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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평점 :
어제 첫 정모를 다녀 왔습니당. 넘 잼있는 나머지 지하철 탈 시간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보니, 지하철이 끊겼더라구요. 다행히 고속버스는 운행을 하기에 버스를 타고 무사히 저희 동네까지 왔는데, 내려서 한 30분 걸어야 하거든여. 버스는... 집에 들어왔더니 거짐 2시... 덕분에 오늘 1시까지 잤다는...-_-; 그 때쯤 되니 정모 후기와 댓글이 다들 올라와 있더군요.. 부지런하기도 하셔라... 넘 좋았고, 잼있었고, 담에 또 이런 자리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당..^^;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은 <시행착오>, <포와로 수사집(요즘 크리스티 재독을 하고 있다는...)>, <로봇 3권> 등입니다. 그 외에 틈틈이 관 시리즈를 읽고 있습니다. 관 시리즈는 그 희귀성 때문에 인구에 회자되는 워낙에 인기가 있는 작품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코멘트를 하고 싶어 이런 글을 남깁니다. 현재 <미로관>의 2/3쯤 읽고 있는데, 느낌이 좋네여...
<십각관>은 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작가와 작품 소개글을 읽어 보니 작가 아야츠지 유키히토의 데뷔작이고, 종래의 추리 소설에 염증을 느낀 독자들에 의해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고 하네여... 우리 나라 독자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당...일단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거의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패러디에 가까울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폭풍우 속에 고립된 산장, 죄가 있는 일군의 사람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 범죄 등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몰아일체의 완벽한 재미를 상당 부분 재현한 게 바로 <십각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십각관>의 재미의 80%쯤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데자뷔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말해 이 소설이 대단히 빨리 읽히고 재미 있는 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십각관>과 거의 똑같은 플롯을 가진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완벽한 재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거져... 이 책 <십각관>이 아무리 재미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뛰어난 작품에 기대어 쓰여진 책이기에 일정 부분 평가절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작품이기에 독창성이 부족하고, 함부로 말해 선배 작가의 뛰어난 저작에 빌붙었다고 볼 수 있다는 거져...(넘 심한가?)
머 소재가 비슷한 거야 그렇다 쳐도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는 법이니깐...) 작품의 완성도면에서도 불만족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일단 가장 큰 불만은 본격물을 주창하는 작가의 작품이 본격물이라고 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작품에는 탐정역이 있지만 범죄를 해결해내는 과정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섬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범죄들과 본격물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작가의 자의식 과잉의 대사들을 보면서 독자들은 누구나 아! 기발한 퍼즐과 근사한 해결이 나오겠구나, 하고 굉장한 기대를 할 겁니다. 그러나 기대는 금물...벌어지는 일들은 기발하고, 사건의 진상도 재미있지만 논리적으로 범인을 맞추고 범죄를 해결해내는 과정은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 범인은 섬과 육지 를 오가며 그럴듯하게 범행을 저지르지만, 모든 범행 후에 그냥 고백해 버리고 맙니다. 그럴거면 탐정은 왜 나온건지..-_-; 분명 도락으로써의 추리물을 강조하며 퍼즐과 해명에 몰두하는 본격물적인 구성으로 책을 쓰다가 이런 식으로 끝을 내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본격 추리 소설이 아니라 육지와 섬을 오가며 벌였던 개인의 범죄를 단순 묘사하는 범죄 소설이었단 말입니까?
제가 이러한 작품을 쓸 능력이 있다면 최소한 범인을 맞출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겠습니다. 육지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범인이 섬에 있었던 사람만 알 수 있는 사실을 알고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아니면 미리 그려 놓은 그림으로 알리바이를 삼는 범인의 그림에 무언가 헛점이 있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범인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놓아야 했습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제가 느꼈던 실망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 하나 작품의 중요한 트릭중의 하나인 이름에 얽힌 트릭의 유치함은 가히 놀랍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등장 인물들은 유명 추리 소설 작가들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카,크리스티, 퀸 등 이렇게 말이죠... 섬에 있었던 사람들은 카,크리스티,퀸, 반 다인, 포,올치 가 있었고
육지에 남았던 사람들은 코넌 도일과 모리스입니다. 모리스는 모리스 르블랑이라는 풀네임이 나오진 않았지만 코난 도일과 나란히 있는 모리스는 추리 소설을 약간만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모리스 르블랑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누구도 섬에 있었던 카,크리스티,퀸,반 다인, 포,올치 와 육지에 있었던 코넌 도일과 모리스를 같은 인물로는 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진상은 모리스는 그냥 본명이었고, 사실 그는 반 다인으로 섬과 육지를 오갔던 거져...-_-; 머 그렇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범인의 정체를 가리기 위해 사용했던(헷갈리게 하기 위한) 트릭으로써는 별 수 없이 유치합니다. 분명히 재기는 보이지만, 추리 소설 매니아에게나 어필할(최소한 모리스에서 모리스 르블랑을 떠올릴 정도는 되는 사람들) 동호회 수준의 트릭으로 전혀 중후함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처녀작이다 보니 군데 군데 유치한 설정이 보이기도 합니다. 카의 죽음 장면에서 쓰였던 커피잔의 무차별 살해 트릭은 제대로 된 본격물의 트릭을 선보일 수 있었던 장이였습니다. 그러나 띡 등장하는 10각형의 잔 속의 11각형의 잔 -_-; 그런 식으로 아무런 진지한 고민없이 해결해 낼 줄이야...(물론 11각형의 잔이 비밀 통로를 발견해 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만...) 10각형 속의 11각형에서 볼 수 있는 툭 튀어나온 하나의 각이 이 장면의 볼품없는 어색함을 보여주는 듯 하네여...
넘 심하게 비난만 한 듯 하지만, 분명히 재미는 있는 책으로 의욕적으로 추리 소설계에 출사한 작가의 패기와 재기는 보입니다. 그러나 처녀작다운
유치한 설정이 넘 많습니다. 지금 어느 정도 중견의 위치에 오른 작가가 다시 개작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여... 이 작품 사랑하셨던 케쳡님과 데카님의 얼굴을 떠올리면 죄송한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이 저는 악평을 씁니다...
작가의 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차관>에서는 논리적으로 범인을 한정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한 듯 보입니다. 넘 쉽기는 하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전 맘에 드네여...편수가 더해갈수록 더욱 나은 작품을 선보이는 노력하는 작가의 전형이 아닐까여... 이제 <미로관>의 남은 100쪽을
읽어야겠네여...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