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머리 사이클 - 청색 서번트와 헛소리꾼, Faust Novel 헛소리꾼 시리즈 1
니시오 이신 지음, 현정수 옮김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자신만의 스타일이 없는 화가.

지향점에 도달한 학자.

맛을 정복한 요리사.

경지를 초월한 점술가.

전세계 해커의 최고봉.

 

5명의 천재가 젖은 까마귀 깃 섬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가진 섬에 모인다. 섬의 주인인 이십대 여성은 어마어마한 재벌가의 영애로 섬에 저택을 짓고 천재들을 초빙해 일종의 살롱을 만든다. 화자이자 탐정 격인 이야기꾼 '나'는 당연히 천재는 아니지만 해커의 최고봉인 쿠나기사의 친구이자 보호자이므로 섬에 합류한다. 섬에서의 4일째, 한 명의 천재가 밀실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고, 5일째에는 또 하나의 목 잘린 천재가 밀실에서 죽었다. 나는 인류 최고의 청부업자(명탐정)가 도착하기 전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천재 쿠나기사와 함께 단서를 모은다. 사건의 진상은 그야말로 충격의 밀실 트릭. 아마도 독자는 진상을 알고나면 무릎을 치며 감탄할 것이다.

 

라이트노벨계 미스터리 작가로서 일본에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는 니시오 이신의 작품이란다. 일명 '헛소리 시리즈'라나. 이 시리즈는 일본에서 누적 350만부가 팔렸다고(띠지 홍보 문구에 적혀 있다) 한다. <잘린머리 사이클>은 헛소리 시리즈의 제1작으로 작가의 대표작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2003년작으로 한 세대를 풍미했던 신본격 미스터리 이후의 일본 미스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나를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될 만한 작품이다.

 

23회 메피스토 수상작이라는데, 제1회 수상작인 모리 히로시의 <모든 것이 F가 된다>와 메피스토 상 설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들을 연상시킨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장기인 장광설과 현학적인 대사들이 <잘린머리 사이클>에도 여지없이 등장하며, 모리 히로시 특유의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트릭 지향적인 자세 역시 고스란히 이식된 듯 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2000년대 이후의 신인 미스터리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역시 언급한 두 작가인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리 히로시와 교고쿠 나츠히코, 두 작가 모두 비현실적인 세계관과 트릭에 기대고 있으며, 뭐라 말할 수 없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점점 현실에서 멀어지고 있는 세대에게 두 작가가 추구하는 현실에 발을 전혀 딛지 않는 허구의 세계가 제법 구미에 맞기 때문일까. 니시오 이신은 1981년생으로 전형적인 게임/애니메이션 세대이다. <잘린머리 사이클>의 주인공인 쿠나기사는 아무 설명도 없이 파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등장인물들은 일본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금발에 벽안이다. 이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캐릭터 등으로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설정이다. 도통 현실과는 무관한 세계에서, 마치 구름 타고 노니는 듯 신비한 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이 연이어 등장해 무슨 신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과 설정이 유치하고 처음부터 구미에 맞지 않는 독자라면 <잘린머리 사이클>을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좀더 넓게 가지고 끝까지 읽어 내려가다보면 의외로 그럴싸한 밀실 트릭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두번째 밀실트릭이 백미인데,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할 리 없겠지만 이 작품 안에서는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근사한 트릭이다. 작가 니시오 이신의 장편 2개, 연작 단편 2개를 읽어봤는데, 이 친구는 어떤 이야기를 써도 미스터리의 트릭을 구사하는 등 자신이 '미스터리 작가'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 반갑다(심지어 마법사가 등장하는 단편에서도 사건을 미스터리 소설의 논리로 해결한다). 더구나 미스터리 소설을 무척 애독하는 듯 그 장르의 고유한 규칙을 언급하며 이리저리 비틀고 노는 게 특히 더 귀엽다. 심지어 이 작품의 분위기와 범인의 정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아주 유명한 작품을 떠올리게 할 정도니까.

 

나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다. 신본격 무브먼트 이후의 본격 미스터리(네오 본격쯤으로 불러야 하나)가 지향하는 트릭도 흥미로웠으며, 교고쿠 스타일의 장광설, 망상, 상념, 요설...한 마디로 헛소리가 줄기차게 지껄여지는 걸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직 여러모로 완성될 부분이 많은 작가기에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겠지만 두번째 밀실트릭의 기발함 만으로도 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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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12-12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알록달록해서 만화책인 줄 알았어요 ^^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과 분위기가 비슷하다니 바로 '그' 작품인가요?
무척 좋아하는 작품인데 기대되네요 ^^

oldhand 2006-12-1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생각도 없었는데 제다이 님이 이리 평을 하시니 솔깃해 집니다.

jedai2000 2006-12-12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티님...제가 좋아하는 키티 캐릭터를 사용하시는 키티님..^^ 만화를 주로 냈던 학산에서 내서 더 그런 느낌을 받으시나 봅니다. 사실은 일본 내 원작 표지랑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 작품 (힌트는 섬이라는 거^^)과 약간 비슷해요.

올드핸드님...제 생각에 우리(미스터리 마니아)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인 듯 해요. 자, 이제 넘어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