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8
이종호 외 9인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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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의 책장을 끝까지 덮고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공포작가 10인의 짧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이 단편집의 수준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이다. 작가 연보를 보면 대부분 70년대 후반생으로(단 두 명만이 예외인데, 굳이 밝히지는 않겠다, 호호) 상당히 젊은 편인데 다들 내공이 만만찮았다. 실제로 인쇄된 책을 발간한 작가는 몇 명 되지 않고, 아마도 공포소설 마니아로 출발해 인터넷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다 이번에 좋은 기회를 맞아 처녀작을 싣게 된 신진작가들이 많은 셈인데, 조성면 교수의 해설에 실린대로 마니아에서 작가로 성공적인 확대재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공포소설의 전망이 몹시 밝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편집의 포문은 [몸]이라는 인간의 신체를 소재로 한 공포연작 단편집을 낸 김종일 작가의 <일방통행>이 연다. 집은 없어도, 빚을 내더라도 자동차는 가져야 대접받는 한국의 현실에서 그 많은 차들이 좁은 도로에 몰려 아수라장을 이루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차로 인해 주인공이 겪는 온갖 짜증나는 상황들에 너무도 감정이입이 잘 되는 작품으로 도로야말로 가장 공포스런 지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평범한 한 인간이 자동차를 타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로 점점 정신의 균형을 잃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는 수작 단편.

 

[은둔]은 권정은이라는 작가의 작품으로 우발적으로 형을 죽이게 된 남자가 방 안에 은둔해 살고 있다. 형의 죽음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 상태에서, 마침내 세상으로 나갈 결심을 한 남자가 방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한 편의 지옥도가 펼쳐져 있다. 분위기가 상당히 음산하고 조여오는 공포감이 일품이지만 뻔한 공포소설,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아 약간 아쉬웠다.

 

신진오의 <상자>는 이번 단편집의 백미이다. 적어도 공포소설 분야에서는 반드시 기억할 만한 작가다. 한 부부에게 상자 하나가 배달되어 온다.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의 상자라 갖다 버리지만, 어느 순간엔가 집으로 다시 돌아와 있는 상자. 태워도 소용없고, 쪼개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부부간의 불화로 우발적인 살해를 저지른 남편은 아내의 시체를 상자에 넣고 버린다. 상자는 여느 때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지만 그 안에 든 아내의 시체는 어찌 될 것인가, 추측해보기 바란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 결말의 반전까지 깊이 탄복한 작품이다.

 

엄성용의 <감옥>은 불륜을 저지른 남자가 여자의 남편이 돌아오자 급하게 침대 밑에 숨은 다음부터 시작되는 짧은 이야기. 인상적인 공포의 한순간이 있지만, 다른 단편들에 비해 그다지 특출난 점은 없다. <들개>는 여성의 시각에서 공포를 그리고 싶다는 우명희의 작품으로 도살장에서 괴물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는 불우한 아이가 살인마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엽기적일 정도의 하드고어 분위기가 돋보이나 이야기 전개에서 뛰어난 아이디어는 없는 것 같다.

 

최민호의 <흉포한 입>은 기괴한 정신병을 얻게 된 치과의사를 더욱 기괴한 방식으로 치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이야기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고, 누구나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치과치료에서 신체훼손의 모티브를 얻어 직접적인 공포감을 주고 있다.

장은호의 <하등인간>은 결말을 제외하면 공포소설이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SF의 느낌이 나는 작품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들. 그들은 모든 인간의 머리에 특별한 통을 씌워 소재지를 파악하며 지배의 도구로 삼는다. 대학가에서는 저항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연이어 벌어지는데...

 

<아내의 남자>는 한국의 스티븐 킹, 이종호의 작품이다. 해리성 정체성 장애(한마디로 이중인격)를 바탕으로 잘난 아내에 대한 의처증과 불륜 드라마를 섞어 아주 흡입력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보면 더욱 공포스러워지는 결말이 흥미롭다. 뻔한 불륜 소재로도 볼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모텔 탈출기>는 박동식 작가의 작품으로 이번 단편집에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상황은 엽기적이고 끔찍하나 묘하게 희극적인 상반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원조교제를 하러 모텔에 들어온 남자. 그런데 여자애가 욕실에서 미끌어져 저 혼자 죽어버리고, 출세가도가 보장된 남자는 난감해진다. 결국 남자는 여자애를 해체해 들고나갈 결심을 하는데...남자의 고생담은 정말이지 눈물 겨울 정도로, 이게 상상해보면 상당히 끔찍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키득거리게 만드는 일종의 코믹 엽기 고어 호러로 작가의 재기가 돋보인다. 살짝 결말을 알려준다면 남자는 결국 모텔을 빠져나간다. 그러나 의외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반드시 읽어보시기 바란다.

 

[팔란티어]로 굉장히 유명한 김민영 작가도 의학 공포소설로 참여했다. 그러나 사실은 로빈 쿡 류의 메디컬 스릴러에 가깝다. 짧은 분량에도 상당한 완성도가 엿보이는데, 조금 길게 늘여 장편으로 써도 충분히 통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수작이다.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며 신의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면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지 이 작품에서 만나보시길. 깊고 푸르고 공허한 결말이 일품인 암울한 이야기.

 

이상으로 열 편을 대강 살펴보았다. 단언코 작품들의 수준은 가장 못한 것도 일정 이상의 질을 담보하고 있을 정도로 그 수준들이 높다. 물론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들은 <일방통행> <상자> <아내의 남자> <모텔 탈출기> <깊고 푸른 공허함>이지만 다른 단편들도 못지않다는 이야기다.  직접 읽어보고 베스트를 꼽아보는 재미를 느껴보시길...그리고 출판사에서는 이런 뛰어난 공포 단편선을 매년 여름마다 이어나가, 이제 막 불길이 지펴지고 있는 공포소설 시장에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불러모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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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12-1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내일 뵙겠군요. ^^ 내일 책들 들고 갈께요~

jedai2000 2006-12-1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이따 봐요. ^^ 그런데 책이라뇨? 아, <반도에서 나가라> 말씀하시는요. ^^
 
잘린머리 사이클 -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1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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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는 화가.

지향점에 도달한 학자.

맛을 정복한 요리사.

경지를 초월한 점술가.

전세계 해커의 최고봉.

 

5명의 천재가 젖은 까마귀 깃 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가진 섬에 모인다. 섬의 주인인 이십대 여성은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영애로 섬에 저택을 짓고 천재들을 초빙해 일종의 살롱을 만든다. 화자이자 탐정 격인 이야기꾼 '나'는 당연히 천재는 아니지만 해커의 최고봉인 쿠나기사의 친구이자 보호자이므로 섬에 합류한다. 섬에서의 4일째, 한 명의 천재가 밀실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고, 5일째에는 또 하나의 목 잘린 천재가 밀실에서 죽었다. 나는 인류 최고의 청부업자(명탐정)가 도착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천재 쿠나기사와 함께 단서를 모은다. 사건의 진상은 그야말로 충격의 밀실 트릭. 아마도 독자는 진상을 알고나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것이다.

 

라이트노벨계 미스터리 작가로서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이란다. 일명 '헛소리 시리즈'라나.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누적 350만부가 팔렸다고(띠지 홍보 문구에 적혀 있다) 한다. <잘린머리 사이클>은 헛소리 시리즈의 제1작으로 작가의 대표작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2003년작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신본격 미스터리 이후의 일본 미스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를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될 만한 작품이다.

 

23회 메피스토 수상작이라는데, 제1회 수상작인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메피스토 상 설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장기인 장광설과 현학적인 대사들이 <잘린머리 사이클>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며, 모리 히로시 특유의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트릭 지향적인 자세 역시 고스란히 이식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2000년대 이후의 신인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역시 언급한 두 작가인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리 히로시와 교고쿠 나츠히코, 두 작가 모두 비현실적인 세계관과 트릭에 기대고 있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 세대에게 두 작가가 추구하는 현실에 발을 전혀 딛지 않는 허구의 세계가 제법 구미에 맞기 때문일까. 니시오 이신은 1981년생으로 전형적인 게임/애니메이션 세대이다. <잘린머리 사이클>의 주인공인 쿠나기사는 아무 설명도 없이 파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등장인물들은 일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금발에 벽안이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캐릭터 등으로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설정이다. 도통 현실과는 무관한 세계에서, 마치 구름 타고 노니는 듯 신비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해 무슨 신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과 설정이 유치하고 처음부터 구미에 맞지 않는 독자라면 <잘린머리 사이클>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좀더 넓게 가지고 끝까지 읽어 내려가다보면 의외로 그럴싸한 밀실 트릭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두번째 밀실트릭이 백미인데,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 리 없겠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근사한 트릭이다. 작가 니시오 이신의 장편 2개, 연작 단편 2개를 읽어봤는데, 이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써도 미스터리의 트릭을 구사하는 등 자신이 '미스터리 작가'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반갑다(심지어 마법사가 등장하는 단편에서도 사건을 미스터리 소설의 논리로 해결한다). 더구나 미스터리 소설을 무척 애독하는 듯 그 장르의 고유한 규칙을 언급하며 이리저리 비틀고 노는 게 특히 더 귀엽다. 심지어 이 작품의 분위기와 범인의 정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주 유명한 작품을 떠올리게 할 정도니까.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신본격 무브먼트 이후의 본격 미스터리(네오 본격쯤으로 불러야 하나)가 지향하는 트릭도 흥미로웠으며, 교고쿠 스타일의 장광설, 망상, 상념, 요설...한 마디로 헛소리가 줄기차게 지껄여지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직 여러모로 완성될 부분이 많은 작가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겠지만 두번째 밀실트릭의 기발함 만으로도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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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12-12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알록달록해서 만화책인 줄 알았어요 ^^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니 바로 '그' 작품인가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인데 기대되네요 ^^

oldhand 2006-12-1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생각도 없었는데 제다이 님이 이리 평을 하시니 솔깃해 집니다.

jedai2000 2006-1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제가 좋아하는 키티 캐릭터를 사용하시는 키티님..^^ 만화를 주로 냈던 학산에서 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 봅니다. 사실은 일본 내 원작 표지랑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 작품 (힌트는 섬이라는 거^^)과 약간 비슷해요.

올드핸드님...제 생각에 우리(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인 듯 해요. 자, 이제 넘어가주세요. ^^
 
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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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구만.
강군: 아직 한 시간은 더 걸어야 돼.
공군: 제길. 술값 내느라 차비도 없어서 이게 왠 고생이냐. 뭣보다 담배값도 없는 게 가장 비참하다.
강군: 이봐. 와트슨. 자넨 모르는군. 그저 볼 뿐이지 자넨 관찰을 안 하는 거야.
공군: 미쳤군. 니코틴 금단 증상으로 마침내 돌아버렸구나.
강군: 후후. 과연 그럴까. 내 자네를 담배의 신천지로 안내하지.
공군: 담배만 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강군: 호오, 그 정도인가. 생각을 해보세. 어디가 가장 주워 피울 만한 장초가 많은지를...뻔하지. 나는 안다네. 그간 관찰을 많이 했었거든. 자, 생각해보게. 담배가 가장 땡기는 곳이 어디일까. 그곳은... 버스정류장이네. 우리나라 버스는 제 때 오는 법이 없지.
공군: 그렇지.
강군: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담배가 생각나고 한 대 빼어물면 신기하게 버스가 바로 와. 그러면 거의 불만 붙인 담배를 땅바닥에 버리게 되지. 담배들고 탈 순 없잖아. 아까워도 버려야지. 자, 여길 보게. 이 버스정류장 바닥을...장초의 보고 아닌가.
공군: 오옷! 홈즈. 역시 자네 뿐이야.




강군: 자, 장초를 7개나 주웠으니 이제 길을 가볼까.
공군: 갈 길은 멀고 날은 이미 저물었으니 최근에 읽었던 책 이야기나 해봐라.
강군: 갑자기 왜?
공군: 너의 추리소설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은 잘 가더라. 아무 생각 안 해도 되고.
강군: 최근에는..음..제프리 디버의 <사라진 마술사>를 봤지.
공군: 처음 듣는 작가네.
강군: 너가 아는 작가는 누구냐?
공군: 이광수, 염상섭, 이상, 나도향
강군: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끊겼구만.
공군: 고등학교 때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졸업하니까 읽기 싫더라구.



강군: 제프리 디버는 반전으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지.
공군: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나 보군.
강군: 전쟁 반대하는 반전이 아니라 뒷통수 치는 반전 말이다.
공군: 오, <식스 센스> 같은 반전.

강군: 그렇지. 제프리 디버는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통해 일약 유명해졌지. 라임 시리즈 첫번째 작품인 <본 컬렉터>는 영화화도 됐고.
공군: 그 영화는 나도 봤다. 주말의 명화에서.
강군: <사라진 마술사>는 라임 시리즈의 다섯번째 작품으로 마술의 트릭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신출귀몰한 마술사와 링컨 라임 팀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 라임 팀에는 라임의 공적,사적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와 간호사 톰, 민완형사 론 셀리토와 롤랜드 벨, 변장의 명수 프레드 델레이 등이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델레이는 안 나와. 악당 마술사도 변장의 달인인데 장기가 겹치잖아.
공군: 오오~ 또 신들렸다. 계속 풀어봐라.




강군: <사라진 마술사>를 보고 든 생각은 마술사야말로 스릴러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악당이 아닐까 하는 거였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마술사 악당 말레릭은 몇 초만에 다른 사람으로 변장하고, 수갑도 따고, 물리적 심리적 미스디렉션으로 상대를 현혹하는데 아주 기가 막힌다.
공군: 미스디렉션이 뭐냐? 디렉션 양이냐?
강군: 죽어라 임마. 미스디렉션은 missdirection으로 상대의 주의를 교묘하게 다른 곳으로 돌리고, 그 틈을 이용해 마술을 펼치는 걸 말하지. 못하는 마술이 없는 초일류 마술사를 맞아 링컨 라임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최대 관심사란다.
공군: 재미있겠다.
강군: 제프리 디버는 항상 기본 이상은 가. 자료 조사도 꼼꼼하고, 플롯도 알차게 잘 엮고, 무엇보다 최후의 반전 한 방으로 독자를 넉다운시키는 수법이 일품이야. 그런데 링컨 라임 시리즈가 다섯번째가 되다 보니까 긴장감이 어쩔 수 없이 좀 떨어지기는 하지. 이번 작품에서는 링컨 라임이 불에 타 죽기 직전까지 가지만, 시리즈 주인공이 설마 죽겠냐 하는 생각이 드니까 긴장이 안 되지.
공군: 하긴 그렇겠구나.
강군: 링컨 라임은 워낙 증거에만 몰두하는 사람이고, 파트너 아멜리아는 명사수에 스피드광으로 활동적인 경찰인데 라임이 증거를 조사한다면, 아멜리아는 증인을 관찰하지, 마음과 마음을 열고 말야. 이런 대비는 이번 작품에서부터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데 참 좋은 것 같아. 증거와 증인을 각각 수사하는 두 경찰이라는 설정은 작품이 더 풍부해지는데 일조를 하는거지.



공군: 라임 시리즈는 제법 관심이 가는구나.
강군: 내가 꼽는 순위는 시리즈 제2작 <코핀 댄서>가 1등이고, 제3작 <곤충소년>이 2등, 그 다음이 <사라진 마술사>다. <사라진 마술사>는 라임이 최종적으로 범인의 진짜 정체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를 맞추는 과정에서 약간 치밀함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라임이 갖고 있던 단서만 가지고 그 모든 것들을 유추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다 알아채는 게 조금 그러네.
공군: 잘 알겠다.
강군: 아무튼 정말 재미있다. 시리즈 순서대로 봐도 좋고, 이것만 봐도 재미있을 거야. 워낙 마술사의 활약이 대단하니까. 연쇄살인부터 탈옥, 마술쇼와 미스디렉션까지 난리도 아니지. 물론 뛰는 마술사 위에 나는 링컨 라임이 있지만 말야.
공군: 꼭 보기로 결심했다.
강군: 봐라. 안 말린다.



공군: 그나저나 이야기 많이 했는데 목타지 않냐? 맥주 한 잔 할까?
강군: 돈 없어서 걷고 있는 거 기억 안 나냐.
공군: 에이, 왜 그래. 저번에도 보니까 양말에 만원 숨겨놨더만.
강군: 오늘은 진짜 없어.
공군: 뒤져서 나오면 내 꺼.
강군: 이게 왜 이래. 없다면 없는거지.
공군: 어, 이거 있는데. 분명 있어.
강군: 어딜 손을 대. 변태자식아.
공군: 나오기만 해봐.
강군: 야, 비켜! 버스 온다!



공군: 야, 왜 울어?
강군: 방금 전 버스 옆 광고판에 서지혜가 있었다. 음료수 광고.
공군: 난 못 봤는데.
강군: 서지혜 관련 동체시력 3.0이다. 분명 인연인게야. 이런 상황에서 서지혜를 보다니. 기분이다. 내가 맥주 한 잔 쏜다!
공군: 너 이 놈. 있었구나.
강군: 맥주 마시러 가자! 첫 잔은 서지혜를 위한 원샷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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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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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오 마이코란 비교적 낯선 작가의 <행복한 식탁>의 띠지 홍보문구는 이렇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읽기 전부터 이 문구에 굉장히 긴장했었다. 이거 눈물을 한 바가지 흘려야겠구나. 과연, 엄청나게 슬픈 소설이었다.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자살한 아빠로 인해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오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빚쟁이들에 의해 탄광에 갇혀 일을 하다 진폐증에 걸리고, 엄마는 호스티스가 된다. 주인공인 중학생 사와코는 학교까지 쫓아온 빚쟁이들에게 망신을 당하며 감수성 여린 나이에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고 한다면 전부 거짓말이다.

 

다행히 이렇게까지 처절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랑말랑한 이야기도 아니다. 자살을 기도하다 간신히 살아난 아빠로 인해 분위기가 무거워진 가정, 엄마는 아빠가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집을 나가 혼자 산다. 천재인 오빠는 진지하기만 한 아빠가 삶의 커다란 무게로 인해 자살을 기도했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도 같은 선택을 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일체의 진지함을 포기하고 설렁설렁 가볍게 모든 걸 대한다. 나 사와코는 중학생 소녀로 아빠의 자살 기도 당시 흘리던 피를 잊지못해 약간의 불안강박증을 얻게 되었다.

 

거의 붕괴 위기에 몰린 이 가족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힘들 때면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음을 깨닫는 따뜻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시기는 어렵겠고, 잔잔하고 포근한 느낌의 소설이다. 작가 세오 마이코는 현직 중학교 교사라고 하는데, 직업상 중학생 소녀들을 관찰할 기회가 많아서인지, 중학생 사와코가 겪는 일들, 내면 묘사를 그럭저럭 잘 포착하고 있는 것 같다.

 

4편이 수록된 연작 단편집으로 편안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구미에 제법 맞을 것이다. 간혹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유머도 빈번히 등장하고. 다만 제26회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력에 걸맞지 않게, 작가의 문장력은 다소 평범하고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의 글을 보는 듯 했다. 가만히 보면 일본에는 문학상이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상업적으로는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오키상, 아쿠타가와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미시마 유키오상...역량이 살짝 떨어지는 작가라도 수상작이라는 레테르를 둘러 자국과 해외에서 성공적인 세일즈를 하는 일종의 판매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독자들은 많고많은 유수의 수상작들 중에서 옥석을 잘 골라야 하는 피곤한 의무도 지게 된 셈이다.

 

<행복한 식탁>의 네 가지 이야기들에서는 가족의 의미와 관계에 대한 깨달음이 매번 등장한다. 이를테면 꼭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해야만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형식일 뿐이다. 뭐 이런 식인데, 그 깨달음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사와코가 퍼뜩 깨닫는 식이다. 사와코는 그 어린 나이에 벌써 '돈오'의 경지를 깨우쳤는가. 한 마디로 대단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와코가 고등학교 1학년까지 진급하며 끝나는데, 내가 알기로 일본에서 후속편이 나왔을 것이다. 솔직히 후속편이 나온다면 볼 것 같다. 비록 <행복한 식탁>의 내용 곡절이 잔잔한 나머지 심심한 지경이고 작가의 문장이 매우 평범하다지만,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이 4인 가족이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지긴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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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밀리언셀러 클럽 50
스티븐 킹 지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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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태롭고 불행한 일들의 시작이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아홉살 소녀 트리샤에게 일어난 일도 시작은 별 것 아니었다. 부모가 이혼을 한 덕에 엄마 밑에서 오빠와 자라는 트리샤. 그러나 오빠는 매사 불만투성이에 철이 들려면 아직도 멀어서 자신을 아빠에게 보내 달라고 매양 엄마와 싸운다. 주말을 맡아 광활한 미국 북부의 애팔래치아 숲을 하이킹하러 온 트리샤 가족. 그러나 트리샤는  쉴 틈없이 투덜대며 엄마와 싸우는 오빠에게 넌더리가 나 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잠시 멈춰선 트리샤는 길을 벗어나 소변을 본다. 그리고 길을 잃는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그 팀의 구원투수 톰 고든을 숭배하며, 인기 가수의 노래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도시소녀 트리샤가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숲속을 헤메게 된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공포소설을 잘 쓴다는 스티븐 킹이 이번에도 또 한 번 퍼펙트 게임을 펼쳐내었다. 이번 작품에서의 공포의 대상은 괴물이나 유령은 아니지만, 그것들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다. 다름 아닌 숲 자체가 트리샤와 독자의 마음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다. 깊은 숲을 가보신 분들은 다 알겠지만,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으면 무섭다. 더구나 뼈를 닮은 회백색 나뭇가지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밤이라면, 아무리 담력이 있는 사람도 혼자서 밤을 지새우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트리샤는 단 아홉 살에 불과하다. 육체적 완력이나 강인함을 기대할 수 없는 연약한 소녀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게다가 숲이 주는 위험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감을 자극하는 적막과 고요, 틈만 나면 피를 빨려 덤벼내는 모기떼, 폭풍우와 천둥번개를 비롯한 악천후, 참을 길 없는 갈증과 굶주림까지 숲이 보여주는 공포의 얼굴은 시시때때로 얼굴을 바꾸며 트리샤를 압박한다.

 

트리샤는 만루홈런을 맞은 패전투수처럼 이대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그러나 트리샤는 라디오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서 나오는 보스턴 팀의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공포를 이겨낸다. 트리샤에게는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힘을 주는 톰 고든이 있었다. 톰 고든은 기아와 질병으로 거의 환각 상태에 이른 트리샤에게 찾아와 승리 공식을 가르쳐준다. 희망과 신념, 집중과 의지가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이 작품에서 소녀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야구라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야구야말로 미국인의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길잃은 숲속에서 소녀가 야구 방송을 들으며 철저한 고립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하기 쉽게 다가온다. 야구장에는 핫도그가 있으며, 콜라와 맥주, 환성과 한숨, 승리와 패배, 경쟁과 화합이라는 미국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홀로 숲속에 동떨어진 트리샤가 절대 맛볼 수 없는 것들이다. 트리샤는 이 모든 것을 그리워한다. 다시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간절한 애원, 그것 뿐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답지 않게 분량은 적은 편이다. 하지만 분량 이상으로 매혹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숲은 대단히 무시무시하지만 실제로 책을 덮고 나면 숲에 가보고 싶어진다. 작가가 숲의 여러 가지 풍경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고립과 공포의 순간이 겨우 지나가면 찾아오는 벅찬 풍경들, 별똥별 무리는 하늘 가득 오렌지색으로 수놓고, 새끼사슴과 비버는 눈을 즐겁게 한다. 굶주려 죽어가기 직전 발견한 백옥나무 열매는 어쩌면 그리 맛있을까. 스티븐 킹이 묘사한 숲은 이렇게나 무섭고, 아름답다.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가혹하게 트리샤를 괴롭히는 대목에서는 조금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결말이 모든 것을 보상한다. 숲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 소녀가 취하는 행동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단지 숲이라는 대상만이 공포감의 전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트리샤를 노린다. 숲을 헤매고 다닌 지 며칠째, 트리샤가 자고 일어나보니 둘레는 온통 거대한 발톱자국이고 자신의 몸 주변은 흙으로 빙둘러 원이 쳐져 있다. 너는 내 먹이,라는 표식일지도 모른다.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는 숲이라는 절망의 공간을 벗어나 희망의 세계로 날갯짓을 펼치는 한 소녀의 믿음과 신념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트리샤의 몸을 빌어 우리에게 공포와 허무, 절망들을 상대로 정면승부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침범할 수 없다. 단지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트리샤에게는 그 용기가 있었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p.s/ 요즘 PSP 게임으로 메이저리그 게임을 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보스턴 레드삭스로 플레이를 하고 있는데, 며칠 전 라이벌인 뉴욕 양키스와의 게임 때, 구원투수로 톰 고든이 나오는 걸 보고 무지 반가웠다. 이 작품에서만 해도 보스턴의 붙박이 마무리였는데, 언제 뉴욕으로 갔는지 궁금했다. 참고로 나는 톰 고든을 난타해 강판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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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5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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