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 프로농구 NBA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들 아시겠지만 몇년 전 은퇴한 하킴 올라주원이라는 센터가 있습니다. 너무 잘해서 다른 팀 선수가 이런 말을 했죠. '하킴 올라주원은 하킴과 올라주원, 두 사람이라 그를 막으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저는 히가시노 게이고에게도 그런 말이 해당하지 않나 싶어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히.가.시.노 게.이.고, 일곱 사람이라 그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써낼 수 있었다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20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55편이라는 많은 작품을 써낸 것도 놀라운데, 작품의 수준이 비교적 고르게 뛰어나고, 소재가 작품마다 달라진다는 것은 정말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국내에 출간된 작품만 봐도 <백야행>이 60년대부터 현재까지 두 남녀의 비밀스런 삶의 궤적과 함께 고도 성장기의 일본을 통과해온 사람들에게 바치는 가을같이 쓸쓸한 만가라면, <비밀>은 딸과 부모의 영혼이 바뀌며 펼쳐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였고, <짝사랑>은 남녀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쓴 경쾌한 유괴 이야기였구요. 곧 출간될 <호숫가 살인사건>은 입시 지옥, 불법 과외 등으로 얼룩진 현대 일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해 일본 아마존 서평에 어느 독자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다양한 소재라도 자유자재로 요리할 수 있는 자신의 뛰어난 역량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공감가는 말입니다. 초기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분히 본격 작가였습니다. 설명용 그림이나 도면, 지도 등도 꼭 들어갔었죠. 데뷔작인 <방과후>는 학원 본격 미스터리였다고 합니다. 이게 인기를 끌어 초기에는 학교를 무대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경쾌한 학원 본격 미스터리 작가로 불리웠답니다. 본격 작가로도 뛰어났지만 그는 작풍을 드라마틱하게 바꿉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다양한 소재를 다루며 본격 일변도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작품을 쓰게 된 거죠. 그러나 본인은 자신은 미스터리 작가임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가 쓰는 모든 작품은 미스터리 터치가 절묘하게 녹아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변신> 역시 뇌이식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 분위기가 잘 살아 있습니다. 평범하고 소심한 나루세 준이치라는 청년이 강도를 만나 머리에 총상을 입습니다. 강도의 이름은 교고쿠 šœ스케인데 어머니를 죽게 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 강도짓을 하다가 준이치를 쏘고 만 거죠...경찰에게 쫓기던 교고쿠는 자살을 하고요. 머리에 총을 맞은 나루세는 뇌이식을 하고 간신히 살아나지만 자신이 무언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그가 그림은 제쳐두고 음악을 좋아하게 됩니다. 참고로 자살한 강도, 교고쿠는 음악가 지망생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스포일러는 아닐 겁니다. 이 작품은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지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라서요...)

무엇보다 나루세에게 최악의 변화는 그렇게 사랑하던 애인 메구미의 매력 포인트였던 주근깨가 미워 보인다는 거였습니다. 또한 나루세에게는 웬지 모를 폭력성도 나타납니다. 소심하고 심약했던 그가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릅니다. 모든 게 뇌이식 때문일까요? 그는 목숨은 부지하게 되었지만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요? 아니, 뇌가 바뀐 나루세를 나루세라는 존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그런 뇌이식의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징인 엄청난 가독성으로 인해 4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단숨에 읽힙니다. 점점 소름끼치게 변해가는 나루세의 변화를 쫓아가는 서스펜스도 숨이 막히고, 결말까지 주욱 이끌어가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작가의 작품 중 <백야행>이나 <비밀>같은 최일선의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2% 부족한 결말이 약간 아쉽고, 이야기 전개도 비교적 예측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뇌이식으로 인해 변해가는 사나이라는 주된 소재가 이미 낡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이 나온 시점은 1994년이었거든요. 다만 그 당시에는 대단히 신선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그가 과학을 좋아한다는 거죠. 이공계 작가답습니다..^^;;
빙의같은 추상적인 소재도, 성정체성 장애 같은 정신의학적 소재도, 뇌이식이나 인간 복제같은 소재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작가는 노력합니다. <변신>도 그같은 점을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장점이 많은 작가지만 제가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에 웬지 모를 애잔함이 감돌고 있다는 거죠. <백야행>, <비밀>의 전설적인 애절한 감동을 주는 마무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변신>의 마무리도 감동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여기서 광고를 약간 하자면 <호숫가 살인사건>의 마무리도 대단히 감동적입니다. 저는 울었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실력과 재능, 재미를 겸비한 작품이 계속 나오는 것은 정말 반길만한 일입니다.
저도 2권을 냈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들을 더 내고 싶습니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유감이라면 한국어판 서문과 사진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진을 자기 책에다 절대로 박지 않는다네요. 또한 소설 이외의 글을 쓰는 걸 싫어해 서문도 안써준다고 합니다. 뭐 그 시간에 소설을 한 자 더 써주는 게 저같은 팬에게는 더 반갑지만요.^^;;
이 남자 조금 고집불통에 딱딱할 듯 하지만, 그래도 웬지 뚝심 있고 멋져 보이지 않나요? 저만 그런가요? ^^;;;

평점: ★★★1/2

P/S: 이 작품은 <HEAD>라는 만화로도 나왔습니다. 전4권인데 내용은 완전히 동일합니다. 저는 다행히 3권 볼 때,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기서 접었습니다...^^;; 그런데 만화로 이미 다 보신 분들도 상당히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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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5-09-09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
호숫가 살인사건, 얼마 전에 이미 나왔지요. (곧 출간될.. 이라고 쓰셔서.. ^^;;)
그리고 누구의 뇌가 이식되는가가 아주 중요하지는 않다 해도, 그걸 모르고 보는 것과 알고 보는 건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

jedai2000 2005-09-2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점에서는 출간이 안 된 상태여서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로그나 카페 활동만 열심히 했는데, 이제 서재 신경도 좀 써야겠네요. 저는 제 글 읽어주시는 분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한 분이라도 있다면 열심히 해야겠네요..^^;;

상복의랑데뷰 2005-10-0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 혁진님 축하드립니다~^^

jedai2000 2005-10-24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

거친아이 2005-11-10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밀을 영화로 봤는데...이 분이 원작자시군요...첨 알았답니다...흥미로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