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 한 방울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5
샬롯 암스트롱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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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일러 있습니다.

 

오랜만에 품평을 올리는군요... 요즘은 귀염이님빼고는 별로 품평을 안 하시는 듯... 하긴 저만 해도, 할 일이 없으면서도 별루 안 쓰게 되더러구여...어제 <흑묘관>을 끝으로 관시리즈 여섯 권을 모두 졸업했습니다. 전권을 다 읽고 나서 현재 제 맘은 나에게 아야츠지의 다른 작품을 제발 보여줘! 입니다.  개인적으로 관 시리즈와 아야츠지의 팬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십각관>과 <수차관>이 기존 본격의 틀에 너무 매여 작가의 붓을 제한한다면, <미로관>이후의 작품들은 본격의 규칙에서 벗어나 작가의 상상력과 독특한 기법들이 자유자재로 발휘되면서 머라 표현하기 힘든 재미를 안겨줍니다. 특히 <시계관>은 가히 명불허전이더군요!  놀라운 걸작입니다.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 추리 소설을 고찰하고 또 새로운 추리 소설의 전형을 만들어 나가려는 시도가 멋집니다. 관 시리즈가 일본에서는 몇 권이나 나왔는지 궁금하네요...<흑묘관>이 92년에 나왔던데 작가의 속도를 보면 벌써 8권,9권쯤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여... 빨리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여...

제가 오늘 올릴 작품은 샬롯 암스트롱의 <독약 한 방울>입니다. 해문의
5000원짜리 문고본으로 봤는데, 표지에 영어로 원제가 나와 있더군요...
<a dream of poison> 원제를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독약의 꿈이라...하긴 모든 미물들도 꿈을 꿀 자격이 있듯이 독약도 꿈 꿀수야 있겠지.


독약도 첨 태어날 때 얼마나 많은 청운의 꿈을 꾸었겠어...기왕 독약으로 태어났으니 최대한 많이 독살해야지!  난 100명 넘게 독살할거야! 난 고통없이 죽일래! 등등등... 그러나 알고 보니 원제는 <a dram of poison>이더군요. -_-; 독약의 꿈이 아니라 독약 한 방울이었던 거죠...

이 책은 일종의 심리물처럼 시작합니다. 여자에 서툴고 세상일에는 관심없는 55살의 교수가 동정심으로 인해 오갈 데 없는 32살의 여자를 돌봐주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연민으로 시작된 결혼이지만 그녀를 사랑하게 된 교수는 그녀도 자신과 같은 맘이었이면 하고 바라지만 알 수 없습니다. 교수는 사고로 다리도 절게 되고, 나이도 아내보다 23살이나 많고, 또
다친 교수를 돌봐주러 온 교수의 여동생은 시시때때로 교수의 귀에 어두운현실만을(그러나 지극히 편파적인) 주입합니다.

여기까지가 도입부인데, 교수의 심리 상태가 아주 그럴싸하게 묘사됩니다. 그가 느끼는 연민과 사랑, 자격지심과 절망 등이 손에 잡힐 듯 정교하게 그려집니다. 교수가  불쌍한 여자를 동정한 나머지 그녀와 결혼하고 건강하지 못한 그녀를 위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과정들은 필력이 떨어지는 작가가 썼더라면 상당히 느끼한 중년 변태 남자처럼 보였을텐데, 샬롯 암스트롱은 교수가 가지고 있는 동정심을 아름답게 묘사해 내는 필력을 보여줍니다.

계속되는 절망적인 심리 상태 속에서 교수는 자살을 기도하는데, 그가 담아 놓은 독약병이 버스에서 없어집니다. 교수는 다른 무고한 사람이 죽는 걸 막기 위해 여러 사람들과 고군분투한다는 게 대략의 내용입니다.

이 작품은 초반부는 심리 소설처럼 한 남자의 사랑과 절망을 보여주다 중반 이후에는 합심해서 독약병을 찾는 사람들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범죄다운 범죄가 없습니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선하며 어떻게든 파국을 막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특히 자살을 시도하려 했던 교수에게, 교수와 어떻게든 얽힌 사람들이 깊은 절망에 빠진 교수에게 자신들만의 충고를 각자의 방법으로 전하며 깊이 공감하는 장면들은 매우 돋보입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독약병을 찾기 위한 모험에 선뜻 뛰어들고 교수와 그의 아내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으며, 용기를 북돋아주고,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사람 사이의 온기를 느끼게 되고 마침내 자신의 절망을 걷어 치우게 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늘 하다가도 친구들의 툭 던지는 한 마디에 기운을 회복하곤 했던 경험은 누구나 다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감흥을 줍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머 이런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거지요...

개인적으로 아주 잼있게 읽었고, 많은 것을 느꼈던 좋은 책입니다. 범죄가 나오지 않는다고 건너 뛰지 마시고 꼭 읽어 보세요...MWA 장편상이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수작입니다.  흐뭇한 결말은 보너스라 할 수 있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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