울어 버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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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2-17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황당해서 울고 싶습니다..ㅜㅜ;;

jedai2000 2005-12-1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제가 심심할 때마다 <패러디극장>을 연재하는데 뭐 이런 내용들이라지요.

oldhand 2005-12-2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디어 <부활한 사나이>가 패러디 극장에 등장.. ^-^

jedai2000 2005-12-21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채찍을 든 오른손>과 <흥분>만 등장시키면 됩니다..ㅋㄴㅋㅌ
 



1. 집에 오는 내내 조윤제의 아내는 심통이 가득 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정 아버지의 칠순 잔치에 변변한 선물 하나 못했던 것이다. 한 마디도 안 하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도 살 도리를 하세요."

"이번 신작만 나오면 고생 끝이라니까 그러네."

"저번에도 그런 소리 하더니, 막상 책이 나와도 이 모양이잖아요."

조윤제는 남북출판사에서 월급을 떼먹힌 후, 집에서 소설을 쓰는데 열중하였다. 데뷔작인 <부활한 사나이>는 발기부전으로 성클리닉에 들어간 형사가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소설이었는데 딱 2부 팔려 기네스북에 등재 예정이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조윤제는 심술이 나 받아쳤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래도 아내에게 미안했다.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쩔 수 있소. 차차 나아지겠지."

"아이구. 어느 천년에..."

조윤제는 그래도 생각했다. 내 언젠간 당신을 호강시켜 주리다.



2. 허름한 전셋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컴퓨터부터 켰다. 무엇을 보았는지 반색을 한다.

"어머!"

"무슨 일이오?"

"친정 갔다왔더니 붐베에 올랐네요."

"응?"

"그런 게 있어요."

아내는 희색이 만면하더니 곧 밥을 차린다. 밥상을 물린 후 아내는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아내는 우유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나가자마자 조윤제는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낸 다음 티슈를 한장 뽑았다. 돋보기를 티슈에 갖다 댄다. 조그맣게 불씨가 일었다. 그는 요즘 돋보기 장난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한참 장난을 하는데 어느 순간 졸음이 몰려 왔다.

그는 누우려 하다, 정신을 집중해 몸을 일으켰다.

'지금 잘 때가 아냐. 요즘 뭔가 이상해. 자고 또 자도 졸리니..."

조윤제는 아내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수면제 아달린이 나왔다. 집필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면 항상 아스피린을 찾곤 했었다. 그러면 아내는 아스피린과 물을 가져다주곤 했다. 아내는 나에게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달린을 주었구나. 배신감에 치를 떨던 조윤제는 아내를 기다리다, 그녀가 돌아오자 앉혀놓고 대뜸 물었다.

"나에게 아달린을 준 까닭이 뭐요?"

아내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재운 다음, 저 혼자 몰래 사온 붕어빵을 먹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그래, 나는 아내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룸펜이구나, 좌절한 조윤제는 아내를 껴안고 같이 쳐울었다.



3. 조윤제의 전셋집 현관 철문 앞에 강남 경찰서 반장 정용주가 서 있다. 마치 70년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다. 그만큼 낡은 문에 낡은 집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장났나 보다. 정용주는 철문을 밀어 보았다.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당이 나왔다. 정면에는 오래된 집이 보였다. 주인집이었다. 마당 오른쪽에 독립된 쪽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조윤제가 세들어사는 셋방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셋방은 창문도 없이 종이로 대충 붙여져 있고, 나무 문은 썩어가고 있었다. 주인의 빈곤을 상징하는 듯한 집이로구나, 상념에 잠긴 정용주는 문득 요란한 개짓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소리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마당 한 귀퉁이에 개집이 있었는데 개집 앞 말뚝에 도사견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도사견 앞에는 양철로 만든 개밥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비어 있었다. 개는 사납게 생겼는데, 생긴 것 만큼이나 엄청나게 요란하게 짖어댔다. 개는 그치지 않고 울어댔다. 개짖는 소리에 스르르 조윤제 방의 문이 열리더니 조윤제가 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용주 아닌가."

조윤제는 정용주의 부친인 정운산의 처조카로 대학 동기였지만 촌수를 따지지 않고 친구처럼 편하게 불렀다.

"음...지나가는 길에 들렀네."

"우선 들어오게."



4. 조윤제와 정용주는 마주 앉았다. 조윤제의 방에는 세간이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빈곤해 보였다.

정용주는 친구의 빈한한 살림에 한숨만 나왔다. 그는 안부를 물었다.

"자네, 요즘도 글쓰나?"

"응.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네. 중국 고전인데 전국시대 가장 뛰어난 사기꾼 사마천의 사기 비결을 다룬 <사기>라는 책이지."

"그렇군."

"그보다 아버님은 건강하신가? 일전에는 큰 도움을 받았네."

"아, 둘리비디오 상습 연체 사건 말인가. 아버지는 자네에게 별 도움이 못 됐다고 가슴 아파 하시네."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윤제의 아내가 돌아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조윤제가 입을 연다.

"여보. 모처럼 친구가 왔으니 대접을 해야겠구려. 집에 쇠고기하고 생선 좀 남았지? 아마 조개도 좀 있을거야."

아내가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다. 정용주는 그래도 먹는 것에는 좀 신경을 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일어서 찬장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정용주가 살펴보니 '쇠고기 다시다'와 '멸치 다시다', '조개 다시다' 였다.



5. 아내가 다시다 국을 끓이고 있는데 조윤제는 일어섰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화장실은 어디?"

"응. 주인집에 있다네."

조윤제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 정용주는 무료한 나머지 아내에게 물었다.

"이 친구 왜 안 오지요?"

"글쎄요."

정용주는 마당으로 나가봤다. 조윤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적막만 감돌았다. 정용주는 주인집으로 향했다. 문을 노크하자, 곧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열렸다. 주인집 여자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뉘슈?"

"안녕하십니까. 저쪽에 세들어 사는 조윤제 내외의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화장실을 가더니 소식이 없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안 왔는데."

"그럴리가요?"

"나 내내 거실에서 TV보고 있었는데 뭘. 아무도 안 왔어."

노파는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문을 열었다. 과연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TV에서는 가 방영되고 있었다.

"방도 보실라우?"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 없으시다면 없는 거겠죠."



6. 정용주는 마당에 다시 나가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조윤제는 없었다. 사실 워낙 좁은 마당에 조윤제가 있을 곳도 없어 보였다. 정용주는 현관으로 나가 집 앞에서 서성였다. 아예, 집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하고...그러나 조윤제는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시 마당으로 들어간 정용주는 '그거 참 이상한 녀석일세. 친구가 왔는데 인사도 없이 사라지다니." 하고 생각했다.

가을 오후의 제법 따가운 햇살만 내리쬘 뿐 사방은 조용했다. 정용주는 어쩔 수 없이 조윤제의 아내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갔다.



<해답편을 기대해 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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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판타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추리소설도 가장 좋아하는건 사회 병리 현상을 심각하게 다루는 사회파 추리소설이고, 일반소설도 개인 내면에만 치중하는 것보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책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현실과는 좀 동떨어지는 느낌이 나는 판타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우연히 러시아 판타지 소설 <나이트 워치>를 읽게 됐다.

 

좋은 판타지의 필수요건이란 무엇일까? 아무래도 판타지라 함은 환상세계를 그리는 거니까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을 그럴듯하게 창조하는 게 가장 우선시되야 하지 않을까 싶다. 50년대에 나온 톨킨과 루이스의 '중간계'나 '나니아'가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가 많은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과연 그런 것 같다.

 

세르게이 루키야넨코라는 길고 긴 이름을 가진 러시아 작가가 창조한 세상은 '어스름의 세계'다.

위에 언급한 작가들만큼이나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어스름 세계에는 마법사와 변신자, 흡혈귀, 마녀 등이 산다. 하지만 배경은 현대다. 자본주의 유입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현재 러시아에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다른 존재'들이 사는 것이다. 그들은 밝은 세력과 어두운 세력으로 나뉘어 유사 이래 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나긴 전쟁으로 지친 측은 협정을 맺고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밝음의 편에 선 다른 존재들은 나이트 워치(야간 경비대)라는 이름으로 밤에 돌아다니며 불법으로 인간을 사냥하는 흡혈귀나 마녀, 주술사 등을 물리치는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일정수의 인간들은 협정에 따라 정당하게 흡혈귀들의 먹이가 되야 한다.)

 

그러나 어둠의 편에도 데이 워치(주간 경비대)가 있다. 그들 역시 야간 경비대들이 협정을 위반하면 공격할 권리가 있다. 이 외에 주간 경비대와 야간 경비대의 분쟁에 재판을 해주는 심문관 들이 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이지 않나?

 

다른 존재들은 현실 세계를 뛰어넘는 어스름 세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어스름 세계는 일종의 영혼계로 인간들은 실체가 아닌 영기로 보이고, 그 안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어 빠른 이동도 가능하고 잠긴 문도 무사 통과할 수 있다.

 

참으로 흥미로운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작품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야간 경비대의 안톤. 그는 우연히 온 러시아를 폭발시킬 수도 있는 강한 저주를 받고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인을 둘러싸고 벌이는 야간 경비대와 주간 경비대의 두뇌싸움이 치밀하게 펼쳐진다. 총3개의 장, <나만의 운명> <아군 속의 아군> <오직 내 사랑을 위하여>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판타지로 분류되지만 사실 첩보소설의 향수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요즘 첩보소설이 거의 쓰이지 않게 된게,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양강 체제 속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공작들이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밝은 세력과 어두운 세력은 여전히 냉전 체제다. 이 작품엔 두 강대한 세력이 서로를 꺾어 누르려 끝없이 물밑 작업과 신경전을 벌이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거대한 힘을 가진 여인을 서로 빼앗기 위해 계략을 쓰는 내용은, 옛날 첩보소설에서 핵무기 제조 공식을 빼앗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그것으로 치환해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주인공 안톤은 상대 조직에 의해 살인(사람은 아닌데..ㅋㅋ) 누명을 쓰기도 한다. 완전 CIA와 FBI의 첩보전 아닌가.

 

정말 잘된 첩보소설처럼 주인공 안톤은 배신과 음모에 휘말리기도 하며, 심지어 같은 편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도 봉착한다. 첩보소설의 영원한 고전 존 르 까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주인공처럼 안톤 역시 회의에 빠진다. 우리는 빛의 편인데 거짓말과 음모로 점철된 공작을 펼치고 있는 것에 말이다.

 

그러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처럼 이 작품 역시 그 모든 거짓들을 뛰어넘는 인간(?)의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하며 끝을 맺는다. 최종장에서 안톤과 그가 사랑하는 스베타, 나이트 워치 수장 헤세르와 데이 워치 수장 자불론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선택하며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된 세계를 벗어난다. 좋은 결말이다.

 

끊임없이 암투와 음모, 반전과 역전이 펼쳐져 지루할 틈이 없는 한 편의 첩보소설이자 흥미로운 세계관을 보여주는 잘된 판타지 소설이다.

 

별점: ★★★★

 

p.s/ 자국에서 300만부나 팔리며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보는 내내 <퇴마록> 생각을 했다. <퇴마록>도 그쯤 팔렸을텐데 말이다. 국내 판타지 소설 중 아직 <퇴마록> 만 한 게 안나오는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p.s의 p.s/ 영화화되서 현재 개봉중이다. 영화는 액션을 더 강조했다고 들었는데 평은 그다지 좋은 평은 아니다. 그래도 러시아에서는 꽤 히트했다고 알고 있다.

 

p.s의 p.s의 p.s/ 속편 <데이 워치>와 <더스크 워치>도 출간된다고 한다.

 

 

 

 

 

 

<영화 사진들. 그다지 재미있어보이지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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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없더라구요, 영화 orz

jedai2000 2005-12-1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재미없어 보이더라구요..^^;; 보지 말아야겠네요..^^;;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귀한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 작디 작은 소년이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마침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 여행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성장해가는 소년을 그리는 소설은 미국 문학의 오랜 전통이다. 허클베리 핀이 바로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가...어느 세대나 그 세대만의 허클베리 핀을 보유할 자격이 있다. 다행히 우리 세대에도 허클베리 핀이 있다. 1951년에 처음 우리에게 소개된 홀든 콜필드라는 아이가 바로 우리 세대의 허클베리 핀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유명 사립학교의 허위와 모순에 질려 비행을 일삼다 퇴학당한 홀든 콜필드라는 소년이 이틀동안 뉴욕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수구의 오딧세이아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뉴욕에서 만나는 여러 명의 밤거리 인생들(콜걸 등)이 정확하게 묘사된다. 물론 홀든이 창녀만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다. 유일하게 믿음을 주었던 선생님의 집도 찾아가게 되는데, 그 선생님은 잠든 홀든의 몸을 어루만지며 성욕을 채우려 한다.

 

비행소년의 외투를 입었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여린 영혼을 가진 홀든은 이틀동안 만난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속이려 하며,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려 하자 크게 상처를 입는다. 마침내 모든 고단한 현실을 잊고 도피하려 하지만, 어린 여동생 피비의 순수한 마음을 보고 자신에게는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같이 어리고 여린 아이들이, 자신같이 상처받는 일이 다신 없도록 막아주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대단히 재미있고 감동적인 작품이다. 거의 신화가 되어버린 작품으로 출간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그 광채가 조금도 바래지 않은 성장소설의 고전이다.

 

작품에서 1인칭으로 묘사되는 홀든의 속마음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우스운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피끓는 사춘기의 그가 여자들을 어떻게 해보려다가 오히려 털리고 마는 장면들은 특히 재미나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라면 역시 홀든과 동생 피비의 마지막 대화일 것이다. 홀든은 가족과 사회에 모두 실망해 짐을 챙겨들고 산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어린 여동생 피비는 가방까지 싸서는 오빠와 같이 가겠다며 쫓아온다. 오빠는 피비를 어떻게든 집으로 보내려고 애쓰다가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를 보고는 저걸 태워준다고 말한다. 피비는 자신의 숭고(?)한 목적은 망각한 채, 회전목마를 타며 너무나 신나한다. 너무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독자인 나마저도 눈물나게 만든다. 동생의 순수한 모습을 보며 홀든은 동생 피비만큼은 내가 느꼈던 아픈 상처를 겪게 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 순간, 홀든은 좀 더 좋은 어른으로써, 좀 더 멋진 사람으로써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된 것이다.

 

영화로 만들면 정말 좋을 것 같은 장면이다. 빨간 옷을 입고 있는 피비가 회전목마를 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이틀동안의 피로로 점점 흐려져 가는 홀든의 눈에는 빨간 색채만 가득하다. 이윽고 서서히 감겨지는 홀든의 눈...그림 제대로 나올 것 같지 않나? ^^;;

 

홀든이 되고 싶었던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사실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홀든이 스스로 성장했듯이 아이들은 누구나 고통과 상처를 통해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므로...그렇지만 홀든은 이틀 동안의 여정을 통해 비행소년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아 각성했다. 자신만의 고민과 아픔에 매몰되어 가던 소년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고 말하게 되는 변화의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이 소설이 주는 강렬한 감동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이 작품으로 불멸의 명성을 쌓았는데, 실제 홀든의 성격과 웬지 비슷할 것 같은 추측을 해본다. 현재 그는 80세가 넘는 고령으로 여전히 생존해 계신데, <호밀밭의 파수꾼> 이후 완전히 은둔한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에 한층 신비감이 더해져 거의 현대 문학계의 신화적 존재가 됐다.

 

그런데 조선일보에서 연재된 '대문호의 집을 가다'라는 기사에서 보니 집 앞 술집은 가끔 간다고 한다...-_-;;

 

존 레논을 암살한 정신병자가 범행 당시 <호밀밭의 파수꾼>을 들고 있었던 건 이미 유명한 일화이다. 많은 영화 관계자들이 이 작품을 탐내어 영화화 1순위로 꼽히고 있는데, 만들어지면 대성공이 보장된거나 다름없는 작품이지만 작가가 워낙 영화를 싫어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영화 제작자들은 작가가 사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뭔가 꺼림칙한 뒷이야기도 있다..^^;;

 

마지막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명문장을 소개해 본다...홀든이 동생 피비에게 하는 말이다.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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