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나 왔다. 허, 이 자식. 또 자빠져 자고 있네. 지금 2시가 넘었다. 강군: 어, 왔냐. 잘 왔다. 심심해서 그냥 누워 있었어. 공군: 심심하면 집 밖으로 나갈 것이지 이게 뭐하는 짓이야. 강군: 그런 소리 말고 너도 내 옆에 누워. 공군: 미친 거 아냐. 내가 왜 니 옆에 눕냐. 강군: 내가 중3때 일이었어.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뭐할까 고민하다가 둘이 같이 침대에 누웠는데, 둘다 깜빡 잠이 든거야. 그때가 한창 피곤할 때잖아. 4시쯤 잤는데 9시까지 같이 잔 거야. 그때 어찌나 달게 잤는지...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라는 느낌이 그렇게 편안함을 준 것 같아. 그때처럼 한 번 같이 누워보자. 공군: 뭐 그렇다면 알았다...
강군: 누우니까 편하지. 공군: 그러네. 강군: 이러고 있으니까 꼭 BL(boy love)이나 야오이 같지 않냐. 공군: 그런 건 꽃미남들이 하는거지. 네 상판을 봐라. 기름 덕지덕지 끼고, 머리는 개털에다...쯧쯧. 강군: 피곤하니까 그렇지. 공군: 악, 이불 속에 딱딱한 거 뭐야! 강군: 놀라긴..쯧쯧. 핸드폰이야. 공군: 그렇구나. 깜짝 놀랐잖아. 강군: 도대체 뭔지 안 거야.
공군: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심심한데 최근에 본 책 이야기나 해봐라. 강군: 최근에 본 거...음, <호박방>이 있군. 공군: 호박으로 만든 방이라니. 냄새 죽이겠네. 강군: 먹는 호박이 아니라 보석 호박. 공군: 그래. 강군: 나도 이번에 이 책을 보면서 알았는데 러시아에 있었단다. 벽 전체가 20톤의 귀한 보석, 호박으로 장식된 호박방이라는 게 말야. 나치가 가져갔는데, 전후 행방불명 되었다지. 아직도 찾고 있는 보물 수집가가 많단다. 공군: 보물이라...그것만 있으면 구질구질한 우리 인생도 바뀔텐데 말야. 강군: 그렇지. 넌 보물 찾으면 뭐하고 싶냐. 공군: 글쎄...소외된 이웃도 돕고 수해피해자나, 가정폭력 희생자 단체 등에 기부를. 강군: 놀고있다. 공군: 전지현이랑 사귄다. 강군: 이 자식아. 상상력이 그렇게 없어. 그 보물을 가지고 고작 전지현이냐. 난 김태희. 공군: 이 상상력 기발한 자식 같으니라구. 김태희 받고 손예진 내꺼. 강군: 다 줘도 서지혜는 못 줘.
공군: 알았다. 너 다 가져라. 책 이야기나 더 해봐. 맨날 흥에 겨워 난리치더니 오늘은 왜 그래. 강군: 응. <호박방> 이야기 더 해볼게. <호박방>은 일단 종이질이 좋다. 가벼워서 들고다니기도 좋고. 두 권으로 분권했는데, 이벤트해서 한 권 가격으로 살 수 있다. 끝. 공군: 뭐야, 정말 끝이야? 강군: 내가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알아먹어야지. 임마,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건덕지가 없다는 거잖아. 호박방을 찾으려는 두 거물 기업가가 있어. 그 사람들 밑에는 살인마 겸 색정광인 각각 남녀 해결사가 있고. 얘네들이 호박방 때문에 박터지게 싸우는데, 우연히 미국인 이혼 부부가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 공군: 당연히 해결사들은 부부를 노리겠네. 강군: 그렇지!
공군: 소재도 재미있고,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강군: 우선 '호박방'이라는 소재는 그럴싸하지. 본문 앞에 현재 러시아에서 재현해놓은 호박방 사진이 실려있는데 휘황찬란하더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팩션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싸구려 작가가 다 망쳐버린 셈이지. 단문이 많은데, 속도감 있는 문장이라기보다는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수 없는 사람이라 죄다 딱딱 끊어지고. 내용은 완전 쌍팔년도 막 나가는 소설만도 못해. 공군: 어떻길래? 강군: 주인공들이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 같은데서도 독창성이 전혀 없고. 예를 들어 건물 옥상에서 킬러와 맞닥뜨린 주인공들. 킬러가 딱 보니까 아무도 없는거야. 그러고 킬러가 사라지면, 얘네 난간에 매달려있는 거지. 진짜 영화에서 한 5000번은 나왔던 거 아냐. 게다가 어찌나 밝히는지, 마지막에 킬러가 적들을 앞에 두고, 그 중요한 순간에 여주인공 강간하려다 비명에 간다. 그게 말이 되냐. 적들 다 죽여놓고, 나중에 그러면 되는 거 아냐. 공군: 허허.
강군: 인물들 얄팍하기는 어떻고. 여주인공은 원래 좀 땍땍거리고 앙칼진 성격인데, 남편이 우유부단하고 좀 소심해서 이혼한 거거든. 근데 모험을 같이 하다보니 남자가 의외로 결단력이 있는거라.바로 눈녹듯 남편한테 다시 뿅 가더만. 등장인물 성격도 막 바뀌고. 주인공 부부를 도와주는 발굴 전문가가 나오는데, 이 친구가 처음에는 거칠고 약간 이기적인 성격이었는데, 나중에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주인공 부부 대신 총맞고...또 그 놈의 호박방의 유래와 행방불명된 경위는 어찌나 자주 나오는지. 내가 거기 등장하는 콰니히스부르크를 아예 외웠다. 작가가 조사 열심해 했어요, 하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기가 막히지, 아주. 공군: 나름 좋은 소재를 갖고 잘 못 살렸던거다. 강군: 총체적인 실패작이다. 스티브 베리라는 작가에 대면 댄 브라운이 세익스피어로 보일 정도니까. 비싼 돈 주고 왜 이런 작품을 사왔나 몰라. 공군: 그래도 장점 한 두 개는 있을 거 아냐. 강군: 그나마 잘 읽힌다는 거. 어렵지도 않고, 익숙한 플롯이라 생각할 필요 없이 페이지 넘기면 되니까. 야한 장면이 많아서 그런 쪽에서 약간 흥미를 가질 사람도 있기야 하겠지만. 뭐 책이 야해봐야 얼마나 야하겠냐...
공군: 알았다. 잘 들었다. 별로 볼 필요 없는 책이구나 강군: 내 말이. 공군: 어, 너 핸드폰 왔다. 백만 년 만이구나. 이거 소리 어디에서 나는거냐? 강군: 어제 책상 위에 놔두고 잤어. 일어나서 받아야겠네. 공군: 잠깐...핸드폰이 저 위에 있다고...그럼 아까 그 이불 속에 있던 것은... 강군: ...... 공군: ...... 강군: 일단 맥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자.... 공군: .....좋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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