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에 오는 내내 조윤제의 아내는 심통이 가득 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정 아버지의 칠순 잔치에 변변한 선물 하나 못했던 것이다. 한 마디도 안 하던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도 살 도리를 하세요."

"이번 신작만 나오면 고생 끝이라니까 그러네."

"저번에도 그런 소리 하더니, 막상 책이 나와도 이 모양이잖아요."

조윤제는 남북출판사에서 월급을 떼먹힌 후, 집에서 소설을 쓰는데 열중하였다. 데뷔작인 <부활한 사나이>는 발기부전으로 성클리닉에 들어간 형사가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소설이었는데 딱 2부 팔려 기네스북에 등재 예정이었다.

"막벌이꾼한테 시집을 갈 것이지, 저 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조윤제는 심술이 나 받아쳤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래도 아내에게 미안했다.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쩔 수 있소. 차차 나아지겠지."

"아이구. 어느 천년에..."

조윤제는 그래도 생각했다. 내 언젠간 당신을 호강시켜 주리다.



2. 허름한 전셋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컴퓨터부터 켰다. 무엇을 보았는지 반색을 한다.

"어머!"

"무슨 일이오?"

"친정 갔다왔더니 붐베에 올랐네요."

"응?"

"그런 게 있어요."

아내는 희색이 만면하더니 곧 밥을 차린다. 밥상을 물린 후 아내는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아내는 우유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가 나가자마자 조윤제는 아내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서랍에서 돋보기를 꺼낸 다음 티슈를 한장 뽑았다. 돋보기를 티슈에 갖다 댄다. 조그맣게 불씨가 일었다. 그는 요즘 돋보기 장난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한참 장난을 하는데 어느 순간 졸음이 몰려 왔다.

그는 누우려 하다, 정신을 집중해 몸을 일으켰다.

'지금 잘 때가 아냐. 요즘 뭔가 이상해. 자고 또 자도 졸리니..."

조윤제는 아내의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수면제 아달린이 나왔다. 집필을 하느라 머리가 아프면 항상 아스피린을 찾곤 했었다. 그러면 아내는 아스피린과 물을 가져다주곤 했다. 아내는 나에게 아스피린이 아니라 아달린을 주었구나. 배신감에 치를 떨던 조윤제는 아내를 기다리다, 그녀가 돌아오자 앉혀놓고 대뜸 물었다.

"나에게 아달린을 준 까닭이 뭐요?"

아내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당신을 재운 다음, 저 혼자 몰래 사온 붕어빵을 먹었어요. 용서해 주세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그래, 나는 아내 하나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룸펜이구나, 좌절한 조윤제는 아내를 껴안고 같이 쳐울었다.



3. 조윤제의 전셋집 현관 철문 앞에 강남 경찰서 반장 정용주가 서 있다. 마치 70년대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다. 그만큼 낡은 문에 낡은 집이었다.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장났나 보다. 정용주는 철문을 밀어 보았다. 삐걱거리며 문이 열렸다. 문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마당이 나왔다. 정면에는 오래된 집이 보였다. 주인집이었다. 마당 오른쪽에 독립된 쪽방이 하나 있는데 그곳이 조윤제가 세들어사는 셋방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셋방은 창문도 없이 종이로 대충 붙여져 있고, 나무 문은 썩어가고 있었다. 주인의 빈곤을 상징하는 듯한 집이로구나, 상념에 잠긴 정용주는 문득 요란한 개짓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소리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마당 한 귀퉁이에 개집이 있었는데 개집 앞 말뚝에 도사견 한 마리가 묶여 있었다. 도사견 앞에는 양철로 만든 개밥그릇이 놓여 있었는데 비어 있었다. 개는 사납게 생겼는데, 생긴 것 만큼이나 엄청나게 요란하게 짖어댔다. 개는 그치지 않고 울어댔다. 개짖는 소리에 스르르 조윤제 방의 문이 열리더니 조윤제가 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용주 아닌가."

조윤제는 정용주의 부친인 정운산의 처조카로 대학 동기였지만 촌수를 따지지 않고 친구처럼 편하게 불렀다.

"음...지나가는 길에 들렀네."

"우선 들어오게."



4. 조윤제와 정용주는 마주 앉았다. 조윤제의 방에는 세간이 아무 것도 없을 정도로 빈곤해 보였다.

정용주는 친구의 빈한한 살림에 한숨만 나왔다. 그는 안부를 물었다.

"자네, 요즘도 글쓰나?"

"응. 역사소설을 쓰고 있다네. 중국 고전인데 전국시대 가장 뛰어난 사기꾼 사마천의 사기 비결을 다룬 <사기>라는 책이지."

"그렇군."

"그보다 아버님은 건강하신가? 일전에는 큰 도움을 받았네."

"아, 둘리비디오 상습 연체 사건 말인가. 아버지는 자네에게 별 도움이 못 됐다고 가슴 아파 하시네."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조윤제의 아내가 돌아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조윤제가 입을 연다.

"여보. 모처럼 친구가 왔으니 대접을 해야겠구려. 집에 쇠고기하고 생선 좀 남았지? 아마 조개도 좀 있을거야."

아내가 웃으며 '예'라고 대답한다. 정용주는 그래도 먹는 것에는 좀 신경을 쓰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일어서 찬장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정용주가 살펴보니 '쇠고기 다시다'와 '멸치 다시다', '조개 다시다' 였다.



5. 아내가 다시다 국을 끓이고 있는데 조윤제는 일어섰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오겠네."

"화장실은 어디?"

"응. 주인집에 있다네."

조윤제는 시간이 지나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 정용주는 무료한 나머지 아내에게 물었다.

"이 친구 왜 안 오지요?"

"글쎄요."

정용주는 마당으로 나가봤다. 조윤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적막만 감돌았다. 정용주는 주인집으로 향했다. 문을 노크하자, 곧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열렸다. 주인집 여자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뉘슈?"

"안녕하십니까. 저쪽에 세들어 사는 조윤제 내외의 친구입니다. 이 친구가 화장실을 가더니 소식이 없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안 왔는데."

"그럴리가요?"

"나 내내 거실에서 TV보고 있었는데 뭘. 아무도 안 왔어."

노파는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문을 열었다. 과연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TV에서는 가 방영되고 있었다.

"방도 보실라우?"

"아닙니다. 아주머니께서 없으시다면 없는 거겠죠."



6. 정용주는 마당에 다시 나가 찬찬히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조윤제는 없었다. 사실 워낙 좁은 마당에 조윤제가 있을 곳도 없어 보였다. 정용주는 현관으로 나가 집 앞에서 서성였다. 아예, 집 밖으로 나간 게 아닐까 하고...그러나 조윤제는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다시 마당으로 들어간 정용주는 '그거 참 이상한 녀석일세. 친구가 왔는데 인사도 없이 사라지다니." 하고 생각했다.

가을 오후의 제법 따가운 햇살만 내리쬘 뿐 사방은 조용했다. 정용주는 어쩔 수 없이 조윤제의 아내에게 인사하고 집을 나갔다.



<해답편을 기대해 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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