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노랫소리 - 제6회 일본추리서스펜스대상 수상작
텐도 아라타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관계를 얻는다. 어쩌면 그 관계라는 것은 인생이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행복과 편안함, 즐거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소중한 사람들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어둡고 암울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면 내 곁에서 항상 웃음지어 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한층 커진다.

 

그러나 늘 만족을 못 하는 게 사람의 병. 어느 순간에는 필연적으로 맺어야 하는 많은 관계들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집에 틀어 박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을 혼자 마음껏 읽고 싶고,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듣고 싶을 때 만나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몰래 이맛살을 찌푸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못지 않게 혼자만의 시간에서 느끼는 고독도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느끼는 고독에 대해 많은 발언을 하고 있다. 거칠게 봐서 연쇄살인마와 형사가 대결하는 사이코 스릴러로 분류될 수 있지만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작가가 말하는 고독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실수로 인해 친한 친구가 실종되고 결국 시체로 발견된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형사와 일체의 관계를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침잠하는 음악가 지망생이 등장한다. 우연한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이 차가운 고독을 넘어 서로를 느끼고 위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일종의 성장소설일뿐 추리 서스펜스는 아니다. 그래서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도 전형적인 악인은 아니다. 미혼모 슬하에서 자란 그는 가족을 간절히 원한다. 따뜻하고 행복이 넘치는 가정. 대다수의 인간들이 간절하게 원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그는 역시 혼자 사는 여자들을 납치해 가족으로 삼으려 한다. 자신의 가족이 되길 거부하는 여자들을 잔인하게 난자한 후 버리는 연쇄살인마. 모두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이 책을 읽는 모두가.

 

도처에 훌륭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고독에 대한 작가의 발언이 특히 그러한데 몇몇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 소개하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깊이 교감할 수 있는 뛰어난 문장들이 너무 많아 도저히 이 짧은 글에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양들의 침묵>같은 서양의 사이코 스릴러와 유사한 이야기에 이런 깊이를 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밀리언셀러 작가 텐도 아라타의 비교적 초기작이지만 미래 대형 작가의 실력과 기품을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대표작 <영원의 아이>보다 더 좋았다. <영원의 아이>가 대작을 의도하고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면, 비교적 짧은 분량에 한정된 공간을 다룬 이 작품이 더 압축적이고 임팩트가 있는 것 같다. 그 특유의 섬세한 심리 묘사는 대작보다 소품에 걸맞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고독의 노랫소리>가 바로 그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된 그런 작품인 것 같다. 물론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우연의 남발을 지적하거나 지나친 잔혹성 등이 거슬리는 독자도 있을 것 같지만 큰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무덤처럼 잠든 도시에서 오아시스처럼 불빛이 밝혀진 편의점의 이미지나 도시의 뒷골목을 달리는 젊은 영혼들의 움직임이 발군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서 역동적인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이런 것이야말로 초기작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함이 아닐까 싶다. 책 뒷표지에 실린 홍보문구처럼 쫓는 자도 쫓기는 모두 외롭다는 공통점을 지닌 현대사회의 쓸쓸한 풍경을 절묘하게 그린 작품이다. 텅빈 방을 부유하는 고독의 노랫소리가 역시 텅빈 방에서 고독한 행위인 독서에 몰두하는 우리들의 가슴에 절묘하게 공명한다. 모든 것을 갖춘 뛰어난 소설이다.

 

 

별점: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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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4-23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읽고 싶은 생각이 팍팍 들도록 리뷰 쓰시네요. ^^

물만두 2006-04-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독의 공명... 정말 좋네요~

상복의랑데뷰 2006-04-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파주에서 원기를 회복하셨군요 ㅋ

jedai2000 2006-04-24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꼭 보세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재미와 감동이 모두 있는 소설이니까요.

물만두님...이 소설과 꼭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상복의 랑데뷰님...원기 회복하느라 좀 오래걸렸답니다..^^;;

Apple 2006-05-05 0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최고..乃

jedai2000 2006-05-06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최고죠. ^^;; 정말 돋보이는 작가의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bongbong 2007-04-19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표작 '영원의 아이' 보다 좋던데요..
정말 최고 d^^b
이런 작품을 만날때마다 책읽기의 행복이 절실히 다가옵니다.

jedai2000 2007-04-20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품을 <영원의 아이>보다 높게 보는데, 그런 분들이 많지는 않더라구요. 동지를 만나 흐뭇하네요 ^^ 저력있는 작가의 저력있는 초기작이었어요 ^^