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량의 상자 - 상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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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교고쿠 나츠히코. 원래 광고 회사에 다니다 틈틈이 집필한 원고를 손수 장정까지 해서 출판사로 들고간 책이 바로 그의 전설적인 데뷔작 <우부메의 여름>이었다. 국내에도 출간된 작품으로 '우부메'라는 일본 전통 요괴를 모티브로 밀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남편과 그의 18개월째 임신 중인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음양사 추젠지 아키히코와 그의 친구들을 그리고 있다.



<우부메의 여름>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2년 후, <망량의 상자>가 발간되었다. 전작을 뛰어넘는 열광적인 독자들의 반응으로 인해 교고쿠 나츠히코는 일약 작품 두 편으로 일본의 국민 작가가 되었다.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미스터리로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통 미스터리라고 할 수는 없는 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주로 담는 작가이기에, 아야쓰지 유키토, 노리츠키 린타로 등의 대표적 미스터리 작가들이 교고쿠 나츠히코를 추리소설을 쓰는 작가라고 못을 박으며 그들의 세력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의 대담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그렇다면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이 무엇이길래 일본에서 '교고쿠 현상'이라는 말까지 낳으며 사랑받았을까? 무엇보다 일본색이 강해서였을거다. 요괴에 관심이 많아, 계간 <요괴> 잡지까지 내고 있는 그답게 작품마다 일본의 요괴가 주요 모티브로 쓰인다. (실제로 요괴가 등장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아직도 요괴가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여전히 친근한 존재로 남아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거대 종교가 없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통적인 요괴의 생명력이 그렇게 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동,서양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그만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1000페이지를 예사로 뛰어넘는 엄청난 볼륨을 자랑하는 그의 작품들은 나름대로 최신 과학의 가설, 요괴와 민속학에 대한 작가의 지식 자랑, 단순한 궤변, 말도 안 되는 요설들까지 넘쳐나 현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특히 주인공 추젠지의 엄청난 (사이비) 지식이 바탕이 된 강론은 한번 입을 열었다 하면 100페이지 가까워 듣는 세키구치와 독자들의 눈과 귀를 엄청 피곤하게 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이런 장면들을 제하면 작품의 맛이 살지 않을 것이다. 여러 지식들이 섞이고 비벼지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재미를 낳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란한 지식의 향연도 볼 만하지만, 다른 추리소설들과는 달리 다루고 있는 사건들 또한 현실에서는 접하기 힘든 기이함이 있어 독자들을 홀리는 것이다.



이 작품 <망량의 상자>는 네 개의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가나코라는 소녀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열차사고를 당하며 작품은 출발한다. 가나코는 간신히 살아나지만 망가진 인형처럼 부서지고 만다. 그즈음 일어난 소녀들의 토막난 팔다리가 발견되는 사건이 두 번째다. 최고의 압권은 세 번째 사건이다. 첫 번째 사건에 등장한 열차사고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던 가나코가 여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침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환상적인 사건을 해결할 사람은 일본에 단 한 명...



고서점을 운영하며 퇴마사도 겸하는 추젠지 아키히코, 그는 친구인 소설가 세키구치, 역시 친구인 다른 이의 기억이 보이는 '장미십자 탐정 사무소'의 에노키즈 등과 함께 <망량의 상자>에 얽힌 비밀을 풀어낸다.



사실 워낙 두껍고, '교고쿠 월드'에 슬슬 질려가던 참이라 읽기는 힘들었다. 나는 책은 많이 읽는 편이지만 집중력이 좀 부족한 편이라 한 호흡에 읽지 못하는 편인데 <우부메의 여름>은 거의 6시간 가까이 아무 것도 안 하고 한번에 읽어내려간 적이 있다.  하지만 <망량의 상자>는 거의 2주가 걸렸다. 분명히 재미를 느낌에도 불구하고 읽기 힘들었던 걸 보니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 세계에 조금 물린 모양이다. 사실 그의 작풍은 금새 싫증나기 쉬운 약점이 있다. 세 번째 작품인 <광골의 꿈>은 지금 나온다해도 별로 읽고 싶지 않을 듯 하다.



그만큼 고전하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두 읽었는데 마지막 30페이지 정도를 남겨두고는 정말 구토가 몰려왔다. 지옥을 엿본듯한 느낌이다. 그 압도적인 그로테스크에 세키구치처럼 나도 질려 버리고 말았다. 거짓말이 아니라 지하철 역에서 잠시 헛구역질을 했다...지옥을 엿본 자는 그 자신, 곧 악마가 된다고 했던가...<망량의 상자>를 엿본 자는 그 자신도, 귀신이 되어야 함을 감수할 자신감이 있는 자는 책을 들어도 좋다.



압도적인 작품이다. 분량도 압도적이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도 압도적이다.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가 교묘하게 짠 사건의 진상은 네 개의 사건이 하나로 모여 한 폭의 지옥도를 그려낸다. 솔직히 네 개의 사건 중 한 두개는 트릭을 정확히 맞출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지만, 네 개의 사건이 모두 모이는 결말에서의 느낌은 상상을 초월한다. 새로 읽으실 분의 재미를 위해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하는 게 유감일 뿐이다. 추리소설로서의 논리적 정합성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하다.



의외로 일본 추리소설의 전통에 기대어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작품의 세계관은 묘하게 요코미조 세이시나 에도가와 람포를 생각나게 한다. 일본적인 그로테스크...무엇이라 설명은 못하겠지만 일본하면 떠오르는 잔인한 어떤 것...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내적으로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우부메의 여름>보다 조금 더 드러난 듯 해 만족스럽다. 분위기도 조금 밝아졌다. 유쾌한 장면도 많고...하지만 그만큼 전편의 비장미(?), 염세미(?) 는 조금 떨어진 듯 해 아쉽다. 이 작품은 마지막 100페이지를 제외하고는 전편만큼 우울하지는 않다.



작가의 문장력은 어떨 때는 좋은 것 같고, 어떤 문장은 유치한 면도 보여 필력을 가늠하기 힘들다. 교고쿠만의 특성이라고나 할까...독백 등을 탁탁 끊어 별행 처리하며 문장을 늘이는 데도 명수다. 여러모로 자신의 수입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다..^^;; (문장이 늘어나면 고료가 올라가니까...)



개인적으로 일본 추리소설사에 남을 만한 역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로테스크한 사지 절단 등에 비위가 상할 독자도 많이 있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 100페이지가 주는 그 압도적인 처절함(?)은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분명 교고쿠 나츠히코가 현대 일본 추리소설의 한 정점에 올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작이다.



지금도 나의 눈에는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추젠지 아키히코가 인간과 귀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요괴 '망량'을 퇴치하기 위해 출진하는 장면이 보이는 듯 하다. 허름한 고서점 주인이자 매사 시무룩한 수다쟁이가 인간의 마음 속에 잠복해 있는 요괴를 퇴치하는, 비할 데 없이 뛰어난 음양사로 변신하는 장면은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에 강한 흥분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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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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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덴마크 소설이다. 덴마크를 비롯한 북구 유럽은 분명 유럽이면서도 어쩐지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고, 또 괜시리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많이 든다. 전에 북구 유럽 신화를 다룬 책에서, 북유럽 신화의 결말은 모든 신들이 죽고, 세상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암울한 내용이라는 걸 읽은 바 있다. 북구 특유의 추위와 쓸쓸함, 어두움이 신화에도 그런 어두운 색채를 가미시키게 한 요인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덴마크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작품도 결말은 어두운 면이 강하게 보인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역시 절대로 가볍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읽는내내 끝없는 우울한 정조에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읽느라 무척 힘들었던 작품이다. 거의 3주 가까이 붙들고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이 형편없어 그런 건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은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하는 작품으로 보여진다. 다만 추리소설로 분류되고 있지만 추리물의 요소로만 보자면 평균 정도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그린란드 원주민과 덴마크인의 혼혈인, 스밀라 야스페르센이라는 여성이 자신과 나이를 떠나 깊이 교감하던 이사야라는 소년의 의문의 죽음을 파헤쳐낸다는 내용이다. 금방 실체를 드러날 것 같던 비밀은 덴마크의 도시와 북극해를 항해하는 배를 거쳐, 그린란드의 거대한 빙산에서야 마침내 밝혀진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인, 선명한 이미지로 가득찬 문장들이 작품 내내 계속된다. 종래의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순문학(애매한 용어이지만 그냥 사용합니다.)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문장에 익숙해지기 힘들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얼음은 아름다움 속에서 창조되었다. 10월의 어느 날에는 네 시간 만에 30도가 떨어지고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하다. 바다는 천지 창조의 경이를 반영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구름과 바다는 묵직한 잿빛 비단 커튼 속으로 함께 미끄러져 간다. 물은 끈적끈적해지고 야생 딸기로 만든 술처럼 분홍빛으로 물든다. 서리 연기로 된 푸른 안개는 수면 위에서 떨어져나와 거울을 가로질러 간다. 어두운 바다에서부터 나와 위로 올라오는 냉기는 이제 장미 정원, 소금과 언 물방울로 형성된 얼음꽃의 하얀 담요를 끌어낸다."

 

이 문장은 북극해가 얼어버리는 장관을 스밀라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다. 마치 시같은 느낌을 주는 어휘들이 계속 튀어나오는 데, 이런 멋부린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주 홀려버리실테고, 직접적이고 간결한 문장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어내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작품 내내 멋진 문장을 선보이다 보니 조금 물리기도 하고, 또 너무 과도하게 사용될 때가 많다. 또 한 번의 예를 들자면...

 

"이런 식으로 보면 추위 속에서 사람의 숨결-8도 미만의 공기 중에서 형성되는 차갑게 식어버린 물방울의 베일-은 단순히 입에서부터 50센티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따뜻한 피를 가진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전면적이고도 구조적인 변형이며, 최소한이지만 확정적인 온도의 이동이 이루어내는 아우라다."

 

이 문장은 원자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의 입김에 대한 스밀라의 생각일 뿐이다. 뭐가 하나 튀어나올 때마다 매번 이런 식이면 조금 곤란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읽기 좀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이 작품은 올 여름에 나온 추리소설 중에 비교적 성공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한 번 출간된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큰 사랑을 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한 번 추측해 보았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작품이 순문학(?)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들은 멋 들어진 문장을 빼고도, 이 작품은 덴마크의 비열한 거리와 원시적인 생명력을 간직한 그린란드의 빙산을 대비하며 현대 사회와 그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비판 등의 순문학적 요소가 추리소설 애호가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호감을 준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적은 추리소설 애호가만 가지고는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약간 가슴아픈 진실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두 번째는 스밀라라는 개성강한 여성이 여성 독자분들의 사랑을 많이 받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책은 여성분들이 더 많이 사고 많이 보는 편이니까 여성분들이 좋아한다면 그만큼 더성공하기 쉬운 것 같다. 스밀라는 작은 키에 깡말랐지만 정말로 터프하다.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는 남자들을 맞아, 온몸이 깨져가면서도 진실을 캐나가는 스밀라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정말 처절하게 망가지며 싸워나간다..)

 

물론 스밀라의 모습에 터프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에 대한 유사모정에 가까운 애정, 사건을 같이 수사하는 수리공 페터에게 느끼는 사랑 같은 감정들도 섬세하게 묘사되는 편이다. 그러나 나의 여성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해서인지는 몰라도 스밀라라는 여성의 매력에 100%공감하지는 못하겠다. 어떤 면에서 그녀는 나에게 있어 신경질적이고 이해 안 되는 여성의 전형일 뿐이었다.

 

작품은 총3장(도시-바다-얼음)으로 이뤄져 있는데,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3장 '얼음'편은 대단히 흥미롭다. 그간 고생스레 주워담았던 모든 단서들이 하나로 합쳐져 진실이 밝혀지는 데, 어느 정도는 고통스럽게 읽었던 1,2장의 고생을 한 번에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2장 '바다'가 특히 읽기 어려운 데, 거대한 배를 탄 스밀라가 배의 비밀을 조사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작가 특유의 집요하고 꼼꼼한 묘사 덕분인 지, 배의 세부 구조 설명이 너무 많다. 내가 무식해서겠지만 상갑판, 하갑판, 마스트, 이물, 고물, 승강대 등의 배 내부 구조물을 이리저리 오가며 활약을 벌이는 스밀라의 동선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배 내부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 내용 상 동선이 정확이 그려졌으면 더 재미있을 부분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번역을 맡으신 분과 담당 편집자가 얼마나 고생하셨을 줄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야말로 만만찮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멋진 표지와 고급스런 외양의 책 외양을 비롯하여 많은 부분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모쪼록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계기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좋은 작품들이 속속 발간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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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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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프로농구 NBA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몇년 전 은퇴한 하킴 올라주원이라는 센터가 있습니다. 너무 잘해서 다른 팀 선수가 이런 말을 했죠. '하킴 올라주원은 하킴과 올라주원, 두 사람이라 그를 막으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도 그런 말이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히.가.시.노 게.이.고, 일곱 사람이라 그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다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20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55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써낸 것도 놀라운데, 작품의 수준이 비교적 고르게 뛰어나고, 소재가 작품마다 달라진다는 것은 정말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만 봐도 <백야행>이 60년대부터 현재까지 두 남녀의 비밀스런 삶의 궤적과 함께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통과해온 사람들에게 바치는 가을같이 쓸쓸한 만가라면, <비밀>은 딸과 부모의 영혼이 바뀌며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고, <짝사랑>은 남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쓴 경쾌한 유괴 이야기였구요. 곧 출간될 <호숫가 살인사건>은 입시 지옥, 불법 과외 등으로 얼룩진 현대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일본 아마존 서평에 어느 독자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다양한 소재라도 자유자재로 요리할 수 있는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초기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분히 본격 작가였습니다. 설명용 그림이나 도면, 지도 등도 꼭 들어갔었죠. 데뷔작인 <방과후>는 학원 본격 미스터리였다고 합니다. 이게 인기를 끌어 초기에는 학교를 무대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경쾌한 학원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웠답니다. 본격 작가로도 뛰어났지만 그는 작풍을 드라마틱하게 바꿉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본격 일변도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게 된 거죠. 그러나 본인은 자신은 미스터리 작가임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가 쓰는 모든 작품은 미스터리 터치가 절묘하게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신> 역시 뇌이식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분위기가 잘 살아 있습니다. 평범하고 소심한 나루세 준이치라는 청년이 강도를 만나 머리에 총상을 입습니다. 강도의 이름은 교고쿠 šœ스케인데 어머니를 죽게 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 강도짓을 하다가 준이치를 쏘고 만 거죠...경찰에게 쫓기던 교고쿠는 자살을 하고요. 머리에 총을 맞은 나루세는 뇌이식을 하고 간신히 살아나지만 자신이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그림은 제쳐두고 음악을 좋아하게 됩니다. 참고로 자살한 강도, 교고쿠는 음악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스포일러는 아닐 겁니다. 이 작품은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지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서요...)

무엇보다 나루세에게 최악의 변화는 그렇게 사랑하던 애인 메구미의 매력 포인트였던 주근깨가 미워 보인다는 거였습니다. 또한 나루세에게는 웬지 모를 폭력성도 나타납니다. 소심하고 심약했던 그가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릅니다. 모든 게 뇌이식 때문일까요? 그는 목숨은 부지하게 되었지만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요? 아니, 뇌가 바뀐 나루세를 나루세라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그런 뇌이식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인 엄청난 가독성으로 인해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단숨에 읽힙니다. 점점 소름끼치게 변해가는 나루세의 변화를 쫓아가는 서스펜스도 숨이 막히고, 결말까지 주욱 이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작가의 작품 중 <백야행>이나 <비밀>같은 최일선의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2% 부족한 결말이 약간 아쉽고, 이야기 전개도 비교적 예측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뇌이식으로 인해 변해가는 사나이라는 주된 소재가 이미 낡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었거든요. 다만 그 당시에는 대단히 신선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과학을 좋아한다는 거죠. 이공계 작가답습니다..^^;;
빙의같은 추상적인 소재도, 성정체성 장애 같은 정신의학적 소재도, 뇌이식이나 인간 복제같은 소재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작가는 노력합니다. <변신>도 그같은 점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점이 많은 작가지만 제가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에 웬지 모를 애잔함이 감돌고 있다는 거죠. <백야행>, <비밀>의 전설적인 애절한 감동을 주는 마무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변신>의 마무리도 감동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여기서 광고를 약간 하자면 <호숫가 살인사건>의 마무리도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저는 울었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실력과 재능, 재미를 겸비한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은 정말 반길만한 일입니다.
저도 2권을 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들을 더 내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유감이라면 한국어판 서문과 사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진을 자기 책에다 절대로 박지 않는다네요. 또한 소설 이외의 글을 쓰는 걸 싫어해 서문도 안써준다고 합니다. 뭐 그 시간에 소설을 한 자 더 써주는 게 저같은 팬에게는 더 반갑지만요.^^;;
이 남자 조금 고집불통에 딱딱할 듯 하지만, 그래도 웬지 뚝심 있고 멋져 보이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

평점: ★★★1/2

P/S: 이 작품은 <HEAD>라는 만화로도 나왔습니다. 전4권인데 내용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저는 다행히 3권 볼 때,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기서 접었습니다...^^;; 그런데 만화로 이미 다 보신 분들도 상당히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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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9-0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호숫가 살인사건, 얼마 전에 이미 나왔지요. (곧 출간될.. 이라고 쓰셔서.. ^^;;)
그리고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가가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해도, 그걸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건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

jedai2000 2005-09-2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점에서는 출간이 안 된 상태여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나 카페 활동만 열심히 했는데, 이제 서재 신경도 좀 써야겠네요. 저는 제 글 읽어주시는 분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한 분이라도 있다면 열심히 해야겠네요..^^;;

상복의랑데뷰 2005-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혁진님 축하드립니다~^^

jedai2000 2005-10-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거친아이 2005-11-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을 영화로 봤는데...이 분이 원작자시군요...첨 알았답니다...흥미로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__)
 
미스틱 리버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최필원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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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만들어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미스틱 리버>의 원작 소설이다.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일곱 편 정도 쓴 걸로 알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작가가 2003년도에 쓴 <살인자들의 섬>이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국내 출간된 작품은 <살인자들의 섬>과 <미스틱 리버> 단 두 작품에 불과하다. 

 

<살인자들의 섬>이 가장 최근작으로 신작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94년에 데뷔해 현재까지 일곱 편이니 작가 경력에 비해 비교적 과작으로 그만큼 신중하고 완성도 있는 글을 쓴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미스틱 리버>도 평이 대단히 좋았지만 영화를 보지 못해 다만 소설에 대해서만 말을 할 수 밖에 없어 유감이다. 주연진은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이라는 명배우들의 조합이었다. 영화도 꼭 구해 봐야겠다.

 

지미 마커스와 숀 디바인, 데이브 보일...세 사람은 어렸을 때 친구였다. 특히 지미와 숀은 아버지가 같은 회사를 다녀 그만큼 더 절친했다. 데이브는 항상 같이 있긴 했지만 얌전하고 존재감이 별로 없는 그런 친구였고...  숀의 아버지가 관리자인데 반해 지미의 아버지는 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였다.

 

지미의 아버지가 해고를 당하고 아버지 사이의 골은 자식들에게 이어진다. 지미와 숀은 별다른 이유없이 멀어지게 되는데 어느날 거리에서 주먹다짐을 하다 차에 타고 있던 경찰들을 만나게 된다. 경찰은 아이들이 거리에서 싸우면 체포해야 한다며 차에 태우려 한다. 영리한 지미와 숀은 차에 타지 않지만 데이브는 차에 타고 만다. 데이브가 울면서 차 뒤유리를 통해 두 사람을 바라보던 장면은 두 사람에게 지우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그 때 데이브를 차에 타게 하지 못했어야 한다고 두 사람은 내내 후회하는 것이다.

 

당연히 데이브를 데려간 사람들은 경찰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아 성학대범이었고, 데이브는 4일만에 그들에게서 빠져 나온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억지로 봉합해 둔 채 세 사람은 성장하게 된다. 지미 마커스는 17살에 갱단을 조직한 건달이었지만 교도소에서 첫 아내를 잃고 재혼을 하면서 손을 씻는다. 숀 디바인은 형사가 되었는데 아내 로렌과 별거중이다. 데이브 보일은 고교 야구 스타 출신이었지만 현재는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머리 속에는 늘 어린 날의 끔찍했던 기억을 안고...

 

어린 시절의 친구이지만 별다른 인연없이 각자 살아가던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운명의 수레바퀴 속으로 굴러 들어가고 만다. 지미의 딸, 케이티가 공원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지미는 자신의 손을 씻게 만든 첫 아내와의 유일한 딸, 목숨보다 사랑한 케이티를 죽인 자에게 피의 복수를 하려 한다. 숀은 케이티 사건의 수사를 맡게 된다. 그런데 수사 중 데이브가 케이티가 죽어가던 장소에 비슷한 시점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읽는 내내 세 사람의 결말을 조종하는 잔인한 운명의 실이 어떻게 풀려 나갈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2권 분량에 거의 700쪽 가까운 이야기지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특히 세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여운이 굉장하다.

 

대단한 작품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정말 천재적인 작가이고, 그의 작품들은 마술적인 강렬함이 있다. <미스틱 리버>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지미의 딸 케이티가 죽고 나서의 순간부터이다. 다른 스릴러나 미스터리 책에서도 피해자가 죽으면 형사나 탐정이 등장해 수사를 개시한다. 피해자 가족들의 슬픔같은 묘사가 나오긴 하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는다. 이 글을 쓰는 본인도 농으로 '사람이 죽지 않는 책은 재미가 없어' 라든지, '책에는 사람이 50페이지에 한번씩 죽어야 집중이 유지돼..'하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러나 <미스틱 리버>에서는 거의 300쪽 가까운 분량을 케이티의 장례식 준비 장면에 할애한다. 이야기 전개 상으로는 사실 불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 장면에서 지미의 딸에 대한 사랑, 후회, 그리움 등의 감정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살인 미스터리 물에 등장하는 잦은 죽음으로 인해 죽음이 주는 무게감을 잊고 사는 독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고나 할까...

 

언제나 죽은 사람들보다는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슬픔이 더 큰 것 같다. 가족을 잃은 채 하루하루 슬픔속에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이토록 잘 묘사하는, 진실한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통찰력 있게 그려내는 미스터리 스릴러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물론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수사물다운 재미도 있다. 뜻밖의 단서로 범인을 잡아내는 숀의 추리 장면은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성장해 온 세 사람의 엇갈리는 운명이 가장 비통하고, 애잔하게 다가온다.

 

<살인자들의 섬>도 정말 훌륭한 작품이지만, 재미를 위해 약간의 쇼크 효과를 노린 작품이라면 <미스틱 리버>는 더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작품이다. 2000년대 이후를 이끌어갈 작가로 데니스 루헤인은 그 선봉에 서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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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F가 된다
모리 히로시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내내 붙들고 있었던 책입니다. 모리 히로시라는 작가가 썼구요. 아주 예전에 서울문화사에서 <웃지 않는 수학자>라는 그의 두번째 작품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서 웬지 작가에 대한 인상이 좋네요. <모든 것이 F가...>는 1996년작으로 그의 데뷔작입니다.



사실 살까 말가 망설였는데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습니다. 대학 시절의 한 때가 생각나거든요... 연세 지긋하신 우리 과 교수님이 늘 말씀하셨죠.
"나군!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모든 것이 F가 된다네..."
(이 문장은 전부 농담입니다...-_-;;; 정말 썰렁하군요..)



모리 히로시는 일본에서 대단한 사랑을 받는답니다. 현직 모대학 건축과 조교수 작가로서 역자 후기를 보니 총판매부수가 500만부를 넘겼다더군요. (모대학이라지만 나고야 대학이라고 밝혀진 지 오래랍니다.) 역시 인기 작가인 교고쿠 나츠히코하고 비교가 많이 된답니다. 데뷔 시기도 비슷하고 무언가 독특한 작풍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교가 많이 되는데, 아주 재미있게도 모리 히로시는 이공계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는 문과계 작가로 나눈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럴 듯 합니다. 모리 히로시의 두 작품 모두 이공계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전공인 건축에 대한 언급부터 컴퓨터, 수학 등이 수시로 등장하지요. 요괴, 민속학 등에 천착하는 교고쿠 나츠히코와는 묘하게 대조가 되네요. 여튼 문과와 이과를 대표해 일본 미스터리계를 주름잡는 두 작가랍니다.



<모든 것이..>는 전형적인 밀실 살인입니다. 천재중의 천재 마가타 시키 박사는 9살때 컴퓨터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14살에 일본 컴퓨터계의 거성이 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을 칼로 찔러 살해하지요. 그러나 워낙 천재라 체포하지 않고, 연구소를 설립해 그녀를 가둬둔 후 연구에만 매진하게 합니다. 15년동안 말입니다. 역시 비범한 두뇌를 가진 N대학 건축과 조교수(작가 프로필을 유심히 보시길..) 사에카와 쇼헤이와 그의 제자이자 그를 연모하는 모에양은 시키 박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시키 박사가 연금되어 있는 연구소에 찾아간 두 사람...

그 날 밤 피의 참극이 벌어집니다. 굳게 닫힌 시키 박사의 방문이 안에서 열리고 그녀의 시체가 운반용 로봇에 실려 나옵니다. 시체에는 팔다리가 없었죠. 박사의 방은 완벽하게 차단한 밀실이었고 문밖에서 감시하던 사람도 사에카와 교수와 모에양을 비롯해 5명이 넘습니다. 그녀의 방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고, 쓰던 컴퓨터에는 이런 문구만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살인자는 어디에 있을까요? 과연 그날 벌어진 사건의 진상은 무엇일까요?



이상이 대략의 줄거리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의 플롯이지만 현대적인 트릭을 가미했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현대적인 트릭이라고 기계 장비나 컴퓨터만 이용하는 건 아니고 기저에는 심리적 트릭도 깔려 있습니다. 현실과는 완전히 담싼 도락으로서의 추리소설의 재미를 강조하는 신본격 작가답게 조금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풀기라는 미스터리 소설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신본격 작가다운 기발한 퍼즐의 제시와 논리적인 해명에 조금 높은 점수를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단점 중 하나라면 인물에 깊이가 없고 문장이 조금 딱딱하다는 겁니다. 주인공인 사에카와 교수, 시키 박사는 천재답게 늘상 요설을 뱉고 다니는데 많은 지식이 투영된 그 대사들이 현학적이라기보다는 멋만 부린다는 생각이 팍팍 듭니다. 모에양은 집에 헬리콥터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부자의 유산 상속인인데, 애처롭게도 작가가 개성있는 인물을 만들어 보려고 애쓴다는 느낌만 줍니다. 인물들이 종잇장처럼 얄팍해서 정이 가는 인물이 없습니다.

특히 작가는 연애 감정을 모르는 천재 사에카와 교수와 그런 그를 연모하는 모에양이 서로 가까워지는 러브 플롯이 작품의 재미를 돋운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유감스럽게도 인물들이 매력이 없으니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이 안갑니다. 그저 '그래서 이 사건의 진상이 뭔데? 쓸데없는 연애질말고 빨리 해답이나 가르쳐줘! '이런 생각만 드니 아쉬운 노릇입니다.



이공계 작가답게 문장도 조금 딱딱한 편인데, 이점은 어여삐 넘겨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의 현학적이고 강의하는 듯한 분위기와 조금은 딱딱한 문장이 잘 어울리거든요...컴퓨터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몰라도 지장은 없지만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사에카와 교수와 모에양 시리즈는 10권이나 나왔다더군요. 두 사람이 어떻게 연애에 골인하게 될지는 솔직히 전혀 관심이 안갑니다.

그러나 모리 히로시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트릭을 조금 더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작품이 잘되서 그의 작품이 다 나왔으면 좋겠네요...



평점: F (ㅋㅋ 농담입니다.)
        ★★★★

        



P.S/ 작품 뒤표지에 아야쓰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같은 신본격 클린업 트리오의 열광적인 찬사 글이 있군요. 이 세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도 빨리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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